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대 던전은 나만의 기회 (312)화 (311/517)



〈 312화 〉27.커맨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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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정신이 살아나고, 뇌가 깨어났다.

시야는 아직.
전신에서 욱신거리는 고통과 동시에 치유되는 듯한 따뜻함이 느껴졌다.


"뭐...지...?"

슬며시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실선으로 보이던 세상이, 점점 커지며 어렴풋한 윤곽이 잡혔다.

"정신이 드십니까?"
사람의 얼굴.

철모를 푹 눌러쓰고 미려한 이목구비로 걱정을 드러내는 한 여인.
본 적 없는 얼굴이다.

그녀는 이곳저곳을 진찰하듯 만져대며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제 말이  들리십니까?"

한사랑은 점차 제정신이 돌아오고, 청각또한 회복되었다.

그러자 들려오는 웅성거리는 소리.
제법 소란스럽다.

여기까지 함께 해 온 대원들의 목소리도 있었고, 딱딱하면서도 앙칼진 여인들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거기에 철로 땅땅거리는 소리까지.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알 수가 없다.

"누구...?"

힘겹게 입술을 열었다.

비록 검게 물든 세상에서 히든 직업을 얻어오긴 했지만, 그렇다 해서임학봉에게 맞아 죽어가던 몸이 갑자기 살아날 리는 없다.
전신에서 극심한 격통이 서서히 밀려오고, 고작 입술을 움직일 힘도 부족한 상태였다.


"의무병!"

한사랑의 반응을 확인한 여인이 외치자, 어디선가 탁탁탁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이어지는 조치.
 하는 건지모르겠지만, 어쨌든 자신을 치료하고있다는  알게  한사랑이 긴장을 풀었다.


<불굴의 사령관>이라는 히든 직업, 그리고 생전 처음 보는 여군들. 사방에서 들려오는 난잡한 소리 등이 대체적인 상황을 짐작케했다.

아마도 이 여군들은 직업효과로 인해 소환됐을 것이고,  여군들로 인해 임학봉이 제압, 이후 주변을 정리하는 과정인 것 같았다.

그녀가 정신을 잃기 직전까지만 해도 임학봉이 날뛰며 대원들을 죽이고 있었으니꽤나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을 터.
그들에 대한 치료나 이송에도 꽤나 많은 인력이 투입되었을 것이다.


본부에서 지원이 왔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던전 내부에서 바깥으로의 통신은 아직까지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당연히 국군에서도 불가능하다.
내구성 좋은 케이블을던전에 유선으로 깔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던전 특유의 초기화 현상 덕분에 이도 수없이 실패한 상황.

그렇다면 임학봉으로 인한 참사가 일어났다는 것도 본부에선 당연히 몰랐ㅡ,


"깨어나셨네요. 이런곳에서 돌아가시면  되죠. 주인님이 슬퍼하실 테니."
"한사랑 중령은 정신력이 아주 뛰어난 군인이니까요. 그래도 빨리 와서 다행입니다."



 거라고 생각했으나, 유은의 시녀로 보이는 여인의 말은 둘째치고, 그녀의 상관이라 할 수 있는 사람까지 와 있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걸까.
혹시 사람이 가서 인편으로 상황을 전했을 정도로 시간이 흐른 걸까? 던전 안에서 그게 가능할까?
혹시가능하다 한다면 그냥 이송하는 게 나았을 텐데.


그렇게 고민하는 한사랑에게, 시녀가 다가왔다.

"상황은 전해 들었습니다. 히든직업...그 중에서도 '패밀리'를 얻어내셨다고요. 놀랐습니다."
"패...밀리...?"
간신히 입을 열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히든직업 중에서도 최상위직군으로 평가받는 종류죠. 물론 주인님의 그것에 비할바는 아닙니다만, 어쨌든 지금까지 발견된 사례는 한사랑님을 제외하면 둘 뿐이에요. 한 분은 주인님(조정) 이시고, 나머지 한 명은  D10 수장인 아녜스 이사벨라(노블레스)죠."

 긴 설명을  수 있었지만, 서현은 여기서 설명을 끝냈다.

"자세한 건 돌아가서 얘기해요. 아직 응급조치 단계거든요."
한사랑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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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랑이 말끔하게 정신을 회복한 것은 서울 강남으로 이송되고 1시간 가량 지난 후였다.


본래라면 논산에 있는 병원이나 육군훈련소 병원 등으로 이송되는 것이 훨씬 빠르고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었을 테지만, 지금은 던전시대.
특히 강남이라면 '성녀'라 불렸던 유소라가 있다.

아마도 한사랑은 아군으로 판정받을 테니 근처에 가는 것 만으로 풀회복.

물론 유소라가 그녀를 아군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1도 회복되지 않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적다고 생각했다.




"으음...."


침대에서 일어난 한사랑은 자신의 몸을 살폈다.

분명 내장 여러개는 파열 됐을 텐데, 마치 다시 태어난 것처럼 깨끗하고상쾌했다.
평소보다 훨씬 기운차고, 힘이 넘친다.

직업의 효과인 걸까? 아니면 유소라의 효과인 걸까.

어느 쪽이든 살았다.
여기라면 안전. 설령 임학봉이 중간에 도망쳤다 하더라도 여기까지 쳐들어 올 리는 없다.



똑똑.

"사령관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아까의 목소리.
의무병을 크게 외치던 여인의 그것이었다.

한사랑을 '사령관'이라 부른다는 건, 필시 직업과 연관된 여인일 터. 그녀는 들어오라 일렀다.


문이 열리고 들어온 사람은 역시나 군복차림의 여인.
던전 안에서 어렴풋이 보았던 것과 동일한 복장이었다.

그녀는 경례를 이어붙이며 우렁찬 목소리로 인사했고, 한사랑은 떨떠름해 하면서도 마지못해 받아 주었다.

"몸은 좀 어떠십니까?"
"그보다 묻고 싶은  있는데요."
"존대는 하실 필요 없습니다."
"...너는 누구지?"
"사령관님의 직속 부하이자, 소환물...그리고 <군영>의 개체입니다. 이름은 '셜리.D"정도면 족합니다."

셜리는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한사랑이 얻게 된 직업 <불멸의 사령관>은 일전에 시녀가 얘기했던 것처럼 '패밀리' 직군이다.
유은의 <조정>이나 아녜스의 <노블레스>처럼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 직업을 내려주어 세력을 형성할 수 있는데, 안 그래도 희귀한 히든직업 중에서도 극도로 희귀하여, 발견 사례는 겨우 유은과 아녜스 둘 뿐이었다.

한사랑역시 <불멸의 사령관>을 얻었으니 이것으로 세 번째.


<불멸의 사령관>은 간단하게 설명하면 자신만의 '군벌'을구축하는 것이다.


스킬은 거의 대부분이 군대와 관련된 것이며, 레벨과 스탯에 따라 기본적으로 소환되는 군인(유닛)의 수가 달라진다.
현재 한사랑의 스탯은 평범한 모험가에 비하면 상당히 높았지만, 하렘궁과의 스탯거래를 하지 않았기에 최고 수준에 비하면 한참이나 미달.


그런데도 소환된 군인은 기백을 넘기고 있었다.


"아. 그런데 임학봉은?"
"임학봉이요? 그게 뭔가요? 새로 나온 치킨인가요?"
"아니...나를 이렇게 만든 놈 말이다."
"아."


간신히 알아들은 셜리가 심플하게 대답했다.

"사지를 잘라서 이동감옥에 가둬둔 상태입니다."
"흠...전투중에 피해는 없었나?"
"뭐...저희가 등장하기 이전에는  있었던 것 같지만, 이후로는 없습니다. 워낙 약체라서요."
"...그렇구나."


그런 약체에게 죽어라 얻어맞고 부대가 통째로 처리될 뻔한 그녀. 왠지 묘한 기분이 들었다.


"끝까지 악연이구나...그녀석과는."

문득 아련한 생각이 들었다.
그놈에게 좋은 느낌을 갖고 있는 건 결코 아니었지만, 그래도 한때는 믿을만한 동료였고 부하였다. 그 기억이 아련하지 않다면 거짓말.

사람의 인연이란 이렇게도 알  없는 것이구나.

멍하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또 한 번 노크가 울렸다.
이번에는 하렘궁의 시녀.

"소라님께서 뵙자고 청하시는데, 괜찮으신지요?"

공손히 물어오는 시녀에게 한사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가죠."
"아니요. 아무리 다 나았다곤 해도 환자를 움직이게 하는 건 좋지 못하다는 게 소라님의판단이십니다.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시녀가 그렇게 나가고, 셜리 역시 인사하며 나갔다.

다시 적막함에 잠긴 방.

"...근데 역소환은 안 되는 건가? 한 소환하면 계속 나와 있는 건가?"

홀로 남은 한사랑이 스탯창과 스킬창을 뒤적거리며 정보를 찾았다.
그 결과,   소환된 군인은 역소환이 불가능하며, 생명체의  개체로서의 삶을 마칠 때까지 소환된 상태로 유지된다는  알 수 있었다.


얼핏 보면 엄청난 개사기라 볼 있고, 실제로도 사기인 스킬이었지만, 역시 단점도 존재했다.

만약 소환/역소환이 가능했다면, 군대 전체를 역소환 한 후, 한사랑 혼자 적진에 잠입하여 군대를 소환하여 말도 안 되는 기습작전을 수행할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역소환이 되지 않으니 불가능하다.

게다가 소환된 군인들은 평범한 사람들...아니 그들보다 더 많은 양의 식량을 필요로 했고, 일반적인 사람들이 그렇듯 씻거나 휴식을 취하는 등의 조치도 필요했다.

말하자면 사람 그 자체.


'소환'이라는 형식으로 한사랑에게묶여있을 뿐이지, 생명을 가진 군인이었다.


"...왠지 피곤해."

무릇 옛날부터 장군이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병사들을 먹이는 것이었다.
단순히 명 정도라면 어렵지 않겠지만, 그 수가 수백, 수천, 수만에 달하면 머리가 지끈거리는 걸 넘어 터질 지경이 된다.


다행이라면 소환될 때부터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보급품이 있다는 것.
그것이 전부 소모될때까지는 무리 없이 군을 이끌 수 있다.


똑똑.

-들어가도 되죠?

유소라의 목소리.
한사랑은 괜히 긴장된 얼굴로 대답하더니, 침대에서 슬쩍 내려왔다.


"몸은 좀 괜찮죠?괜찮을 거예요. 만피일 테니까."


찬란한 후광을 뿌리며 안으로 들어온 소라.
보라빛으로 물들인 단발머리가 움직임에 따라 살짝씩 흔들렸다.

"...치료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뭘요. 가만 있었을 뿐인데."

한사랑이 답지 않게 제대로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가운데, 유소라가 의자에 앉아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

상당히 묘하고 복잡한 얼굴이다.

사적으로는 그리 친하지 않고, 대화도 나누어 본 적 없다.
하지만 남편의 애인이다.


딱히 적대적인 관계를 구축한 적도 없고, 뭔가 불편한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남편의 애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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