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3화 〉24. A급 던전 등장.
“….”
쟌다르크는 웃는 얼굴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걸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유은은 나머지 손까지 사용해서 두 언덕을 주물렀다.
말랑말랑.
“오오. 감도 죽인다…! 나한테 안기기 위해 여기까지 찾아오고 사랑씨를 데려간 거라고생각하면 왠지 용서되는걸.”
그렇게 지껄이며 아주 맛깔나게 만져대고 있다.
너무나도 황당한 상황에 잠시 벙쪄있던 쟌다르크가 결국 얼굴을 굳혔다.
꽤나 쓸모가 있어 보여 은혜를 베풀었더니 하등생물 주제에 끝없이 기어 오른다.
이런 것에게는 힘의 차이를 보여주고 머리부터발끝까지 아작아작 밟아줘야 한다.
타앙 - !
한창 손을 주물럭거리던 유은이 번개처럼 튕겨나가고 해당 층에 있던 벽이나 문 따위도 덩달아 허공으로 날아갔다.
건물 바깥에서 보면 폭탄이라도 터진 모양.
덕분에 윗부분이 내려앉으며 붕괴가시작되었다.
그 재난의 현장 속에서 유유히 옥상을 뚫고 날아오른 쟌다르크.
몸 주변으로 검붉은 아우라가 넘실거렸다.
“겁을 상실했구나.”
천상천하(天上天下) 유아독존(唯我獨尊).
무수히 많은 유랑도시 중에서도 두각을 드러내며 전 차원을 아울러 특급 재난대상으로 현상수배된 바르카나의 수장.
그런 자신이 고작 미개한 문명의 하등생물 따위에게 이런 취급을 받다니. 참을 수 없다.
저 맹랑한 것을 잘근잘근 다져주리라.
“흥.아니지. 이미 죽었으려나?”
차갑게 분노를 태우며 유은을 날린 방향을 응시한다.
그녀의 발 밑에서는 캐슬 붕괴가 시작되어 난리가 나고 있었지만 관심도 주지 않았다.
레벨이 다운되는 것도 아니고 다시 지으면 그만이니까.
투웅!
저편에서 폭음과 함께 뭔가가 솟아 올랐다.
생채기 하나 나지 않은 유은.
그는 멀쩡한 옷의 먼지를 털어내며 어느새 펼쳐진 레드카펫 위로 살포시 발을 얹었다.
“누나 너무한 거 아냐? 맘대로 고르라고 해서 골랐을 뿐인데.”
“…건방진 놈.”
그녀는 길게 말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다.
“시장님!”
이미 경보음이 울린 상황에서건물까지 붕괴했다.
사방에 퍼져 있던 군영에서 군대가 모여왔다.
“오오. 여기도 비행기 같은 게 있네. 저게 다 뭐야. 탱크도 있잖아? 중세 아니었나. 하긴 건물부터 이미 미래도시인데. 그나저나 왜 밖에공군들은 다 그 모양이래. 말이 뭐야 말이. 시대착오적인 것도 정도가 있지.”
“충성!”
유은이 평을 내리는 사이 각 군의 장군들이 쟌다르크에게 날아가 도열했다.
모자와 제복에 계급장이 붙어 있는데, 별 4개인 자도 있고 3개인 자도 있으며 2개인 자도 있었다.
그 수만도 수십.
한 마디로 바르카나군을 지휘하는 장군들이 거의 다 모인 것이다.
“우와~. 저게 말로만 듣던 인터스텔라구나. 별들의 모임! 은하!”
그걸 보고도 유은은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으며 마치 피크닉 온 초등학생 같은 모습을 보였다.
“저 자는…?”
“신경 쓸 거 없다. 내 직접 처리할 것이니. 그보다 너희들은 나머지 떨거지를 찾도록. 한사랑인지 뭔지 하는 트로피도 가져오고.”
“예…? 이미 죽었을…아,아니...예! 알겠습니다.”
십수만의 병사들이 흩어졌다.
“네 여자라 했지? 영구임대는 취소다. 네놈이 보는 앞에서 모든 군사에게 돌려주마. 감히 날 농락한 죄를 물어서 말이야.”
“응. 어차피 못할 거 아니까 아무 타격 없어. 도발기의 효과가 없어서 어떡하냐.”
“오만하군.”
“누나 표정도. 아 하지만 괜찮아. 누나의 그 꼴릿한 얼굴이면 오히려 오만하고 싸가지 없는 게 어울리지. 지금처럼 싸늘한 표정매일매일 지어줘. 내가 질리지 않게.”
“…말 한 마디 한 마디!”
쟌다르크가 노성을 질렀다.
파앙 하며 거대한 충격파가 바르카나의 대기를 흐트러뜨리고 높이 치솟은 건물 몇 동이 무너져 내렸다.
“오옷! 파도에 밀리는 기분이 이런 건가. 아쿠아파크에 온 것 같아! 나중에 애들 데리고 가봐야지.”
덩달아 밀려난 유은이 신나하며 계속 나불댔다.
“그때 누나도 같이 가자. 한 20미터 되는 파도를 만드는 거야. 재밌겠지?”
“닥…후…아니지. 진정하자.”
격렬한 분노를 토해내려던 그녀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기분을 차분하게 가라앉혔다.
그리고는 자신으로 인해 전쟁을 겪은 것처럼 무너져 내린 주변을 바라보며 낮게 신음했다.
“너무 흥분했군. 그래, 방금 전 네 발언은 인정하마. 이미 죽었을 테니 병사들에게 돌리는 것도 불가능 하겠지.”
“응? 안 죽었어.”
유은은 너무도 태연했다.
“저딴 걸로 죽을 리가 없잖아. 너 바보구나?”
“….”
순간 자신이 알고 있는 물리법칙과 정보국이 파악한 ‘인간’이라는 것들의 내구력이 틀린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 쟌다르크. 유은이 너무나 당당하다.
“저런 것쯤은 내 시녀들이 알아서 보호해줬을거라고.”
물론 평범한 인간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리가 없다.
한사랑 역시 계급을 제외한다면 평범한 인간이니 마찬가지. 하지만 그녀의 곁에 시녀들이 있다면 어떨까?
“흥. 그렇게 확신하는 걸 보니 연락이라도 받았나보군. 그럼 나로서도 다행이지. 살아 있다면 병사들에게 돌릴 수 있을 테니. 네놈 앞에서 말이야.”
“…응? 연락?”
“…?”
“무슨 소리야. 웬 연락.”
“설마…그런 것도 없이 지금쯤 찾아서 보호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당연하지. 내 시녀들이 얼마나 강한데. 특히 서현이는 부인급으로 강하다고. 지금쯤 이미 찾았을…아니지. 돌입한 지 5분도 안 됐잖아. 설마 못 찾았나???”
그제야 유은이 경악하며 머리를 움켜쥐었다.
“으아아악!! 사랑씨이!!!”
“….”
그 한심한 작태를 보고 쟌다르크는 자괴감이 물씬올라왔다.
저딴 멍청한 새끼한테 가슴을 희롱당하고 저딴 멍청한 새끼 때문에 캐슬이 무너지다니.
물론 건물이야 자원을 소모해서 다시 세우면 된다지만 그래도 찜찜한 건 어쩔 수 없다.
삑삑.
“여보세요?”
유은이 전화를 걸었다.
대상은 서현.
“하….”
이젠 말도 안 나온다.
적이 눈 앞에 뻔히 있는데 태연하게 전화질이라니.
“아 그래애~? 잘했어. 이따가..(중략)..알았지?”
전화중인 상대를 공격하기에는 차마 자존심이 허락지않아 냅뒀더니 별 변태 같은 소릴 하면서 지랄하고 있다.
“히히.”
유은이 웃었다.
“이거 어쩌냐. 사랑씨를 구해서 보호함은 물론이고 여장교 한 명도 붙잡아 빠져나가고 있다는데~. 히히. 돌아가서 누나랑 같이 덮밥으ㅡ,”
짜악 - !
차마 더 들을 수 없어 유은의 뺨을 냅다 갈겼다.
꽤 먼 거리에 있었으나 그 정도 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꾸웨엑!”
뺨을 가격당한 유은은 빙글빙글 회전하며 저 멀리 날아가다 건물 하나에 처박혔다.
우르릉 하며 천둥 같은 굉음과 함께 건물이 무너지고, 유은도 함께 묻혔다.
“더러운 놈.”
사실 더 강한 기술이야 널려 있고, 마음만 먹으면 공간을 일그러뜨리는 것도 가능했지만, 한 명의 여자로서 저 변태새끼에게 싸대기한 방 날려주지 않고서는 참을 수가 없었다.
어쩜 저리 천박하단 말인가!
“아무래도 안 되겠어.”
그녀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유은과 함께 무너진 건물 주변으로 힘을 보냈다.
으득거리는 소리가 났다.
공간 자체가 압축되는 소리.
주변에 있던 것들이 마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듯 특이점 하나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네놈은 그냥 소멸되는 게 낫겠구나. 세포 하나 남김없이 깔끔히 지워주지.”
내밀었던 손을 점점 꽈악 쥐며 공간을 일그러뜨렸다.
그 여파로 무수한 건물들이 무너져 내리고,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고 이어졌으나 신경 쓰지 않았다.
사람이야 얼마든지 생산할 수 있고, 정 안된다 싶으면 수십억의 미개인이 살고 있는 지구에서차출해 오면 된다.
그렇게 천천히 공간째로 유은을 소멸시키려 할 때, 갑자기 엄청난 폭풍과 함께 압축되던 공간이 사방으로 터져 나왔다.
“!!”
그 여파로 공간이 물결치며 바르카나 전역에 엄청난 공간타격이 가해졌고,이는 존재하는 모든 물질에 대하여 결코 저항할 수 없는 데미지가 가해졌다는 걸 의미했다.
생각해보라.
컵이 있는 공간이 일그러진다면, 그 컵이 과연 멀쩡할 수 있을까.
잠시 스쳐가는 물결이라 하더라도 공간이 일그러졌음에는 틀림없다.
그렇다면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컵에도 영향이 있을 것이고, 필연적으로 균열이 발생한다.
그것이 바르카나 전역을 강타했다.
그리고 도시를 감싸고 있는 공간막을 넘어 인천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그래도 다행이 있다면 공간막으로 인해 대부분 상쇄됐다는 점일까.
거기에 쟌다르크도 힘을 발휘했고.
“…무지막지한 놈이군.”
‘흥.’하며일어난 유은의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공간지진의 진원지로서 인위적으로 연결되어 있던 것들이 모조리 끊어졌고, 건물이나 사람 따위의 것들은 즉시 찢어져, 한마디로 쑥대밭이 되었다.
“이야~ 누나 앙탈이 좀 심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