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대 던전은 나만의 기회 (301)화 (300/517)



〈 301화 〉26.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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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앗!"


울려 퍼지는 기합소리.
연무장을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큰 목소리였지만 그것은 다른 소리에 의해 묻혔다.

적어도 스무 명 가량 되는 여인들이 땀을 흘리며 검을 휘둘렀고, 날붙이가 맞붙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리며 제법 그럴듯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좀 더 살기를 담아서!"


아무래도 평범한 아낙네들이어서일까, 날카롭게 배어 있는 기와 달리, 그녀들의 눈매나 표정은 고작해야 동네 처녀와 머리채를 붙잡고 아웅거릴 때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당연하지만 저래서는 아마르 기사를 상대할  없다.

기술이 좋으면 뭐하나. 공격을 못하는데.
저런 공격은 제대로 훈련받은 기사라면 십중팔구 피하거나오히려 역공을 먹일 수 있고,그건 즉시 치명타로 돌아온다.

"베어 죽일 기세로 휘두르란 말야!"

시에스타는 돌아다니면서 여자들의 자세를 잡아주면서 호통쳤다.
자칫하면 동료에게 큰 상처를 입히거나 심지어는 죽일 수도 있지만 그런 건 지금 겪어두는 편이 여러모로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장 며칠 뒤면 실전인데 그땐 살해당하거나 살해하거나  중 하나다.

지금 여기서 멘탈을 잡아둬야만 승리할  있는 것이다.



"...어때요?"

오전 훈련이 끝나고, 시에스타는 여인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라르나르에게로 다가왔다.
시에스타역시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함께했기에 땀에 푹 젖은 모습이었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단순히 기의 양이나 검법의 날카로움 등은 확실히 상당합니다. 당장 싸워도 절대 밀리지 않을 정도예요."
"와아...."
"하지만 정신이 따라주지 않으면 아무리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어도 써먹을 수가 없죠."
"그래도 경지만 보면 크게 성장한 거잖아요? 전 그거라도 만족해요."

그렇게 말하며 라르나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경장차림에 가려진 가슴이 그녀의 안도감과 함께 포옥 내려갔다.

"대단하네요 정말...고작...며칠 되지도 않는 시간인데 이렇게 바꿔놓다니."


안도와 함께 존경에 가까운 감정이 고개를 들었다.

지금 저기서 바닥에 널브러진 채 숨을 고르고 있는 여인들은 모두 영지에서 강제로 징발한 평범한 여인들이다.
그것도 검에 관련된 재능을 보고 뽑은 게 아닌 얼굴과 몸매를 보고 데려온 이들이다.


말하자면 유은이 즐겁게 소비하기 위해 성으로 불려온 이들이랄까.
이미 그에게 몇 번씩이나 돌아가며 안겼고, 지금도 그가 내킬 때마다 한 명   데려가 품고 있다.
도저히 기사로 뽑힌 여인들이라고는 볼 수 없는 면면들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의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아예 없던 실력이 순식간에일류 기사의 반열에 들어 심지어 몇몇은 유은을 받아들이기 전의 시에스타보다도 더한 경지에 오른 경우도 있었다.

익스퍼트.

지금의 시에스타는 간단히 그 벽을 허물고 훌쩍 뛰어 올랐지만, 설마 유은에게 안기고 여러 조정을 받은 것 만으로 이런 경지를 밟게  줄이야.
물론 일반적인 익스퍼트에 비하면 지닌바 기술은 일천하기 짝이 없다.
그저 유은의 세계에서 가져온 스탯이라는 현상에 의해 발현되는 무지막지한 공격력과 방어력이 그녀들의 경지를 높였을 뿐.

아마기술만 놓고 본다면 익스퍼트가 아니라 경지에 발을 들이지도 못한 수련기사들에게도 깨질 게 분명했다.

"이길 수...있겠죠?"
"...아마도요."


시에스타는 망설이면서 확답을 주지 않았다.
그래도 높은 확률로 이길거라 생각했다.


그거만 해도어디인가.
유은이 오기 전에는절대 이기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희망이라도 생겼지 않은가.



"이길 거니까 걱정하지 마요."

그때 등장한 여인.
검을 허리춤에 매고 연무장을 찾은 유나였다.

그녀역시 한 명의 검사. 이쪽의 기사와는 여러 측면에서 다르다곤 하지만 무술을 다룬다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아쉽게도 그녀의 검술 실력은 상당히 낮은 편으로, 라이젠 기사단의 부단장이었던 시에스타는 당연하고 그저 교양으로 검술을 익힌 라르나르에게도 질 정도였다.
그렇기에 이를 보완하기 위해 매일같이 찾아와 시에스타에게 가르침을 받는 중이었다.

시에스타는 그녀를 보고 고개를 살짝 숙임과 동시에 새삼스런 의문이 일었다.


저 여자들도 그렇고, 유나도 그렇고, 검술 실력은 그렇게나 형편없는데 대체 어떻게 경지를 밟으며 어떻게 압도적인 힘을   있는 것일까.


특히 유나의 경우 평소 실력은 도저히 못 봐줄 정도인데 입술을 몇 번 움직이면 갑자기 말도 안 되는 궤적으로 검을 휘둘러 순식간에 대상을 난도질하곤 했다.
 기술의 경로는 시에스타조차 눈에 담지 못할 정도.
아마 익스퍼트를 넘어 마스터 정도는 되어야 간신히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검술을 사용할 수 있는 여인이 평시에는 일개 수련기사와 호각을 뜰 정도의 형편없는 실력을 갖고 있다는 게 이해가 되질 않았다.

어느덧 두 여인에게 다가온 유나는 휴식을 취하는 여인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저런 여자들 쯤, 얼마든지 양산할  있는 게  인간이예요. 그나마도 여기가 우리 본거지가 아니기 때문에 저 정도인 거지, 원래 있던 곳이었다면 당신의  배는 되는 실력자들을 하루에도 수십, 수백명 씩 공장처럼 찍어낼 수 있어요."
"그게...."


가능합니까? 라고 묻고 싶었으나 나오지 않았다.
보지 않았는가 이미. 기적을.

 여인들도 충분한기적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들을 데려와 불과 2~3일만에 부단장급의 실력자로 만들어 버렸다.
이게 기적이 아니라면 무엇이 기적이겠는가.


"그리고 설령 진다 하더라도...그 인간이 알아서 다 할 테니까 걱정 같은 건 아예 꺼두셔도 돼요."
"알아서 한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죠?"

순간 불안감이 왈칵 치달은 라르나르가 다급히 물었다.

"무슨 말이긴요. 일이 틀어지면 그쪽 기사들과 아마르 자체를 전부 쓸어서라도 당신들을 소유하려는 인간이니 걱정할 필요 없다는 거예요."
"그,그럼 큰일이잖아요! 그건 안 돼요!"
"왜죠? 아마르를 싫어하는 것 아니었나요?"
"아마르는 문제가 안 되죠. 문제는...이번에 기사전을 위해 오신 분이 문제예요...무려 공주전하라고요."
"공주...."

유나는 맘에 안 든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그럼 더 문제 없겠네요."
"예?"
"공주라면서요. 그 인간이 퍽이나 가만 두겠어요."
"......."

라르나르의 얼굴이 파리하게 질렸다.
설마 그 인간...공주를 건드리진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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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제르 왕국.


왕국의 중앙에 있는 왕가 직할령을 지나 아말린 남작령, 보르미르 백작령을 지나고 나면 드넓은 평원이 나온다.
어찌나 넓은지, 라이제르 왕국의 전 국토를 수십 배를 쳐야 간신히 대평원을 덮을 수 있을 정도다.


문제는 그 대평원을 대륙의 어떤 나라도 소유하지 못했다는 것.

물론 시도는 많았지만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다.
워낙 몬스터가 많고 험악한데다, 막상 들어가보면 생각보다 풍요롭지 않다. 그러니 굳이 큰 희생을 치르면서 개척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한때는 대평원의 일부가 특정 국가의 영토였던 적이 있었다. 정확히는, 본래 대평원에 속한 지역이 아니었으나, 대대적인몬스터의 침공으로 인해 빼앗긴 것이다.

라이제르 왕국이 바로 그러했다.
본래 동쪽의 라이샤르 왕국, 레시아 황국, 레지야 공화국과  나라였고, 서쪽으로는 아쉬타르 왕국을, 동쪽으로는 내해를 사이에 두고 대치한 슐리아성국과 티벳을 위협할 정도로 강대한 국가였다.

영토도 지금의 20배 정도로, 대륙의 패자인 '불칸 대 제국'도 대놓고 막나갈 수 없는 그런 나라였다.


그러던 것이, 갑자기 대평원에 있던 수십만 마리의 몬스터들이 제국의 수도로 침공해 왔고, 그 과정에서 수도를 비롯한 광대한 영토가 소실되었다.
지금도 그 지역은 '잃어버린 왕도'라 불리우고 있으며, 서방사분국(라이제르 왕국, 레시아 황국, 레지야 공화국, 라이샤르 왕국)의 분단의 계기가  지역이기에멀리 동쪽에서도 상당히 유명했다.



그곳에, 한 남자가 거무튀튀한 몰골로 등장했다.

흡사 거지와 같은 거적대기에 질질 끌리는 왼쪽 발,
얼굴은 한쪽이 무너져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고, 그 반대편에선 형형한 안광이빨갛게 전방을 비추고 있었다.

치익..치익..

그가 걸어갈 때마다, 전신에서 하얀 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분명 그리 더운 지역이 아닌데도 그의 주변으로는 아지랑이가 일렁였다.





쿵. 쿵.


그의 저편에서 냄새를 맡은 무리가 등장했다.
다른 대륙에선 보기 힘든, 보더라도 절대 동종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고 흉폭한 존재들이었다.


그들이 발을 디딜 때마다 모래가 흩날리며 땅이 울렸고,
우거진 갈대들은 파동에 반응하며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논밭의 그것처럼 웅성한 곡선을 그려대며 이리저리 조아렸다.



샤아아아.

'그'와 '그들'이 멈춰선 사이에, 이루 표현할 수 없는 소름끼치는 공기가 휘몰아쳤다.
누구라도 움직였다가는 촉발한다ㅡ.


이 긴장감은 서로간의 거리를 지키게 만들었다.

사내든, 그를 바라보는 흉포한 무리든.




쿵. 쿵.

무리의 뒤편으로 끝없이 거한들이 늘어섰다.
흡사 군대.

수만의정병들이 흙먼지 흩날리며 진군하듯, 그들 역시 짙고 탁한 연기와 함께 줄지어 등장했다.

그 수는 족히 수만을 칭할 수 있을 정도.

-인...간...크흐으...크흐...인간....크....-


무리의 수장으로 보이는 이가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 거렸다.
그러자 뒤에 있던 이들이 일제히 사람 머리통만한 주먹을 들어 올리며 거친 울음을 내뱉었다.


그것 만으로 바람의 기세가 바뀌며 사방에서 휘몰아치던 모래바람이 방향을 틀어 멀찍이 물러났다.

어찌하여,
이들은 고작 한 명에게 이리도 많은 수로 대치한 것일까.

무슨 위협을 느꼈을까.





턱...턱...
사박...사박...
자각...자각...

'그'의 뒤편에서 어기적거리는 움직임이 등장했다.
수평선 너머로 가려지다 이제서야 그들의 모습이 보인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형형하게 타오르는 새빨간 눈두덩과 으르렁 거리는 울음소리,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증기.
사람이었을 그들은 분노의 형상으로 느린 발을 움직였다.

그들이 '그'의 주변에 속속 도착했을 때, 그의 입이 열리며  긁는 듯한 목소리가 튀어 나왔다.

"대평원의 무리...저주받은 존재들이여...너희의 저주가 내 분노보다 강한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며 스윽 고개를 들었다.
흉측하고, 인간이라고는 생각할  없는 반쪽짜리 얼굴이 이죽거리며 무리들을 바라봤다.


"아니...나의 분노야 말로...너희의 모든 저주보다...강하다...."


그가 손을 들었다.
그 끝을 따라, 사람이었던 것들의 고개가 움직였다.

"나의 분노 아래...너희도...대륙도...온 세상도...무릎꿇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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