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8화 〉25.NTL판타지
유은은 후후 웃으며 좆대를 쥐고 그녀의 이마를 툭툭 쳤다.
모욕적인 행동이었지만, 그걸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지금의 라이젠 남작은 당황한 상태였다.
아니, 당황 뿐만이 아니었다.
사무치는 흥분.
콧속 깊숙이 침투한 유은의 음란한 냄새는 뇌를 직통으로 활성시키며 전신의 흥분을 불러 일으켰다.
게다가 그녀는 요 며칠 그와 유나의 관계를 생각하며 자위까지 했던 사람. 그 주인공의 성기에 얼굴을 묻고 있으니 더 강한 자극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아,안돼...!'
이성이 날아갈 것만 같다.
인간의 상징인 이성 따위 던져버리고 한낱 짐승이 되어 욕망을 탐하고 싶다.
그런 욕망이 불끈불끈 솟아올랐다.
홀로 수음할 때와는 차원이 다른 유혹.
그것 역시 강한 욕망의 발현으로 인한 일이지만, 지금처럼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는 아니었다.
"이걸 본 게 처음이라면 당연히 섹스도 안해봤을 거고, 그럼 처녀보지겠네요? 입도 처녀일 거고. 후후. 이거 흥분되는데. 고귀한 귀족 영주님의 처녀구멍들을 따먹다니."
저속한 말을 지껄이며 그녀의 얼굴에 물건을 비벼대던 유은이 그녀의 얼굴을 해방(?)시키고는 침대 위로 그녀를 덮쳤다.
"아...."
드레스 위로 봉긋하게 솟은 가슴이 모양 좋게 퍼지고, 잘록한 허리라인과 풍만한 골반이 침대 위에 그림처럼 놓여 색기를 뿌렸다.
"처녀주제에 섹시하네요."
"이러시면...안...돼요...."
뒤늦게 저항해 보려 하지만, 무의미한 발버둥.
애초에 저항의 몸짓은 너무나 미약했다.
그녀의 먹음직스런 육체 위를 덮쳐오는 가슴에 살짝 손을 대고 힘을 줄 뿐, 그 이상 무엇도 하지 않았다.
"안 되긴. 너도 섹스 하고 싶었잖아. 나랑."
"아니에요 전...이미 약혼한 몸이에요...정혼자가 있다고요...."
잔뜩 가까워진 유은의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돌린 그녀.
새하얗고 아찔한 목선이 드러났다.
"그러니까 더 나랑 해야지."
"네?"
전혀 이해되지 않는 말.
유은은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그대로 얼굴을 하강해 라르나르의 목덜미를 물었다.
"흐읏?!"
살짝 빨다가 훑으며 턱선까지진군.
잡티 하나 없이 관리된 피부를 맛보다, 와들와들 떠는 그녀의 어깨를 쥐고 입을 뗐다.
"그런 비실비실한 애랑 섹스해봤자 기분 하나도 안 좋아. 나랑 해야지. 응?"
"아...."
또르르 구른 그녀의 눈동자가 유은과 시선을 맞췄다.
곧바로 돌리긴 했지만 그 찰나의 순간이라도 유은의 욕정을 읽기에는 충분했다.
'이 사람...!'
거부해도 소용 없다.
너는 이제 내 여자다.
내 소유물이다.
그러니 거절은 거절한다.
얌전히 다리를 벌려라.
등의 강렬한 욕망과 명령이 눈빛을 타고 전달됐다.
어떻게 해서든 범하겠다는 의지!
그 단호함에 그녀는 두려움을 품으면서도 전신이 짜르르 울리는 전율을 맛보았다.
이 남자가...
여기에 남아주길 원하는 이 남자가 자신을 탐하고 있다.
그것도 너무나 강렬하게.
부인이 있음에도 그녀에게 찾아와 탐하고 있다.
'안 돼...그럴 순 없어...! 아무리 그래도 난 약혼자가...로이드가!'
개인적으로 로이드와의 결혼은 싫다.
아마르 자작과 하는 것보다야 훨씬 낫지만 그래도 싫다.
그나마 남아있던 친구로서의 정은 그가 기사전력을 빌미로 혼인을 요구했을 때 뚝 떨어졌고, 남은 건 그저 오랜 기간 알아왔던 '기억'뿐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그는 정혼자.
이유와 상관 없이 그녀가 선택했으니 지금과 같은 행위는 그를 넘어서 이 사회의 규범 그 자체를 배신하는 것이다.
귀족으로서, 그것만은 해선 안 된다.
하지만...
말캉!
"하윽!"
그런 번뇌,
유은의 애무가 깨고 들어왔다.
"정 그렇게 싫으면 그렇다고 말해. 물론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지만. 어때? 싫어?"
능글맞게 웃으면서 그녀의 가슴을 자신의 소유물인양 주물러댄다.
적당히 크고 모양도 좋은 덩어리가 손 안에서 이리저리 모양을 바꾸었다.
이상한 기분.
그저 남자에게 가슴이 만져질 뿐인데 이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은 대체 무얼까.
흥분이 계속된다.
만져지는 건 가슴인데,
괜히 하반신이 움찔거린다.
"아으...이,이러면...전...."
"오. 벌써 흥분한 거 봐. 역시 음란녀 답다니까."
"아니에요...음란녀..."
"아냐. 넌 음란해."
가슴을 만지던 손을 내려 하반신으로 가져갔다.
매끈하면서도 적당히 근육이 붙은 안쪽 허벅지를 살살 쓰다듬다가, 그 위쪽 비밀스러운 공간으로 훅 들어갔다.
"아!"
촉촉히 젖은 속옷.
가슴을 만졌을 뿐인데 이미 준비는 만전이다.
"너도 느껴지지? 자기가 얼마나 흥분했는지. 이만 인정하렴. 넌 나랑 섹스하고 싶은 거야."
그 말을 하고는 그녀의 입술을 빼앗았다.
"흡!"
그리고 이어지는 본격적인 전희.
이젠 가슴 뿐만이 아니라 전신이 대상이다.
만지고, 주무르고, 쓰다듬고,
이미 키스만으로도 정신이 없는 라르나르는 유은의 애무공격에 어찌할 줄을 몰라했다.
'아,안 돼...버틸 수가...!'
섹스라면 이미 이골이 난 유은의 애무는, 아무런 경험도 없는 애송이가 견딜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불과 몇 분만에 전신이 공략되어 하반신이 놓인 침대보가 흠뻑 젖어버렸다.
"하아...하아...."
입을 뗐을 때,
그녀는 완전히 달아오른 얼굴로 유은을 쳐다보고 있었다.
발개진 볼.
물기 어린 눈.
뜨거운 숨.
"이 정도면 됐겠지. 처음이니까 신경 좀 썼다. 고마워하렴."
난생 처음 해보는 행위에 넋이 나간 라르나르의 허벅지를 벌리며 허리를 밀어 넣었다.
드레스도 입고 있고 속옷도 있어서 그녀의 보지가 보이진 않았지만, 흠뻑 젖어서 회색으로 물든 팬티의 모습은 이미 과하게 음란하여 굳이 벗지 않아도 충분했다.
"이제 본게임을 해볼까?"
"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오늘 그녀는 여기서,
그에게 함락된다.
+++
"후...."
식당에서 쫓겨난 이후, 로이드는 늦은 밤이 될 때까지 수련에 매진했다. 화를 잠재우기 위해.
그러나 전신이 땀투성이에 목검이 몇 개나 부러진 지금, 아직도 그의 눈은 분노로 타오르고 있었다.
감히 주제도 모르고 기어오르는 유은이라는 놈, 그리고 그를 두둔하는 라르나르.
하나같이 짜증난다.
물론 라르나르를 향한 것은 분노라기보단 서운함에 더 가까웠지만, 좋지 않은 기분이라는 건 매한가지였다.
"언젠간 죽여버리겠어."
이루어질 수 없는 소망을 중얼거린 그가 주변을 대충 정리하곤 환한 달밤아래 정원을 걸었다.
10분 정도걸었을까, 그는 정원의 벤치에 앉아 달을 올려다보는 한 여인을 발견했다.
달빛을 받아 야밤에도 잘 보이는 그녀의 얼굴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놈의 여자인가.'
하지만 그에게 그녀에 대한 인식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놈과 어울릴정도면 딱 그 정도의 여자인 거지.'
외모는 매우 아름다우나,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천박한 유은과 어울려 다니고 있다. 적어도 신분이 높은 사람은 아니겠지.
그렇다면 별 볼일 없다. 실력이 있어 보이지도 않고 이렇다할 재능을 보인 적도 없으니 그저 얼굴을 팔아 유은이라는 놈을 잡은 거겠지.
그는 몸을 돌렸다.
다른 남자라면, 아무리 싫어하는 인간과 어울리는 여자라도, 그리고 별로 능력이 있어 보이지 않는대도 유나 정도의 미녀라면 어떻게든 접근해서 얻고자 했겠지만, 그는 아니었다.
오랜 옛날부터 일편단심라르나르.
그에게 있어 여자란라르나르였다.
그러니 망설임 없이 시선을 거둘 수밖에.
경국지색의 여인이라 해도 그에겐 의미가 없다.
'그놈의 여자를 빼앗고 절망에 찬 그놈의 얼굴을 보는 거라면 나름 괜찮을 지도 모르겠지만.'
피식 웃으며 걸어가다, 갑자기 싸한 기분이 들었다.
'잠깐...왜 저 여자가 여기 있는 거지?'
그것은 본능과도 같은 위험감지였다.
하늘을 올려다봤다.
어둑한 하늘 가운데 흩뿌려진 무수한 별들과환한 보름달만이 빛을 뿌렸다.
"밤...이잖아...."
그것도 늦은 밤.
물론 늦은 밤이라고 해서 산책하지 말란 법은 없다. 얼마든지 할 수 있지.
하지만 보통 부부라면 이 시간에 같이 엉겨서 관계를 맺고 있는 게 정상 아닌가?
아니면 싸우기라도 했나?
"그래...아까 영주님께 불순한 짓을 저질렀으니 그 문제로 싸웠을 지도 몰라. 생각보다 정상적인 여자...아니...아니지."
떠올랐다.
그 장면이.
서슴없이 영주에게 다가간 유은이 귓가에 뭔가를 속삭였고, 라르나르는 화들짝 놀라면서도 수줍은 듯한 미소를 지으며 얼굴을 붉혔다.
그 당일날, 그놈의 부인은 이 늦은 밤에 나와산책을 하고 있다.
이게 우연일까.
부인이 나와 산책하고 있는데 그놈은 어디서 뭘 하는 거지?
"설마...!"
영주랑...있는 건가?
나의...
나의...
라르랑...
있는 건가?
설마!!
그는 달렸다.
좌우지간 달렸다.
무엇도 그의 시야엔 들어오지 않았고, 오로지 그녀의 방으로 향하는 길만이 시야에 비춰졌다.
탁탁탁탁.
어느새 계단.
놀란 얼굴로 그를 돌아보는 시녀나 시종, 그리고 막아서는 경비병들.
그 모든 것들을 일체 무시하고 곧장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
콰앙 - !
"라르나르!!!!"
그리고 마침내,
푸욱!
"아흑!!"
유은과 라르나르의 첫 결합을 눈에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