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믿을 놈 없다
아버지를 좀 빨리 천국으로 보내야 하나?
물론 내 망상이었다. 아버지, 하멜은 이래봬도 꽤 대단한 권력자다.
삼남에 남자치고는 재능도 평범한 내가 대항하기 힘들다는 거다.
그래도 아버지는 이런 나마저도 사랑했다. 말인즉, 죽으라고는 못해도 이 정도는 뱉어도 된다는 거다.
“씨발, 노망나셨습니까? 전쟁터에 가려면 아직 정정하게 여자 따먹는 아버지가 가십시오!! 거기 노예를 잡으면 펄떡거리는 게 찰지겠네!!”
“허허, 마음은굴뚝같구나.”
아버지는 느긋하게 웃기만 했다. 보통 이정도로 쌍욕을 뱉으면 조금은 화가 날 텐데.....
옆에서 첫째 형이 아버지를 거든다.
“제스, 너도 알겠지만 우리 집안에 잉여 인력은 너밖에 없다.”
“뭐?”
“집안 남자 중에 놀고먹는 게 너 하나라고.”
“헛소리를.....”
반박하려다가 깨달았다. 저 말은 의심의 여지없는 사실이다.
아버지는 가주이자, 제국의 권력자로 여기저기 바빴고 첫째 형은 촉망받는 검술 천재. 둘째 형은 마탑에서 와달라고 사정하는 인간이었다.
알고 보니 나만 잉여였던 것이다!!
‘씨발 25년 인생에 처음 깨달은 진실이 이거라니!’
어머니, 그래도 정이 많은 어머니라면 날 감싸주실 수 있다. 난 어머니를 보며 간절하게 말했다.
“엄마, 알죠? 저 전쟁터 같은 곳을 가면 진짜 죽어요. 그냥집안에서 놀고먹는 것밖에 못하는 인간이라고요!!”
어머니는 안타깝다는 눈길로 날 쳐다봤다. 문제는 현 상황에 대한 분노나 억울함이 없다는 거다.
아니, 동정하지 말고 같이 화내줘야지!!
동정은 무쓸모다. 정말 에너지 하나 들이지 않고, 자신이 착한 인간임을 나타내는 방법. 그게 동정이었다.
게다가 동정으로는 상황을 바꿀 수가 없다. 어머니는 내 간절한 눈빛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저었다.
“아들아..... 그간 많이놀았잖니.”
“그니까 더 문제라고요!! 놀고먹던 잉여 새끼가 전쟁터를 어떻게 가요!”
“난 노력했단다. 그간 경고도 많이 해줬는데 눈치 못챈 건 너잖니.”
경고? 대체 무슨.....
이해할 수 없다는 내 표정에 둘째 형이 돌연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 어휴, 이 멍청한 새끼가 내 동생이 맞냐? 백합 기사단원이 너한테 찾아간 이유가 뭐였겠냐?”
“아...... 그 흰머리에 앙앙거리던 년.....?”
난 멍하니 중얼거렸다. 분명 몇 달 전에 가문의 기사 한 명이 날 찾아오기는 했었다.
뭐라고 했더라?
‘안녕하십니까, 도련님. 리하님의 명에 따라 도련님을 뵙습니다.’
‘오, 새로운 노예인가. 너는 성감대가 어디냐?’
‘전 백합 기사단의 정식 단원입니다. 리하님께서 최후의 기회라고..... 흐갸앗!!’
‘젖꼭지가 민감하네. 다른 데는 어디.....’
‘흐이익!! 도련니이임...... 으갸각!’
‘개발이 애매하게 됐네. 내가 조교해줄게.’
‘흐끅! 어허어엉.....’
분명 이런 진행이었다. 잘 생각하니까 최후의 기회라는 말이 있기는 했다.
그게 진짜 최후였다고? 거절하면 전쟁터의 최전방으로 끌려가는?
난 존나게 억울했다. 발바닥부터 치솟아오르는 억울함을 담아 탁자를 쾅 내려친다.
쿠우웅-
“최후의 기회만 주는 게 어딨어요!!”
“그게 무슨 말이냐....?”
“사람이라면 당연히 진짜 최후의 기회나, 최후의 최후의 최후의 기회까지는 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암만 답이 없다고 해도 핏줄이잖습니까!”
내 말에 어머니는 눈을 질끈 감았다. 첫째 형과 둘째 형은 입술을 푸들거리는 게 간신히 웃음을 참는 모양새다.
왜지? 왜들 그러는 거야.
가족한테 기회 몇 번 더 주라는 게 웃기나? 세상은 원래 혈연, 지연으로 돌아간다고!
속으로 세상의 순리를 읊고 있을 때, 아버지는 조용히 컵을 쥐었다. 그곳에 마나를 담더니, 그대로 날 향해 투척!
슈우욱- 뻐억.
난 배가 기역자로 꺾여 벽에 처박혔다. 구역질이 올라올 것만 같다.
“꺼, 꺼어어...... 아빠?”
아버지는 컵을 던지고도 분이 안풀리는지 씩씩댔다.
“후우후우, 가족이면 당연히 기회를 줘야지. 그런데 말이다.”
“아으으..... 그런데요?”
“핏줄이라는 이유로 니놈 새끼한테 준 기회가 몇 번 같으냐? 네 표현을 빌리자면 최후의 최후의 최후의 치후의 ...... 최후의 기회쯤은 될 거다, 이 새끼야!!”
진짠가? 나는 몰랐다.
기억을 못하는 게 아니라, 그냥 노예년인줄 알았던 그 백합 기사단원처럼, 내가 모르고 날린 기회도 수두룩할 거다.
난 억울하게 중얼거렸다. 마침 500kg 수준의 근력이 필요한 회의실 문이 눈에 들어온다.
“그래도..... 스무살부터는 회의실 문도 열었잖아요..... 진짜 힘든 건데.”
“나는 11살 때 열었고, 네 형은 10살 때 열었어!! 마법하는 둘째도 근력강화 몇 번이면 여는 거다. 성인돼서 연 게 무슨 자랑이라고!”
“......”
진짜, 재능없는 게 죄인가? 난 원래 이렇게 살았다.
이전 생에서도 어영부영 살다가 객사했고, 지금 생에서도 똑같이 살았다. 노력은 귀찮아서해보지도 않았다.
달라진 점이라면 신분이 존나 높고, 희소한 남자로 태어나서 이제껏 즐거웠다는 거다.
‘25년 행복했으면 됐나..... 그래도 40살까지는 평탄할 줄 알았는데.’
아버지는 배를 붙잡고 쓰러진 날 내려봤다.
“그래. 원래 올해까지는 널 지켜볼 생각이었지. 그런데 폐하께서 징집령을 내리셨다.”
“어우우...... 징집이요?”
“영지를 가진 모든 귀족 가문에서 남자 한 명씩 선발하라고 말이야.”
“폐하가 약았네.”
“이 자식이!!”
콰앙-. 아버지는 집기를 몇 개 더 날렸다. 그래도 이성의 끈은 붙잡았는지 팔이나 다리 따위만 맞춘다.
아픈 건 똑같았지만.
난 신음을 뱉으면서도 항변했다.
“아흐으으, 폐하가 머리 쓰신 건 맞잖아요!! 귀족가의 남자를 보내는데, 혼자 보내는 가문이 어딨어요?”
“.....그야 그렇지.”
귀족가의 남자를 하나씩 보내라.
얼핏 보면 느슨한 징집령 같았으나, 실상은 전혀 달랐다. 이 세계의 남녀 비율은 5:95다.
이건 자식을 낳을 때도 똑같이 적용되었는데, 간단히 말해 평균적으로 자식 20명을 낳아야 남자 한 명이 튀어나왔다.
아버지처럼 아들만 셋을 보유하려면, 자식을 60명은 낳아야 하는 셈이다.
‘뭐 우리 가문은 운이 좋아서 자식 30명에서 멈췄지만.’
귀족가의 딸은 성인이 되는 순간 가문에서 쫒겨난다.
그도 그럴법한 게, 따먹자니 근친이라 애매하고 자손이라고 대접하자니 숫자가 너무 많았던 것이다.
참고로 우리 가문의 여자 형제들은 전부 가문을 나간 상태였다. 내가 막내였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귀족가의 남자, 그리고 남자를 낳은 어머니는 상당히 귀한 인물이었다. 특히 우리 어머니처럼 아들을 셋이나 낳았다면 더욱더.
자식을 스물이나 낳아야 얻을 수 있는 남자 자손.
이렇게 귀한 존재를 귀족가에서 그냥 보낼 리가 없었다. 당연히 호위를 치렁치렁 달고, 그도 모자라 각종 아티팩트에 무구를 둘러줄 것이다.
‘남자 하나 보내라는 거로 귀족가 알짜 전력을 싸그리 동원시키겠다는 거지.’
난 배를 문지르며 일어났다. 전쟁터로 가라니 정말 좆같기는 했지만, 황제의 명이라면 어쩔 수 없다.
거역하면 사형당할테니.
대신 안전은 확보해야 했다.
“그럼 누구 붙여주실 건데요?”
“호, 마음을 정리한 모양이구나.”
“그렇죠 뭐. 이왕이면 앨리스 기사단장이......”
난 말하면서도 눈치를 봤다. 백작가에서 핏줄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회의실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
백합 기사단의 단장인앨리스다. 가문의 전쟁도 아니고, 황제의 전쟁에 소모되기엔 너무 아까운 존재.
그런데 아버지는 의외로 흔쾌히 승낙했다.
“붙여주마. 앨리스경도 너와 같이 움직일 거다. 또 백합기사단의 일부도 말이야.”
“오오!! 생각보다 절 소중하게 여기는....”
아버지는 말같지도 않은 소리 말하는 듯 손을 내저었다.
“앨리스경이 자원한 거다. 대규모 전쟁을 경험해보고 싶다고 하더군. 맞나?”
“예, 오크 제국에는 강자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인외종과 진지하게 겨룰 기회는 흔치 않지요.”
“그렇다는군. 아무튼 앨리스경이 함께 할 테니 목숨 걱정은 하지 마라.”
“네!!”
난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기사단장 정도면 가문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호위를 해준 셈이다. 게다가 제국 전체로 봐도 앨리스는 강자에 속했으니 내 목숨이 위험하지는 않을 터.
‘그냥 몇 달 고생한다고 생각하자. 돌아와서 회포 좀 풀고.’
아버지는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제스, 네가 드디어 사람 구실을 좀 하겠구나. 이제껏 여자 노예 수준의 지능인 줄 알았어.”
“아, 아니....”
“아무튼 이번 회의는 이걸로 끝이다. 그럼 해산!”
음? 회의 주제가 하나라고? 보통 10개는 넘을 텐데....
그러고보니 회의 간격도 유난히 짧고, 급하게 잡혔다.
게다가 탁자 밑에서 펠라를 하던 ‘회의 보조’는 또 얼마나 대단하던가. 평소에 내게 붙었던 회의 보조와는 차원이 달랐다.
너무 대단한 스킬에 정신을 못차리기도 했다.
‘설마...... 날 전쟁에 보내려고 전부 계획한 거야....?’
당했다는 생각에 주위를 둘러보자, 첫째 형이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다.
“그걸 이제 깨달으면 어떡하냐, 멍청한 놈아.”
“......”
씨발,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