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2화 〉14. 일본의 불안.
14. 일본의 불안.
쾅!
귀를 울리는 거친 소리.
안에 있던 사람들이 놀랄 법도 하건만, 눈을 동그랗게 뜨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 모두 동감하고 있었기 때문.
"이 김치놈들!! 대체 무슨 생각이야!!!"
총리의 외침은 장내를 가득 채워 울렸다.
상당한 분노가 느껴졌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최고를 꼽자면, 오늘 아침에 보고 받은 한국군에 대한내용이다.
일본은 며칠전 도쿄에 주둔중인 한국 국군 제 7 기동군단의 철수를요구했다.
이미 맡은 바 임무를 모두 완수했고, 도쿄의 치안도 충분히 안정되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한국측에서는 이러한 정당한 요구를 '거부'했다.
무려 일국의 수도에 수만에 이르는 주력부대를 박아둔 주제에 정식적인 철군 요구를 무시하는 것이다.
이건 일본국 주권에 대한 명백한 침해이며, 국제사회에서 용납될 수 없는 행위다.
물론 그쪽에도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B급 던전이라는 미증유의 위험에 대비해 우방국이자 육군전력이 떨어지는 일본과 일본 시민의 안전을 위해 당분간 주둔하겠다는 것이 바로 한국이 댄 명분이었다.
당연하지만 말 같지도 않은 소리.
던전 방어전을 통해 한 차례 가라앉은 던전이 폭주하는건 매우 드문 현상이고, 설령 폭주한다 해도 그때 던전 밖으로 나오는몬스터들은 제례식 무기로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
아무리 일본과 한국의 육군전력에 차이가 난다지만, 탱크로 포격을 가하고 제트기로 폭격하는 등의 공격 방식은 동일하며, 그 과정에서 도시가 박살 나는 것 또한 매한가지다.
말하자면 성능은 한국군과 비교해 떨어질지라도, 몬스터로부터 도시를 방어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곧 한국이 주장한 명분에 설득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이 자리에 있는 이들을 더욱 분노케 했다.
"아주 괘씸한 놈들입니다. 기어이 천황 폐하의 궁에 군을 들이더니, 기가 머리 끝까지 살아서는 상전 노릇을 하고 있는 겝니다!"
"이건 선전포고나 다름 없는 짓! 즉시 한국을 응징해야 합니다!!"
여러 말이 오갔다.
큰 분노를 일으켜 한국과 전쟁을 치러야 한다는 사람도 있을 정도.
하지만 대체로는 외교채널을 통해 일본과 미국에 강력한 항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것이 순서이기도 했고.
"근데 뭔가 이상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시국에 그것도 당사국의 의사를 무시하면서까지 군을 주둔시키다니요? 외국이 가만있지 않으리란 것은 그쪽도 알텐데 의도를 알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실질적인 이득이 없다.
도쿄를 인질로 삼아 이문을 취한다?
제국주의 시절도 아니고 요즘 같은 현대시대에는 택도 없는 소리다.
그런 짓을 했다가는 당장에 전 세계로부터 고립되어 순식간에 북한행.
"흥. 그놈들 멍청한 게 어디 하루이틀입니까? 임진년 전쟁때도 멍청하게 있다가 얻어 터져놓곤 '실질적인 승리'라는 정신승리나 하고, 그렇게 맞았음에도 교훈을 얻지 못해 정묘년, 병자년 신미년, 병인년...나중엔 아예 나라까지 뺏기지 않았습니까? 세계 정세를 읽지 못하고 고리타분하게 있다가 쳐맞는 게 조선놈들 특징 입니다. 이번에도 그때처럼..멍청한 수를 두는 게지요."
"설사 그렇다 해도, 지금처럼 뻔히 보이는 수를 두겠습니까?"
"그러고도 남을 놈들입니다."
비웃는 그의 말에, 꽤 많은 이들이함께웃었다.
"그래도 한국의 대통령은, 이번 일로 핵무장을 얻어 냈습니다."
"그러니까 멍청하다는 거 아닙니까!그리 힘겹게 핵을 얻어 냈으면, 이젠 물러나야지! 여기서 뭔가를 더 원하고 철군요구를 무시한다는 것 자체가 무능하다는 증거 아닙니까!"
"그건...."
"애초에, 그땐 너무 급박한 상황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핵무장을 허가한 것입니다. 당연히 세계 각국은 한국의 핵무장을 취소할 명분을 찾고 있을 텐데, 이렇게 간단하게 명분을 내준다는 건 멍청함 그 이상이죠. 저였다면, 오히려 한 시라도 더 빨리 철군했을 겁니다. 이번 일은 너무나 멍청한 대처에요."
"뭐...기분을 떼어 놓고 본다면...우리로선 차라리 잘된 일입니다."
그래.
기분이 나쁜 걸 제외하면, 이번 일은 일본에 참으로 유리하다.
한국의 핵무장에 딴지를 걸 수도 있고, 이번 일을 빌미로 일본역시 핵무장을 주장할 수 있다.
NPT에서 '더 이상의 핵보유국 추가는 없다.'라고 못박았다 해도, 이렇게 수도가 위협받는 상황이라면 절대 말릴 수 없다.
"어쩌면 이번 일로 국민들의 핵무장 선호도가 높아질 지도 모릅니다. 그리 되면, 우리로서는 더할 나위 없죠."
미미하게 웃는 이들이 점차 늘어났고, 개중에는 벌써부터 군사대국이 된 일본을 상상하는 이들까지 있었다.
이젠 초반의 분노는 온데간데 없다. 오히려 적의 멍청함에 대한 감사만이 있을 뿐.
"아무튼, 이번 일은 정식으로 항의하면서, 얻어낼 것을 얻어내도록 합시다."
+++
"라고 그들이 생각할 것 같은데...정말...계속 주둔 시키실 겁니까?"
청와대에서도 같은 사안에 대해 논의되고 있었다.
비서관의 얘기를 쭉 듣고 있던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이며ㅡ,
"물론입니다. 얻어낼 건 이미...얻어내고 있거든요."
"그게 무슨...?"
"때가 되면 알게 되실 겁니다. 그보다...유은이라는 그 모험가...."
잠시 말을 끊는다.
아무래도 단어가 무겁다.
인류 최초일 것이 자명한 공방 300만 이상의 초모험가.
아니, 그는 이미 공방 1천만을 아득히 초과한 지 오래지만, D10 한국 지부장의 보고를 받은 그는 아직 300만 정도로 알고 있다. 만약 실시간으로 유은의 스탯을 보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
아무튼 유은의 출현은 여러 가지를 암시한다.
앞으로 말도 안 되게 강력한 던전, 몬스터가 출현할 수 있다는 것과,
그런 일이 발생했을 시, 필연적으로 전 세계가 모험가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그 시점이 되면 국가가 제 역할을 못할 수도 있다는 것.
그렇기에 만나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있을 계획에 대해서도, 일단은 그를 만나봐야 진행할 수 있다.
"만나볼 수 있을까요?"
"그야...대통령께서 원하신다면...."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하는 비서관.
하지만 꼭 그럴까.
"그는 한국 지부장의 만남을 달가워 하지 않음은 물론, 면전에 대고 꽤나 건방진 말도 했다는군요. 그런 성격으로 보았을 때, 저 역시 문전박대 당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설마 일국의 대통령에게도 그러겠습니까?"
"그러고도 남을 자라고...누군가에게 들었습니다."
"...."
그래서 어쩌라는 건가.
비서관은 문득 불만이 솟았다.
그래서 어쩌라고!
"제가 직접 길드에 가보면 좋을 것 같은데요."
"절대 안됩니다."
"왜 안됩니까?"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왜 안됩니까?"
"상식적으로!! 일국의 대통령이 일개 길드에 직접 발을 들이미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입니까아!!"
엄청난 사자후다.
그는 진심으로 절대 안된다고 생각하고있다.
하지만ㅡ,
"저는 그를 만나야 합니다."
"그럼 청와대로 부르시면 되는 거 아닙니까...그게 그 모험가 입장에서도 더 좋을걸요?"
"왜죠?"
"아니 솔직히 밖에서 대통령님을 뵈면, 그건 그냥 중년 아저씨를 만난겁니다! 근데! 청와대에 오면, 무려 청와대에 온 거라고요!!"
"...그게 무엇이 크게 다릅니까?"
"기분과 느낌이 다르지 않습니까!"
"그가 오지 않을 것 같은데요."
"그렇다고 직접 발을 옮기십니까?"
"못할 것도 없죠. 선거할 때도 시장에 가고 그러지 않습니까."
"그건 선거니까 그렇죠. 이미지를 만들어야 하니까."
"그럼 잘됐네요. 핵도 얻은 김에 이미지 메이킹 하나 더합시다."
"아니...."
이 인간,
말이 안 통한다.
"후...언제 가실 건데요?"
"내일쯤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 스케쥴이 산더민데요? 심지어 내일은 일본 파병건과 관련해서 일본 총리와 전화해야 합니다!"
"이왕 자극하는 거, 쿨하게 무시 한 번 하죠."
"히익!"
이 인간이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라는 듯한 표정으로 비서관이 비명을 질렀다.
"다,당신은 정녕 이 나라를 망하게 하려고...!"
절망하는 그에게 대통령이 피식 웃어 주었다.
"그럴일 없습니다."
+++
"뭔가 중요한 일이 있는 거 같아요."
뜬금없지만 사실이다.
방금 촉이 왔어.
무조건 길드로 돌아가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단 말이다.
절대!!
절대!!
절대로 명동 - 동대문 - 강남 - 송도 - 수원 -강릉 - 대구 - 울산으로 이어지는 이 미친듯한 쇼핑여행에 질려서 그런 게 아냐.
당장 올라가야 할 것 같은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다고!
"뜬금없이 무슨 소리에요. 그렇게 하기 싫어요?"
유나씨가 뚱한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양쪽 손에 쇼핑백을 가득 들고 있는데, 왼손에 있는 것은 화장품이요, 오른손에 있는 것은 각종 옷이었다.
무려 '종류별'로 구입한 건데, '여기서만' 구입한 게 저 정도다. 나머지 다른 곳에서 구입한 건 죄다 호텔에 있다.
"유나씨 탈코 안하세요?"
"네?"
"탈코르셋이요 탈코르셋. 화장도, 그리고 치장을 위한 화려한 옷도 모두 필요 없어요! 우리 모두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당장 돌아...흠흠. 아니 중요한 일을 처리하기 위해 귀환을 취합시다."
"무슨 헛소리에요. 그딴 걸 제가 왜 해요?"
"아니...탈코를 안하신다고요? 정녕 그렇게 흉자가 되실 겁니까? 언제부터 우리 유나씨가 그런 존재가 되었나요!"
"개소리 하지 마요. 짜증나니까."
"네."
아 안 통하네.
비통한 현실이여.
페미인 주제에 왜! 왜 탈코를 안 하는 거십니까아!
아. 짭페미지. 젠장할.
매갈도 필요할 땐 없다더니 딱 그짝이네.
"아니!! 진심 마지데 촉이 왔다니까요?? 뭔가 돌아가서 중요한 이벤트가 벌어질 것 같다구요."
"야. 모처럼 데이트겸으로 왔는데 그렇게 가고 싶어? 심지어 첫데이트잖아. 맨날 소냐씨랑만 하고...."
"윽...."
소라누님의 공격이 매섭다.
실수야...쇼핑가자고 하는 게 아니었어...이렇게 고되고 힘든 일일 줄이야...
"그러지 말고 너도 사고 싶은 거 막 사면 되잖아. 게임 안 하니?"
"섹스가 더 좋은데요."
"그럼 오나홀이라도 사던지."
"크엑. 그게 여자 입에서 나올 말입니까."
"뭐 어때서 그래. 오나홀나홀."
"...."
뭔가 오염되는 느낌이다.
소라누나 입이 너무 가벼워.
"왜? 누나가 사줄까? 우리 동생 물건에 딱 맞는 걸로. 쿡쿡."
"필요 없습니다."
애초에 자위따위 접었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