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9화 〉26.분노
"아으...."
검은머리의 여인은 전형적인 시골처녀의 모습이었다.
고르고 골랐기에 미색은 제법 뛰어났으나 순박한 표정이나 와들와들 떠는 몸짓 등이 여지없이 어설펐다.
그래서 더 흥분한 유은.
그녀가 침대 위로 올라왔을 때, 그의 물건은 더없이 불끈해 있었다.
유은은 그녀의 입을 범하기 전에 갸름한 턱을 쥐고 잡아당겨 입술을 맛보았다.
도톰하면서 말랑말랑한 감촉이 기분 좋았다.
키스가 처음인 건지, 아니면 그냥 이 순간이 혐오스러운 건지, 그녀는 입을 맞추는 내내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는데, 퍽 귀여웠다.
"오호호. 귀엽다. 좀 놀아볼까."
큼직한 눈 끄트머리에 눈물방울 하나가 고여있는 얼굴을 보며 유은이 그녀의 몸을 잡아 당겼다.
원래는 키스만 하고 바로 입구멍을범하려 했는데 좀 더 놀다가 해도 될 것 같았다.
물론 물건을 가만 둘 순 없지만.
"스타쨩, 대딸좀."
"...."
어떻게든 숨쉴 공간을 확보하면서 힘겹게 혀를 놀리고 있던 시에스타가 오른 손으로 더듬더듬 위치를 찾아 유은의 좆을 콱 잡았다.
"힉!"
어찌나 세게 쥐는지, 아플 지경.
아니, 일부러 아프라고 힘을 준 게 100%다.
"앙칼지네 스타쨩."
유은이 익살스런 웃음을 띄우며 엉덩이를 씰룩댔다.
그럴수록 시에스타의 손아귀 힘이 더욱 강해졌다.
그러다 결국 손에서 힘이 빠지고, 항복했다는 듯이 위아래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은은 그에 맞춰 킥킥 웃다가 눈 앞의 검은머리 여인의 옷을 전부 벗겨냈다.
일부러 성욕을 자극하기 위해 완전한 나신이 아닌 야시시한 옷을 입힌 여인들.
검은머리 여인은 속살이 은은히 비치는 망사 같은 걸 입고 있었다. 그것도 전신망사.
유은은반쯤 울먹이고 있는 그녀의 가슴팍의 망사를 뜯어내고, 포롱! 하며 드러난 젖가슴을 쥐었다.
"하읏!"
"오. 크다. 말랑말랑하고 기분 좋아."
두 손으로 가슴을 모으고 그 골짜기에 얼굴을 박았다.
남자라면 누구나 해보고 싶어하는 것!
일종의 로망!
향기로운 살내음과 얼굴을 감싸는 포근한 살덩이의 감촉, 그리고엉덩이를 헤집는 촉촉한 혀와 가냘프면서 따뜻한 손으로 해주는 대딸.
본격적인 섹스를 하진 않았지만 충분히 기분 좋았다.
이대로 사정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할 정도.
그러나 되도록 입이나 보지에 사정하는 걸 좋아하는 유은은 곧 가슴에서 얼굴을 떼고 바쁘게 움직이는 시에스타의 손을 멈추게 했다.
스윽.
살짝 달아오른 망사녀의 입술을 엄지로 쓰다듬던 유은이 돌연 쿡 하고 집어 넣었다.
"흡."
"이제 여기에 내 씨를 잔뜩 싸줄게."
"...."
기껏 붉게 달아올랐던 얼굴이 다시 파래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유은은 그녀의 입술에서 손을 떼고 뒤통수를 꾹 눌렀다.
"아아...."
시에스타의 대딸로 인해 끄트머리에 쿠퍼액이 살짝 맺힌 유은의 좆은 그야말로 혐오 그 자체.
막 풍겨오는 냄새조차 상상이상이다.
"흐아아ㅏ...."
망사녀의 얼굴이 허물어졌다.
이딴 거, 절때 빨고 싶지 않아.
아니, 만지고 싶지도 않아.
가까이 있고 싶지도 않아.
그녀의 소원에 가까운 열망.
그러나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었다.
유은이 더욱 힘을 주자, 결국 그녀의 얼굴은 그의 가랑이에 푹 묻혔고, 좆의 뿌리 부근에서 올라오는 압도적인 냄새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그 표정이 재밌는지, 유은은 그녀의 뒤통수를 꾹 누른 채로 문질렀다.
찔꺽거리는 소리가 묘하게 상쾌했다.
그렇게 그녀의 얼굴을 희롱하던 유은은 곧 그녀의 코를 손으로 쥐어 막고는 귀두를 입술에 붙였다.
찰싹!
그녀가 저도 모르게 유은의 허벅지를 때렸지만, 오히려 유은은 기분 좋다는 듯이 웃었다.
가녀린 여인의 손찌검 따위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
"자~ 입보지를 열어봅시다~"
꽤 버티던 망사녀는 결국 숨을 쉬기 위해 입을 벌렸고, 그 사이로 큼지막한 좆이 쑤셔박혔다.
"흥우웁!"
그녀의 눈이 커지며 눈물이 찔끔 흘러내렸다.
"오오!"
유은은 천박한 쾌감을 느끼며 곧장 그녀의 머리를 쥐고 흔들기 시작했다.
마치 자위기구를 사용하는 듯한 움직임.
이를 바라보던 여인들의 표정이 더욱 암울해졌다.
"너희들도 거기서 그러지 말고 이리 오렴.
+++
후룩.
입안으로 퍼져가는 달달한 레몬차의 향. 설탕을 얼마나 넣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기분이 좋아질 정도의 단맛은 그녀로 하여금 미소짓게 만들었다.
유나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눈 앞의 여인을 바라봤다.
"너무 걱정하지 마요. 그 인간, 하는 짓은 바보같아도 능력은 있으니까."
"그...런가요?"
최근 공식적으로 선포된 영지전으로 인해 잠을 이루지 못했던 라르나르가 침울한 얼굴을 끄덕였다.
유나가그녀의 기운을 북돋아주고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안심하기는 힘들었다.
차라리 전면전쟁이라면 유나와 유은의 힘을 입어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도 그런 희망을 갖고 있었고.
하지만이번 영지전의 방식은 뜬금없이 '기사전'으로 결정되었다.
오래전 부터 간간히 있어왔던 기사전은 각 영지끼리 싸워야만 하는 상황일때, 백성들에게 가는 피해를 최소화 하고자, 혹은 양자의 합의에 의해 선언되곤 했다.
각 영지마다 10명 정도의 기사를 뽑아 서로 싸우고, 결과 많이 이긴 영지의 승리로 간주하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여기에는 걸어야 하는 것이 있다.
이번 영지전처럼 쌍방간의 모든것을 거는 경우도 있다.
혹시라도 이 일이 끝나고 패배한 측이 받아들이지 못하면 어쩌냐고 할 수 있는데, 그 경우 보증을 선 왕실과 주변 영지에서 개입하게 된다.
어쨌든 라이젠 영지에서는 10명의 기사를 준비해야만 하는 것이다.
시에스타가 남아 있고, 유나와 유은이 기사로서 나선다고 했을 대 필요한 기사의 수는 7명.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아무나 데려와서 수를 채우는 건 간단하지만, 그경우 시에스타,이유나,유은이 모두 승리를 취해도 결과 3승7패로 패배하게 된다.
그럼 용병을 데려오면 어떨까?
좋은 방법이지만 안타깝게도 당장 일주일 뒤가 영지전이다.
애초에 제대로된 용병을 구하기 위해서는 최소 수도는 가야 하는데, 수도는 고사하고 라이젠령을 벗어나는 것만 해도 말로 2일은 걸린다.
라이젠 영지의 끄트머리만 갔다와도 벌써 4일이 지나는 샘.
그래서 용병도 구할 수가 없다.
이러니 불안할 수밖에.
이번 영지전에서 지면 그야말로 그녀와 라이젠 남작가가 가지고 있는 모든 걸 내놓아야 한다.
그 걱정을 읽었는지, 유나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걱정 말래도...그 인간이 시녀로만든 사람은 전부 괴물이 돼요."
"...고마워요."
그 친절에 감사하면서도 라르나르는 자그마한 의문을 품었다.
분명 이 여자는 유은의 부인이라는데, 남편이 다른 여자를 건드리는 것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은 걸까?
"흥. 이제 상관 없어요. 전혀 신경 안 쓰이거든요. 놀든 말든."
"...."
전혀는무슨 엄청나게 신경 쓰고 있는 것 같았지만 말하지 않기로 했다.
"그나저나 쓸데없는 고민하지 말고, 이겼을 때 어떻게 할 지부터 생각해요."
"이겼을때요?"
"네. 영지가 두 배 이상 커지잖아요. 거기다 뭘 할 지 지금부터 계획을 세워야죠. 당장 일주일 뒤인데요."
"그...런가요."
"그 인간은 당신이 나라를 세우라는 식으로 말하지만...솔직히 저는 그렇게까진 할 필요 없다고 봐요. 차라리 왕실과 접촉하는 편이 싸게 먹힌다고 보는데. 어때요?"
"그...아무리 자작이 된다 해도 왕실과 접촉은 좀..."
"지금도 아마르놈들은 왕실과 접촉한 거 아닌가요? 그러니까 뜬금없이 기사전 같은 걸 하는 거라면서요."
"아마르니까요...본인의 인맥을 이용했다기보다 주변의 다른 영주들...백작이나 후작가를 통해 접촉했을 가능성이 커요. 그리고 저는 그런 인맥이 없고요."
"아하...."
유나는 곰곰히 생각했다.
솔직히 그녀는 이쪽 세계에 일말의 미련이 없었기에 대충 기반을 쌓고 지구로 떠나면 그걸로 땡이었다. 괜히 여기에 전초기지 같은 걸 세운다거나 할 생각은 완전 0%.
그래서인지 유은과는 조금생각이 달랐다.
라르나르로 하여금 나라를 세우게 한들, 대체 어디다 써먹겠는가? 애초에 나라를 세우게 되면 초반에는 오히려 돈이 마이너스가 될 확률이 높았다. 여러 귀족에게 뿌리는 돈이 있어야 하고 행정기반을 싹 뜯어 고치기도 해야 하고 할 일들이 산더미일 텐데, 언제 자금을 모아 언제 지구로 가겠는가.
그러지 말고 그냥 왕실과 접촉해서 삥을 뜯는 편이 훨씬 빠르고 간단하다.
'아니면 혹시 다시 올 생각인가?'
그런 거라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혹시 주변에 돈이나 자원같은 거 많이 쌓아둔 영지 없어요?"
+++
털컹.
두꺼운 철문이 잠겼다.
작게 뚫려 가까스로 밖을 내다볼 수 있을 정도의 창으로 엄한 얼굴의 간수들이 보였다.
아니, 저것들을 간수라 해도 좋은 걸까. 어디 정규군도 아니고 그냥 인신매매나 하는 잡배들에 쓰레기일 뿐이잖아.
로이드는 그렇게 울분을 삼키며 엉덩이를 쓰다듬었다.
마차에서 눈을 떴다가 배를 얻어맞고 기절한 그는 얼마 뒤 끔찍한 고통에 깨어났다.
시야 가득 보이는 건 울퉁불퉁한 사내들과 무대.
그리고 무대 밖으로 이어져 있는 가면을 쓴 인간들이었다.
그들은 자신을 바라보며 깔깔대며웃었고, 어떤 것들은 서로 붙어먹는 경우도 있었다.
대다수가 여자였다.
츠퍽!
"크아악!"
끔찍한 고통에 로이드가 비명을 내질렀다.
그걸 어떻게 들었는지 관중들은 오히려 날카로운 목소리로 환호.
흡사 지옥에 온 것만 같다.
-오호호! 기사출신이라 그런지 목소리도 우렁차! 어쩜!
-나중엔 저 기사도 공을 맡겠죠?
-아아. 남자 말고 나도 상대해 줬으면...! 대여 가능할까나?
여러 여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참으로 역겨운 것들이다.
그는 고통을 참아내며 힘을 모으려 했지만 이상하게도 모아지질 않았다.
힘은 물론이고 마나조차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듯한 아찔한 기분.
설마 금제라도 당한 건가?
"이봐 boy."
누군가가 로이드의 턱을 잡고 들어 올렸다.
울퉁불퉁한 근육 만큼이나 울퉁불퉁한 얼굴.
음침하면서도 음흉한 그 눈빛은 온 몸은 물론이고 영혼까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섬뜩했다.
"쓸데 없는 짓 하지 말어. 벗어날 수 없으니까♥"
뭐냐 저 상큼한 '척'을 하는 목소리는.
복부의 저 깊은 곳에서부터 구역질이 올라온다.
"너무 그렇게 보지 마. 흥분되잖아."
"미,미친...!"
"으아아아아악!!!!!!!!!!"
아까의 일을 떠올리며, 로이드가 발작했다.
분명 지난 일인데도 지금 당장 따이는 것처럼 엉덩이가 아팠다.
"씨발...씨발!!"
대체 뭐야.
뭘 어떻게 했길래 이런 쓰레기 같은 곳에 있는 거야.
대체 왜?
유은 그놈이 팔아넘긴 건가?
그래.
역시 모든 건 유은 그놈 때문이야.
라르나르를 빼앗긴 것도 유은 때문,
시에스타가 범해진 것도 유은 때문,
이런 시궁창에 빠진 것도 다 유은 때문.
모든 건 다 유은 때문이야!!!!
-그걸이제 알았어?
"???"
어디선가 목소리가 울렸다.
-그걸 이제 알았냐고.
또 울렸다.
"뭐,뭐야? 누구야?"
-누구긴. 너지.
"누구냐고!!!"
"시끄러 병신 새끼야!!"
간수가 뚫린 구멍 사이로 침을 뱉으며 일갈했지만, 로이드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보다 목소리가 우선이다.
촤라라라.
갑자기 어떤 기억이 스쳐갔다.
보라빛의 여인,
검은빛의여인.
애틋하고, 안타까운 감정이 물씬 올라왔다.
왜일까.
생전 본 적도 없는 여인들인데.
왜 저 여자들이 그리울까.
그리고 왜, 저 여자들 옆에 유은이 있는 걸까.
"으아아아아!!"
머리가아프다.
그리고 혼란스럽다.
너무나 싫다 이런 상황이.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미쳐버렸구나. 나도, 이 상황도!
-잊었어? 누구도 널 구원해 주지 않아. 누구도 널 도와주지 않아.
목소리는 한층 강하게 그를 몰아붙였다.
이젠 그 목소리가 익숙한 것으로 인식될 정도.
-기억해내. 니가 누구였는지. 어떤 꼴을 당했는지...그게 다 누구탓인지!!
정체불명의 목소리와 함께, 여러 기억들이 재생되었다.
하나같이 끔직하고기분나쁜 기억들....
-야 유소라!!
-자,자기야...!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아,아니 이건....
-돈 벌러 간다더니, 모험가 나부랭이가 된 것도 모자라서 이젠 바람까지 펴?
보라빛 여인과의 기억.
애틋함과 그리움과 배신감과 분노가 휘몰아쳤다.
-자,자기야 내 말 좀 들어봐.
여인은 눈물을 흘리며 애원했다.
그리고 그...아니 자신은 그녀를외면했다.
-듣긴 뭘 들어! 내가 다 봤는데!!
더 이상 들을 필요도 없는 바람의 현장.
온갖 쓴맛이 다 올라왔다. 울컥 구역질마저 올라왔다.
-당신...제가 이 여자 약혼잔데요. 알고 있었습니까?
유은...
그놈이 보인다.
뻔뻔하게도 이런 상황에서조차 그 재수없는 미소를 머금으며 농락하고 있다.
-네. 제가 꼬셨는데요.
-....
저 뻔뻔한 면상. 할 말이 없다.
그저 당장이라도 이 환상을 깨고 쳐부수고 싶다.
-흑흑.
이번엔 또 다른 여자.
얼굴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알고 있다. 어떤 얼굴인지.
들고 있는 요상한 상자...생전 처음 보는 것이지만 알고 있다. 어떤 물건인지.
-...너 우냐?
물어봤다. 분명히.
흐느끼는 그녀에 대고 물어봤다.
심하게 떨리는 목소리.
한참이나 지난 후에야 그녀가 말을 텄다.
-내가 너 기다려준다고 했지?
울먹이는, 아니 울고 있는 그녀는 잔뜩 잠긴 목소리였다.
듣자마자 그 울음과 우울함이 전염될 것 같은 그런 목소리.
불길함이 왈칵 다가왔다.
그리고 그건 확신이었다.
-...어.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미안하다고도-
듣고싶지 않았다.
'두 번'이나 듣고 싶지 않았다.
한 번이면 족하잖아. 이런 개소리.이런 개 같은 상황!
그만 끝내라고!
-나 결혼해 병신아.
-...뭐?
얼빠진 소리를 내고 말았다.
아니, 과거의 자신은 얼빠진 소리를냈다.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너무 어이없고 황당해서. 너무 슬프고 아파서.
-너...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늦었어...늦었다고. 당장내일부터 쓰레기 같은 새끼한테 첩노릇 하면서아양 떨어야 돼. 알겠어?
그녀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비수가 되어 꽂힌다.
-너 때문이야. 내가 고백할 때, 그때...받아줬으면 됐잖아. 근데 그걸...이렇게...흑...으흑....
그녀는 다시 흐느꼈다.
처음이다.
그녀가 우는 모습은.
그런데 그 모습을 볼 수조차 없다.
처음이자 마지막.
아마도 평생.
그래서 더 미칠 것 같았다.
미칠듯이 아프고 타는 것 같고 전신의 모세혈관이 터질 것만 같다.
-이제 끝이야 병신아...다 끝이라고...할아버지가...이제 안 기다려줘. 내년까지만 이라고 했는데...그래도 안 된대. 끝이야....
울먹이며 그녀는 이별을 고했다.
시작도 못한 사랑. 그 끝은 이별.
시작해보고자 했던 사랑. 그 끝은 이별.
정상적으로 만나고 헤어진 게 아니다.
질질 끌다가 소라라는 여인을 만나 잠시 한눈을 팔고, 그러다 시기를 놓쳐 빼앗겼다.
그것도 또 유은한테.
그게 너무 화가 났다.
견딜 수가 없다.
그 부글부글 끓는 감정 때문에,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목소리는 인식되지 않고 타오르는 분노만이 인식되었다.
그러다 마지막.
울먹이던 그녀가 마침내 끝을 맺었다.
-아무튼...그렇게 됐으니까...이제 포기하고 새인생살아. 그놈은 둘째치고...우리 할아버지가 가만 안 있을 테니까...안녕.
그걸로 끝.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것은 그게 끝이었다.
그 뒤로는 정말이지 참혹한 기억.
차오르는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방 안을 온통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오로지...오로지 유은이라는 그 개새끼를 죽이기 위해!!
"씨발...씨발...."
가슴을 새까맣게 태워버리는 감정 속에서, 로이드는 되뇌었다.
이제 완전히 떠올렸다.
자신이 누구인지,
누구와 싸워야 하는지,
누구를 파멸로 몰아가야 하는 지!
-하앙! 아앙! 더...더!!
-오오. 소라누나 허리놀림 너무 음란한 거 아니예요?
-그,그치마안...앗흥!
-...변태.
-후후 삐졌어요? 유나씨 가슴도 맛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엄청나게 음란한 광경.
유은을 어떻게든 처리하기 위해 변호사를 데리고 자칭 '전문가'라는 인간을 만나기 위해 방문한 곳에서 목격한 장면이다.
그래. 그게 전부 함정이었지.
그 '전문가'라는 놈은 바로 유은이었고, 그는 소라와 세희, 그리고 또 한 명의 여인까지 끼고 섹스하고 있었다.
더 어이없는 건 변호사.
무려 그년도 유은의 여자였다.
이 끔찍하고도 끔찍한 기억.
로이드...아니 운현은 외쳤다.
마음속으로 외치고, 입으로 외치고, 머리로 외쳤다.
"아아아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내재돼있던 분노가 폭발하며 그의 육신을 찢어 발겼다.
단단한 돌로 된 바닥과, 강철로 이루어진 철문도 간단히 부숴졌다.
재구성되는 신체.
다시 모이는 영혼의 힘.
주변을 초토화시킨 폭발 만큼이나, 응축되는 힘도 강했다.
마치 블랙홀처럼,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였다.
오로지 유은을 죽이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