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대 던전은 나만의 기회 (360)화 (359/517)



〈 360화 〉31.서현일기.

"...!!"


말투만 보면 마치 첫 데이트를 마치고  여동생을 바라보는 언니처럼 자상했지만, 서윤을 바라보는 서현의 눈은 오줌을 지릴 정도로 싸늘했다.
더 이상 같은 집단에 소속된 동료를 보는 눈이 아니다, 아니 동료는 고사하고 인간취급도  하는 얼굴이다.

그저 보고 있기만 해도 온 몸의 모든 기가  빨려 나가고, 모든 땀샘에서 미친듯이 식은땀을 배출한다.

절대 보아서는 되는 서현의 표정.
최악의 운명을 결정지어버리는 얼굴을 보고야 말았다.



촤라라락!!


창고의 불이 전부 켜졌다.
환하게 밝혀진 내부의 모습은 휴대폰의 그것으로 엿본 것보다 몇 배는 더 참혹하고 끔찍했다.





스윽.


서현이 어깨에 올린 손을 내려 서윤의 몸을 쓰다듬었다.
처음엔 자상하게 어루만지다가 서서히 팔을 주무르더니, 나중에는 양손으로 각각 골반과 가슴 부근을 매만졌다.

두꺼운 외투를 입고 있었기에 별 다른 느낌은 없었지만, 서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경직된 채로 소름돋는 손길을 받아냈다.

"나는 정말 이해가 안 돼."
한참을 매만지던 서현이 서윤의 몸에서 손을 떼고,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근처에 널브러져 있는 남자들의 시체에서 버섯 따듯이 물건을 뜯어냈다.

"흡..!"

결국 서윤은 속에서 올라오는 무언가를 느끼고 입을 틀어 막았다.
D10 한국지부장의 전 비서였지만 딱히 비위상할만한장면을목격한 것 아니었던지라 그녀의 감각은 지극히 일반인에 가까웠다.
그런 그녀가 갑자기 이런 고어틱한 장면을 보았으니 속에서 올라올 만도 하다.

다만 여기서 속에 있는 것을 게워내면 정말로 대참사가 벌어질 것 같아 필사적으로 참아낼 뿐.



꾸욱.

그런 그녀의 모습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서현은 손에 쥔 물건을 꾸욱 움켜쥐었다.
볼품없이 쪼그라든 채 피에 절여있는 그것은 혐오 자체.
과연, 들고 있는 서현의 표정도 가히 좋지 않았다.


"이딴 게 뭐가 좋다고 목숨을 거는지 모르겠어. 기분 좋지도 않잖아?"
벌레보는 눈으로 혐오스런 눈을 하다가 바닥에 던져버리고는 굽으로 밟아 터뜨렸다.

"아니 뭐 나도 주인님 뵙기 전에는 남친도 있었고...꽤 경험도 있었지만 말야...그거야 뵙기 전이니 몰라서 했다 치고...너흰 그것도 아니잖아? 주인님께 다리까지 벌렸던 년들이 대체 어떻게 딴생각을 할 수가 있지?"

그녀는 정말 이해 안 된다는 눈으로 서윤을 바라봤다.
정말로 소름끼치는 눈빛이라 그녀는 저도 모르게 두어 걸음 물러났다.

"충성심이나 그런 걸 제쳐두더라도, 주인님께 범해지고나면 도저히 딴놈 생각은 날 수가 없을 텐데. 대체 무슨 생각이니?"

서현이 다가와 길쭉한 검지로 서윤의 턱을 들어 올렸다.


"응? 답좀 해봐."

마치 여왕의 자태!
오돌오돌 떨고 있는 서윤을 한없이 내려다보는 눈으로 쳐다봤다.



"뭐, 굳이 알 필욘 없나? 너 같은 년이 나오면 그때그때 조지면 되니까."
"이,이이..."
"이?"
"이..러지...마요...!"
"하. 뭐라는 거야."
"안 했어요...."
"뭘?"
"아...무것도  했다고요!"

두려움에 몰려 있으면서도, 서윤은 강단있게 외쳤다.

그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몇 번 같이 밥만 먹었을 뿐이다.

"바,바람...때문에 그런 거잖아요...! 그러지 않았어요!"
"저기요. 지랄하지 말아줄래요?"
"정말이에요! 그냥...그냥 밥만 같이 먹었을 뿐이라구요..!"
끝내  눈을 꼭 감으며 눈물로 애원하는 서윤.

억울하다.
차라리 모텔이라도  번 가서 이런 일을 겪는 거라면 억울하지라도 않을 텐데.
그저  좀 먹다가 이제 제대로 유은과 관계를 끊고 진도를 뽑아보려는 시점 아니었던가.


"그게 바람이지 씨발 장난해?"
"아니예요! 아니라구요!!"


목숨이 걸린 일.
필사적이  수밖에 없다.


서윤은 젖먹던 힘까지 발휘하여 서현의 의혹을 부정했다.

"그럼 아까 만나던놈은 뭔데?"
"그건...."
"그래 뭐, 아니라니까 믿어줄게."

씨익 하고 웃은 서현이 서윤에게서 떨어졌다.
생각보다 쉽게 물러나는 그 모습에 되려 불안감이 증폭.
서윤의 눈동자가  없이 떨렸다.


"근데말야. 이 남자라는 생물은 여자한테, 특히 예쁜 여자한테는 사심이 없을 수가 없거든? 그것도 단 둘이 밥까지 먹을 정도면 더 심할 거고."
"...."
"말하자면 너가 아무짓 안 했다 해도 그놈은 감히 주인님의 여자한테 흑심을 품었다는 얘기가 되는 거지."
"무슨 그런...!"
"혹시 스토커라던가? 너는 만나고 싶지 않았지만 그놈이 계속 달라붙은 거야."
"그건ㅡ,"

그녀는 부정하려 했다.
스토커라니.
그는 결코 그런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은 서현에 의해 막혔다.


"너 잘 생각해. 여기서 하는 대답이 어떤 의미인지 충분히 생각하라고. 원래 말은 생각하고 내뱉어야 하는 거야. 그렇잖아?"
"...!"


그렇구나.
답정너구나.

여기서는 '그렇다'라고 대답해야 한다.
그렇게 썸남을 스토커로 내몰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잔혹하다.
참으로 잔혹하다.


"뒤에 저거 안 보이니? 그래도 꼴에 비서출신이라고 내가 기회 주잖아. 응?"
"...큽...."


서윤이 눈을 꾹 감았다.
서현의 뒤에 펼쳐져 있는 것들은 도저히 맨정신으로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그녀의 시선으로는널브러져있는 여자들도 다 죽은 것처럼 보였다.
반으로 갈라진 시체와 함께 있었으니까.

그러니 볼 수 있을 리가 없다.
여기서 대답을 잘못하면 저리도 끔찍하게 죽을거란 생각이 온통 머릿속을 지배했다.

"마..."

결국 울먹이며 그녀가 택한 대답은 서현이 준 '그 대답.'
하지만 입술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마...마..."
"마 뭐?"

그녀의 얼굴선을 따라 흘러내리는 눈물.
그가 지옥에서 저주해도 할 말이 없다.

"맞아...요....크흑..."

오열하며 끝을 맺었다.
썸남을 스토커로 몰아버리고, 본인의 목숨을 구제받는 길을 택했다.


"그렇지? 그놈이 억지로 만나자고 했던 거지? 강제로. 넌 어쩔  없이  번 만나줬던 거고."

끄덕.


서윤은 대답할 겨를도 없어 고개만 끄덕였다.

"그렇다는데.  말이랑은 너무 다른걸?"
"...?"

뒤를 돌아보며 말하는 서현.
서윤은 설마 하는 생각에 온 몸이 싸하게 경직됐다.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져 있던 자루 하나.
서현이 자루 입구를 확 들쳐내자, 피투성이의 남자가 원망스런 눈으로 서윤을 노려봤다.

"...!!"

썸남이다.
그렇게 자상하게 응시하던 눈이, 증오를 품은 눈빛으로 돌아왔다.


"야."

서현이 그의 볼을 밟았다.

"끅....꾸윽...."
"왜 거짓말 했어? 똑바로 사실을 고해야지."

남자의 입에는 테이프가 붙어 있었다.
어떤 말도  수 없고 그저 서현의 구타를 받아내야만 한다.

서윤의 앞에서 그를 잘근잘근 밟아주던 서현이 몇몇 시녀에게 손짓하자, 그녀들이 주전자 몇 개를 가져왔다.

"뭐, 나는 대충 예상하고 있었어요. 설마 서윤씨정도 되는 사람이 사리분별도 없이 썸을 탄다거나 연애를 하려 한다거나 주인님에게서 벗어나려 한다거나 하는 멍청한 짓을  리가 없으니까요."

서현이 남자를 일으켜 세우고 주전자 하나를 받았다.
그리고는 한쪽 손으로 남자의 한쪽 눈을 벌려 고정했다.


"다 이 버러지새끼가 나쁜 거죠. 그러니까 벌이예요. 서윤씨 잘 보고 있으세요. 눈 돌리지 말고. 그 동안 스토커짓 당하느라 스트레스 많이 받았을 텐데, 이 참에  풀어버려요."
"무...뭘...하..려고...."

눈물을 왈칵 쏟아내며 거의 애원에 가까운 어조로 물어오는 서윤.
그녀는 미안해 견딜 수가 없었다.

"일단 괘씸한 눈부터 조져놔야겠죠? 그래야 다시는 주인님의 여자를 탐하지 않지."
"으부으읍!!! 으븝!!!"


남자가 발버둥을 시작했다.

"어? 가만히 있으세요. 튀잖아요."
서현이 벌려진 남자의 눈에 대고 주전자를 기울였다.

"으으으읍!!!!"

감으로 안다.
저 안에 무엇이 들어 있을지.

치이이이익!!



"쁘으응으읍!!!!"


100도로 끓인 물이 그의 눈에 부어졌다.
순식간에 눈을 익히고 그 너머로 넘쳐 흐른다.

 줄기 하나하나가 고통이 되어 화상으로 새겨지고, 남자에게 가장 중요한 감각 중 하나인 시각이 손실됐다.

"아...아아...."

그 끔찍한 모습을 외면하지도 못한 채 그저 발을 동동구르며 지켜보는 서윤은 결국 자리에 주저앉았다.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로 그를 애도하며 동시에 자신과 궁, 그리고 임서현을 저주했다.





"왜 이렇게 엄살이야? 아직 하나 남았잖아. 안 끝났어."

피눈물을 흘리며 발버둥치는 남자의 모습에도 서현은 아무 감흥없이 반대편 눈을 벌렸다.
발악이 더욱 심해졌지만 이번에도 거리낌없이 주전자를 기울인다.


"흑...으흑..."


남자의  막힌 비명소리와 살이 익는 소리, 그리고 서윤의 울음소리가 창고에 울렸다.



"흠. 이쯤되면 다신 눈  뜨겠지?"

서현은 잠시 고민하다 에잇! 하며 입가에 붙은 테이프를 뜯어냈다.
남자가 뭐라 외치려는 찰나, 그녀가 먼저 주전자 주둥이를 입에 넣어 버렸다.

"으으읍!!!"

물론 쇠로 되어있기에 그것만으로 극심한 통증이 느껴질 테지만 언제 그녀가 그런 걸 신경 썼던가.
일말의 망설임없이 주전자를 기울였다.

100도에 조금 못 미칠 뜨거운 물이 그의 목 속으로 왕창 부어지며 고통스런 평생을 선고했다.



"갹...극...그갹...."

 눈에 뜨거운 물이 부어지고, 입을 통해 내장까지 데워진 남자는 움직이지도 못한채 쓰러져 꺽꺽댔다.
주요장기가 모조리 데워졌을 테니, 이대로 두면 필시 사망.

서현이 텅 비어버린 주전자를 바닥에 내려놨다.

"나머지 알아서 처리해요."
"네."

곧 시녀들이 주전자를 들고 남자에게 붙어  이곳저곳에 뜨거운물을 부어댔고,결국 그는 머지않아 사망했다.

고통스럽고 끔찍한 최후.
서윤은  충격적인 일에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끅...끄흑...."
"왜 울어요? 너무 상쾌해서 그런가. 하긴 그럴 수도 있지."

서현이 그녀에게 다가가 쭈그려 앉았다.
그리고는 그녀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얼굴을 들이밀었다.


"특별히 경고로 끝내는 거야. 알아 들었어?"
"네...네...."


+++






여자들을 대충 치료하여 돌려보낸 후, 서현은 경찰쪽 시녀인 은소령과 그녀의 상관이자 신참시녀인 신도희를 창고로 불렀다.
사실 시체 치우는 거야 어렵지 않은 일이었지만, 마침 이번에 경찰서장이 시녀로 들어왔기에 시험해보려는 의도였다.



"무섭게 왜 창고로 부르고 지랄이셔요. 가뜩이나 무서운 년인데~. 혹시  난도질하려는 거 아니...헙! 어머 씨발...."

창고의 문이 열리고 은소령과 그 대원들이 먼저 들어왔다.
언제나처럼 걸걸한 말투로 중얼거리며 안으로 들어온 소령은 창고내의 참상에 깜짝 놀라며 욕을 내뱉었다.


"왔어요?"

서현이 그녀를 반겨주고, 마침  타이밍에 은소령에 이어 신도희도 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인...?!"


그녀도 역시 내부의 참상을 보고 크게 놀랐다.
아니, 놀랐다기보다 얼었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하기야. 은소령도 경악하며 뒷걸음질치는 마당에 현장경험이 별로 없는 그녀의 반응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씨발 이건 또 뭐야."
"부,부장님...무서워요오...."
"우리대신 싸워줘요!!"


대원들이 은소령 뒤로 숨고, 신도희도 은근슬쩍 그녀 뒤로 몸을 옮겼다.

"별 아니예요."


서현이 그녀들에게 발걸음을 옮겼다.
은소령이 슬쩍 물러섰다.


"일이 좀 있어서 깔끔하게 정리 해줬으면 하거든요. 특무부 부장님이랑 경찰서장님까지 계신데  정도는 할 수 있겠죠?"
"...우리가 니들같은줄 아냐...그런  우리가 어떻게 해....요."
"뒤처리는 시녀들 시키면 되고, 탈 안 나게 해달라는 거예요. 실종처리라던가 그런 거."
"...."
"할 수 있겠죠? 서장님."

도희를  찝어서 얘기하자, 그녀가 흠칫 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너무 쫄았다고 생각했는지, 흠흠 하며 헛기침을 두어번 했다.

"그래요...뭐...어차피 그분 시녀가 됐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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