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대 던전은 나만의 기회 (116)화 (115/517)



〈 116화 〉12. 메울 수 없는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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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이 루크레시아를 안고 있을 무렵, 소라와 유나는 도쿄 외각을 향하고있었다.
그가 준 아흑 분신 2대와 함께.


"전 굳이 올 생각 없었는데요...."


소라 곁, 그러니까 조수석에 앉은 유나가 짤막하게 불만을 표했다.

조수석이라고는 해도 사실 운전석과 차이가 없다.
어차피 실제로 운전하는 건 아흑이니까.
당장 소라도 운전대에서 손을 놓고 폰질에 한창이다.


"괜히 거기 있어서 뭐하게. 씹질하는 소리나 들릴 텐데."
"그,그래도...."
"할 것도 없는데 거기서 뻘쭘하게 있는 것 보단 쇼핑하면서 기분전환이라도 하는  낫지 않아?"

정론이다.

평소의 유은이라면 그녀들도 함께 끌어들여 섹스하겠지만, 지금의 그는 얻은 여자가 너무 많다. 심지어 밤에는 접대 약속도 있지 않은가. 그녀들이 낄 시간은 없거나 희박할 것이다.


"혹시...."

한창 쳐다보던 폰을 놔두고, 소라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유나를 바라봤다.
아무 재능이 없는데도 통찰이나 관찰 종류의 재능을 가진 것처럼 눈빛이 빛나 보였다.

"불안하니?"
"??무,무슨...무슨 소리에요?!"
"아니 뭐...그렇잖아. 요즘 스승이 하는  보면 딱 그짝인데."

다 보인다는 것처럼 씨익 웃자, 유나가 발끈했다.

"아니거든요!"
"흐음...그래?"
"불안하다니 무슨...애초에 우리가 불안해 할 이유가 있나요? 고,공격력도 100만 단위인데. 불안할 요소가 전혀 없다구요."
"...아님 말구."

누가 봐도 거짓말이다.
유나는 지금불안해 하고 있다.

소라도 옛적에눈치챘지만, 지금껏 봐온 유나는 자존심이 강한 아이라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아마 약해보인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그래선 안된다고 소라는 생각했다.

자존심이 강한  좋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속내를 드러내지 못하면 결국 곪아 터지고 만다.

그녀는 유나가 그렇게 되길 원하지 않았다.


'오지랖이라면 오지랖이지만...아니지 앞으로 평생 같이 살 거잖아? 이건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해.'


결국 그녀가 먼저 얘기를 시작했다.

"난 말야. 요즘 기분이 너무 안 좋아."
"...네?"

뜬금없이 시작되는 푸념에 유나가 살짝 놀랐다.

"그 왜, 너무 많은 일이 있었잖아."
"그건...그렇죠."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속 안에 있는 것들이빠져나오는 느낌이다.

"걔는 전혀 눈치  챘을 걸? 둔해빠져가지고...."
"그,그 인간 때문에 그래요?"
"걔도 그렇고...나도 그렇고...그냥 슬프다."

술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이 순간 차에 타고 있다는 게 아쉽게 느껴졌다.

"동생을 만나서 새롭게 사랑을 시작한 건 좋은데...가끔 너무 짜증날 때가 있어."
"그 인간이 그렇긴 하죠."
"나 헤어진 지 한 달도 안 됐단 말야. 내 잘못으로 헤어지긴 했지만...근데 걔는 너무 강요해. 사람 마음이 그렇게 쉬운  아닌데. 이래서 연애 안 해본놈들은  된다니까."

뜨끔하고 찔리는 유나.
분명 유은을 겨냥한 말인데 왠지 자기 자신도 찔린다.

"에잇! 이런 얘긴 술 마시면서 해야 되는데. 안 그래?"
"그렇...죠?"
"그러니까 술 마시러 가자."
"예에? 쇼핑한다면서요?"
"술 마시는 것도 쇼핑이야. 술쇼핑."
"...."

소라는 그길로 목적지를 술집으로 변경했다.
유나는 황당했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 왠지 마시고 싶은 기분이 든 탓이다.


.
.



"크으! 사케!!"

소라가 과장된 제스쳐를 취하며 다시 술을 입에 털어 넣었다.

"아우...찌릿찌릿하다."


유나의 일본어 실력을 이용해 술과 안주를 잔뜩 시킨 두 여인은 이런저런 말을 나누며 술을 퍼마셨다.

유나도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리 꽤나 술을 좋아했기에 빈 병이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후우욱...근데 마침! 운현 그놈이 나타난 거야."
"아아. 드라마도 아니고 타이밍 엄청나네요..."
"그래 씨발!! 왜 하필! 왜 하필 그때 오냐고 하고 많은 시간 중에! 하필!"

두 미녀가 꽐라가 되어 한국어로 떠드는 모습은 꽤나 색달라서 주변의 이목을 끌었지만, 소라와 유나는 쥐뿔만큼도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은 그딴  보다서로의 이야기가 더 중요했다.


"키스는...키스는 좋았어요?"
"몰라 씨...기억 안 나. 충격 심하게 받았다고...."
"언니 진짜 나쁜년이네요."
"맞아...내가 나쁜년이야...그러는 게 아니었는데...으으...너무 많이 갔어...."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뒤로 만났어요?"
"그 뒤는 니가 아는 그대로지 뭐...홧김에 은이 데리고 폭풍섹스하고 그 다음날도 모닝섹스하고...점심에도 섹스하고...그러다가 요렇게 꿰여가지고  거지."
"거의 한 달이네요. 시간 빠르기도 해라."
"빠르긴 개뿔...존나  가...걔 없으니까 하는 소린데...난 아직도 헤어진 거 너무 슬프다...그냥 있을 땐 상관 없는데, 이렇게 얘기 꺼내기 시작하면 하염이 없다!"
"그렇겠죠...5년 사겼다면서요...자업자득이지만."
"...으으...스승 너무 직설적이야."
"...언니한테 듣고 싶지 않은데요."


소라가 하고 테이블에 이마를 박았다.


"마자...내가 개년이지. 걔는 잘못 없어...근데 은이는 걔한테 너무 심하게 굴더라...그게 더 맘아파. 뭐라 하지도 못하고...."
"왜 못해요?"
"...."

소라는  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가  하고 고개를 들었다.

"그보다 스승은 어떤데?"
"네?"
"그런데는  들어간 거야?"
"...어딜요?"
"에이~ 알면서 뭘 물어보니...매갈 말이야. 매갈."
"그,그야 페미니스트니까 그렇죠. 당연한 걸 물으시네요."
"거~짓말."
"거짓말 아닌데요."
"스승은 너무 어설퍼. 입으로만 한남 거린다고 다가 아니지. 넌 페미가 아냐."

소라는 확신에 가까운 표정으로말을 이었다.


"지금까지 너와  달 가까이 지내면서 느낀  뭔지 알아아?"
"...뭔데요?"
"'하! 이년 진짜 피곤하네.'"
"...시비걸려고 꺼냈어요?"
"우응. 아니. 시비라니. 내가 널 피곤하다고 느낀  페미라서가 아냐. 니가 이상한 거에 숨어 있으니까 그런 거지."
"...술이나 마셔요."

기분이 나빠졌는지, 유나가 뾰족한 표정으로 술을 따랐다.

"으이구~ 기분 나빴어?"
"애 아니거든요."

귀엽다는 듯이 웃자, 역시 날카로운 반응을 보인다.

"너 나한테만 솔직히 말해봐. 지금 되게 불안하지?"
"아,아까부터 자꾸 무슨 소리에요!"
"불안하잖아. 밀릴까봐."
"...."

유나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스승의 심리 흐름을 말해줄까? 정확하게 맞출 자신 있는데."
"...해,해봐요 어디."


할 수 있으면 해보라는 듯이 도발하는 유나.
하지만 거기에는 왠지 모를 불안함이 있었다.


소라가 씨익 웃었다.

"우선 은이를 처음 만났을 때, 어마어마한 페미인 '척'하면서 한남한남거리는 거야. 그때까지만 해도 속으로는 아무 생각 없었지. 진짜 매갈이 아니었거든."
"땡이네요. 처음 보자마자 역겨웠거든요."
"그러다가 얘가 본격적으로 변태성향을 드러내더니 마침내 귀두의 황태자라는 어이 없는 직업으로 전직을 해버린 거야. 여기서 우리 유나의 혐오감이 살짝 피어나."
"살짝 아닌데요. 엄청났는데요. 애초에 처음 보자마자 그랬다니까요???"
"그리고 대망의 황제 게임...와아...이땐 대단했어. 나도 살짝 욱했으니까 뭐 스승은 말할 것도 없지."
"흥...그거 하나 맞췄네요."
"근데! 왠지는 모르겠는데...."

소라가 살짝 말 끝을 흐리다가 손가락으로 유나의 이마를 가리켰다.


"그 게임이 끝나고, 넌 유은한테 반했어."

쾅!!


유나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무,무무무무무무무슨...!!"


순식간에 얼굴이 빨개졌다.
술을 마셨다는 걸 감안해도 심하게 붉다.

 모습을 본 소라가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아아. 과연 처음에는 본인도 당황했지. 당혹스럽기도 하고 어이 없기도 하고. 내가 이딴 변태 한남 쓰레기한테 반하다니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잖아? 하면서 페미교의 경서인 82키로 김뚱땡이를 미친듯이 탐독하는 거야. 신성한 매갈의 교리를 받들어 이 감정을 없애야 하니까."

그녀의 말이 계속될수록, 유나의 얼굴이 더욱 더 빨개졌다.

"하지만 될 리가 있나. 애초부터  그년들 논리에 전혀 동감을 못했거든. 그러기엔 지능이 너무 높아.  '이소냐씨'의 딸인데 어쩌면 당연하지."
"우,우우우...아니..아니에요...."

"그렇게 하등의 도움도 안 되고 동감도 안 되니까 결국 방  켠에 던져놓고, 마음속 혼란은 더욱 거세졌지. 이걸 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받아들여야 하나~ 아니면 무시해야 하나~ 하지만 결국 유은과 함께 살긴 해야 하는데~~ 등등. 아주 머리가 엄청 복잡했을 거야. 그래서 이도 저도 아닌 태도로 어정쩡하게 우리 곁에 있었던 거고."

유나는 달리  말을 찾지 못했다.
너무 당황한 것도 있지만 도대체 아까부터  이런 말을 꺼내는지 이해가 안 됐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렇게 고민하다가 마음이 커지자, '후...어쩔  없다...여,연애..해,해볼...까...?'라고 마음을 정립하던 찰나!"


탁!

"이소냐씨가 은이 여자가 된 거야."

움찔.


"거기서 충격 이빠이 받고 멘탈이 나가."

그녀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어때, 다 맞췄지?"
"아,아니...."
"그래서 궁금한 거야. 얘는 대체 매갈엔 왜 있던 거지? 하는 행동을 보면 매갈이랑 구만리는 떨어져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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