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8화 〉38. 절세미공자(絶世美公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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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궁은 상당히 넓었다.
여기가 만약 드라마 세트장이었다면 중국 고대 황궁을 재현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그 화려함도 남달랐다.
‘거기다 온통 여자고 말이지.’
고스탯의 여인일 수록 아름다웠던 지구처럼, 여기서도 무공이 높은 여인은 어지간하면 먹힐만한 외모를 하고 있다.
그 수가 족히 수백.
지금 유은의 앞에서 그를 안내하고 있는 시녀들도 제법 한 미모 하고 있었다.
“들어가셔요.”
이화칠궁(梨花七宮)이라 불리는 7층짜리 건물 옆에 아담하게 지어져 있는 전각.
검후가 목욕을 시키라고 했는데 여기로 데려온 걸 보면, 여기가 목욕탕인 모양이다.
검후가 머무는 곳은 이화칠궁 안이라는데 그냥 안에 만들면 될 걸 뭐하러 이렇게 불편하게 해놨는지….
라고 생각했던 유은은 들어가자마자 생각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
“세상에. 누구야?”
“스읍…이쁘다…어디서 데려온 거야?”
유은을 안내하던 여인들과 비슷한 차림의 미녀들이 수두룩하게 있었기 때문이다.
‘설마 시녀들이 머무는 곳인가? 거기에 목욕탕도 있는 거고?’
제법 그럴듯한 생각이었지만, 그렇다면 의문.
왜 여자투성이인 곳에 남자를 씻기러 가느냔 말이다.
이화궁도 거대문파(巨大門派)인 이상 손님이나 객원무사(客員武士)도 있을 텐데 당연히 이들을 위한 시설도 마련되어 있을 거고 목욕시설도 있을거다.
그런데 굳이 시녀들이 잔뜩 있는 곳으로 데려온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설마 날 윤간하려고?’
자극적인 생각에 유은의 물건이 껄떡거렸다.
“궁주께서 데려온 남자야. 너희들도 소문은 들었지?”
“아, 설마 그 절세미공자(絶世美公子)?”
“그래.”
“와아….”
시녀들이 꺄악 거리며 감탄과 탄성을 자아냈다.
유은의 외모는 그녀들이평생을 살며 목격한 남자들 중 단연 으뜸이었다.
“세상에….”
“스읍…이쁘다….”
그녀들은 마치 강시처럼 은근슬쩍 다가와 손을 뻗었다.
찰싹!
다행히(?) 유은을 안내하던 시녀들이 그녀들을 물리치며 일갈.
풀이 죽은 여인들이 입을 오리마냥 내밀었다.
“뭐야. 니들만 호강하겠다 이거야? 이 이기적인 기집애.”
“궁주께서 씻긴 후에 바로 침실로 올리라고 하셨어. 건드리지마.”
“그러니까 결국 니들만 호강한다는 거 아냐! 내가 씻길래!!”
“이익! 저리가!!”
“야 다 비켜!!”
유은을 두고 아수라장이 벌어졌다.
‘오? 이때 사라져버리면 뭔가 재밌는 일이 생길 거 같은데.’
장난기가 발동한 유은이 키득거리며살금살금 움직였다.
일단은 이 건물에서 빠져나가ㅡ,
“도망치지 마십시오!”
“꽥.”
안내해주던 시녀에게 잡혔다.
그녀는 다른 시녀들을 방어하고 물리치면서 유은까지 끌어가는 괴력을 보여주었다.
‘뭐야. 얘도 무공을 배운 건가.’
가까스로 아수라장에서 빠져나온 시녀 두 명과 유은.
시녀들은 탈의실로 오자마자 강제로 유은의 옷을 벗겨냈다.
“으아악! 싫어어!!”
검후를 상대하면서 일취월장한 연기력을 뽐내는 유은.
시녀들은 잠시 측은한 눈빛을 하긴 했으나, 곧 유은을 알몸으로 만들고 욕탕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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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
그녀는 본래 고려 출신의 상인으로, 10여년 전 무역을 위해 바다를 건너다가 해적을만나게 되었다.
당시 한양에혼약자를 두고 있었던지라 정절을 중시한 그녀는 ‘몸이 더럽혀질 바엔 차라리죽겠다.’라는 신념으로 바다에 몸을 던졌다.
그로부터 며칠.
해안에 밀려온 그녀는 이화궁 무리에게 발견되어 거두어지게 된다.
비록 정인이 한양에 있었지만, 그녀는 목숨을 살려준 은혜를 갚기 위해 이화궁에소속된 사파무인이 되었다.
그걸 후회하는 건 아니지만….
“궁주님, 절세미공자인가 뭔가를 납치했다는 게 사실인가요?”
“…그래. 본녀가 취했지.”
“오오오오!!”
이화궁을 이끄는십칠장로 삼군사(十七長老 三軍師)가 모두 모이는 백합회의.
진지한 자세로 임하여 이화궁의 앞날과 사파무림(邪派武林)의 미래를 걱정해야 할 이들이, 한 남자를 두고 음담패설이나 하고 있다.
“후후훗. 저희들에게도 잠시 빌려주실 수 있으시겠죠?”
모두 절정 중경(絶頂 中境) 이상의 공력을 지녔기에 하나같이 아리따운 외모를 하고 있었다. 일부만 빼고.
겉으로는 30대 정도로 보이지만 실제 나이는 50대 이상.
그런 주제에 20대의 미공자를 탐하는 것도 모자라 윤간까지 생각하고 있다.
김수현은 그 추악한 욕망에 구역질이 올라왔지만, 하루이틀 저러는 것도 아니고, 티가 나지 않도록 참아냈다.
“무슨 헛소리냐. 그녀석은 본녀의 것이다. 사사로이 탐하는 것들이겐 중형을 내리겠다.”
“…쳇.”
잔뜩 기대감을 품고있던 장로들이 똥씹은 얼굴이 되었다.
“미남은 인류의 공공재거늘, 어찌 궁주 혼자서만 독차지한단 말입니까!”
적색의 단발머리를 한 여인이 말도 안 된다며 항변했지만, 여세린은 무시로 일관, 수현에게 눈짓했다.
“흠흠…모두 집중해주세요. 최근 무림의 정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자칫하면 사정대전(邪正大戰)이 벌어질지도 몰라요.”
“그렇죠. 그게 다 절세미공자를 납치한 어느 고명하신 분 덕분이지만.”
“뭐야?”
“십칠장로, 제 말을 다 들어주세요.”
“쳇.”
수현은마치 반항기 어린아이를다루는 것처럼 장로들을 다독인 뒤 말을 이었다.
현 무림의 정세, 정파는 절세미공자(유은)를 빌미로 검후 여세린과 덩달아 이화궁까지 토벌할 계획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화궁과 사파무림은 이에 맞서 위군자놈들을 쓸어버려야 한다고 벼르는 상황.
발단이야 검후가 되었지만, 사실 애초부터 사파무림과 정파무림은 적대관계였고, 언제 대전쟁을 벌여도 이상하지 않았다.
다만 그동안은 마교(일월신교)무리와 대고려 때문에 차마 일으키지 못했을 뿐이다. 관의 중재는 덤이고.
하지만 현재 정파무림은 그야말로 폭발.
절세미공자를 납치한 것도 그렇지만, 도시 하나를 쑥대밭으로 만든 일은 정도(正道)를 걷는 이들로서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전 무림에서 검후를 성토하며 공적으로 지정하여 토벌해야 한다 주장했고, 결국 여세린은 정파무림공적이 되어 토벌대상이 되었다.
“흑천맹에서는 기본적으로 정파놈들의 말을 믿을 수 없다며 사정연합 조사대를 꾸려야 한다는 주장이지만…솔직히 본궁과 궁주께서 지난세월동안 벌였던 일들이 있기에 사파무림 내에서도 말이 많은 편입니다.”
많은 정도가 아니라 아예 하나의 중론이 되어 ‘이참에 검후와 이화궁을쳐내자.’라는 말까지 나와 꽤 힘을 얻고 있다.
이런 말이 나오는 이유는 이화궁과 검후의 말도 안 되는 추악한 행위들 때문이다.
겉으로 보기에 이화궁은 미녀들 투성인데다전각도 아름답고 화려했지만, 하는 일을 찬찬히 뜯어보면 같은 사파인들도 분노할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짓들을 하고 다닌다.
그래서 ‘아무리 제살깎아먹기라지만 도저히 저것들이랑은 같이 못 있겠다!!’라는 마음으로 그런 주장들을 하는 것이다.
“헹! 시류를 읽지 못하는 잡것들이구만. 우리가 없으면 뭐 지들끼리 잘 살 수 있을 줄 아나?”
“멍청하기가 마치 정파놈들 같구나.”
장로들이 코웃음을 쳤다.
중론이 되었다곤 해도 흑천맹에서 이화궁을 버리는 건 있을수 없는 일.
이화궁은 정파의 구파일방에 버금가는 전력을 가지고 있는데다 사파최고수를 넘어 무림최고수인 여세린을 보유하고 있다.
아무리 사파무림이 정파무리보다우세하다해도, 이화궁 정도 되는 세력이 뽑혀버리면 이는 역전될 수밖에 없다.
안 그래도 신강의 마교 때문에 전력을 기울일 수 없는 상황인데, 세력까지 열세가 되어버리면 답이 없다.
그렇기에 흑천맹이 이화궁을 쳐낸다는 건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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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는 별 영양가 없이 끝났다.
일단 무림맹에서 날아온 검후를 내놓으라는 식의 서신은 그냥 무시했다.
그리고 추후 흑천맹이어떤행보를 걷는지에 따라 궁의 입장도 정할 생각이었다.
물론 검후를 내보낸다는 건 절대 불가능하고.
가까이에 있는 보타문 만이라도 이 기회에 쓸어버리자는 말도 있어지만, 일단 지금 시점에서 섣불리 그런 행동을 취했다간 무림맹은 물론이고 흑천맹도 자극할 수 있었기에 자중하자는 결론이 났다.
아무튼 현상유지인 셈.
여세린은 김수현을 데리고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뭐죠? 공유는 안 하신다는 뜻으로 알았는데요. 호의는 감사합니다만, 전 남색에 관심없습니다.”
비록 이화궁에 들어오면서 혼약은 파토났겠지만(아마 그쪽에선 그녀가 죽은 줄 알 것이다.) 그래도 정절을 지키기로 한 그녀였기에 유은의 말도 안 되는 외모를 보고도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그랬지. 너는 여색을 했었지.”
“여색도 관심 없습니다.”
“뭐, 됐다. 용건은 그게 아니니.”
세린의 방은 궁주 답게 매우 커다랬다.
어지간한 전각보다도 넓은 면적에, 갖가지 가구나 장식, 그림 등이 놓여 있었다.
공주의 방이라 해도 이보다 더할까.
그 절정에는 침대 위에 힘없이 앉아 있는 유은.
그의 미모는 방의 모습과 퍽 어울렸다.
“훗.”
그저 보기만 해도 미소가 나오는 자태.
찔끔. 하고 세린의 보지에서 애액이 분비되기 시작했다.
“김수현, 잘 보거라. 이제 저녀석이 이화궁의 새 주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