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6화 〉18. 콜로세움.
사방으로 퍼진 충격파는 관중들까지 덥쳤다.
그러나 가장 앞에 있는 몇몇이 넘어지는 정도로만 그쳤기에 광역기 사용으로 인한 판정패를 당하진 않았다.
"크윽...! 갑자기 마법을 쓰다니 이런 비겁한!"
"마법? 무슨 소리야?"
길이 30cm도 안 되는 지팡이.
그걸 얼굴 높이로 들어올렸다.
"나 아직 마법 안 썼는데?"
검지와 엄지로 살짝 쥐곤 깔짝대며 흔든다.
"몸 좀 풀 겸 휘둘러 본 거 가지고 엄살은."
피식 비웃어 주고는 지팡이를 다시 품 속에 넣었다.
"아까 보니까 펜싱 같은 거 하던데. 속도에 자신있니?"
"흥. 나의 힘을 떠올리곤 항복하고 싶어진 건가? 확실히 마법사가 1대1로 근접 클래스에 이기는 건 힘들겠지."
"그건 니 생각이고."
"싸울 거라면 지팡이를 뽑아라. 무기 없는 자는 베지 않는다."
"아하핫! 너지금 무슨 말 하고 있는 건지 알아?"
"?"
"병정개미가 꼴에 군사라고 사람 보고 무기를 들라고 하는거지. 자긴 무기 없는 자는 베지 않는다면서."
"...이 몸이 개미라는 건가 지금?"
"아. 미안. 너무 과대평가했지? 사람은 있는 그대로 평가해줘야 하는데. 벼룩 정도면 적당하려나? 그것도 아니면...아메바?"
"...감히!"
라인하르트가 발도하며 뛰어 들었다.
"무기 안 든 사람은 베지 않는다며? 그렇게 가벼운 신념이었어?"
"닥쳐라! 이 몸을 모욕한 걸 후회하게 해주마!"
육안으로 쫓기 힘든 속도.
일반인이 본다면 가히 하나의 선으로 보일 것이다.
그가 박찬 무대가두부처럼 뭉개지고, 초고속 이동으로 인해 주변의 공기가 압축되어 괴기스런 상황을 연출했다.
보는 모두가 감탄.
과연 레이피어를 든 만큼 스피드를 살린 공격을 하고 있다.
상대방은 아마 공격을 당했는지도 모르고 절명하겠지.
분명 32강에 든 이들 중에서도 독보적인 강자라 할 만하다.
그러나 그건 일반인의 얘기.
그리고 평범한 모험가의 얘기.
기품을 제외한 모든 스탯을 만단위로 가지고 있는 소라에겐 귀여운 발버둥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소라의 경우 힘이나 매력처럼 주스탯 이외의 스탯은 유은보다도 아득히 높다. 그리고 이는 유은의 여인들 모두 공통인데, 유은의 힘 스탯이 2만 정도인 것에 비해 힐러인 소라의 힘 스탯은 무려 7만4천에 육박한다.
힘 뿐만이 아니다.
속도에 직접적인 연관을 갖는 민첩 역시 7만3천이나 된다.
"하아앗!!"
씨이잉 - !
은빛의 칼날이 점으로 쏘아진다.
정면의 시선으로는 마치 운석이 돌진하는 듯한 광경.
인식한 순간 미간이 뚫린 건아닐까 착각할 정도다.
그러나 소라에겐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
"!!!!"
소라를 꿰뚫었다 싶은 순간, 모습이 사라졌다.
감촉도 없다.
초고속의 점공격이 빗나갔다.
아니, 관점을 달리하자.
마법사 주제에 스피드형 검사의 일격을 너무도 간단히 피했다.
"아~아~ 너무 느린 거 아냐? 그걸로 먹고 살 수 있겠어?"
목소리는 뒤에서 들려왔다.
기겁하며 돌아보자, 무대의 저편, 족히 20여미터는 떨어진 곳에 소라가 하품하며 서 있었다.
"...."
그걸 보자 방금 전 까지 경악하고 있던 라인하르트의 표정에 안심이 서렸다.
"그렇군. 텔레포트인가."
"...."
직접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지만 마법사가 아닌가. 분명 이런 종류의 스킬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초고속 공격이 빗나간 것도 납득이 간다.
"아까부터 스킬 영창을 안 하던데. 부길마를 맡을 만한 실력은 있는 모양이군. 하지만 이 몸을 만난 이상 그것도 끝이다. 마법사는 결국 검사에게 지는 법이니까."
"그래?"
"좀 더 빠르게 간다."
콰앙!
방금 전 까지 그의 발이 머무르고 있던 대지는 폭탄이 터진 것처럼 파편을 흩날리며 붕괴했다.
맨하탄 등지에서 섬광의 검사라 불리우는 라인하르트의 초광속 공격.
이전의 공격이 기본기라면, 지금 이것은 필살기에 가까운 공격이다.
기존의 공격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속도로 달려들며, 마찬가지로 비교할 수 없는 속도로 적을 찌른다.
"하 참. 느리다니까 그러네."
하지만 소라를 잡기에는 한참 느리다.
이번에도 소라는 그가 도달하기 전에 사라져ㅡ,
"똑같은 수에 당할 것 같으냐!"
소라의 사라짐을 인식한 라인하르트가 그 속도 그대로 반전했다.
있을 수 없는 물리의 어긋남.
그 결과 소라가 서 있던 곳, 라인하르트가 반전한 곳에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성되었다.
"제 아무리 뛰어난 마법사라도 텔레포트 같은 마법을 연달아 쓸 순 없겠지! 나의 승리다!!"
치이잉 - !
멀찍이 떨어진 곳에 나타난 소라를 발견한 라인하르트가 일찍이 레이피어를 찔렀다.
은빛으로 청아하게 광나던 칼날은 어느새 붉게 물들어 있었다.
초고속으로 인한 마찰.
마찰로 인한 초고열.
쿠아아아앙!!
그리고 소리의 속도를 아득히 넘은 결과 발생하는 찢어지는 소음과 충격.
눈 깜짝할 사이에 라인하르트는 소라의 앞에 도달했고, 붉게 달아오른 레이피어는 정확하게 그녀를 향해 찔러졌다.
푸확!
하얗던 무대가 새빨간 피로 칠해졌다.
수 초 사이에 벌어진 격전에 광장은 일동침묵.
"음~ 별로 안 무겁네. 근육이 없나봐?"
휙.
라인하르트와 20여 미터 떨어져 있는 곳에서, 소라가 피를 뚝뚝 떨어지는 무언가를 허공으로 던졌다가 다시 손으로 받았다.
마치 습관적으로 야구공을 던졌다 받는 것처럼.
"무...슨...!"
라이하르트의 오만한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점점 패닉으로 물들어갔다.
"텔레포트라고오? 누가 그런 거 쓴대? 있으면 참 좋겠네. 편하잖아."
소라가 그가 있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들고 있던 것, 라인하르트의 잘린 왼쪽 팔을 뒤쪽으로던졌다.
툭.
볼품없이 떨어지는 팔.
라인하르트의 고개가 기계인형처럼 뻣뻣하게 돌아간다.
마침내 소라쪽을 바라보게 된 그의 시야에 잡힌 것은 명백한 비웃음을 짓고 있는 그녀의 모습과, 그녀의 뒤쪽에 나뒹굴고 있는 팔이었다.
오싹.
오한이 내달렸다.
대체 저건 뭐지?
왜 나의 팔이 저기에 떨어져 있는거지??
끔찍한 고통은 그 뒤에야 몰려왔다.
"크으윽!! 무슨...짓을!!"
"우음~ 니 공격을 두 번 피하고 그냥 있을까 하다가 심심해서 팔 하나 잘라왔어. 이러면 텔레포트라는 생각은 더 하지 않겠지?"
"!!"
[역시나 선전하는 소라님! 섬광의 검사로 이름 높은 라인하르트를 속도로 따돌려 버립니다!]
그거보라는 듯이 외쳐대는 서현.
그제서야 관중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와...봤냐 너?"
"...뭘?"
"쟤들 움직이는 거."
"아니 전혀. 난 저 남자도 너무 빨라서 못봤는데."
"근데 그거보다 더 빨랐대 저 여자가."
"민법사 실화냐."
대체로 소라에 대해 쑥덕거리고 있다.
"얼굴만 예쁜 게 아니었네."
"몸매도 좋으니까."
"아니 병신아...;;"
"으아아아아앗!!!"
후웅!
웅성거리는 소음 사이.
라인하르트는 품에서 진통제를 꺼내 주입하고는 레이피어를 크게 휘둘러보였다.
"방심...방심했다...! 버프 마법을 잊고 있었다니 실책이군."
"...버프?"
"민첩 강화마법을 걸었다면 납득이 가지."
"아니...그딴 거 없어. 나 힐러야."
"힐러라고? 웃기지 마라! 감히 날 농락할 셈이냐!"
"농락이고 뭐고 나 힐러라니까?"
"흥. 그런 식으로 내 정신을 흐뜨려놓고 그 틈을 이용하려는 속셈이겠지."
"아 네...알아서 생각하세요."
"나는 절대 그런 거짓에 현혹되지ㅡ,"
[아 참고로 소라님의 클래스는 '황의(皇醫)'로서, '힐러!'입니다!]
라인하르트보고 들으라는 듯이 서현이 외쳤다.
"들었지? 나 힐러야."
"추악하군. 아무리 같은 편이라지만 사회자까지 이용하다니."
"...씨발새끼야 왜 말을 해도 못알아 먹어. 짜증나게."
"흥. 마녀 같으니. 방심만 하지 않는다면 너 정도는 오른팔 만으로도 얼마든ㅡ,"
푸확!
"얼마든지 뭐?"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앞에서 보고 있었는데 그녀가 사라지는 걸 인식하지 못했다.
잔상이 남은 걸까?
"...!"
툭.
멍한 얼굴이 된 그의 눈 앞으로, 떨어지는 오른팔이 보였다.
"오른팔도 없어졌네? 칼 만이라도 돌려줄까?"
씨잉!
"큭!"
전신을 찌르는 위험감각.
너무나 뒤늦었지만 어쨌든 라인하르트는 그걸 기반으로 소라의 공격을 피했다.
촤아아!
아니, 온전히 피한 건 아니다.
옆구리를 살짝 스쳤다.
"으으..으으윽!!"
진통제를 주입했지만, 그럼에도 느껴질 수밖에 없는 극한의 고통.
상처를 부여잡을 손 조차 없다.
"어...어떻...게...!"
"뭘 어떻게야. 그냥 내가 너보다 빠른 건데. 아, 너 내가 힐러라는 거못 믿는다고 했지? 보여줄게. 증거."
그녀가 손을 들었다.
"그레이트 힐."
성스러운 기운이 그녀의 몸에서 거대한 원기둥을 그리며 하늘로 솟구쳤다.
판타지영화에서나 볼 법한 광경에 모두가 입을 벌리고 쳐다보고 있을 때, 구름을 터뜨리며 하늘에 머물렀던 기운들이 라인하르트를 향해 낙하했다.
"무...뭐...!"
그 압도적인 광경에 그 거만한 라인하르트조차 얼어 붙었다.
콰아아아앙 !!
마침내 성스러운 기운이 그와 무대 바닥을 때리고, 사방으로 기운의 파편들이 쏘아졌다.
"회복돼도 너무 기뻐하진 마. 그냥 증거일 뿐이니까."
드드드드드.
얼마나거대한 기운이면 지진까지 일어날까.
"아무튼 이젠 믿을 수 있겠지? 내가 힐러라는 사실을."
성스러운 기운의 낙하는 대략 1분가량 계속되었다.
그동안 기운의 효과를 정면으로 받은 라인하르트는, 어느새 두 팔이 새로 자라나 있었고, 기타 잔 상처나 피곤함 등이 모두 치유되었다.
"이게...대체...!"
그야말로 압도.
압도적인 신성이자, 압도적인 치유.
마법사 계열의 모험가가 종종 힐 관련 스킬을 배우는 경우가 있지만, 이렇게까지강력한 힐은 힐러가 아니라면, 아니 힐러라도 보통은 불가능하다.
잘린 팔 마저 회복시다니! 이건 회복 이전에 회귀에 가까운 능력.
풀썩.
그가 무릎을 꿇었다.
꿇을 수밖에 없었다.
경외.
압도적인 경외.
그는 새로 자라난 두 팔을 바닥에 대고 머리를 조아렸다.
"서,성녀님!!"
감출 수 없는 그의 진심은,
"시끄러."
처참하고 냉담한현실로 돌아왔다.
퍼걱.
조아린 그의 머리를 향해 축구선수처럼 발을 휘두르는 소라.
일말의 망설임도 없다.
끔찍하게도, 라인하르트의 머리는 함몰됨과 동시에 목뼈를 으스러뜨리며 몸 안쪽으로 파고들었고, 척추마저 박살내다가 중간쯤 가서야 전진을 멈추었다.
"사람 짜증나게 하고 말야."
시체를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사람이라도 기피할 정도로 처참한 말로.
머리가 몸 안에 파묻히고, 그 결과 상반신이 좌우로 갈라진 채 피분수를 내고 있는 모습은 보고 있기 참으로 어려운 형태였다.
[세 번째 도전 결과! 역시나 유소라님의 승리!!]
소라는 관중들을 향해 상큼한 웃음을 지어 보였지만, 누구도 환호성을 지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