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화 〉망나니의 수련법 (4/111)



〈 4화 〉망나니의 수련법

출발은 일주일 후였다.

준비할 시간이 있어서 좋아해야 할지, 일주일 동안 고생할 테니 싫어해야 할지는 애매했다.
아무튼 중요한  백합 기사단장 앨리스가  앞에 있다는 거다.

‘평소엔 마주칠 일도 없었는데 말이야.’

그래도 전우가 될 사이라는 걸까. 앨리스는 자처해서 일주일간  교육을 맡는다고 했다.
덕분에  정말 오랜만에 가문의 연무장에 나왔다.

“와, 여기도 진짜 추억이네.”
“음? 도련님이 여길 자주 오신 적도 있으십니까?”

앨리스의 물음에  당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1년에 열 번도 넘게 오던 때가 있었지!! 존나 힘들었다고.”
“그..... 제대로 들은 게 맞습니까? 1년에  번이요? 그게 최고 기록입니까?”

앨리스는 ‘이게 사람 새끼인가?’ 하는 눈으로 날 바라봤다.
1년에 열 번이면 많은  맞는데.... 한 달에 수련 한 번이면 충분하고도 남지 뭐.

뭐  주제를 길게 이어가서 좋을 건 없어 보인다.
난 눈치 챙기고 딴청을 피웠다.

“크흠.....”

시선을 돌리니 가문의 사병이나 견습기사 따위가 눈에 들어왔다. 물론 전부 여자다.
남자는 보통 견습기사를 패스하거나, 그 기간이 아주 짧았다. 사병은 아예 하지도 않았고.

수련하다 말고 나를 흘끔거리는 사병들.

“저기 봐, 셋째 도련님이야.”
“와...... 얼굴은 확실히 일품......”
“쉿, 무력은 폐급이어도 귀는 밝으시대.”

사병의 말마따나 난 귀가 좋아서 저 말을 전부 들을 수 있었고, 칭찬에 아주 만족했다.

‘흐흐, 폐급인 거야 당연하고. 역시 핏줄 덕에 얼굴은 미쳤다니까.’

형들보다 유일하게 나은 점이 바로 외모였다. 그 덕에 어머니도 날 조금 더 예뻐하시긴 한다.
이번엔 폭발해서 전쟁터에 보내셨지만.....

내가 가만히 있자, 앨리스가 입을 열었다.

“도련님. 일단 저희는 수련을 위해 여기 온 겁니다.”
“알고 있지. 얼른 하자고.”

난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연습용 검을 잡았다. 솔직히 어여쁜 앨리스라서 어울려주기는 한다만, 뭔가 나아질 거라는 기대는 없었다.

‘일주일 수련으로 전쟁터에서 써먹을만큼 강해지면 그게 천재지.’

단언할  있다. 난 천재는 아니었다.

“일단 검을 잡으십시오.”
“음, 이렇게?”

대강 잡자, 앨리스의 미간이 확 좁혀졌다.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지적한다.

“파지법을 모르십니까?”
“응.”
“에, 예.....?”
“모르니까 알려달라고.”

앨리스는 당황해서 입을 쩍 벌렸다. 그녀의 백금발도 같이 흔들린다.

‘입 벌린 거 봐라. 저기에 몬스터를 쑤셔 넣으면.....’

간신히 평정을 되찾은 앨리스.

“도련님. 검술은 귀족가의 기본 소양입니다. 절대로 모르실 리가.....”
“이렇게 잡던가?”

말하면서 내가 취한 자세는 어디 몽둥이 휘두를 때나 쓸법한 파지법이었다.

“그, 그게 아닙니다!!”

기겁하며 다가오는 앨리스. 그녀는 삽시간에 접근해서 내 손을 잡았다.

“자, 이렇게 오른 엄지로 날 아래를 받쳐주고, 왼손으로 그립을......”
“잘 모르겠어. 앨리스경, 좀 더 자세히 알려줘.”
“예? 뭘 더 어떻게.....”

난 몸을 빙글 돌렸다.
그러자 앞에 있던 앨리스가  뒤에 위치하며, 자연스럽게  백허그하는 자세가 되었다.

“도련님....?”
“앞에서 알려주면 이해가 안 되더라고. 직접 잡아가면서 좀 해봐.”
“아, 알겠습니다.”

앨리스는 조금 머뭇거렸지만, 이내 승낙했다.
기사단장이래 봐야  어쩌겠는가. 본인이 날 가르치겠다고 나섰는데.

‘망나니 가르치려면 이 정도는 각오했어야지. 그나저나 푹신하네.....’

이쪽 세계에서도 남녀의 평균적인 키 차이는 비슷했다.
즉, 내가 앨리스보다 크다는 뜻이다.

백허그한 자세에서 내 손을 잡으려면, 앨리스는생각보다도 바싹 붙어야 했다.
목덜미를 간지럽히는 숨결과 가죽 갑옷 너머의 살결이 느껴진다. 거기에 더해 엘리스가 자꾸 내 손을 조물거리자, 나는..... 쌀 뻔했다.

“으읏!!”
“어디 아프십니까?”
“그런 건 아니고, 계속 알려줘.”

움찔움찔대는 몬스터를 진정시킨다. 내가 감히 맞설 수도 없는 강자, 앨리스와의 접촉은 너무  자극이었다.
엉덩이에 앨리스의 골반이 닿자, 미칠 지경이다.

“하아아......”

‘사람 대가리뿐만 아니라, 좆대가리도 신분 차별을 한다니까.’

솔직히 어디 ‘식사 보조’나 ‘받침대’ 따위가 같은 짓을 해봐야 감흥이나 있겠는가.
어디까지나 앨리스에 한정된 특별취급이리라.

이후로도  접촉을 즐겼다.
그녀는 따라오지 못하는 내가 답답한지, 나를 확 끌어당겼고덕분에 가슴의 감촉은 더욱 진해졌다.

‘C컵? 맞는 거 같은데...... 눌려서 조금 과소평가됐을 수도.’

졸지엔 앨리스의 허벅지와  허벅지까지 겹쳐질 지경이었다. 거의 몸을 겹친 거나 다름없는 수준.
이쯤 됐는데도, 내게 변화가 없자 앨리스는 뭔가를 깨달았다.

“도련님...... 배울생각이 없으십니까?”
“배우긴 해야지. 일단 조금 더 비벼봐.”
“뭐라고요?”
“그니까 앨리스경의 가슴을 좀.....”

말하다 깨달았다. 씨발, 저 말은 내 마음속으로만 했어야 했다.

‘조졌다.’

갑자기 싸늘해지는 분위기. 내 팔을 잡은 앨리스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간다.

“도련니임......”

까드득-

저 괴물 같은 힘을 전부 쓰면 내  따위는 바로 아작나리라. 난 다급하게 외쳤다.

“자, 잠깐만!! 앨리스경, 난 백작가 삼남이야!! 네가 호위해야 할 대상이라고!!”
“후우우, 그게 참 한탄스럽군요. 도련님이 여자였다면.....”
“하, 하하. 빨리  좀 풀어줘.”

앨리스는 어쩔  없이 손을 놓고 물러섰다. 손바닥 모양으로 붉게 올라온 피부가 따끔거렸지만, 그보다 아쉬운 게 있었다.

‘대가리 한 번만 거쳐서 말했으면 좀  즐겼을 텐데.....’

하여간 이놈의 본능이 문제다. 난 눈을 감고 조금 전을 떠올렸다.

앨리스의 골반이 부드러웠나? 손은 되게 따뜻했어. 내 손가락을 잡고 하나씩 조물조물하는 게......

“제발 집중 좀 해주십시오!!”
“읏, 알았어.”

갑작스런 불호령에 움찔했다. 하지만 수련에는 여전히 관심이 가질 않았다.

‘지금도 충분히 여자 잘 먹고 다니는데 굳이 강해져야 하나? 내가 노력한다고 앨리스를 따먹는 것도 아닐 텐데.’

만약 대준다는 약속만 있었으면 노력을 왜 안 했겠나. 죽을 힘으로 강해졌지.
난 툴툴거리며 말했다.

“앨리스경, 좀 쉽게 강해지는 방법은 없을까?”
“남자들은 원래 여자보다 몇 배는 빨리 강해집니다. 특히 좋은 핏줄을 타고난 제스님은 더 그럴 테고요.”

단호한 말에 입을 삐죽거린다.

“그거 말고. 난 사실 마법에 재능있는 거 아닐까? 암만 생각해도 검술은 아니야.”
“안 배우셨습니까? 마법도기본 소양으로.....”
“익히긴 했어. 근데 말이야.”

당시 가정교사가 포기했다. 간단한 마법도 폭주시키는 걸 보고 절망했다나 뭐라나.
즉흥적으로 뱉은 말이지만, 마법에도 별 소양이 없을 것 같긴 하다.
내 표정이 어두워지자 앨리스는 안절부절못했다.

“도련님? 너무 좌절하지 마십시오. 사람은 노력하면 보상받기 마련입니다. 특히나 남자라면.....”
“에휴, 난 틀렸어.”

이러면 아까처럼 다가오려나? 하고 앨리스를 힐끔 봤는데, 그녀는 혼자 고민하고 있었다.
너무 날로 먹으려 하긴 했다.

턱을 한참 괴더니 내게 묻는다.

“암만 도련님이라도 장점은 있을 겁니다.”
“응? 암만 나라도....?”
“아, 아니. 그 어떤 사람이라도 잘하는 게 하나쯤은 있다는 소립니다!!”
“내가 재능 있으려면 ‘그 어떤 사람이라도’ 재능이 있어야 된다는 거지?”
“어.....”

뭔가 앨리스의 속마음을 엿본 듯하다. 좆같네, 이래서야 날 존경할 리가 없잖아......

난 한숨과 함께 대답했다.

“하아, 힘은 괜찮은 편이지. 그래도 회의실 문은 열잖아?”
“아!! 그랬군요!! 그걸 5년 전에 열었으니, 지금은 강해지신 겁니까?”
“아마 그럴 거야.”

딱히 힘을 측정해본 적은 없다.
하지만 5년 전에는 회의실 문을 젖먹던 것까지쥐어짜서 열었다면, 지금은 조금 집중하는 정도로도 충분하니, 힘이 발전한 모양이다.

앨리스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그녀는 곧바로 어디론가 뛰어갔다.

“앨리스경?”
“잠깐 기다리십시오!!”

타닥-. 한 5분이 지나서 앨리스는 다시 얼굴을 비추었다.

“이건 어떻습니까!!”

앨리스는 환하게 웃으며 뭔가를 흔들었다. 너무 가볍게 흔들길래 처음엔 뭔지 알아보지 못했는데, 자세히 보니 알 수 있었다.

“파비스.....?”
“예, 도련님한테는 이게 적격입니다!!”

그녀가 가져온 건 1.5m가량의 대형 방패, 파비스였다.

‘씨발, 나보고 고기방패하라는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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