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2화 〉33.개문(開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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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은 서현을 비롯한 [황궁비서실]의 힘을 이용해 혜성그룹의 지분을 가져오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협박을 통한 매수였지만 간간히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바쳐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한국에서도 이와 같은 움직임을 당연히 알고 있었고, 아무리 하렘궁이라 해도 나라의 근간산업을 이끌어가는 혜성그룹을 쉽게 넘겨줄 순 없었기에 여러 조항들을 근거로 방해를 시작했고, 이는 꽤 성과가 있었다.
"의외네. 대통령 아저씨는 그냥 넘겨줄 줄 알았는데."
"혜성그룹에는 조선, 자동차 등의 주요산업이 포진해 있고, 그건 한국의 국방쪽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국방?"
서현의 대답에 유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혜성그룹이 대한민국 5대 그룹 중 하나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국방쪽으로도 연이 닿아 있다는 건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형 항공모함 'KCVZ' 시리즈와 한국형 아스널쉽 'KASX' 시리즈를 건조한 회사예요."
"와. 그건 몰랐네. 항공모함을 건조할 수 있을 정도면 엄청난 회사잖아? 왜 그걸 모르고 있었지?"
"...."
그야 무식하시니까요.
라는 대답을 목 뒤로 삼켜버린 서현이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리고 극비리에 전함을 건조할 계획이래요."
"엥?"
아무리무식해도 현대시대에 전함이 의미 없다는 건 유은도 알고 있다.
무식한 크기의 거포를 달아둔다 해도 미사일 이상의 효용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전함은 그야말로 사장된 병기.
"그거 아무 의미 없잖아?"
"그게, 일반적인 함포라면 그렇겠지만 이번에 다는 함포는 무려 '레일건'이거든요."
"레일건이면 그 동전 튕기는 거 아니냐?"
"아닙니다..."
고개를 좌우로 저어대던 그녀가 설명을 시작했다.
"뭐, 대형선박을 건조하는 게 숨길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여러 루트를 통해 정보를 왜곡하고 있고, 외부에는 '한국형 항공모함 2번함을 건조중이다' 라는 식으로 꾸미는 모양이에요. 언제까지 속아넘어갈 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레일건 12문에 미사일 수직발사관 256셀을 장착한 현대전함으로, 만재배수량20만 톤 규모의ㅡ,"
"아니 잠깐만."
"네?"
"내가 아무리 바보라도 우리나라가 그런 걸 만들 정도의 국력이 없다는 건 알고 있는데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20만 톤?"
"그야 본궁과 국방기술제휴를 하고 있으니까요. 그 정도는 할 수 있죠."
"그런가?"
"차원을 넘나드는 우주전함도 있는데요."
"아 그렇지."
납득해버린 유은.
"근데 그런거면 그냥 혜성그룹 깔끔하게 우리한테 넘기고 더 많은 기술제휴를 받는 게 낫지 않나? 차라리 국영기업 하나 세우라고 하던지."
"아니면 다른 조선사에 의뢰하라고 하던가 하면 되겠죠."
"맞아. 조선회사는 많잖아? 혜성그룹은 우리한테 양보좀 하라고 해. 그리고 엄밀히 따지면 세희가 가져가는 거지 내가 가져가는 게 아니잖아?"
"그게 그거긴 하지만 뭐 그렇죠."
"세금도 충실히 낼 거라고. 그러니까 그룹 하나 정도는 깔끔히 포기하라고 해."
말도 안 되는 소릴 너무나 쉽게 하는 유은.
그 여파는 하루가 채 되지 않아 한국에 전달됐다.
조금만 견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혜성그룹이 하렘그룹으로(정확히는 혜성그룹 회장의 손녀이자 유은의 시녀인강세희에게) 넘어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기에 그룹의 주가는 시장이 열리자마자 폭등하기 시작했다. 특히 하렘그룹에 없는 분야의 계열사 주식이 더 심했다.
그냥 단순히 생각해서, 임서현의 만행으로 인해 탄생한 보지니아국에서 혜성그룹의 제품을 사용하기 시작하면 매출과 순이익은 수만% 상승하게 된다.
게다가 보지니아국은 단순히 인구만 많은 게 아니고 유은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을 갖고 있는 이들로 채워져 있기 때문에 유은의 말 한 마디에 얼마든지 본인의 기호기업을 바꿀 수 있다.
'오늘부터 혜성그룹 제품 쓰자.'라는 말 한 마디면 10억에 달하는 시장이 통째로 혜성그룹에 넘어간다는 의미다.
그리고 유은의 시녀인 강세희가 점차 혜성그룹의 경영권을 가져가고 있는 만큼 그렇게 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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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네?"
기품있는 몸짓.
날카로운 눈매.
실제 나이는 이미 50대를 넘겼지만, 꾸준한 관리와 미용아이템, 스탯 등을 통해 그녀의 외모는 30대 중반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거기에 세미정장 너머로 보이는몸매또한 굉장히 훌륭해서 누군가 그녀의 나이를 알게 된다면 충격으로 굳어질 정도.
강세희의 어머니이자 혜성모직, 혜성뷰티, 혜성물산 등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부회장급 인사.
친모였지만 강세희를 바라보는 눈은 전혀 친딸을 보는 그것이 아니었다.
"잘 지내고 있나봐? 이렇게 회사를 제것마냥 가져가려는 걸 보면."
그녀는 강세희를 노려보며 유리잔을 들었다.
개인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레스토랑.
이 근방에서 꽤나 유명한 곳인지라 하루매출이 꽤 되는 곳이었지만, 그녀는 딸을 만나기 위해 영업을 중지하고 강세희를 초대했다.
현재 하렘궁을 등에 업고 매우 공격적인 매입을 하고 있는 강세희는 그야말로 물 만난 고기. 협박을 한 건지 아니면 회유를 한 건지 사방에서 매물이 쏟아지고 그 대부분을 강세희가 쓸어담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는 그녀, 신수아의 기업에까지 손이 뻗어져왔다.
"처음엔 그 늙은이의결정에 나름동정도 했었는데, 역시 그럴 필요 없었네."
"동정? 어머니가 언제부터 절 그렇게 신경 쓰셨죠?"
"그러니까 지금은 안 한다잖니. 말 못알아들어?"
"...."
"늙은이가 널 그것의 첩으로 보낸다고 했을 땐 정말 놀랐지. 옛날부터 그렇게 싸고돌던 양반이 갑자기 널 팔아버린다니까.드디어 정신이 들었나 싶었어."
딸을 본다기보단 라이벌, 경쟁자를 보는 듯한 얄미운 눈.
비릿하게 웃는 것이 신경을 건드리기에 딱 좋았다.
"뭐, 지금 하는 거 보면 결과적으로 너한테도 좋은 일이 됐으니 여전히 싸고돈다고 할 수 있으려나."
"좋은 일?"
세희가 어이없는 표정을 짓자, 여인이 싸늘하게 웃었다.
"왜? 뭐가 그렇게 황당하니?"
"하루아침에 남한테 팔려가서 노예노릇하는 게 좋은 일이라고요?"
"그래서 얻는 걸 생각해야지. 천박하지만 힘과 권력을 가진 자. 지금만 해도 그에게 대적할 수 있는 곳이 있긴 한가 의문이야. 그런 곳에 팔려갔으면 오히려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냐?"
"하.."
그래도 조금의 망설임은 갖고 있었는데.
강세희는 마음속 밑바닥에 아주 조금 갖고 있던 모친에 대한 정마저 뚝 떨어졌음을 느끼고 조소했다.
할아버지는 그래도 유은이 뭔가 묘한 짓을 해서 팔아넘겼다 치자.
하지만 나머지 가족들은? 한 명이라도 '그래선 안 된다'라고 반대해준 사람이 있었던가?
심지어 눈 앞의 친모라는 인간은 오히려 그걸 고소하게 여기며 웃고있다.
"그럼 출세한 우리 세희에게 제안 하나 할까?"
세희의 기분은 신경도 안 쓰는지, 수아는 가방에서꺼낸 서류더미를 내밀었다.
"내 지분은 알고 있겠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서 가져와봤어."
"...?"
"어차피 네 뒤에 그 흉악한 것들이 있는 이상 내껄 지켜내는 건 힘들 것 같고...그렇다면 최소한 좋은 값이라도 받아야 하지 않겠니?"
"순순히 팔겠다고요?"
"뭐, 협박에 의한 매도라고나 할까."
세희는 인상을 찌푸린 채 서류를뒤적거렸다.
과연, 수아가 갖고 있는 혜성그룹 관련 지분에 대한 정보가 빼곡히 적혀 있다.
"어차피 네 입장에서도 굳이 부딪힐 필욘 없잖니? 좋게 좋게 가자고. 이 엄마도 슬슬 쉬어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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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희가 자기 엄마인 수아와 만나고 있을 때, 유은이 마침 그 레스토랑의 입구에 도착했다.
"이곳이예요."
"오호."
평소라면 엄청난 의전행렬이 따라왔을 테지만, 유은이 떼어놓고 왔다.
그저 서현과 함께 둘이서 방문.
"이 건물 좋은데? 다 세희네 엄마껀가?"
"네. 곧 주인님 것이 될 거예요."
17층 중 12층부터 17층, 그리고 옥상까지를 레스토랑으로 사용중인데, 비록 영업을 하지 않고 있었지만불이 켜져 있었다.
"들어가시죠."
서현은 마치 자기건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문을 따버리고 유은을 안내했다.
중간중간 가드로 보이는 사람들이 나와 막아섰지만 서현과 유은을 방해할 순 없었다.
결국 상층부에 연락도 하기 전에 다운.
"12층부터 레스토랑이라는데 그 중 어디서 만난다는 거야?"
"17층에서 만난다고 했습니다."
"가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17층에서 내리자마자 입구가 보였다.
"...오늘은 영업을 하지 않ㅡ,"
"괜찮아. 음식 먹으러 온 거 아니니까. 정확히는 사람을 먹으러 왔지."
"네?"
귀여운 종업원이 무슨 말인지 몰라 갸웃하다 곧 TV와 인터넷에서 본 유은과 서현의 얼굴을 떠올리곤 얼어버렸다.
"서,서서서...현...?"
유은보다 서현을 먼저 알아봤다.
"쉿."
서현이 싸늘한 얼굴로 입가에 검지를 가져가자, 종업원이 눈물을 찔끔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뭘 했길래 처음 보는 사람들이 이렇게 무서워하냐."
"...."
다 지가 시켜놓고 이딴 소리라니.
새삼 어이가 없었지만 서현은 임무에 충실했다.
"안에 두 명 있죠?"
"네,네...."
"지금부터 이 건물 폐쇄할 거니까, 주방장, 웨이터, 경비원 등등 전부 나가세요. 죽기 싫으면."
간단한(?) 협박 만으로 종업원은 하얗게 질려서 다른 직원들을 데리고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