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9화 〉33.개문(開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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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드밀라가 지구로건너와 이세계의 존재가 증명된 후, 세계는 관련된 여러 기사들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루드밀라의 행적도 있었는데, 지구에서도 충분히 먹히는 빛나는 미모와 왕이라는 신분이 자아내는 기품 같은 것들이 화제가 되어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저것이 바로 '자동차'라는 것입니다."
"와아. 공부하면서 자주 듣긴 했지만 직접 보는 건 처음이예요."
강남에 체류하는 동안 그녀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탐방으로 소모했다.
그녀의 고향과 지구의 문물이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를 직접적으로 겪어보고, 당장 왕국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또 어떤식으로 들여와 어떻게 운영을 해야할지 계획을 짜기 위한 사전준비였다.
그녀가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건 단연 운송수단.
모든 문명의 핵심이 물류라해도 과언이 아닌 만큼 일국의 왕으로서 당연한 반응이었다.
"순수 기술만으로 저렇게 빠를 수가 있다니...."
"지금 보시는 건 F1이라는 경주용 자동차입니다. 속도를 중점으로 두고 제작한 만큼상당히 빠르죠. 보통 일반인이 사용하는 차량은 저것보다 훨씬 느리고 실제로 내는 속도는 5분의 1정도입니다."
"그래도 마차하고는 비교가 안 되겠죠?"
"물론입니다."
그녀의 여러 궁금증을 궁에서 파견나온 전담시녀와 한국 정부에서 파견한 문화관광부 인사가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자동차의 용도에 따른 종류와, 자동차를 운용하기 위한 자격요건, 그리고국가적으로 자동차를 사회에 접목시키기 위해 필요한 인프라와 관련 지식들 등등을 거의 수업형식으로 들었다.
루드밀라는 그 모든 것을 꼼꼼히 듣고 메모까지 하면서 새겨들었다.
라이제르 왕국을 가장 크게 변화시킬 기술 중 하나이기때문이다.
지구의 문물을 접하고 난 후에는 이유나를 비롯한 [사업부]인사들과의 협의과정을 거쳤다.
주로 이세계에 도입하는 기술과 문물의 우선순위를 배정하고, 어떤 경로를 통해 진출시킬지에 대해 결정하는 협의였다.
"들으셨겠지만, 자동차를 운용하기 위한 사회적 조건은 꽤 까다로워요.잘 포장된 도로, 주유소, 정비소등등. 당장 여기서 언급할 수 있는 것만 해도 상당하죠. 당연히 현재의 라이제르 왕국에서 사용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요."
유나는 며칠 전 구입한무테 안경을 스윽 올렸다.
[사업부장]으로 임명되고나서 마련한 패션안경이었다.
항상 착용하고 있는 건 아니었고, 정부인사와 회담을 가진다거나 할 때 주로 사용했다.
그녀 말로는 자리에 걸맞는 지식을 가진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서라던데, 실효성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우선 왕도를 비롯한 주요 도시들을 잇는 큰 도로를 만들고 도시간 물류이동과 같은 제한적인 구역에서만 운용을 해보시고 추후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와 긴밀한 이야기를 통해 해결하는 게 좋겠어요. 솔직히 저는 현대인이라 자동차가 너무 당연하거든요."
"혹시 제국(하렘궁)에서도 자동차를 만드나요?"
"하렘그룹 산하 하렘 자동차에서 만들고 있긴 한데, 세계적인 기업은 아니예요. 궁 내에서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있을 뿐이고, 그마저도 어지간하면 아흑이분신으로 대체하기 때문에 그리 뛰어난 기업은 아니예요. 하지만 라이제르 왕국처럼 처음 자동차를 도입하는 곳이라면 그런 점들이 딱히 상관 없겠죠."
그룹 내의 기업을 홍보하기보다는 솔직한 대답.
애초에 하렘그룹 자체가 하렘궁의 시녀들로 인한 어마어마한 양의 던전 부산물들과 강남시티, 도쿄시티와 같은 정복지에서 거둬들이는 세금 및 보호세로 수익을 얻고 있을 뿐, 기업의 기술력 자체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물론 이는 궁의 [제국과학기술부]와 제대로 협력하기 시작한다면 전혀 다른 얘기가 되겠지만,현재까진 궁의 기술은 궁의 기술로 남아있을 뿐, 그룹에까지 이어지진 않은 상태였다.
"그래도 제국인데 시간이 지나면 최고의 기술력을 갖게 되겠죠. 관련 기업이 궁 산하에 있다면 그곳과 제휴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해요."
루드밀라역시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하렘궁이 모든 방면에서 최고가 될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기에 다다른 기업들(잘 알지도 못하지만)은 모두 재껴놓고 하렘그룹 계열사들과의 교류를 원했다.
"본국에 이미 왕가소유의 유통회사를 설립해 두었습니다. 이곳에도 상표를 등록하고 싶은데 도와주시겠어요?"
"물론이죠. 한국 정부에서도 도와줄 거예요. 아, 그리고 한국측 기업선별은 시간이 꽤 걸릴 거예요. 최소 한 달 정도는 체류하셔야 할 것 같은데, 괜찮으시겠어요?"
"국정운영은 믿을만한 사람에게 맡기고 왔어요. 그리고 유사시엔 제국령 라르나르에서 도와줄 테니 큰 문제는 없을 거예요."
한사랑에게서도 보호를 약속받았지만, 그녀는 한창 정복전쟁중일테니 제외.
그래도 반쯤은 제국의 식민지인터라 국가의 안전 자체는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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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성그룹은 너가 가져."
"...?"
유은보다 살짝 뒤에서 걷고 있던 강세희가 갑작스런 말에 의문을 표했다.
"이참에 할아버지랑 다 재껴버리고 니가 회사를 먹는거야. 그리고 한국측 '이세계무역허용그룹'으로 지정돼서 이세계에 진출하는 거지."
이어지는 말에 대충 납득은 했지만 그래도 어처구니 없는 마음은 지울 수가 없었다.
"...이봐, 혜성그룹이 무슨 동네 슈퍼인 줄 알아?"
"어허. 주인님이 하라고 하면 그냥 하면 되지 무슨 말이 그리 많을까."
"씨발 말이 되는 걸 명령해야 한다고 하지 병신아. 지분이라는 게 괜히 있냐? 할아버지랑 내 지분 다 합쳐도 15% 될까말까인데. 퍽이나 가져지겠다."
서현이 들었다면 당장 배빵을 날려버렸을 정도로 건방진 말투.
하지만 그녀는 나름 사리분별을 할 줄 아는 여인이다.
유은에겐 매우 싸가지 없게 나가지만, 서현이 있을 때는 최대한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말하자면 영악한 싸가지라고나 할까.
강제이긴 했지만 어쨌든 시녀가 된 지도 시간이 꽤 지났고, 운현이 죽은 뒤로도 시간이 흐른 만큼, 유은에 대한 그녀의 충성도는 100을 찍었다. 애정도 역시 증오수준에서 50을 넘기고 있는 상태.
덕분에 유은도 그녀의 욕 정도는 애교로 봐주는 상황이다.
물론 서현에게 걸리면 얄짤 없겠지만. '그' 은소령도 강남경찰서에 쳐들어가다시피 해서 강제로 잡아오지 않았던가. 그만큼 유은은 서현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오. 그럼 말이 되는 명령이면 따른다는 거네? 우리세희짱 착해졌잖아?"
"...말을 말아야지."
"뭐, 지분이라는 건 결국 양도받으면 되는 거잖아? 그냥 가서 말해. 니가 갖고 있는 지분 다 내놓으라고. 그럼 친절하게 건내줄걸?"
"...."
어이가 없었지만 그게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게 참으로 무서웠다.
헤성그룹 회장의 손녀 강세희가 유은의 첩으로 들어왔다는 건 이미 유명한 이야기. 평범한 사람들은 전혀 모르고 있지만, 정재계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익히 알고 있을 사항이다.
하물며 혜성그룹과 관련된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다.
그런 상황에서 세희가 그들에게 가서 지분을 달라고 하면 과연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거대국가였던 중국조차 하루아침에 박살내버린 게 유은인데, 일개 기업인이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오히려 유은이 가지고 있는 막대한 기대이권 등을 생각하며 줄을 대려 할지도 모른다.
"애초에 그게 무슨 의미인데? 어차피 회사라면 얼마든지 가지고 있잖아."
"쯧쯧쯧."
세희의 말에 유은이 한심하다는 얼굴로 손가락을 좌우로 흔들었다.
제일 멍청할 게 분명한 유은에게 무시당하다니. 그녀의 관자놀이에 분노의 혈관마크가 튀어나왔지만 유은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바보야. 가슴은 두 개 있기 때문에 예쁘고 먹음직스러운 거야."
"...뭐라고?"
알아듣지 못한 그녀의 젖가슴을 양손으로 주물럭거리는 유은.
세련된 정장에 가려진 가슴이 말캉하게 일그러졌다.
"말하자면 오른쪽 가슴이 하렘그룹이고 왼쪽 가슴이 혜성그룹인 셈이지."
"뭐라는 거야 미...아니 말씀하시는 바를 전혀 이해 못하겠는데요. 주인님."
막 욕설을 하려다가 저쪽 복도에서 서현이 걸어오는 걸 보고 황급히 말투를 고치는 그녀.
거기에 표정까지 변화시키고는 유은이 마음껏 가슴을 만지도록 슬쩍 내밀기까지 했다.
"주인님."
"어 왔어?"
그동안 비서인 주제에 정작 유은 곁에 없었던 그녀였지만 중국 전체를 보지니아국으로 만들어버리는 전무후무한 계획이 거의 끝나간다.
보지니아중에는 중국 지도자 출신도 있으니 그녀들에게 사태해결을 맡겨두면 알아서 잘 할 터.
이젠 '비서'로서의 일에 집중해도 큰 무리가 없다.
"야, 얘가 내 말을 못 믿더라."
유은이 여전히 세희의 가슴을 주무르며 장난스런 말을 내뱉었다.
"그,그게 무슨...말씀이셔요 주인님...."
세희는 흔들리는 눈동자로 부정.
하필이면 최악의 미친년 앞에서 그딴 소릴 하다니. 골리는 게 분명하다.
"흠...그럼 교육을...."
못마땅한 얼굴로 세희를 쳐다보며 '교육'을 언급하는 서현.
그러자 세희의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서현이 주관하는 교육의 악명은 알게모르게 시녀들 사이에 퍼져있고, 막연한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 있다.
덕분에 그녀도 같잖은 순종놀이를 하고 있지 않은가.
"됐어. 교육은 무슨. 그럼 내 좆물받이는 누가해? 좀 심각하다 싶은 애들만 시키면 되지. 그지? 세희짱."
"그,그럼요...저같은 충신을 교육이라뇨...."
"흐흐."
유은이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세희는 내 말 잘 들어."
"...."
뭔가 불길한 느낌에 세희가 입을 다물었다.
"음. 그러고보니 강세희씨 어머님이 상당한 미인이라고 들었는데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