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대 던전은 나만의 기회 (376)화 (375/517)



〈 376화 〉33.개문(開門)

33.개문(開門)





"진군...이요?"
"예."

즉위식까지 치러 라이제르 왕국의 어엿한 왕이 된 루드밀라.
그녀는  앞에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여인을 바라보며 당혹감에 잠겼다.

유은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하렘궁 세력은 본래 있던 세계로 돌아갔지만, 여전히 이곳에 남아있는 한 여인이 있다.

커맨더 한사랑.

스탯에 비례하여 각종 병사와 병기를 소환할 수 있는 '패밀리직군'을 가진 여인으로, 대통령의 제안을 받아 군대를 키우기 위해 이세계에 남았다.

특이하게도 그녀는 몬스터가 아닌 적군을 죽이더라도 경험치를 얻을  있었는데, 이를 이용하여 폭발적인 렙업을 할 생각인 것이다.

"서쪽에 있는 이슈타르 왕국과는 오랜 앙숙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렇...긴 한데...."


날카로운 눈매.
왕실에서 태어나 기사로 지내면서 많은 눈빛들을 봐 왔지만, 지금 앞에 있는 여인의 눈빛은 견디기 힘들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길래 저런 눈빛을  수 있는 걸까.

"귀국이 보유하고 있는 이슈타르에 대한 정보와 가능한 최대한의 물자지원을 요청합니다. 직접 보급부대를 운용하실필요는 없고 제가 있는 제국령 라르나르에 식량 등의 물자를 지원해 주시면 제 휘하부대를 이용해 보급을 진행할 겁니다."

그녀는 진정으로 전쟁을 벌일 생각이다.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니 잠깐만요...갑자기 이러시면 곤란해요. 아무리 오랜 앙숙이라지만 명분도 없이 전쟁을 할 순 없다고요."
"걱정 마십시오. 명분이란 약자한테나 필요한 겁니다. 우린 약자가 아닙니다."
"...."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대사다.

그 동안 많이 만난  아니었지만, 거의 한  가까이 이런저런 일로 교류하며 지냈다.
그러면서 느낀 건 유나를 제외한 유은 일당 중 그나마 제일 정상적인 사람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대사는 대체 뭔가.
명분이란 약자한테나 필요한 거라니...그럼 강자는 막무가내로 전쟁을 벌여도 좋다는 의미인가?

기분이 싸하게 식었다.

"사랑씨의군대는 천 명 남짓 아니었나요?"
"그렇습니다만 마법사가 조금 첨가돼 있을 뿐인 중세 군대와는 그 의미가 다릅니다."
"...."

루드밀라는 말을 잇지 못했다.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한 것도 있었지만, 최근 지구에 대해 공부하면서 알게 지식에 의하면 한사랑이 말하는 게 절대 거짓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비록 머릿수는 천 명 남짓이지만, 각종 보병지원차량과 분당 수백발을 발사하는 개인화기로 무장한 군대는 이 세계에재앙이나 마찬가지.

"최근 여러 공장을 건설하고 있으며 돌격소총과 수류탄 같은 개인화기와 수송차량, 보병지원차량 그리고 1티어 전차 등은 이미 생산체계를 구성했습니다. 병력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훈련소를 지었으니 자원만 투자한다면 얼마든지 모집할수 있습니다. 오직 시간만이 필요할 뿐이죠. 그러니ㅡ,"
"아니아니...일단 알겠어요. 알겠는데...."
한사랑의 말을 끊고 들어온 루드밀라가 골치아프다는 듯이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왜 전쟁을 하려는 거예요? 너무 뜬금 없잖아요...."
"뜬금없다뇨?"

이번엔 한사랑이 고개를 갸웃했다.

"애초에 이러려고 이곳에 남은 겁니다만."
"...."
"경험치를 얻어 군대를 키우고 그 다음은......아무튼 이것을 위해 여기에 남았습니다. 그리고 그 준비도 어느 정도 마쳤죠. 남은 건 실행 뿐입니다. 국경 근방에 이슈타르의 대도시가 있는 걸로 아는데, 그곳을 거점으로 삼게 되면 더 이상 이곳에 신세지고 있을 필요도 없습니다. 귀국에게도 좋은 것이죠."
"하아...."
루드밀라는 더 이상의 대화가 의미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
직접적인 소속은 아니라지만 유은의 여자다.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다.

"그래요. 뭐 알겠어요. 근데 물자요청이라면...구체적으로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거죠? 창이나 검 같은 건 아닐 테고...그리고 미리 말씀드리는데, 아무리 우리가 황제(유은)의 밑에 들어갔다지만, 무상제공은 안 돼요."
"무상제공은 당연히 바라지 않습니다. 철이나 구리 같은 원자재, 그리고 식량을 생산할  있는 쌀과 밀가루 등 자세한 리스트는 곧 담당자를 통해 드리겠습니다."
"무상제공이 아니라면 무엇을 주실 수 있죠?"
"하렘궁을 제외한 내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귀국을 지켜드리죠."
"...."
"당장 금전적인 이득은 없겠지만, 장기적으론 이것이 훨씬 귀국에게 이득일 겁니다."

말이야 맞는 말이다.
지금이야 천 명 남짓이지만 향후 계속해서 늘어날 가능성이 충분하고, 전투력역시 이 세계에 존재하는 군대와는 차원이 다르다.

하지만 이 찜찜함은 대체 무엇일까.
그저 한사랑의 눈을 보고 있는 것 만으로 오한이 들었다.


+++




루드밀라의 허락(?)과 지원에 대한 확답을 받아낸 한사랑은 제국령 라르나르로 출발했다.
수도의 바로 밑에 있는 곳이었지만 본래라면 말이나 마차를 타고도 며칠.

하지만 군수공장 건설을 통해 군용차량을 생산할 수 있는 한사랑에겐 시간이면 충분했다.


그리고 이 속도도 공군기지와 관련 공장 건설이 가능해지면 훨씬 빨라질 것이고.



"지금쯤 연구소 건설이 안료됐을  같은데."
"방금 완료되었다고 합니다."
앞좌석에서 운전하고 있는 여인.
한사랑의 부관이라 할 수 있는 셜리가 요란한 운전센스를 선보이며 답했다.


제국령 라르나르에는 병력과 영지민들을 투입해 비교적 넓고  포장된 도로가 깔려 있었지만, 이곳은 얄짤없다.
수도인데도 불구하고 도로가 엉망이었다.


"그렇군. 도착하면 연구만 찍고 바로 출발한다."
"어디로 먼저 갑니까?"
"서쪽 어디든."
"알겠습니다."

루드밀라에게 이슈타르의 지도와 같은 정보를 달라 요청했지만 사실 필요 없다. 지도는 대충 돌아다니면서 만들어도 되고 나주에 공군기지를 건설하여 정찰해도 된다.


적군이 아무리 신묘한 전술을 편다 한들, 현대병기로 무장된 병력을 이길 순 없다. 심지어 그것이 스탯으로 인해 생긴 병력이라면 더더욱.



얼마 후, 제국령 라이제르내에 있는 군영에 도착하여 연구지정을 마친 한사랑은 출진을 앞두고 열을 갖추고 있는 병력 앞에서 커다란 깃발을 흔들었다.

검은 바탕에다 가운데에 비어있는 빨간 원. 그리고  안에 빨간색의 삼족오가 나부낀다.

"지금 이 순간부터. 우리군은 서쪽으로 진군한다. 목표는 없다. 끝까지 진군한다."



짤막한 연설을 마치고는 곧바로 진군.
보병차량에 탑승한 800여명의 병력과 1티어 전차 10대가 삼족오 깃발과 함께 출진했다.

선전포고도 없는 출병.
정치와 외교를 할 생각이 전혀 없기에 가능했다.





+++



이슈타르와 라이제르왕국의 국경지대.

한사랑이 진군한다고 했을 때, 당연히 루드밀라는 파발을 보내 이 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빨라봤자 며칠.
아무리 도로사정이 안 좋아도 보병차량과 탱크를 타고 진군하는 한사랑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뭐,뭐야 저거?"

야심한시각에 강렬한 불빛.
이슈타르진영을 바라보며 근무를 서고 있던 초병들이 뒤에서 쏘아지는 빛에 눈을 찌푸렸다.

마치  마법과 같은 찬란한 위광에 눈이 멀 것만 같았다.

말도 아니고 마차도 아닌 것이 저토록 빠르게 달려오다니. 위압감이 장난 아니다.

특히 가장 앞에서 포신을 겨눈  달려오는 전차는 그게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이세계인들조차 벌벌 떨게 만들었다.



본래 국경을 통과하는 이들이라면 무조건 세우고 검사해야겠지만 차마 그럴 엄두가 나오지 않는다.
결국 한사랑부대는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통과.
그대로 이슈타르 진영으로 돌진했다.



그리고...



투쾅!


10대의 전차 포신에서 하늘을 찢을 듯한 폭음이 울리고, 수백미터 전방에서 엄청난 폭발과 함께 흙먼지가 날렸다.
나무로 제작된 초소 따위는 형체도 없이 사라지고, 그 안에 있던 사람의 형상도 사방으로 흩어졌다.

"저,적습!! 적습이다아!! 라이제르가 침공했ㅡ,"

타앙!

이번엔 날카롭게 울리는 총소리.
막 적습을 외치던병사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투두두두두

그리고 시작된 본격적인 공격.
20여대의 지원차량에서 기관총 사격이 시작된 것이다.

어두컴컴했던 주변이 번쩍번쩍 빛나고, 무수한 총탄세례가 허공을 가르며 쏟아졌다.


굉음을 듣고 초소로달려온 병사들은 그 무리에 맞아 곧바로 사망.
이어 전차의 지원포격까지 더해지니 국경에 자리하고 있던 군영은 순식간에 전멸하고 말았다.



자욱했던 연기가 가라앉고 어느정도 상황이 종료됐다고 판단되는 시점에, 보병  명이 파괴된 군영으로 가 삼족오 깃발을 꽂았다.

"...악마...인가...?"
"마족..마족일 거야!"

깃발만 꽂고 바로 떠나버리는 한사랑부대.
뒷정리는 멍한 얼굴로 얼타고 있는 라이제르군의 몫이었다.



.
.



"사령관님, 질문 하나 해도 됩니까?"
"질문? 뭔데?"
"왜 태극기를 사용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태극기...."

셜리의 물음에 한사랑이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학살자가  우리에게 태극기는 사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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