〈 108화 〉12. 메울 수 없는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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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입니다.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그리고 적은 피해로 사태가 진압 됐어요."
다시 화상으로 모인 지부장들.
총 본부장이자, 협회장이 조금 기쁜 표정으로 운을 뗐다.
던전 협회가 예상키로, B급 던전인 도쿄 던전의 진압시간은 최소 24시간 이상이었는데, 그 예상에 한참 못 미치는 1시간 남짓하는 시간 만에 끝났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그 정도로 한국군이 강하단 말야???'하며 잘못된 감탄을 터뜨리는 이들도 꽤 있었지만, 적어도 이 자리에는 그런 무지몽매한 사람은 없었다.
도쿄 던전의 진압이 누구에 의해 된 것인지 이미 알기 때문이다.
"미스터 유...라고 했던가요? 그 모험가."
회장이 그의성을 부르자, 지부장들, 특히 한국 지부장이 눈에 띄게긴장했다.
"그렇게까지 강할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입수된 영상으로 보건데 최소 공방 10만 이상의 실력자로 보이더군요. 아니...10만이라니 나도 참...적어도 그 네 배는 되겠지요."
중간에 웃음을 터뜨린 그는 씨익 하고 웃었다.
던전이 출현한지 3년, 이제 막 4년을 향해 달려가는 지금, 일반에게 공개된 정보는 매우 제한되어 있다.
세계 공식랭킹이 가장 대표적인 부분.
이미 '진짜 고수'들은 각 국가나 기관에 의해 스카웃 되거나 주요 인물로 주시되고 있는 상태이며, 그들의 공방 수준은 결코 '세계 공식 랭커' 같은 허접한 이들과는 비교할 수 없다.
개중에는 10만을 넘나드는 이도 있으며, 스탯 자체는 낮지만 '강화 계열 재능'을 가져 공방이 몇 배로 뻥튀기 되는 인간도 있다.
이런 경우 갈수록 공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되는데,
예로 '공격력 강화LV.1' 재능의 경우, 최종적인 공격력이 '2배'로 적용된다. 여러 가지 스탯과 장비의 스탯+공방수치로 인한 총 공격력에 200%가 되는 것이다.
당연히 갈수록 어마어마하게 강해질 수밖에 없으며, 아직까지 보고된 바 없는 '공격력 강화LV.5'의 경우, 무려 '15배'나 적용된다.
보고된 바 없는데 이를 어찌 아냐면, 바로 유럽 지부장 때문이다.
유럽 던전 협력기구 지부장인 '아녜스 이사벨라'는 협회 지부장이면서 스스로도 모험가의 능력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물론 대부분의 협회 중진이 자신의 몸 보호를 위해 스탯을 개방하고 어느 정도의 공방을 유지하고 있긴 하지만, 그녀는 스탯빨이 특히 크다.
무려 두 개의 '강화 재능'을 지니고있으며, 각각 '방어력 강화 LV.5'와 '힘 강화 LV.4'라는 말도 안 되는 재능의 소유자다.
이 말은, 그녀의 총 방어력이 '15배'로 적용된다는 뜻이며, 그녀의 총 힘 스탯이 '9배'로 적용된다는 의미다.
현재까지협회에 보고된 LV.5텔런트(LV.5의 재능을 하나라도 보유한 사람)는 총 7명. 그나마도 그 중 6명은 스카우터로, 일본 지부에서 활동하는 키라라 사토미도 그 중 한 명이다.
즉, 강화계열로 5레벨 재능을 가진 사람은 아직까지 아녜스가 유일하다는 뜻이다.
아무튼 그녀의 재능을 통해 LV.5의 강화 계수가 15배라는걸 알게 되었고, 이로 인해 강화 계열의 계수 자체는 모두 보고되었다.
1레벨이 2배, 2레벨이 5배, 3레벨이 7배, 4레벨이 9배, 5레벨이 15배.
노력과 금전 '따위'로는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종류의 재능이다.
참고로 재능은 오로지 '타고나야'하며, 후천적으로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지금까지 보고된 바가 없다.
여기서 말하는 '후천적'이라는 건, '노력'이나 '금전'혹은 '아이템'등을 통해 '의도적으로'발현시키는 걸 뜻한다.
던전이 탄생한지 3년 밖에 안 되었으니, 당연히 모든 텔런트들의 재능은 평범하게 살아가다가 발현된 것이다.
다만, 그건 태어날 때부터 내재되어 있던 것이 어떠한 잠금조건을 풀어 해금되었을 뿐, 재능의 재능이 없는 자들은 같은 조건을 수백만 번 맞추어도 절대 재능이 생기지 않는다.
그야말로 될놈될의 끝판왕...
결과적으로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모험가들의 강함과, 협회 상층부가 알고 있는 모험가들의 강함은차원이 다르다.
그리고 그 가운데 유은이 추가됐다.
"혹시 한국 지부는 알고 있었습니까?"
"설마요. 저도...그렇게 강한지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접촉해 봐야겠죠."
"그렇습니까."
본부장은 더 캐묻지 않고 바로 화제를 돌렸다.
"초월적인 강함을 자랑하는 자이니, 여기 있는 분들도 이제는 자세한 정보를 알아야겠죠. 미스터 김께서 브리핑 해주시겠습니까?"
"...꼭 알아야 하나요? 그래봤자 모험가 한 명일 뿐인데. 추후에 알아봐도 되잖아요?"
본부장의 제안을, 아녜스가 막아섰다.
심히 맘에 안 드는 얼굴.
"그보다, 지금은 실종된 지부를 더 신경 써야 하는 거 아닌가요? 협회장으로서, 본부장으로서요."
"흠...확실히 그런 측면도 있죠. 인정합니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실종된 지부.
바로 일본 지부를 뜻하는 것이다.
본래 도쿄한복판에서 아시아 지부와 같은 건물을 사용하던 일본 지부는, 이번 던전 출현으로 인해 임시로 건물을 옮겼다.
던전이 다 토벌 될 때까지 멀쩡히 돌아가고 있었으나, 갑자기 수십 분 뒤에 건물째로 붕괴해 버렸다.
"확실히 본부장으로서, 지부의 붕괴를 중요하게 다루는 것이 매우 중요하죠. 하지만...."
"?"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그에 대한 걸 여러분이 아셔야 한다고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그게...무슨 말이죠?"
"아시아 지부 및 일본 지부 붕괴의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바로 그니까요."
"본부장님! 그게 무슨...!"
모두가 놀라고, 한국 지부장은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물론 어차피 화상이지만.
"아아. 어디까지나 정황상 그렇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각 지부장의 긴급회의가 소집되고 나서 첫번째로 거론될 정도의 모험가를, 미스터 이시다가 놓치겠습니까?"
"그..건...."
"분명 가장 먼저 달려가 영입 제의를 했겠죠. 만일 그가일본 지부에 가서 직접 그런 일을 벌인 거라면, 시간대가 정확히 일치합니다. 뭐, 자세한 건 현장 보고가 올라와야 알 수 있는 일입니다만. 일단은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도...그에 대해 상세히 아셔야 합니다."
"...."
더 이상의 이견은 없었다.
B급 던전의 보스몹을 순식간에 해치워 버릴 정도의 강자. 그러면서 일개 지부를 붕괴한 혐의를 받고 있는 모험가라면 모든 지부장이 응당 알고 있어야 한다.
"자. 그럼 미스터 김, 브리핑을."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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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썼는데요."
"...."
이죽거리며 대답해 주었다.
이렇게 비웃어주는 표정이 일품이지.
쾌감 장난 아니라고?
"그건...너무 무책임한 행동 아닙니까?"
"아닌데요."
눈 앞 여군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아무래도 남자로서는 나와 제대로 된 말문을 틀 수없다고 생각했는지, 제7기동군단에서는 여군과 호위 몇 명을 내쪽으로 보내왔다.
뭐...내쪽이라 해봐야 고작 10여미터 차이지만.
진짜 무슨 판문점처럼 대치하고 있어. 꽤 웃긴 상황이라고.
"후...당신도 우리나라 사람 아닙니까."
"그렇죠."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군대가 이익을 봐서 나쁠 건 없잖아요."
"좋을 것도 없죠."
"국방이 없으면 나라도 없고, 나라가 없으면 국민도 살기 힘들어집니다."
"그래요? 그럼 제가 감당하면 되겠네요. 나라 하나 세우지 뭐."
"...."
아. 빡쳤다.
"...이봐요. 다른 건 다 둘째치고, 이번에우리군이 투입한 비용이 대체 얼마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고, 가장 많은 시간동안 던전을 타격했으며, 효과적으로 격퇴 했어요. 소유권이 우리에게 있다는 말은 하지 않겠지만, 적어도 상의는 했어야 하지 않나요?"
"글쎄요. 제가 없었어도 효과적으로 격퇴했을지는...후후."
"그건 당신 생각이고요. 어쨌든 이번 던전의 몬스터는 90% 이상이 국군의 포격으로 궤멸되었고, 보스몹도 얼마든지 처리할 수 있었어요. 당신은 보스몹만 쓱 하고 처리하더니 그 보상을 전부 가져간 거라고요. 양심에 가책도 없어요?"
"어떨 거 같아요?"
"하...이래서 미필은진짜...."
"제가 미필인데 뭐 보태준 거 있습니까?"
"아.니.요. 생각해 보니까 어차피 정공으로 빠졌을 거 같은데 미필이니 뭐니 하는 건 의미 없어 보이네요. 미필로 남아 주셔서 아주 감사합니다. 당신 같은 사람이 훈련소라도 왔으면...아니지. 정공은 훈련소 안 오지. 아무튼 감사해요."
뭔가 열심히 날 비꼬아 주는데...미안하지만 전혀 타격 없다.
"다행인 줄 아세요. 대통령님 명령 아니었으면, 당신들은 지금 이 자리에서 벌집 됐을 거니까."
"오오? 대통령님이 뭔가 했습니까?"
"흥. 뭔 일인지는 몰라도, 당신네들에 대한 공격은 무조건 불허한다고 하시던데요. 명예 경무관 되시더니 만나서 접대라도 하셨나?"
"접대라...받고 싶어요? 제가 이래봬도 한 접대 하는데."
좆접대라고 들어 보셨나 몰라.
"필요 없어요."
그녀는 홱 일어나더니 나를 한 차례 째려보곤 돌아갔다.
그러고보니 계급이 소령...그 한사랑 소령이랑 똑같네. 성격도 미묘하게 닮은 거 같고...혹시 동기?
"왜요? 소령님 정도면 제가 아주 극진하게 대접해 드릴 수 있는데."
"됐고요. 더 이상 이상한 짓 하지 마세요."
"에이. 팍팍해라. 아니면 이따 놀러올래요? 짬밥 맛 없잖아요? 우린 고기 먹을 건데. 고기."
"...말이 되는 소릴 해요. 탈영병 될 일 있어요? 그리고 고기는 한국에서실컷 먹었거든요."
아주 살짝 망설인 것 같지만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흐흐.
이거 뭔가 가능성 있어 보이는데?
솔직히 10미터 거리도 안 되는데 탈영은 말도 안 되고...소령 쯤 되면 밥은 좀 떨어진 곳에서도 먹을 수 있을거 아냐? 게다가 나랑 협상하던 자격도 있고...그런 구실로 이따 텐트로 부르면 되지. 흐흐흐. 여경도 먹었으니 여군도 좀 먹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