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대 던전은 나만의 기회 (499)화 (498/517)



〈 499화 〉41. 헬게이트

대단위 파괴와는 연이 없는 한참이나 과거의 인물이었지만(평행세계라곤 해도), 그녀의 파괴력은 현대병기의 그것을 아득히 상회했다.

그저 이기어검을 활용해 단검을 투척했을 뿐인데  분대 하나를 가뿐히 날려보내고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현대군이 이럴진데 무림에선 어땠겠는가. 가히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 이라 할 만 하다.

“저건  뭐야!”

적진에서고함이 들려왔다.


“후후. 오랜만에 피를 묻히니 즐겁구나.”
“사이코 아냐?”


그녀의 혼잣말을 들은 율령이 기겁하며 한 마디 했으나 타격은 제로.
애초에 검후 자신도 본인을 정상인이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

검후가 적들을 농락하는 사이, 율령은 무전을 통해 연대를 모아 태세를 정비했다.

“연대장님께서 돌아가시다니….”


다들 충격받은 표정.
율령 역시 못지 않은 상실감을 맛보고 있었지만 거기에 빠져들 여력은 없었다.

“일단 임시본부에 상황보고 올려.”
“아,알겠습니다!”

아수라장 그 자체인 전장에서 그녀는 나름 지휘력을 발휘했다.
오히려 난잡한 상황에서의 지휘능력은 한사랑보다 좀  낫다고나 할까.
비록 지금은 죽어버린 연대장 보다는 못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군이 정비되었다.

“타 연대는 어때?”
“연락이 속속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쪽도 피해규모가 만만치 않습니다.”
“그렇겠지. 개같은 것들이 찐으로 덤벼들었으니까.”

전투 규모를 생각해보면 아군에서만 못해도 연대규모의 인명피해가 났을 것이고, 최악의 경우 사단 하나 정도는 작살났을지도 모른다.
물론 상대편도.


“저…그런데…저 여자는 대체 누굽니까? 모험가입니까?”

 장교가 전방을 향해 손짓했다.

“아.”


거기에는 마치 영웅처럼 팔짱을 낀 채 표표하게 서 있는 검후의 뒤태가 있었는데, 심히 아름다워 홀리기쉬웠지만 전장특유의 흥분과 긴장감 탓인지 한눈파는 이는 별로 없어 보였다.

“그런  있어. 몰라도 돼.”
“엄청 강력합니다! 저 여자와 함께라면 이대로 수도를 확보할수 있을지도 몰라요.”
“저년 하나로 된다고?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피해가 엄청 클 거야.”
“하지만….”
“그리고ㅡ,”





“미안하네~ 저년 혼자가 아니라서.”

또다시 들려오는 뜬금없는 목소리.
이번에는무려 두 명이나 등장했다.


권투라도 하는 건지 주먹에 붕대를 감고 있는 여인과,
금발 포니테일에 허리춤엔 길쭉한 일본도를 패용하고 화려한제복코트를 걸친 여인.
웃기게도 코트를 입은  아니라 망토처럼 둘렀을 뿐인데 바람이 불어도 날아가지 않았다.



후웅.


톡.


두 여인은 상공에서 천천히 하강하더니  사뿐히 발을 내디뎠다.
당연히 군인들의 시선이 집중.
그걸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금발의 여인이 입을 열었다.


“안심해라. 적이라 해도 결국 동포. 불필요한 살상은 저지르지 않는다.”
“저년은 저기서 날뛰고 있는데?”
“11번대 대장이좀 난폭하긴 하지. 신참이라 그런 거니 이해하도록.”
“아니 저기요.”

율령이 황당한 얼굴로 뭔가 말하려 하자, 루크레시아가 뚱한 얼굴의 예나에게 눈짓했다.

“네~네~. 오타쿠 대장님.”

그녀는 한숨 가득한 얼굴로 휙 날아오르더니 한창 날뛰고 있는 검후에게 몇 마디 건냈다.
과연 저 오만하고 성격 이상한 여자가 몇 마디 들었다고 조용해질까 싶었지만, 놀랍게도 그녀는 입술을 살짝 깨문 것 말고는 고분고분 돌아왔다.


“간만에 몸을 푸나 했더니. 방해물이 참으로 많구나.”
“우리 임무는 은율령 및 여군들의 보호다. 쓸데없이 싸울 필욘 없어.”
“흥. 물러 터졌구나. 공격이야말로 최고의 방어이거늘.”
“그거야 적과 우리만 있을 때의 이야기지. 머지않아 서울은 함락된다.”
“그건 또 무슨 소리에요?”

뜬금없이 서울이 함락된다니.
율령이 묻자 루크레시아가 심플하게 대답했다.


“한사랑의 군대가 서울을 비롯한 각 주요도시로 향하고 있다. 현대군으로서는 막을  없지.”
“하. 그년이 결국.”
“아무튼 그리 되었으니 굳이 진군할 필요도 없다.”
“그건 아니죠. 어쨌든 수도가 타군에 점거된다는 건데.”
“글쎄. 그게과연 타국이  지.”
“?”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 루크레시아가 갑자기 은율령을 안고 어깨에 걸쳤다.

“꺄악!!  하는 거야!!”

율령 본인은 물론, 군인들도 무슨 짓이냐며 항의했지만, 루크레시아는 깔끔하게 묵살했다.


“최우선 목표는 내가 데려간다. 나머지는 남아서 임무를 완수하도록.”
“지 혼자 편하게 사네.”
“임무일 뿐이다.”
“네.  꺼지세요.”

“야! 이거 놔!!”

율령은 사뿐하게 허공으로 날아오르는 루크레시아의 등을 마구 두드렸다.


“어딜 데려가는 거야! 어서 내려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주인에게로 간다.”
“뭐라고?!”

다들 전장에 남아있는데 지휘관이 돼서 혼자 안전한 곳으로 도망치란 말인가!
납득할  없는 상황에 그녀가 더욱 발버둥쳤지만, 루크레시아를 이길  없었다.
애초에 은하제국 소속을 제외한다면 그녀를 이길 수 있는 인물 자체가 인류에 없을 터.
그녀의 의지는 그대로 관철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지하터널의 모든 입구를 막아 대통령을 말라죽이기로  한사랑은 사태가 생각보다 심하다는 걸 깨달았다.


“죽여라!!”
“전부 죽여!”
“와아아악!!!”

마치 좀비처럼 달려드는 군인들.
외형은 인간과 다름 없었지만, 무작정달려드는 그 모양새는 마치 좀비와도 같았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이랬느냐?
아니.
처음엔 평범한 군인들이었다.
서로 대화도 하고, 긴장도 하고, 겁도 먹는 그저 그런 병사였다.

그러던 것이 본격적으로 한사랑의 군대와 대치가 시작되자 마치 스위치라도 들어간 것처럼 발작형 공격을 해오는 게 아닌가.

수 차례의 공격으로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걸 분명 깨달았을 텐데도꾸역꾸역 밀려오고 있다.




“뭔가 이상합니다!”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에요!”
“…뭐지 대체.”

피어오르는 불안감.
병사들이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면, 장교들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아니, 생각해보면 오히려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상식적으로대한민국처럼 고도로 발달한 선진국에서 아무 징조도 없이 수십명이나 되는 장성들과 수십만에 이르는 병사, 그것도 징병된 군인들이 쿠데타를 일으킨다는  말이나 되는가. 그것도 불과 1년 전 까지만 해도 고위 간부였던 한사랑이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이건 말이 안 된다.
절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그렇기에 가담한 인간들도 정상적이지 않을 확률이 매우 높다.


“최대한 제압하는 쪽으로 하고, 주민들은 절대 밖으로 못 나오게 해. 구역진압되면 100명 정도만 임시 주둔시켜.”
“예!”

그녀는 급한대로 명령을 내려놓고 본인은 몇몇 간부들과 함께 수송기에 올랐다.
목적지는 아버지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국회의사당.


우우웅.




반중력을 이용한  수송기는 속도도 속도지만 상당한 무장도 갖추고 있는 전천후 병기로서, 현대의 전투기로는 상대할  없는 소형 기체였다.
물론 여기서 소형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우주선 기준일 뿐, 지구 기준으론 충분히 몸체다.



사방에서 터지는 폭음과 상공을 수놓는 불꽃들.

그녀가 가는 곳마다 영화의 한장면이 그려졌다.

“지하통로 입구, 모두 막았습니다.”
“그래. 쥐구멍 같은 거 있을지도 모르니까 계속 탐색해. 그리고…산소구멍 뚫어놔.”
“알겠습니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최후에 대통령이 필요하게 될지도 모른다.
대통령이 한사랑의 아버지를 포함한 장성들을 조종할 무언가를 갖고 있고, 이 모든일을 홀로 조작하는 것일지도 모르니까.


“끝까지 열받게 만드네.”

달려드는 공군을 무력화하며 어느덧 국회의사당.
이미 전체적인 한국군의 피해는 국지전의 그것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국회의사당에 착륙하면, 또다시 군인들이 한바가지.
세뇌라도 된 것 같은 군인들이 제 목숨 아까운  모르고 돌격해왔다.




+++




“흠. 지금쯤이면 한창이겠군.”

어느덧 부산에 도착한 대통령.
그동안 눈을 감고지난 인생에 대해 생각하던 그는 자동으로 열린 문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지하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나는듯도 했지만 그것은 단순한 기분탓.
이곳은 항상 최고 성능의 공기청청기로 말끔한 공기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되게 어둡게 만들었네. 쯧쯧쯧. 좀 밝게 만들면 어디가 덧나나.”


주변을 비추는 건 군데군데 있는 형광등뿐인데, 출력이 그리 좋지 않았다.
덕분에 분위기는 매우 싸했고, 당장이라도 귀신 같은 것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혼자서 이곳을 방문한 사람이라면 충분히 벌벌 떨만도 한데, 그는 이미 그런 걸 신경쓸 만한단계는 지났다.

목숨까지 포기한 마당에, 그런  눈에 들어오겠는가.



그는 덩그러니 놓여있는 엘리베이터를 조작했다.

“그나저나 아직까지도 날 찾지 않은 걸 보면……왠지 입구가 막혀 있을 것 같은데.”

엘리베이터는 동작하지 않았다.
형광등에 불이 들어오는 보면 전기가 나간 건 아닌데. 고장일까.

잠시 계단 쪽으로 시선을 던져보니, 뭔가 뿌연 먼지가 쌓여 있고,연기 같은 게 나는 것도 같았다.
마치 지상이 무너져내리기라도 한 것처럼.

“역시 그런가.”

그는피식 웃으며 다시 전철 안으로 들어갔다.
어차피 입구는 막혀 있는 것 같으니 나가봐야 의미 없지 않겠는가.
인간의 힘으로 저런걸 헤쳐나간다는 건 불가능하고, 설령 그렇게 한다 해도 한사랑의 군대가 깔려 있을 것이다.

“용서는 필요없지만 알아줬으면 좋겠는데. 어쩔 수 없는 희생이라는 건 항상 존재한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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