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8화 〉25.NTL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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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봐라. 꼴 좋네. 벌 받은 거야."
문을 열고 들어오는 여인에게, 민예린은 비릿한 웃음을 던졌다.
오랜 친구라는 년이 - 물론 3년 전 사건으로 손절했다지만 - 뒷배경을 이용해 납치하고는 어린 애인에게 강간까지 시켰다.
거기에 탈출하지 못하도록 이런 곳에 가둬두기까지.
벌써이렇게 감금된 기간만 3개월이다.
함께 범해졌던 후배 검사는 이미 시녀가 되어 사상개조까지 당하고 있는 상황.
인생의 낙이 한 순간에 사라진 그녀에게 그나마 좋은 소식이 있다면 그 증오해마지않는 유은이 약혼녀와 함께 실종되었다는 점이다.
"애인도 없어지고, 딸도 사라지고...인생 참 두고ㅡ,"
콰악.
비아냥대던 그녀의 입은 소냐의 손에 의해 막혔다.
들고 온 밥을 식탁에 던지듯 내려놓고 무시무시한 눈으로 예린을 제압.
명백히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왼손에 쥔 그녀의 얼굴을 꾸욱눌렀다.
덕분에 침대에 걸터앉아 있던 예린은 그대로 뒤로 넘어져 침대에 널브러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시선은 지지않고 소냐를 노려보며 눈웃음까지 쳤다.
"기뻐하는 와중 미안하지만,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심각한 상황은 아니란다."
도저히 친구를 보는 눈이라고는 볼 수 없는 스산한 시선을 쏘아준 소냐가 손을 놓았다.
어찌나 힘이 강했던지, 예린은 속으로 그녀를 욕하며 턱 관절을 매만졌다.
"흥. 그거 때문에 전 세계를 상대로 난장판을 피우고 있으면서 심각한 상황이 아니라고? 지나가는 개가 웃겠구나."
"시간이 걸릴 뿐이지 찾는덴 문제 없거든."
화를 가라앉히고 심플하게 대답한 소냐가 내팽개쳤던 밥그릇을 다시 들었다.
"자, 먹여줄게."
"꺼져."
"그래도 친구인데 이 정도 호의는 베풀 수 있게 해주렴."
"친구 같은 소리 하네."
퉤!
하고 소냐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너 같은 년은 평생 고통받으면서 살아야 돼. 유은이고 딸이고 처참하게 죽은 시체를 두 눈으로 똑똑히 봐야 죄값의 10분의 1이라도 치를 수 있겠지. 나한테 친한 척 하지마. 역겨우니까."
"어머. 그래?"
볼에서 침이 흘러내리고 있는데도, 소냐는 후후 웃으며 밥그릇을 살포시 내려놓았다.
혹시 뺨이라도 올려 붙이나 했지만 그녀는 웃으며 예린을 내려다 볼 뿐, 손찌검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녀는 새장 속의 새.
바깥과 연락을 취한다거나, 인터넷을 한다거나 영화를 본다거나 하는 등의 일은 모두 제한 없이 할수 있지만, 밖으로 나가는 것 만큼은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시녀로 만든 것도 아닌데, 이는 유은을 위해서다.
도도한 여인을 조교하여 마침내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게 유은의 취미인데 '실종됐다가 돌아왔더니 이미 굴복해 있습니다ㅡ,' 같은 상황이 된다면 얼마나김새겠는가.
같은 이유로 인천 사태의 주범인 쟌다르크 역시 특수한 구속구를 차고 감금되어 있을 뿐,시녀가 되진 않았다.
"혹시 부족한 거 있으면 말하렴. 챙겨줄테니까."
소냐는 그 말을 남기고 감옥 같은 방을 나섰다.
"나오셨습니까."
"네."
소냐에게 붙여진 시녀가 공손히 인사하더니 뒤에 따라붙었다.
유은에게 '크림빵'이라는 별명으로 주로 불리는 은주였다.
쭉 늘어진 복도에는 무장과 복장을 갖춘 시녀들이 수시로 오고갔으며, 때로는 방(감옥) 안쪽까지 들어가 수감자가 제대로 있는지 확인했다.
복도를 따라 끝까지 가면 전망대 비스무리한 방이 있는데, 여기서 강남 전역은 물론이고, 날씨가 좋다면 서울을 넘어 인천이나 수원까지도 볼 수 있었다.
그래.
여기는 초고층빌딩의 최상층.
보통 감옥이 지하에 만들어진다는 걸 감안하면 상당히 의외인 장소다.
본래는 하렘궁역시 궁(본부)의 지하에 감옥이 마련되어 있었으나 세계적인 어그로를 끌게 되면서 장소를 이곳 스탯 카지노로 옮겼다.
"오늘 재차 열린 UN긴급회의에서 본궁에 대한 제제에 대한 말이 나왔습니다. 아마도 큰 변수가 없다면 가결될 거라고...."
"제제 말이죠."
엘레베이터로 몸을 옮기면서, 소냐가 낮게 중얼거렸다.
UN안보리 결론에 빡친 소라가 일본의 원자로를 폭격한 이후 한 달.
일본은 자위대까지 모으며반항하다 결국 4개의 원자로를 더 얻어맞고 꼬리를 내렸다.
하지만 세계는 그렇지 않았다.
중국과 러시아를 주축으로 반 하렘궁 여론이 형성되어 기존의 기권국, 심지어는 찬성국들까지 하렘궁과 소라를 비난하며 세계차원의 제제를 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거기에는 일방적으로 하렘궁의 편을 드는 한국에 대한 제제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번 인천사태로 GDP가 10%이상 깎여나간 한국으로서는 치명타가 아닐 수 없었다.
덕분에 한국 여론도 들고 일어나 하렘궁 제제에 참여해야 한다는 시위대까지 나온 상황.
소라와 유나의 팬덤도 이 일에는 얄짤 없었다.
심지어는 하렘궁 자체를 아예 밀어버려야 한다는 이들도 있었다.
총 5개나 되는 원자로를 파괴해 대량으로 방사능을 유출해 버렸으니 일본이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으로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그래서 소라의 원자로 폭격을 인류 자체에 대한 적대적 행동으로 간주한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세계급 민폐이긴 했다.
"이 일과 관련해서 블루하우스 비서실에서 연락이 왔는데, 어떡하시겠습니까?"
"저보고 오라는 거예요?"
"꼭 소냐님을 지목한 건 아니고, 하렘궁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 중 한 명, 혹은 복수의 사람이 왔으면 좋겠다는 연락입니다. 상황상 그쪽에선 움직이기 힘들다는군요."
"그렇겠죠. 지금 상황에 VIP가 이쪽으로 오면 안 그래도 끓고 있는 여론이폭발할 테니까. 우리로서도 별로 좋지 않은 상황이에요...이번엔 우리가 가 줘야죠. 소라씨는 뭐 하고 있대요?"
"아직 일본에 계십니다."
"서현씨는요?"
"소라님을 수행하고 계십니다."
"그럼 제가 가야겠네요. 약속 잡아줘요. 이따 저녁에 가겠다고."
"알겠습니다."
근 3개월.
소냐는 변호사라기보단 하렘궁의 그림자로서 움직였다.
한국이 지난 UN안보리 회의에서부터 지금까지 줄곧 하렘궁 편만을 드는 것이 바로 대표적인 그녀의 작품이었다.
"그리고...변호사 사무실은 이만정리하죠. 당분간 쓸 일이 없을 것 같네요."
"일러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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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렘궁을 내치셔야 합니다."
블루하우스, 청와대의 실세이자 사실상 행정부의 2인자라 할 수 있는 비서실장이 간곡한 어조로 진언했다.
소라의막나가는 행동과 뉘우침 없는 행적, 그들을 향해 총구를 들이미는 세계와 그런 상황에서도 하렘궁을 보호하려는 한국의 정부.
국민들은 이미 폭발하기 직전이고, 광화문에 모여드는 사람들도 점차 많아지고있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한국 역사상 두 번째로 탄핵대통령이 탄생할 지도 모른다.
"가능하겠습니까? 그게."
대통령이라고 그걸 모를까.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인천 사태로 인명피해만 40만이 넘어가는 상황이고 한 순간에 날아간 재산피해만 100조를 상회한다.
각 기관마다 상세한 수치는 다르지만 이 사건의 여파로 한국의 GDP가 적게는 9%에서 최대 25%까지 날아갈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내부적인 상황을 다스리고 수습하기에도 부족한데, 거기에 UN의 제제까지 맞게 되면 도저히 답이 서질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렘궁을 배척한다?
그건 또 다른 악수다.
지금의 하렘궁은 그 여유만만하고 아무 생각 없이 하반신만 놀리는 유은의 집단이 아니다.
주인을 잃어버려 잔뜩 독이 오른 데다가 UN의 배신 아닌 배신으로 인해 열이 끝까지 뻗쳐있는, 말하자면 배고픈데 누가 던진 돌까지 한 방 맞은맹수다.
어그로를 끄는 순간 모든 발톱과 이빨에 물려 갈기갈기 찢겨질 것이 자명.
애초에 길드 차원이 아닌 개개인만 보더라도, 당장 일본의 원자로를 폭격한 게 유소라라는 여자다.
한국에 원자로가 없나?
안타깝게도 매우 많은 편이다.
심지어 핵무기도 있다.
그것도 한 군데에 밀집해 있다.
만약 소라가 한국의 원자로를 공격해서 터뜨려 버린다면? 나아가 고스란히보관되어 있는 핵무기를 터뜨리기라도 한다면?
그렇게 되면 완전히 재기불능이다.
게다가 한국은 하렘궁의 본거지를 품고 있는 나라다.
그것도 그 본거지는 수도인 서울에 있다.
괜히 어설프게 건드렸다가는 심장에 달린 기폭장치를 건드리는 꼴이기 때문에 이쪽이야말로 오히려 해서는 안 되는 선택인 것이다.
"세계에서 제제가 들어온다 한 들, 전쟁까지 일어나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지금의 하렘궁은 건드리는 순간 전쟁을 각오해야 합니다."
"하지만...!"
"국민들도 심한 바보는 아닙니다. 비록 감정이 폭발하여 이러고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모르는 건 아닙니다.어느 선택이 더 우리에게 좋은 것인지."
"...."
당연히 하렘궁과 척을 져선 안 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리고 그들의 주장은 하렘궁의 전력을 사실상 '핵'처럼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외교와 관련해서는 하렘궁측의 인사와 얘기를 나눈 후, 확실히 하도록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