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8화 〉23. 어메이징 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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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강남 계엄군 후방부대.
본래 강남 최전선에서 유사시를 위해 주둔하고 있던 한사랑이었지만, 대통령의배려 아닌 배려로 사건 발생 이후 즉각 후방으로 재배치 되었다. 그것도 그냥 후방이 아니다. 완전 최후방 인천까지 밀려났다.
물론 그녀만 콕 찝어서 배치한 게 아니고 연대를 통째로 재배치한 것이지만.
그녀는 군인이다.
나라를 위해, 겨례를 위해 이 한 몸 바치겠다고 다짐한 군인이다.
당연히 이런 조치가 맘에 들 리 없다.
연대를 통째로 뒤로 뺐다 해서 모를 리가 있을까. 그녀도 안다. 왜 그녀가 후방으로 배치됐는지.
이번 일은 그녀의 자존심에 상당한 스크래치를 새긴셈이 되었고, 그게 아니더라도 두고두고 꼬리표가 되어 붙어다닐 것이다.
최전선으로 배치된 주제에 막상 사건이 터지자 부랴부랴 후방으로 배치된 군인이라고...불명예도 이런 불명예가 없다.
그것만 해도 기분이 좋지 않건만, 더 짜증이 나는 건 그녀의 애인이라 할 수 있는 유은이 국가에 전면적으로 반기를 들고 있다는 점이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건지 할 수 만 있다면 당장 데려와서 뺨이라도 올려 붙이고 싶다.
예전의 그녀였다면 아마 이번 사건으로 모든 정을 뚝 끊고 남남관계로...아니 원수가 되었겠지만....
이미 유은이라는 도장을 찍힌 그녀로서는 차마 그 선택을 할 수 없었다. 아아. 떡정의 위력이란...!
아무튼 그런 관계로 현재의 그녀는 상당히 날이 선 상태.
군인의 책무와 사명이 아니었다면 깽판이라도 쳤을지 모른다.
그런 그녀가 잠시 밖으로 나왔다. 같이 오겠다던 간부들도 모조리 떼어 놓고 홀로 나왔다.
"...?"
그래서인지 저 멀리, 분명히 눈이 마주쳤던 간부 하나가 경례도 하지 않고 홱 몸을 돌렸다.
저런. 괘씸하기 짝이 없는 짓을 하다니.
상관에 대한 경례는 응당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평범한 간부도 아니고 중령이자 연대장인데!
"...은율령 소령, 어디가나?"
"...."
우뚝.
걸어가던 간부가 멈춰섰다.
그리고는 내키지 않은 형태로 몸을 돌리더니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충성. 한사랑 중령님, 나오셨습니까."
소위 말하는 가라경례.
누가 봐도 제대로 된 경례는 아니다.
물론 병사도 아니고 짬이 없는 것도 아니니 그걸 가지고 크게 뭐라 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괘씸하다.
사관학교 동기이자 군입대 동기.
그리고 라이벌.
그래서 더 괘씸하다.
저벅저벅.
군화 신은 한사랑의 발이 성큼성큼 움직이며 은율령 소령에게로 다가갔다.
아직 경례를 받아주지 않았으니 그녀의 오른손은 머리 어딘가에 붙어 있다.
"분명 날 보고도 그냥 모른척 지나간 것 같은데, 내 착각인가?"
"기분탓이십니다."
"...."
뻔뻔하긴.
분명 눈을 마주쳤는데 어디서 변명이야?
그래도 증거가 있거나 한 건 아니라 경례를 받아 주었다.
그제서야 율령의 손이 내려가고, 대놓고 꺼림칙해하는그녀의 시선과 괘씸하게 바라보는 한사랑의 눈빛이 얽힌다.
"병사들은 지금 뭘 하고 있지?"
"...당연히 쉬고 있습니다."
일과시간 다 끝났는데 뭘 그딴 걸 물어보냐는 식.
한사랑은 뚱한 대답에 1차로 빡쳤지만 그냥 넘어갔다.
동기에다 나이도 같고 딱히 성과가 차이나는 것도 아닌데 한사랑만 중령에다 연대장이라는 특급대우를 받고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냥 넘어갔다.
"병사들도 그렇고 간부들도 독려 좀 해줘야겠어. 이런 상황이라 퇴근은 물론이고 휴가도 못 가고 있으니."
뭔가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하고 물어보는 한사랑.
이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진심으로 병사들을 위해 뭔가 해주고 싶었다.
이 상황이 빡치는 것과는 별개로 군인이 개고생 하는건 사실이었으니까.
그러나,
"...그냥 가만히 계시는 게 병사들을 위한 일입니다."
"...."
돌아오는 팩폭에 2차로 기분이 상했다.
물론 그녀도 안다.
연대장에 중령...아니 사실상 대령이나 다름 없는 그녀쯤 되면 그냥 제발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박혀 있는 게 병사들과 간부들을 위하는 일이다.
부식도 내려줄 필요 없다.
병사 상담 같은 것도할 필요 없다.
밑으로 독려를 내려보내는 것도 전혀 할 필요 없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된다.
그래. 기분 나쁘지만 이해했어.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최선이지.
납득.
한사랑은 고개를 끄덕이곤 은율령을 지나쳐 걸어갔다. 그러자 은율령이 의아한 어조로 물었다.
"어디 가십니까?"
"기분전환겸 산책 가는데."
"...여기 군영입니다."
"...그래서?"
"병사들을 위해 뭔가 하고 싶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지."
"그냥 들어가시죠."
"...."
무슨 의미인지는 이해했다.
여기서 산책한답시고 군영을 돌아다니면 분명 민폐란 민폐는 다 끼치겠지.
병사들 비상은 기본이고 간부들도 뛰쳐나올지 모른다.
하지만 그건 잘 숨어다니면 되지 않을까? 그녀한테 무슨 센서가 달려 있는 것도 아니고...조용히 걸어다니면서 마주치는 사람마다 함구하라고 한다면 딱히 소란이 일어날 것도 없을 것이다.
한사랑은 이번에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고 그저 한 마디 내뱉었다.
"너도 같이 가지."
"...."
은율령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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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씨발 지루해."
일과 시간이 끝난 뒤, 장병들은 축구를 비롯한 체육활동을 많이 한다. 특히 축구 같은 경우 군데스리가라고 불릴 정도로 하는 사람도 많고 인기도 많다.
그리고 지금도 한 바탕 경기를 치른 후.
지친 병사들 중 짬이 되는 이들은 대충 자리를 찾아 드러눕고, 짬이 안 되는 이들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물 따위를 갔다주곤 했다.
"아 뭐 재밌는 거 없나."
막 병장을 단 실세 중 한 명이 지루함에 지쳐 호소하다 문득 한 가지를 떠올렸다.
"크크."
절로 웃음이 나오는 것!
당하는 이들이야 짜증 만땅이겠지만 그따위 것 아무 상관 없다.
그는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는 연병장이 떠나가라 크게 외치면서 두 팔을 좌우로 쫙 펼치더니,
"만불을 관장하는 이프리트의 화신이여!"
뜬금없는 병신짓을 시작했다.
좌우로 펼친 두 팔로 원을 그리며 회전하더니 가슴 앞으로 모으고는 뭔가를 만져대듯 손을 꿀렁 거렸다.
이미 이쯤되면 근방의 장병들은 초긴장 상태로 그를 주시.
"작은 염원을 들어 눈앞의 적을 소실하소서!!"
처억 하고 왼다리를 한껏 뒤로 내빼고는 자세를 낮추며 두 손을 허리께로 가져가는 그.
이미 지쳐있던 장병들이 '씨발'거리면서 그의 앞으로 신속히 모여들었다. 물론 들리지 않게.
"파이어 볼!!"
"크아악!"
"아악!"
앞으로 쭉 뻗으며 영창을 마치자, 모여들었던 장병들이 헐리우드 액션 뺨치는 솜씨로 나가 떨어졌다.
물론 당연하지만 실제로 나간 건 아무것도 없다. 그저 할 일 없는 병장의 병신짓일 뿐....
"크크크. 역시 마법은 위대해."
그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바닥에 널브러져 모래범벅이 된 후임들의 모습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피카..."
몸을 둥글게 말고 사족보행의 짐승처럼 땅을 짚더니,
"피카...."
가장 끔찍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전설의 피x츄....
하필이면전기를 내뿜어대는 쥐새끼이기 때문에 병장이 이딴짓을 해버리면 근방의 모든 병사들은 전기에 감전된 연기를 펼쳐야 한다.
그리고 여긴 모래가 잔뜩 있는 연병장이다.
"피카...!"
몇 번인가 반복하던 그는 마침내,
"츄!!!!!!!!!!!!!"
오만상을 찌푸리며 연병장이 떠나가라 소리 질렀다.
이제 후임들이 온갖 발광을 떨면서 받아주겠지ㅡ,
하며 히죽대던 그때,
"헙...!"
긴장하며 널브러져 있던 후임들이 하라는 발작은 하지 않고 빛의 속도로 기립했다.
"야, 이새끼들 지금 뭐하ㅡ,"
"넌 뭐 하냐?"
"...?"
싸늘하기 그지 없는 여인의 목소리.
그는 순식간에 뻣뻣해진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
비명도 차마 나오지 않는 끔찍한 상황.
누가 봐도 가혹행위인데 하필 그 장면을 다른 누구도 아닌 연대장에게 걸려 버렸다.
아니, 연대장 주제에 왜 혼자...는 아니지만 아무튼 소리소문 없이 돌아다니는 건데!!!
대체 왜!!!
"어쭈? 경례도 안 하네?"
"추,충!성!"
허겁지겁 경례를 했을 때, 한사랑이 그의 머리를 후려쳤다.
"벼,벼장 이!세!민."
잔뜩 긴장한 상태로 관등성명.
하지만 한사랑은 그만두지 않았다.
이미 유은 때문에 빡치고 거기에 추가로 은율령으로 인한 1,2차 빡침까지 온 상황인데 거기에 별 병신 같은 짓거리를 보고 있으니 화가 폭발한 것이다.
"지금 뭐 하냐고."
"저,전투 체육...하고 있었습니다!"
퍽!
"끅...!"
병기라 해도 손색없는 군화로 정강이를 가격당했다.
끔찍한 고통.
일병때나 당했던 일인데 병장 달아놓고 얻어 맞고 있다.
당연하지만 장교가 병사를 폭행하는 건 자칫하면 사회 전체가 들썩거릴 정도의 큰일이다.
하지만 지금의 한사랑은 그딴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똑바로 대답해."
"죄,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게 대답인가?"
"...죄송합니다!"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거 밖에 없다.
"연대장님, 그쯤 하시고 밑에 애들한테 맡기시죠. 이러다 진짜 일납니다."
사태가 심각해지는 것 같자, 은율령이 다급히 귓속말을 했다.
하지만 한사랑은 물러서지 않았다.
"피x츄."
"예...예?"
"어쭈? 피카x."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피카x엔 피x츄.
"x카츄. 귀 없나?"
벌써 세 번째 말했는데도 병장은 눈을 굴리며 뒤의 후임들을 살폈다.
하나같이 고소하다는 표정이지만 대놓고 하진 못하고 있다.
'이 개새끼들!! 웃어? 웃어어어???!'
그는 속에서천불이 일어났지만, 아무리 막나가는 병장이라 해도 감히 연대장한테 개길 배짱은 없었다.
"후,후임들 앞...이지 않습니까...그것만은...."
한사랑이 어이없다는 듯이 웃고있자, 옆에 있던 은율령이 병장의 싸대기를 갈겼다.
아무리 라이벌에 인정하고 싶지 않은 선임이라지만, 그래도 연대장의 말을 무시하다니? 이건 장교 전체를 무시하는 것과 다름없다.
애초에 최고상관인 연대장 말도 안 듣는다면 그보다 아래인 그녀의 말은 듣겠는가? 이건 그녀의 자존심 문제이기도 했다.
"이새끼 완전 미친놈이네. 후임? 뭐 어쩌라고. 쪽팔려? 야, 니들, 다 뒤로 돌아."
""뒤로! 돌앗!""
"이제 됐지?"
"아,아니...."
그래도 머뭇거리는 병장.
이제 머리 끝까지 화가 난 한사랑은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간부 포함해서 상병 이상 전부 집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