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9화 〉37.검후(劍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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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스로 다시 화월루에 도착한 소홍.
그녀의 앞에는 엄청난 장관이 펼쳐지고 있었다.
높이 세워져 있는 화월루 건물과, 그 입구를 수백 명의 무인들이 포위하고 있는 것이었다.
가장 많은 것은 관군으로, 300명 가량이 창과 활을 들고 포진해 있었으며, 그 다음으로 90명을 파견한 모산파가 뒤를 이었다.
모산파는 몇 시진 전 화월루에서 벌어진 소식을 듣고 문파를알릴 기회라 생각하여 10인의 일류무사와 20명의 이류무사를 파견했다.
고작 연쇄살인 정도의 사건에 투입하기에는 지나친 병력이었지만, 그들은 확실하게 문파의 이름을알리고 일류로 도약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처참히 실패.
화월루를구원하라 보낸 30명의 제자들은 뭐 하나 해보지도 못하고 세이코에게 도륙당했고, 그광경은 고스란히 모산파로 전달되었다.
그리하여 분노한 모산파의 장문인이 직접 90명의 제자들을 이끌고 여기로 나온 것이다. 오명을 씻기위해!
그들 외에도 몇 개의 문파가 유은의 악행을 듣고 제자들을 파견했다. 대개 정파무림이었지만, 간혹 사파에 적을 둔 문파에서도 무사를 보내왔는데, 이는 모산파처럼 문파의 세를 알리고 이득을취하기 위함이었다.
‘이래선 들어갈 수가 없잖아??’
소홍은 당황하여 발을 동동 굴렀다.
한시라도 빨리 유은들을 꼬셔서 검후에게로 보내야 하는데 일이 이렇게 되다니.
그야 도시에서 이런 사건이 일어나면 관군이나 문파에서 달려드는 건 당연한 일이긴 하다. 또 그래야만 했고.
하지만 이 순간 그녀에겐 그저 거슬릴 뿐.
어차피 저 중에서 세이코를 당해낼 수 있는 인간은 없었고, 그나마 직접 제자들을 이끌고 나온 모산파의 장문인의 일말의 가능성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역시 중소규모 문파의 수장일 뿐인지라, 배분에 비해 경지가 그리 높은 단계는 아니었다.
소홍이 느끼는 바로는 자신보다 두 단계 정도 위일까.
초일류 말경(超一流 末境)에서 절정 초입(絶頂 初入)정도가 그의 경지였다.
반면 유은의 무리는 소홍으로서는 감도 잡히지 않는 경지, 최소한 초절정의 강자라 보는 편이 옳았기에 여기 있는 모든 무인들이 동시에 달려들어도 엄청난 피해를 입을 것이다.
그마저도 유은들이 도망치지 않는다는 가정 하의 이야기.
“죄인들은 들으라!!”
300인의 관군 앞에 선 중년의 남자.
부리나케 도망친 허대인과는 달리 제법 담대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감히 대명의 백성들을 능욕하고 관을 모독하였으며, 이 나라 조정과 황실을 능멸한 죄는 죽음으로 갚는 것이 지극한 의에 합당하니!! 지금이라도 나와 죄값을 치를지어다!!!”
내공을 실은 것인지, 근방이 울릴 정도로 큰 목소리가 화월루 건물을 강타했다.
부스러기가 부슬부슬 떨어졌다.
덕분에 한창 화월과 기녀들을 즐기고 있던 유은이 짜증스런 얼굴로 난간에 모습을 비췄다.
“아 정말.예의가 없구만. 섹스할 땐 개도 안 건드린다는거 몰라? 좀 짜져있지.”
그림 같은 외모와 조각같은 알몸.
군데군데 섞여있던 여류 무인들의 얼굴이 일순 빨개졌다.
커다란 거물은 덤이다.
끼이익!!
아무튼 유은이 등장하자, 200명의 궁사가 일제히 활을 겨누고, 무인들은 각자의 무기를 준비했다. 대부분 검이었다.
“의미없는 짓을 왜 이렇게 하실까나.”
“네이놈!! 당장 내려오지 못할까!!!”
“모산파 제자들의 원한을 갚아주겠다!!!”
분노한 관군과 무인들.
유은은 귓구멍을 휘적거리다가 뒤를 돌아봤다.
“세이코.”
“네. 주인님.”
입구 근방에서 진입하려던 무인들을 도륙하던 세이코.
그녀는 중간부터 유은에게 불려가 육변기의 소임을 다하고 있었다.
그 증거로 그녀의 나신에서는 유은의 정액이 흘러내리고 있었고, 하반신에는 군데군데 빨갛게 얼룩이 져 있었다.
당장 최근까지 사용되었던 것.
그녀가 대충 주은 검을 쥐고 유은의 곁으로 나왔다.
“이,이놈들…!”
기본적으로 중원의 미개한 인간들이 쉽게 볼 수 없는 미인.
사실 일본의 왕녀였을 때만 해도 절정의 미인은 아니었지만, 꾸준한 스탯주입과 관리 덕분에 소위 말하는 ‘연예인 급’은 진작에 넘어섰다.
그런 그녀가 나신에다 정액 투성이인 심히 꼴리는 몰골로 모습을 드러냈으니, 무인들이 제대로 집중할 수 있을 리가.
심지어는 모산파의 장문인조차 잠시 흐트러졌을 정도.
사파에서 나온 이들은 아예 대놓고 추파를 던졌다.
“아무래도 진짜 압도적인 힘을 보여줘야 조용해지려나봐.”
“처리하겠습니다.”
유은의 충실한 육변기 세이코.
그녀가 난간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이,이년이!! 쏴라! 쏴버려!!!”
“하,하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미녀에게 살인병기를 휘두를 수 있는 남자는 별로 없다.
더구나 이런 변방에서 훈련도 제대로 받지 않은 관군이라면 더더욱.
하지만 계속해서 이어지는 닥달질에 결국 활시위를 당긴 병사들이 세이코를 향해 손을 놨다.
쐐액!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공기를 찢으며 쏘아지는 200발의 화살.
방어구는 커녕 천옷조차 입지 않은 세이코였기에 하나라도 맞는다면 치명상일 거라고 모두가 생각했다.
그러나.
세이코는 그렇게 약하지 않았다.
비록 유은이 데려온 육변기 3인방(세이코, 하루나, 카렌)이 시녀들 중에서는 최약체에 속한다지만, 고작 이런 화살 따위에 당할 정도는 아닐 뿐더러 이 세계관을 기준으로 본다면 충분히 인간병기급의 무력을 지니고 있었다.
씨잉!
그렇기에 단 한 번.
장인이 한땀한땀 만들어낸 검도 아니고, 중원 어디에나 굴러다닐법한 검을 휘둘렀을 뿐인데 날아오던 화살이 모두 튕겨져 날아갔다.
“!!!”
모두가 경악하는 가운데, 세이코는 수백이 뭉쳐있는 무리 속으로 돌진했다.
말도 안 되는 전술.
하지만 동시에 위력적인 전술.
“으,으아악!”
얼떨결에 창을 내민 병사들의 목을 일수(一手)로 따내고, 비산하는 핏물 속에서 사방으로 검압을 날렸다.
번뜩이는 칼날.
폭발하듯 터지는 핏물.
순식간에 백수십의 관군이 조각나 뿌려지고, 이들을 지휘하던 중년의 남자도 허무하게 생을 마감했다.
“이익!! 죽어라 악녀!!!”
그 모습을 본 모산파의 장문인이 제자들과 함께 돌입했다.
그러자 넋을 놓고 바라보던 나머지 문파의 무사들도 세이코를 죽이기 위해 달려들었다.
먼저는 모산파 장문인.
불길처럼 타오르는 검기(劍氣)를 두르고 세이코에게 돌진, 그녀의 검과 격돌했다.
콰앙!!
기의 파동.
모든 것을 날려버릴 것만 같은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졌다.
“큭…!”
장문인과 달리 세이코는 검기를 두르지 않았다.
애초에 그게 뭔지도 모른다.
하지만 타격을 입은 이는 장문인.
세이코와 격돌한 순간 내부가 진탕이 되어 심각한 내상(內傷)을 입었다.
당장 치료하고 다스리지 않으면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치명상.
그러나 그럴 틈은 없었다.
세이코가 기다려주지 않았으니까.
비록 검을 든 팔은 충격으로 튕겼지만, 오히려 그 힘을 이용해 발을 휘둘렀다.
태권도의 뒤돌려차기!
현대에선 단순한 스포츠용 무술이었지만, 인간병기가 다룬다면 그것은 살인무공(殺人武功)이 된다.
그녀의 발꿈치에 가격당한 장문인의 머리가 터져나가며 목 없는 시체가 무릎을 꿇었다.
“!!!”
“자,장문사형!!”
“문주님!!”
경악과 슬픔.
그 감정을 느낄 틈은조금밖에 허락되지 않았고,
직후에 닥친 검격은 모두의 숨통을 끊어 놓았다.
쉴 새 없이 휘둘러지는 검.
그럴 때마다 초라한 인간의 육체가 베이고 핏물만이 남는다.
“뭐,뭐야…이건….”
300이 넘는 무인이 떼몰살 당하기까지 채 일각.
그 압도적인 광경에 소홍은 넋이 나갔다.
천하십대고수(天下十代高手)라면 이런 게 가능할까.
아무리 이류, 일류무사로 이루어진데다 서로 협력도 안 되는 오합지졸이라지만, 그래도 300에 이르는 무인들이다.
이들을 이렇게 학살하다니?
소홍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으응? 이거 소홍소저 아닙니까.”
수백명이 떼몰살 당했다면, 그 자리에 남아있는 건 소홍밖에 없다는 뜻.
자연히 눈에도 잘 띈다.
그녀를 발견한 유은이 반갑게 인사를 건냈다.
“이거, 안 좋은 꼴을 보여드렸군요.”
유은이 좌우로 팔을 벌리자, 어느새 다가온 서현이 옷을 입혀 주었다.
기녀들을 찍먹하는 것도 대충 끝냈고,화월도 실컷 따먹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런 대규모 학살을 벌였으니, 제대로 무림을 즐기기 위해선 도시를 뜨는 것이 상책.
물론 화월은 데려간다.
‘쟤도 데려갈까? 아니, 쟤는 그렇다쳐도 남궁유이는 좀 아까운데.’
소홍은 몰라도 유이는 수집할 가치가 있는 미녀.
유은이 잠시 망설였다.
유이를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소홍만 데려갈 것인가.
둘 다 놓고간다는 선택지는 당연히 없다.
“호오. 이거 재밌는 놈들이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