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2화 〉42.반은연맹
툭.
누군가가 무언가를 떨어뜨리는 소리.
그것은 곧 간신히 붙잡고 있던 희망이기도 했다.
“씨발…우리가 외계인을 보고 있는 건 아니겠지?”
“…”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외계인이라면 그래도 은하제국 보다는 말이 통하지 않을까.
대놓고 세계정복의 야욕을 드러내는 유은 보다는 낫지 않을까.
“그랬으면 좋겠지만 저건…”
가르강튀아팀의 통솔을 맡은 A-Force 부대장이 힘겹게 말을 이었다.
“은하제국의 함대다…!”
“젠장! 이딴 거에서이름값 하지 말라고!!”
“대체 어떻게 저만한 병력을 함선들을 모은 거지??”
두려움도 있고 절망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도대체 저들은 무엇이기에 한때 지구 군사력의 절반을 차지했던 미국조차 간신히 십여척 만들었을 뿐인 우주선을 저렇게 많이 양산할 수 있었던 걸까.
아무리 바르카나로부터 취한 기술이 있다지만, 10억을 훨씬 상회하는 보지니아들의 절대적인 충성과 보조를 받는다지만,
그래도 저건 너무한 거 아닌가. 밸런스가 무너져도 정도가 있다.
“소설도 이따위로 쓰면 욕먹는다고!”
“됐어.이제 그만해. 지금은 해야 할 일이 우선이다. 총원 전투배치!”
“초,총원 전투배치!”
“각국 요원들에게도 상황을 전달하고, A-Force는타이탄을 출격해 맞선다.”
일단은 지휘.
저들이 은하제국의 함대라는 것이 명확한 이상, 전투에 돌입해야만 한다.
“하지만 요원들은 타이탄이 없는데? 우주에선 아무 능력이 없다고! 고작해야 함상대기나 강습 밖에는….”
타이탄은 A-Force를 위해, 그리고 나아가 미국의 국방을 위해 극비리에 개발된 ‘초대형 휴머로이드 기동슈트’. 당연히 외국 요원들이 갖고 있을 리가 없다.
그리고 이곳은 우주.
제아무리 막대한 스탯을 지닌 요원들이라 해도 우주에서 그러한 슈트 없이 움직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강습이라도 해야지! 최종 목표는 가르강튀아지만, 여기서 마주친 이상 싸울 수밖에 없다. 일단은ㅡ,”
명령을 이어가려는 순간, 전방의 대함대에서 강렬한 빛이 번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밤하늘.
우주를 수놓은 은하들과, 그 은하들을 가리며 대신 빛을 내는 함선들.
순간 그는 아름답다는 생각을 해버렸다.
“전방에 엄청난 에너지가…!!”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오퍼레이터에게 호응하듯, 우주를 수놓은 빛이 그들에게로 달려들었다.
+++
아녜스의 경호로 위장해 은하제국의 중추, 강남으로 들어온 주리엘과 A-Force.
그들은 생각보다 훨씬 발전된 강남의 모습에 쉬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작전을 위해 사진이나 영상 등으로 보긴 했지만 그래도 직접 보는 것과는 다르다고나 할까.
높게 솟은 마천루나 심심찮게 날아다니는 부유함선들.
마치 SF영화를 보는 듯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쳤어 다들…!’
스카우터의 재능을 보유한 그녀의 눈에 보이는 엄청난 스탯들.
처음 아녜스를 목격했을 땐, 자신을 몇 배나 상회하는 스탯에 희망도 가졌지만, 막상 강남에 와보니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닌 수준은 아니었지만, 압도적인 강함이라고 보긴 어려웠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강남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자 하렘궁을위시로한 은하제국 전체의 중심, 황궁 앞에 도착하자 미리 파견나온 시녀들이 안내를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
경호로 위장했기에 원래도 굳은 얼굴이었지만, 한층 더 딱딱해지는 주리엘의 표정.
듣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대체 어떻게 되먹은 동네야 여긴!!’
요즘엔 값이 좀 떨어졌다지만, 여전히 스탯의 가치는 공고하다.
외국으로 나가면 1개의스탯이 약 5천 달러 선에서 거래될 정도이며, 그렇기에 개인이라면 1천 개의 스탯을 모으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당장 그녀 자신만 해도 조국의 보조가 없었다면 2천만 개는 고사하고 2천 개의 스탯도 확보하기 어려웠을 터.
그런 의미에서 강남…그리고 눈 앞에 있는 것들은 진정한 괴물이었다.
100만 단위의 스탯은 그냥 길가에 널려 있는 수준이고, 중추로 들어올 수록 수백만 개의 보유자가 등장하더니, 황궁과 스탯 카지노 등이 밀집한 도심에서는 기본이 3천만으로 시작했다.
눈 앞에서 안내를 하겠다며 나온 10명의 시녀들은 각각 억 단위의 스탯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
1차 전직 기준으로 스탯과 공방비율을 아무리 낮게 잡아도 4배라는 걸 감안하면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수치다.
‘양동? 이래선 양동조차 불가능해!’
기존 계획은 하렘궁의 중추에서 난동을 부리는 사이 가르강튀아팀이 달에 잠입하는 것이다.
그런데 고작해야 안내 정도로 나온 시녀부터가 억 단위의 스탯을갖고 있다면 난동 같은 건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무언가 수상한 기색을 보이는 즉시 사망.
‘일개 시녀가 아녜스 총회장과 동급이라니.’
그녀의 낱빛이 어두워지자, 함께 경호로 위장한 A-Force 대원들의 표정도 덩달아 어두워졌다.
“웬일이에요. 이렇게 마중도 다나오고.”
“어머, 그 무슨 말씀을.”
“전에 왔을 땐 그냥 무시하더니.”
“설마요.”
잠시 가시돋힌 말을 내뱉었던 아녜스가 고갯짓을 하자, 여전히 웃는상의 시녀들이 안내를 시작했다.
“주인님께서 많이 기대하고 계십니다.”
“흥. 말은.”
건물 안으로 들어오니 더 가관이다.
이젠 천만 단위의 스탯은 찾아볼 수도 없다.
‘이래선…개죽음이잖아….’
절망이 너무 커서 느껴지지도 않는다.
마치 아무일도 없는 것처럼 자연스런 행동도, 몸짓도 가능하다.
아예 인식 자체가 안 되는 것이다.
‘알려줘야 하나?’
바로 옆에서 걷고 있는 아녜스를 곁눈으로 바라보는 그녀.
보기로 아녜스는 매우 태연해 보였다.
어딘가 지루하다는 느낌도 있고.
‘아냐. 이 여자도 알고 있겠지. 회장인데 숨겨둔 스카우터 한 명 없을까봐. 이미 옛날에 파악해뒀을거야.’
그런데 그렇다고 한다면 이 태연함은 무엇일까.
사지에 제 발로 들어온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아, 여기서부터남자분들은 들어올 수 없습니다.”
“뭐?”
엘리베이터에 탑승하기 직전,
지금껏 안내하던 시녀가 몸을 반전하여 일행을 막아섰다.
“그렇겠지. 어쩐지 순순히 들여보내 주더라니.”
아녜스는 여전히 담담한 표정.
“차에서 대기하고 있어요. 원래 이 건물 자체가 금남구역이거든요.”
“아,아니 그게 무슨….”
아녜스의 황당한 명령에 남자 대원들이 반발했다.
이미 건물 안에 들어오면서 주리엘을 포함한 5명을 제외하면 전부 밖에서 대기하는상황.
그런데 여기서 더 떨궈낸다면 남는건 주리엘 하나다.
아무리 그녀가 대장이라지만 혼자 보낸다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녜스는 이미 주리엘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상태였다.
“우리도 가겠습니다!”
“들어올 수 없다 말씀드렸습니다.”
남자 대원들이 발을 딛으려 하자, 10명의 시녀 중 한 명이 빠져 그들을 막아섰다.
“그래도 D10의 총회장이신 아녜스님의 면을 봐서 특별히 1층에 대기장소를 마련하였으니 그걸로 만족하시길.”
“그게 무슨 말도 안 되ㅡ,”
“그만, 대기하라고 했잖아요.”
“…”
서슬퍼런아녜스의 압력에 입술을 깨물며 주리엘을 바라보자, 그녀도 고개를 끄덕였다.
경호로 위장하여 들어온 만큼, 이 이상 아녜스에게 거역하는 것도 이상한 그림이다.
적어도 건물 안에는 있을 수 있게 되었으니 그나마 다행.
결국 아녜스는 주리엘 혼자 경호하게 되었다.
“그런데, 비서분이 전과는 바뀌었군요. 못 보던 얼굴인데.”
한창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문득 시녀가 그런 말을 던졌다.
“으응. 일을 잘 못해서요. 바뀔 때가 되기도 했고.”
그리고 능숙하게 받아치는 아녜스.
“그렇군요.”
“…”
별 것 아닌 대화였지만, 괜히 긴장되는 것은 왜일까.
‘뭐지? 이 불길함은…스탯 때문인가? 확실히 다들 미쳐 날뛰고 있긴 한데….’
그것 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촉 같은 것이 잡혔다.
띵.
상당히 길게 느껴졌던 엘리베이터 안.
하지만 그 시간도 곧 끝났다.
최상층에 도착하여 마침내 열리는 문.
그 앞에는 금빛 단발머리를 한 여인이 다소곳이 서 있었다.
“웁!”
그녀를 본 순간 올라오는 헛구역질에 저도 모르게 입을 막는 주리엘.
간신히 진정시키긴 했지만 눈 앞의 그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지금부턴 제가 직접 안내할 테니, 여러분은 돌아가 일보세요.”
“예. 실장님.”
TV에서도 자주봐왔고, 작전 계획에서도 자주 언급되었던 여인.
워낙 유명하기 때문에 그녀의 스탯에 관한 것도 당연히 보고서에 올라왔다.
그때 봤던 스탯은 가볍게 수십억.
그런데…
‘다르잖아…!!’
정보가 잘못된 건지, 아니면 그새 오른 건지, 기존에 알고 있던 것과는10배 이상의 차이를 내고 있었다.
그 정보도 아마 일주일 미만의 최신 정보일 텐데, 그새 10배가 뛰었다?
스탯을 몰아준 게 아니라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거기 당신.”
“…에?”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커다란 문 앞.
너무 큰 충격 때문에 넋을 잃었던 걸까.
임서현이 딱딱한 얼굴로 고했다.
“주인님 앞에서 거슬리는 행동을 했다간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습니다. 아시겠어요?”
“….”
수백억의 여인이 눈 앞에서 노려보고 있다.
그 광경에 전신이 덜덜 떨려왔지만 그녀는 애써 정신을 붙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수치는 좀 다르지만…압도적일 거라는 건 알고 있었잖아…어차피 우린…양동일 뿐야…대만에 있는 요원들이 움직여 준다면 어떻게든….’
똑똑.
“주인님, 아녜스 이사벨라 『정보부 장관』 외 기타 1명 도착했습니다.”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