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대 던전은 나만의 기회 (306)화 (305/517)



〈 306화 〉26.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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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로도 기사전은 같은 양상으로 흘러갔다.
검은머리 여인과 유은 이후로도 4번을 내리 승리. 지금부터 아마르측이전승을 거둔다 해도 이미 라르나르측이 6승을 챙겼기 때문에 승자는 그녀가 된다.


즉, 이 시점에서 이미 승패가 결정된 것이다.


"...."


하지만 누구 하나 환호성을 지른다거나 박수를 치는 등의 일은 없었다.
모두가 직감적으로 느낀것이다.

"말이 안 되잖아...."


그래.
말이 안 된다.


유은은 그렇다 치자. 그리고 마지막에 출전한 유나도 그렇다치자. 부부용병이라 했으니 어느 정도 실력이 있을 것이고, 숨어살던 고수 정도로 대충 넘어갈  있다.
시에스타역시 본래 라이젠 기사단의 부단장이었으니 그렇다치자.

하지만 나머지 3명의 여자들은?

첫번째로 출전한 여인부터 시작해서 하나같이 말도 안 되는 실력을 보여줬다.
특히나 5번째 출전한 여인의 경우 다른 여인들과는 다르게 싸움을 즐길 줄 알았고, '미들'의 실력자를 상대를 농락하며 야금야금 그의 사지를 쳐내다가 마지막엔 목까지 쳐버렸다.

불과 일주일 전 까지만 해도 평범한 아낙네였던 그녀들이, 최소 익스퍼트의 실력자로서  자리에 있는 것이다.

여기에 이상을 느끼지 못할 정도의 바보는  자리에 없었다.

"공주 전하!!"

아마르 역시 그러했다.


"이건 말이 안됩니다!!"


무려 6명의 기사를 잃은 것도 그렇지만, 이대로 승패가 확정되면 그는 모든 걸 잃어버린다.
때문에 다소 강하게 항의했다.


"저년들은 일주일 전만 해도 밭일이나 하던 것들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실력을 낼 수 있단 말입니까! 분명 뭔가 비겁한 술수를 쓴 겁니다!!!"

몇몇 관중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증 따위는 없지만 그들이 알고 있던 상식에 의거해서 분명 라르나르측에 뭔가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

공주도 뭔가 있을 거라 생각했는지 심히 고심하는 모습.
다만 그녀의 생각은 아마르를 비롯한 관중들과는 꽤나 달랐다.

그들이 라르나르측에서 비겁한 술수를 썼다고 생각하는 쪽이라면, 그녀는 비겁이고 나발이고 평범한 여인들을 이렇게까지 강하게 만든 그것이 대체 무엇인지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이었다.


방법이야 어쨌든 일주일만에 익스퍼트급의 강자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라이제르 왕국이 당면한 문제의 많은 부분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고, 이 나라의 공주로서 절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것이었다.


"아마르 자...아니 이제 자작도 아니군요."
"공주전하!!!"
"같은 연무장에서 같은 수의 기사가 붙어 승패가 갈렸어요. 게다가 당신이 더 유리한 상황이었고. 아시겠나요?"


공주는 냉정하게 그의 말을 끊고 라르나르, 라이젠 남작령의 승리를 선언했다.
라르나르는 기뻐하며 총총 뛰었고, 유은과 유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아마르가 털썩 주저앉았다.

그가 올린 리스트는 그가 가진 거의 모든 것이었다. 작위부터 시작해서 영지, 재산, 부동산 등등...말 그대로 모든 것.
그것을 빼앗기는 것이다.

그는 그걸용납할 수 없었다.

"으...으으으으!!"


핏발이 선 눈으로 홱 고개를 든 그가 맹수와 같은 외침으로 심복을 불렀다.


"마론!!!"
"예..예?!"
"지금 당ㅡ."
"여기 웬 돼지가 있어?"


뭔가 명령을 내리려던 아마르의 거대한 뱃살이, 돌연 휘둘러진 다리로 인해 30센티 가량 푹 찌그러졌다.


"꾸웩!!"

꼴사납게 바닥을 떼굴떼굴 구르며 온갖 먼지를 뒤집어 쓰는 아마르.
명색이 자작이나 되는 귀족이 상당히 꼴사나운 모습이었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너 이제 평민이지? 말은 이 몸이 맘대로 죽여도 된다는 말씀."
"...그건아닌데요."


유은의 말에 공주가 딴지를 걸었지만 당연하게도 무시당했다.
그는 피를 토하는 아마르에게 다가가 두꺼운 족발을 발로 살포시 으깼다.


"끄아아아아아악!!!!"
"얌전히 부인과 애첩과 딸을 내놓으면 유혈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거다."
"이미 피흘리고 있는데...그보다 당신 부인 있잖아요!!"


왠지 처음 봤을 때의 이미지와 구만리는 떨어진 듯한 공주가 버럭하며 딴지걸었다.


"시끄러 공주주제에."
"주,주제에??"
"...공주님, 포기하시죠."

베로니카가 고개를 저으며 공주를 말렸다.
분명 유은이 보여준 실력은 엄청난 것이었지만, 그것과 별개로 인성이나 멘탈은 한참이나 바닥이었다.
진지하게 상대해봤자 손해만 볼 뿐.

"자,자작님...."


 광경을 멍하니 보던 마론이라는 기사가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댔다.

"얘 자작 아냐. 그냥 뚱땡이지. 너네도 따를 필요 없다는 거지. 다른  알아보렴. 아, 물론라이젠 영지에 올 필욘 없어. 남캐는 사절이다."
"...당신이 뭔데 라이젠 남작의 일을 멋대로 판단하는 거죠?"
"나?"

어이없어하는 공주에게 유은은 처음으로 제대로  답을 내놓았다.


"황제."






+++



기사전이 끝나고, 라르나르는 아마르가 제출한 리스트중 일부를 기사국으로부터 인도 받았다.
극히 일부일 뿐인데도 그 예상가치가 무려 391실링!


한국돈 1원이 이곳 화폐로 '1기니'이고, 1억 기니가 1실링이니 원화로환산해 보면391억 원이나 된다는 의미다.
나머지 영지라던가 부동산, 영지민, 기사, 병사, 광산 등의 가치를 합하면 도대체 얼마가 나올지 감도잡히지 않았다.

"알지?"
"하아...알았어요."

라르나르에게 모종의 요구를  유은이 싱글벙글 웃었다.
그 요구라 함은 당연히(?) 아마르 자작령에 있는 귀부인들에 대한 것이었다.


아마르의 부인이나 애첩들은 물론이고, 기사들의 여인들까지...예쁘다고 생각되는 여자들을 품을 생각인 것이다.


물론 그녀들은 리스트에 추가되지 않았기에 신분은 그대로겠지만 어디 유은이 그런  신경 쓸 인간이던가.


"그럼  먼저 갈게."

그렇게유은은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아마르 영지를 점거한다면서 시에스타를 데리고 떠나갔다.
 뒷모습을 짜게 식은 눈으로 바라보던 라르나르와 유나가 동시에 한숨을 내쉴 즈음, 공주 일행이 다가왔다.

"얼추 끝난 것 같은데, 저랑 얘기 좀 나눌까요? 출발은 그 뒤에 해도 되죠?"

아마 목적은 3명의 여인에 대한 얘기일 터.
라르나르가 꿀꺽 침을 삼키며 고개를 조아렸다.

"예. 공주전하."
"유나씨도 같이 얘기해요!"
"...그러죠."

라르나르는 속으로 '이 차별대우는 대체 뭐지'하고 생각하면서도 고분고분그녀를 안내했다.

사실 할 말이 많을 것이다.
갑자기 엄청 강해진 시골처녀들 때문에 묻힌 감이 없잖아 있지만, 유나와 유은의 등장만 해도전국...아니 대륙이 들썩일 정도의 대사건. 게다가 영지전도 깔끔하게 이겨 자작이 됨과 동시에 영지까지 흡수하게 되었다.
라이젠 남작령과 아마르 자작령을 합하면 어지간한 백작령에 버금가는 거대한 구역이 되기 때문에 그 자체만으로도 공주를 비롯한 왕가의 관심을 받기에 충분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면 하루종일 얘기해도 부족할 지경.

"그런데 유나씨...."
"네?"
"말...해도 되는 거예요?"

라르나르가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라도 들릴까 그녀의 귀에 바짝대고 속삭였는데, 왜인지 공주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붙지 맙시다~  앞에서 뭐하시는 건가요? 망측하게."
"아...죄송합니다."

라르나르가 얼른 입을 떼자, 유나가 그녀의 손바닥에 검지로 동그라미를 그려 주었다.

"...."

고개를 들어 쳐다보자 살포시 끄덕이는 유나.
얘기해도상관 없다는 뜻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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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

"이제 슬슬 얘기해 주겠어요?  여인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기품있게 찻잔을 기울이며 공주가 입을 뗐다.
오면서 이 영지의 주인도 은근히 끼고 싶다는 제스쳐를 보내왔지만깔끔히 무시한 그녀다.
지금 그녀의 관심은 오로지 '그' 여인들과 유나, 그리고 유은에 관한  뿐.


"우선...유나씨와 유은씨가 용병이 아니라는 것부터 제대로 받아들여 주셨으면 해요."
"흠...그럼 대체 뭐죠?"
"일단 저랑 그 인간은 이 세계 사람이 아니예요."
"...."

공주가 물끄러미 유나를 바라보다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그런 모습도 귀엽긴 하지만 전 그래도 평상시의 유나씨가 좋아요. 모쪼록 얼른 낫기를...."
"병 걸린 거 아니거든요."
"하지만  세계 사람이 아니라니요. 그게 대체 무슨 말인가요."
"말 그대로예요. 저와  인간은 차원을 넘어 이곳으로 왔죠. 말하자면 다른 세계의 인간, 이세계인입니다."
공주는 말도 안된다 생각하며 인상을 찌푸렸지만, 그렇다고 유나가 하는 말을 마냥 무시하기도 힘들었다.


"그래요. 일단 그렇다고 치죠."
"공주님...."
베로니카가 안타까운 목소리로 한탄했다.
그렇게 콩깍지에 씌여 사리분별을 못하더니, 기어이 저런 말까지 믿으려 하고 있다.
이게 어찌 안쓰럽지 않으리오....


"그래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건가요?"
"네...보셔서 아시겠지만...유나씨와 유은씨는 엄청난 실력자셔요. 설령 마스터라 해도 쉽게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고수분들이시죠."

이 대목에선 공주와 베로니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인성이야 어쨌든 강한 건 사실이니까.


솔직히 아까 목격한 것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마스터도 간단히 이겨버리지 않을까하는 불안한 의심마저 들었다.


"특히 유은씨는 그 실력과 더불어서 한 가지 특별한 능력이 있어요."
"특별한 능력?"
"네."
라르나르가 잠시 침을 삼켰다.

"그분은...익스퍼트급의 기사를 '양산'할 수 있습니다. '여자'라는 조건이 붙긴 하지만요."
"...예?"
"예?"

상상을 뛰어넘는 말에 공주와 베로니카 모두 얼빠진 목소리를 냈다.





+++



모든 건 속도가 생명이다.
지금 이 순간도 그러했다.

기사전이 펼쳐진 영지에서 아마르 자작령까지는 말로 2일 거리.
라이젠 남작령이 승리하였다는 소식이 닿는 것도 2일 정도의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 말은 아마르의 부인과 애첩들이 소식을 접하고 도망치려면 최소 2일은 있어야 한다는 뜻!

그래서 유은은 달렸다.
옆구리에 시에스타를 끼고 달렸다.

말도 안 되는 스탯을 보유한 유은과, 길을 알고 있는 시에스타.
그 조합은 4시간만에도착이라는 엄청난 결과를 낳았다.

 멀리 보이는 작은 성이 바로 아마르 자작성!
유은이 음침하게 웃었다.

"흐흐흐. 저기가 그 뚱땡이놈의 성이로군."
"...."


시에스타가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다소곳이 손을 모았다.

"아마르는 부인 1명과 8명의 첩을 두고 있다고 알려져 있어요."
"겨우 8명? 그 정도로 끝낼 인간이 아닌 것 같았는데."
"질리면 교체하는 식으로 했던 거죠."
"와. 쓰레기네."
"...."

시에스타가 잠시 어이없는 눈으로 유은을 쳐다봤다.


"왜. 뭐."
"주인...후...아니에요."

니가 할 말이냐고 하려 했지만 결국 고개를 저었다.

"아무튼  중에서 가장 총애하는 여인이 '루미아'라는 사람이에요. 6개월 전에 첩이 됐죠."
"엄청 자세히 알고 있잖아?"
"적이었으니까요."
"오호. 그렇군. 애첩이라면 당연히 예쁘겠지? 좋아. 일단 걔한테 먼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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