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대 던전은 나만의 기회 (492)화 (491/517)



〈 492화 〉41. 헬게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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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제국의 발표가 있은 후, 몇몇 약소국들은 은하제국의 가맹에 대해 문의를 넣었다.
말로는 가맹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거의 식민지에 준하는 가혹한 조약이 강요되었고, 개중에는 인권을 무시한 것들도 더러 있었다.

애초에 ‘모든 권리는 국민에게서 나온다’라는 걸 가장 중요한가치로 여기는 민주주의와, 그딴  개소리고 모든 권리는 황제에게 있다는 식으로 논리를 펼치는 은하제국과는 당연히 상성이 맞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밑으로 들어가야 된다면 심각한 갈등이 빚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론.

덕분에 국가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그저 시간만을 흘려보냈다.




그러던 어느날, 대한민국 청와대 상공에서 시공간이 일그러지더니 육중한 자태의 비행체를 내보냈다.
혹시 은하제국의 것인가 하여 당국은 긴장감을 드러냈지만, 함선은 아무런 소속도 보고되지 않은 그야말로 미확인 비행물체(UFO)

 정체는 바로 한사랑의 대한제국에서 사용하는 기함이었다. 은하제국의 것에 비한다면 규모 측면에서 조촐해 보이지만, 어엿한 우주문명으로 발돋움 하고 있는만큼 갖출 건 모두 갖춘 상태였고, 유은과 은하제국의 도움 없이도 자력으로 차원이동을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오랜만이네.”
“몇 개월 됐으니까요.”


난리가 난 지상을스크린으로 내려다보며 한 마디.
뭔가 묘한 느낌이 감돌았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이 나라에 충성을 다하는 일개 군인이었는데. 천지가 개벽하여 지금은 수백만의군대를 이끄는 국가를 세운 인물이 되어버렸다.

대부분은 ‘패밀리 직군’의 힘 덕분이지만, 그 직업을 얻을 수 있었던 것 자체가 그녀의 능력.


“사령관님, 바로 만나시겠습니까?”
“그래야지. 그래서 여기로 왔잖아.”

우주기함 아래로 속속 모여드는 군대가 보였다.
지구 기준으로 상당히 강력한 병력이지만, 이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쓸어버릴 수 있다.


하지만 무의미.
그런 행동을 해봤자 얻을 게 없다.


“가자.”





한편 이 일을 보고받은 대통령은 수행원들의 안내에 따라 지하벙커로 가고 있었다.
난데없는 우주전함의 출현에 전국엔 계엄령이 내려졌고, 근방의 공군기지에도 이미 출격명령이 내려진 뒤였다.

하지만 다시 올라온 보고는 그의 발걸음을 돌리게 했다.

“한사랑이라고?”
“예. 지금 지상으로 내려오고 있답니다.”
“…아니 그 여자는 왜 하필 이 상공으로 튀어오냐고 갑자기.”

자기가 부른거나 마찬가지긴 했지만, 그녀는 분명 통화에서 ‘시일은 가서 직접 전하겠다’라고 얘기했다. 그 말인 즉, 지구에 와도 유은을 만나거나 하면서 회포를 풀다가 내키면 연락해서 만날 시일을 정한다거나 하겠다는 뜻이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받아들였다.
그렇기에 채 3일이 지나지 않은 지금 이렇게 불쑥 나타난 우주전함을 보고 설마 한사랑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개월만에 연인이 있는 곳으로 왔는데 이렇게 바로?


“우주선을 타고   보면 은하제국과는 이미 얘기가 된 모양이군. 새로 개발한 전함인가?그래도 나름 우방국인데 갑자기 청와대 상공에 띄우는  너무하지 않나.”
“아닙니다. 은하제국측에서도 이 일에 심히 놀라 우주선이 등장하기 10초 정도 전에 국방부에 알려 주었고, 파견할 지원군을 편성하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우주문명의 침공인 줄 알았다던데요.”
“응? 은하제국이 몰랐다고? 그럼 그녀가 타고 온 우주선은 대체 뭐지?”

그의 머리 위로 가득 떠오르는 물음표.
그가 알기로 한사랑의 직업은 ‘군대 사령관’정도다. 군대의 교전을 통해 스탯이 오르고, 스탯이 오를수록 병사가 뽑혀나오는…강력하지만 시간이 필요한 그런 사령관형 직업.
그런데 뜬금없이 정체모를 우주선을 타고 오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음…정황상…그녀의 세력이 건조했다고 밖에는….”
“…그게 말이 되는가? 일개 군인들이 과학이라곤 전혀 모르는 곳으로 건너가서 몇 개월 있더니 차원을 넘나드는 우주선을 뚝딱 만들었다고?”
“….”

수행원들도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말이  된다고 그들도 생각하지만, 어쩌겠는가. 말이 되지 않아도 눈 앞의 현실인 것을.




무수한 호위 속에서 밖으로 나온 대통령은 군대와 대치중인 한사랑을 멀찍이서 만날  있었다.
그녀 또한 무기를 가진 수행원들을 대동하고 있었기에 상황은 일촉즉발.
심지어 하늘에선 은하제국에서 보낸 전함 여러척이 대기하고 있었다.

‘이거 서울시민들 불안 장난 아니겠는데.’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는 전함들이 하늘에 떡 하니  척이나 떠 있는데다 전국적인 계엄령까지 발동되었으니 어쩌면 주가도 폭락하고 있을지 모른다.

‘하.’

한숨이 나오는 상황. 요즘따라 뜻대로 되는 일이 왜 이리도 없는지.

“일단 신원은 확실하니까 안으로 안내해주게. 내빈으로 맞이해야지.”





.
.





“이렇게 뵙는  정말 오랜만이군요.”
“그러게요.”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잘 지냈습니다.”

무뚝뚝한 반응.
한사랑 답다.


청와대 본관 집무실에 대통령과 단 둘이 남게 된 그녀는 다 필요없고 빨리 본론으로 들어가라는 식의 눈빛을 보냈다.
대통령도 바보는 아닌지라 고개를 끄덕이곤 커피를 마셨다.

“최근에 들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은하제국에서 지구통합계획을 발표했습니다.”
“….”
“형식상 은하제국에 각국이 가맹되는 것으로 발표하긴 했습니다만, 외교관들의 말을 들어보니 사실상 식민지에 가까운 조약을 강요받는다고 하더군요. 당연하지만 그래서는 한민족의 부흥을 담보할 수 없습니다.”
“이미 그건내정된 사실이죠. 스스로 힘을 갖지 않는 이상 애초부터 무리인 이야기였습니다.”

그녀의 말에 대통령이 쓰게 웃었다.
과연. 그렇게까지 생각하는건가. 예전의 그녀였다면 동조해줬을 텐데.


“뭐, 그렇겠죠. 그래서제가 생각해둔 것이 있습니다.”
“무슨?”
“전에 우리가 함께 이야기했던 계획에 대해 기억하고 계실 겁니다.”
“없던 일이 되었죠.”
“예.”

정확히는 일방적으로. 그녀에 의해.

“그때 저는 사랑씨가 군대를 키워 건너온 후 쿠데타를 일으켜, 군부독재를 통해 국민들의 눈을 속인다면 하렘궁을 안고 번영을 지속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랬죠.”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죠. 이제 그 사람은 본인만의 세력을 ‘국가’로서 확립하고 은하제국을 세워 비공식이든 공식이든 기존 국가들의 통제에서 벗어났습니다. 이젠 대놓고 전 인류에게 자신을 따르라 강요하기에 이르렀죠. 이쯤오면 언론검열 같은 건 아무 의미가 없을 겁니다.”

한사랑도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런 사정 때문에 그녀가 배신한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말은 맞는 말이니까.

“그래서 생각해낸 겁니다. 차라리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아니 한민족이라는 민족 자체가 ‘동격’으로서 대우를 받을 수 있다면 어떨까 하고.”
“그건 또 무슨?”
“어차피 은하제국은 가맹국이라는 이름을 들어 각국을 꼬시면서 지구통합을 노리고 있습니다. 여러 조항을 맺으면서요. 기본적으로 식민지가 되는 형국이지만, 여기서 저는 마치 보지니아 연방제국처럼 동등한 연방의 일원으로서 대우받을 수 있는 방법을 한 가지 찾았습니다. 그건 바로 그의 여인이 대한민국의 수장이 되는 것입니다.”
“….”


한사랑이 입술을 살짝 벌렸다.
언제나 생각하는 거지만, 대통령의 생각은 항상 그녀를 놀라게 한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바로 제 앞에 있는 한사랑씨가 이 나라,  민족의 수장이 되는 겁니다. 그리 한다면, 그의 성격상 당신의 소유나 마찬가지인 이 국가를 함부로 식민지처럼 대하진 않겠죠.”

대통령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러나 한사랑에겐 들어오지 않았다.


‘후.’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확실히 그의 말은 그럴듯한 얘기다.
한사랑이 대한민국을 홀랑 집어삼켜서 대통령과 비슷한 격이 된다면 유은이 그녀를 생각해서 어느정도 대한민국을 우대해줄 거라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반례는 너무나 간단하게 튀어나온다.


후지산 자치령의 경우, 일개 국가의 최고 지도자라 할 수 있는 총독의 자리에 유은의 시녀인 임서현이 앉아있다. 명목상 일본의 총리와도 같은 위치인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후지산 자치령이 그녀와 동격으로 대우받고 있는가? 식민지의 대우를 받지 않고 구 일본의 야마토 민족이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후지산 자치령은 은하제국 구성국  가장 최하위의 대우를 받고 있으며, 1억 2천만이 넘는 국민들은 끊임없는 착취와 쥐어짜임 속에 끔찍한 삶을 살고 있다.
심지어 미녀라면 자신의 모든 인권을 빼앗긴 채 곳곳에 건설된 ‘시녀학원’이라는 곳에 강제로 등록되어제국의 시녀가 되는 과정을 이수해야 하고, 어린 나이이지만 미녀가  재능이 있다고 여겨지는 아이들은 한데 모아 오로지 유은의 시녀로서 바쳐지기 위해 10년이 넘는 기간동안 사회와 격리되어 키워진다.



말하자면 권리라는 것 자체가 없는 셈이다.

물론 ‘일본은 점령된 거니까 다른  아니냐!’라고 할 수도 있다.
그렇다. 일본은 점령된 국가이고, 서현이 총독이긴 하지만 ‘파견직’같은 의미라 지금 한사랑과 대통령이 논의하는 사항과는 결이 다르다.


하지만 그렇다고 결말이크게 다를까? 한사랑만 놓고 보아도 지구의 내로라하는 학살자는 명함도 못내밀 정도로 카르마를 쌓은 인물인데?

게다가 애초에 그녀가 대한민국을 집어삼킨다는 것에서 오류다. 강남과 인천 일부가 이미 하렘궁의 영역인데, 긴밀한 관계가 있는 한반도를 난데없이 그녀가 등장해서 홀랑 집어삼킨다? 유은 본인이야 어떨지 몰라도 그를 따르는 권력층은 심히 불쾌해할 것이다. 특히 소냐라던가 하는 여인이.


자력의 힘으로 그의 곁에 있고 싶어서 제국을 세운 한사랑인데, 그와 그의 여인들이 불쾌해할 수 있는 짓을 저지른다? 어불성설이다.




“- 이렇게 하면 분명ㅡ,”
“그만하시죠.”


결국 그녀는 계속 이어지는 대통령의 말을 끊었다.
일종의 광기마저 깃든 흰머리의 중년인이 뻘쭘하게 말을 멈추곤 그녀를 쳐다봤다.

“의미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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