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대 던전은 나만의 기회 (134)화 (133/517)



〈 134화 〉14. 일본의 불안.

+++


"믹스커피 마셔요?"

부스스 눈을  내가처음 들은 목소리였다.
고개를 돌려보니 소냐씨가 커피를 마시고 있다.

얇은 블라우스 한 장으로본인의 알몸을 아슬아슬하게 가리고,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머그잔을 두 손으로 잡고 있다.

마치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한 장면.

"소냐씨가 타주신다면 영광이죠."

그녀가싱긋 웃더니 들고 있던 머그잔을 싱크대에 내려놨다.
그리고는 믹스커피 하나를 들고 흔들다가 고양이처럼 이로 물어 뜯었다.

톡.

분명 커피믹스를 뜯었을 뿐인데 도발적이면서도 욕망이 휘몰아치는 소냐씨의 시선은 마치 내 옷을 벗긴 것 같다.


"어째 커피 말고 다른  먹으라는 것 같은데요?"
"어머, 그래요?"


컵에 뜨거운 물을 받으며 시선은 내쪽으로 고정이다.

아.
어쩜 저렇게 고혹적일 수가있을까.



뜨거운 물이 컵에 차오르고, 막대로 휘저을 무렵, 그녀가 눈웃음을 쳤다.

"덥치려면 지금이 좋지 않겠어요? 커피 상태로는 못할 텐데."
"안 그래도 그러려고요."

나는 달려들듯이 다가가 소냐씨 손에 들린 컵을 뺏고는 싱크대에 올려놨다.

"짐승."
"소냐씨가 원한 거잖아요."

그녀의 잘록한 허리를 안아들고 침대로 향했다.


"어머. 벌써...."


당연하지만 꼿꼿이 선 나의 물건은 이미 소냐씨의 배꼽을 공격중이다.
쿡쿡 찌르고 있으니 못 느낄 리가 없지.

그녀는 반달모양의 눈웃음을 치며 내 목에 팔을 두른  침대에 누웠다.

"짐승이라하셨으니 거칠게 해드리죠. 못 걸어다녀도 전 모릅니다."
"어제도 잔뜩 했는데...그렇게  있겠어요?"

도발적으로 웃으며 길쭉한 다리로 내 허리를 감싼다.

"그럼요. 퉁퉁 붓게 만들어 드리죠. 저번처럼."
"그건 좀 힘들...꺄앗!"

익숙한 동굴에 기습공격을 가하자, 소냐씨가 화들짝 놀라며 내 허리를 조여왔다.

"소냐씨야말로 버틸 수 있겠어요? 또 기절하시면 너무 늦는데."
"언제 그런 거 신경 쓰셨어요?"
"아니요."

당연히 쥐뿔도 신경 안 씁니다!




.
.






"그래도 많이 늦은 거 같아요."
"그러게요...."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우리.
당연하지만 다리로 달린다는 의미가아니다. 소냐씨가 엑셀을 왕창 밟고 계신다.

 이유는 대통령과의 약속에 늦어버린 것.
그것도 10분남짓이 아니다. 출발할  이미 1시간 늦었다.


아마 이런 일을   있는 건 5천만 인구 중에서도 얼마 없겠지?
뭐, 딱히 좋다는 건 아니고.
그래도 대통령인데 체통은 챙겨 줘야지. 핵도 가져온 양반인데.

"만나면 무슨 얘기를 하게 될까요?"
"아마 '길드 자치'에 대한 얘기일 거에요."
"길드 자치요?"
"네. 정보통이 있거든요. 대통령이 관련 법안을 검토중이라고 들었어요. 그리고...유은씨는 꽤나 이름이알려졌으니줄곧 만나보려 했겠죠."
"그런가요?"
"제가 이쪽일에 자세히 아는 건 아니지만, 스무살 남짓에 모험가가 된 지 이제 겨우 2개월 되려 하는 애송이가 세계를 놀라게 할 만한 힘을 가지고 있잖아요? 제 정신이 박힌 지도자라면 만나고자 하겠죠."
"아하. 그렇군요. 근데 지금껏 만나러 온 사람들은 얼마 없었어요. 고작해야 서울지방경찰청장이라던가 D10 한국 지부장이라던가 하는 정도? 정치인은 만난 적이 없네요."
"앞으로 자주 만나게 될 수도 있어요. 그리고 솔직히...아직 우리나라 정치권은 정신을 못차렸거든요. 던전에 대해  모르고 관심도 별로 없어요."
"아...."

사실 그건 모든 방면에서....


"옛날부터 그랬어요. 군대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요."
"와. 그건 너무 심각하게 멍청한  아닌가요...."
"그런 사람들이 있답니다."


뭐 무타구치 렌야정도 되는 건가.






.
.





"이제 오셨네요. 주인님."


길드건물...아니 명목상 '황궁'에 도착하자, 서현이가 나와 반겨주었다.
듣자하니 대통령은이미 도착해 있다고...그것도 1시간 30분 전에.

"대통령이 이렇게까지 기다려준다는 건, 그 만큼 유은씨를 높게 평가한다는 거예요."
"오. 그럼 좋ㅡ."
"좋지 않은 거죠. 멍청이가 아니라는 거니까."
"음...그런가요?"

서현의 안내를 받으며 또각또각 걸어가는 소냐씨가 이런 저런 조언을 해주었다.

"유은씨의 노선으로 봤을 때, 향후 대통령과도 좋지 않은 관계가  가능성이 높잖아요. 상대가 멍청하면 일이 매우 수월하죠."
"근데 제가 너무 강해서 딱히 상관 없을 것 같습니다."
"후훗...그건 그래요."

기품있게 웃으시는 그 순간, 도착했다.

"...."

 밖에는 나를 엄청나게 노려보는 경호원 넷이 있었는데, 아마 대통령의 경호인 모양이다.


"그래도 대통령인데 경호인력이 너무 적은 거 아니에요?"
"급히 왔거나...몰래 왔거나...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적긴 해요."

혹시 안에 있나 했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그곳에는 두 명 밖에 없었다.
비서처럼 보이는 사람과, 어디서 많이 본 중년 아저씨.



"반갑습니다.유은씨. 어떻게 불러야 할  모르겠군요."
"반갑습니다. 대통령님. 각하라고 불러드릴까요?"

그가 내미는 손에 악수하며 대꾸하자,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각하는 공식적으로 쓰지 않는 단어입니다. 그냥 최씨라고 부르십시오."
"에이. 그래도 대통령인데 최씨는 좀 그렇지 않습니까?"

앉으라는 제스쳐를 하며 소파에 앉았다.
꽤 많이 늦었는데 불쾌한 기색이 안 보인다.
하긴. 대통령이 될 정도면 포커페이스 정도는 유지할  있겠지.

"그거면 됩니다. 저도 유씨라고 부르면 될까요?"
"뜬금없이 반말만 안 하시면 됩니다."
"하하. 물론입니다. 그렇게 몰상식한 인간은 아니거든요."

첫인상은 엄청 쿨한 느낌?
1시간을 훌쩍 넘게 늦었는데 아무 언급도 없다. 오히려 주변인들이 화나서 불쾌함을 표하고 있을 정도.

"그나저나 죄송합니다. 어제까지 지방에 있었거든요. 급히 올라오는데 차가 막혔습니다."
"그럴  있죠. 갑작스런 일이니 이해합니다. 오히려 제가  죄송하군요."
"아닙니다."

처음 몇 분간은 이런식으로 적당한 말들이 오갔다.
일전에 다녀갔던 D10 한국지부장이나 기타 수많은 문화컨텐츠에서 접했던 중년꼰대들과는 엄청나게 다른 느낌이다.

"그런데 옆에 분은...혹시 '이유나씨'되십니까?"
"네?"
"제가 아는 유명한 변호사분과 닮아서요. 그분께 마침 성년의 따님이있다 들었습니다. 유은씨와  가까운 사이라는 것도."
"아하."

소냐씨를 소냐씨의 딸로 오해했구만.
하긴. 그럴 법도 하지. 아이템 때문에 아무리 잘 쳐줘도 20대 중반이니까.
심지어 그것도 그녀가 풍기는 분위기나 기품 때문이지, 순수하게 얼굴과 피부, 몸매 등을 본다면 20대 초반도 높게 부른 거다.


"와아. 역시 엄청 유명하시네요."
"후후."

소냐씨가 소녀처럼 웃더니 지갑에서 명함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제가 딸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 딸보다 제가 더 동안이랍니다."
"...??"


명함을 받아든 최아저씨가 엄청나게 놀란다.
와.대통령의 포커페이스를 단박에 무너뜨렸어.


"...이거 참...망치로 한 맞은 느낌이군요.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렇게들 말씀하시더라고요."
"...아이템이라도 쓰신 모양입니다. 전에 뵀을 땐 이정도가 아니었는데."
"어머. 언제 뵌 적이 있었나요? 그럼 기억했을 텐데."
"정계에서 이여사님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워낙 유명하셔서."
"그렇군요."

대통령은 뭔가묘한 느낌의 말을 하더니, 내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 본론인가.


때마침 시녀들이 새로운 커피와 다과를 가져왔고, 대충 배치가 끝난  그가 입을 열었다.

"D10 한국 지부장에게 들은 바가 있습니다. 그래서 며칠 전 부터 만나 봐야겠다고 느꼈죠."
"이거 영광입니다."
"그런데 직접 와서 보니, 아무래도 지부장이 잘못 알려준 듯 싶습니다."
"그 말씀은?"
대통령은대답하지않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러더니,

"사실 오기 전에 한 가지 부탁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니...의뢰라고 해야 할까요."
"흠. 궁금하네요. 대통령씩이나 되는 분이 부탁이라."

이번에는 나를 관찰하듯 쳐다본다.

"그런데 그 부탁은 너무 가소로울 것 같군요."
"그 부탁이 뭐길래 가소롭다는 말이 나오는지 모르겠네요."

그가 커피를 내려놓았다.


"도쿄를 지배해 달라 부탁하려 했죠."
"...스케일 한  크시네요."

...
 인간 정상이 아니다.
뭐 하는 사람이지.
아. 대통령이지.

피식.

"방금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당신에겐 가소로울  같다고."
"그럼 새로운 부탁이 떠올랐다는 말씀이네요."
"네."
"한  들어보죠. 물론 공짜는 아닙니다?"

그는 잠시 두변을 둘러보며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조만간 일본에 핵이 생길 건데, 그걸 당신이 폭파시켰으면 좋겠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