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여정의 시작
마침내 출발하는 날 아침.
가족들은 그래도 나를 마중 나와줬다. 거의 쫓겨나는 느낌인 줄 알았는데, 핏줄로 치기는 하는 모양이다.
아버지, 하멜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특별히 앨리스경까지 가는 거다. 전쟁을 통해서 네가 좀 발전했으면 좋겠구나."
"그냥 마음 편하게 아버지가 나서는 건 어떨까요? 십존이 나서면 다들 환영할 텐데."
"황실의 보상도 없이, 그저 징집령만으로 나갈 순 없는 노릇이지."
아버지는 계산이 꽤 철저한 편이었다. 핏줄한테는 조금 약해지는 것 같긴 하지만.
난 툴툴거리며 말했다.
"거 전쟁터 나가는 아들한테 아티팩트도 안 챙겨 줍니까? 보통 보면 목숨 지키라고 하나씩 주던데. 사실 나는 씨 다른......"
"헛소리하지 말고 방패나 잘 간수해라. 그걸 괜히 마나메탈로 만든 줄 아느냐."
"음....."
아버지의 말에 난 새삼 방패를 다시 봤다. 파비스, 존나 무거운 이 방패에 뭔 마법이라도 새긴 모양이다.
'경량화는 절대 아닐 거고...... 위급할 때 나오는 보호마법이라도 있나? 어차피 방패인데 공격에 반응하면 이상한데......'
무슨 마법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제국의 백작이 자신할 정도니까 괜찮을 거다.
아버지도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네 목숨 정도는 간수할 거다. 게다가 충성스러운 백합 기사단도 있지 않느냐."
"한 개 분대도 안 되는 것들 말이죠?"
백합 기사단은 총 20명, 5개 분대로 구성되어 있었다. 단장을 제외한 숫자다.
아버지가 나한테 붙인 기사는 앨리스를 빼고 단 두 명. 실력이 뛰어난 기사를 골랐다지만, 그래 봐야 둘이다.
"다른 기사들은 중요한 임무 때문에....."
아버지의 변명을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입이 움직인다.
"진짜 같이 살던 아버지보다 집 나갔던 누나가 훨씬 낫네. 아버지라고 모시면 뭐 하냐고......“
"혹시 나보다 먼저 노망이 든 게냐? 아니면 얻어맞고 전쟁을 면제받고 싶은 게냐?"
아버지는 내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을 꽉 줬다. 기세를 보아하니, 몇 대 맞으면 목숨이 무사하지 못할 거다.
난 바로 미소를 보여줬다.
"헤헤, 제가 또 귀여운 막내 아닙니까? 아버지가 선물해준 저 물건들도 좀 있구요."
난 회의 보조와 식사 보조를 가리켰다. 거기에 고용인이자 하녀인 에델도 있다.
저 셋은 여정 동안 내 시중을 들 예정이었다. 안 그래도 귀찮은 여정이니, 저런 존재라도있어야 하는 법.
아버지는 피식 웃으며 답했다.
"네가 어디 노예 둘로 만족하더냐? 금욕 생활처럼 느껴질 거다. 알아서 잘 조절해."
"알겠습니다. 사병은......."
"알아서 해."
난 고개를 끄덕였다.
전쟁터에 가면서 기사 셋만 데려가는 건 아니다. 가문의 사병도 조금 동행했는데, 당연히 전부 여자였다.
꼬셔도 되냐고 물었고, 허락받은 셈이다.
'뭐 노예랑 자유민은 또 다른 맛이지. 게다가 단련한 사병의 음기를 받으면 더 좋기도 하고.'
내가 이쪽 세계에서 25년을 살았지만, 정작 강한 여자와 섹스한 건 몇 번 없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강한 여자는 꼬시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쪽 세계에서 대체적으로 여자의 신분이 낮은 건, 실력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한 마디로 강한 여자는 신분이 높다는 뜻.
25년을 놀고먹었던 내게 신분 높은 여자는 그림의 떡이었다.
'생각만 매일 했지. 언젠가는 강한 여자도 따먹을 거라고... 일단은 전쟁터 가는 길에 사병부터 시작해볼까.'
나는 동행하는 사병들을 흘끗 쳐다봤다.
특별히 꾸미지는 않았지만, 본판이 상타치인 여자들. 잘 단련된 몸이 탐스러웠다. 가슴 사이즈도 다양했고.
우연히 눈이 마주친 병사 하나가 바로 시선을 내린다. 미세하게 호흡이 빨라진 것 같기도 했다.
탁-
누군가 어깨를 치는 느낌. 확인하니 둘째 형이었다.
"죽지는 마라."
"뭔 생각으로 걱정......"
"가문 망신이니까."
"그럼 그렇지. 좆같은 형. 내 꺼 절반은 되던가?"
“이게.....!!”
둘째 형이 욱해서 한 발짝 다가오려 했지만, 아버지한테 제지당했다.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도발하는 거다.
마지막은 뒤에서 눈물을 글썽이던 어머니 차례였다.
어머니는 한숨을 뱉으며 날 끌어안았다.
"하아, 제스야. 이게 다 내 탓이란다."
"네?"
"내가 태교를 잘해서 좀 더 성실하게 낳았더라면....... 이렇게까지 멍청한 아들이 태어나진 않았을 텐데, 미안하다."
"혹시 욕인가요?"
어머니는 내 말을 무시했다. 대신에 은밀한 손놀림으로 품이 뭘 찔러넣는 게 느껴진다.
딱딱한 유리병. 영약? 포션? 엘릭서?
'엘릭서는 아니겠지. 몰래 주기엔 너무 비싸.‘
어머니는 나한테만 보이게 입 모양으로 말했다.
'하멜의 양기.'
아버지의 양기? 단어 자체는 굉장히 찜찜하지만 사실 엄청난 물건이었다.
아버지는 황제도 기억할 정도의 강자. 그런 사람의 양기를 따로 저장해서 영약으로 만들면 당연히 가치가 높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남자한테 쓸모없다는 거지. 이걸 누구한테...... 으음, 팔아버리라는 건가?'
그렇다고 어디에 팔겠는가.
제가 백작가 삼남인데요, 이제 우리 아빠 양기를 몰래 착정해서 만든 영약이거든요......
이렇게 내뱉는 나 자신을 상상하니 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다. 일단은 보류다.
아무튼 가치 있는 물건을 준 어머니에게 난 미소로 화답했다.
"사랑합니다."
"후후, 이럴 때만 웃지 말고 제발 좀 바뀌었으면 좋겠구나."
"언젠가는 그러겠죠....."
가족의 배웅은 이제 끝났다. 첫째 형은 임무인지 뭐시기인지 있다고 나갔으니 할 사람은 더 이상 없었다.
나는 손을 흔들며 외쳤다.
"다녀올게요!!"
"제발 돌아와야 한다....!!"
어머니의 말을 끝으로 난 가문을 나섰다.
거지 같은 여정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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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목표지는 반프레 시.
황제는 귀족 가문에게 집결지를 전달해 놓았다.
따지자면 전선의 후방에 있는 도시였는데, 내가 있던 가문에서는 꽤 떨어진 곳이다.
즉, 하루 이틀 걸리는 거리는 아니라는 거다.
산은 물론이고, 강도 한두 개쯤 건너야 도착하는 곳이었다. 그러니 파티원끼리 잘 지내야만 했는데....... 문제가 있었다.
"용.병. 한나님. 조금 더 떨어지시지 않겠습니까?"
앨리스의 말이었다. 그녀는 말을 지나치게 가까이 모는 한나 누나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파티는 앨리스를 포함한 가문의 기사 셋, 사병 열댓 명, 용병인 한나 누나, 그리고 내 하녀와 노예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중에서 말을 탄 건 나와 기사, 한나 누나였는데 한나 누나가 너무 가까이 붙은 것이다.
"애초에 용병은 걸어서 가는 게 보통입니다. 왜 굳이 승마를......"
"난 제스의 누나라고!!"
한나 누나는 그렇게 일축하며 옆으로 더 붙었다. 거의 말끼리 키스할 수준의 거리다.
거리에 반비례해서 짙어지는 앨리스의 살기. 외딴 산길에서 기사단장의 살기가 진득하게 퍼졌다.
'이게 뭔 꼴이야......'
내가 생각했던 건 이게 아니었다.
화기애애하게 다니면서 적당히 사병들의 선망 어린 시선도 받고, 몇 명은 골라 먹는 걸 상상했는데...... 지금은 여자 둘 사이에 끼어서 눈치 보는 신세라니.
나는 가슴을 조물거리며 한숨을 뱉었다.
"하아......"
내 말에는 두 명이 타고 있었다. 나와 식사 보조.
가는 길에 수련할 수도 없었기에 식사 보조의 몸을 탐미하는 중이다. 받침대처럼 가슴이 전문 분야는 아니라서 조금 아쉬웠지만, 없으면 없는 대로 즐기면 그만이었다.
식사 보조의 신음소리는 배경음처럼 들려왔다.
"으으음, 도련니임."
어째 신음이 퍼질 때마다 사병들이 움찔거리는 것 같긴 했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저들은 걷는 중이고, 나는 승마에다가 쾌락까지 즐기니 불평은 좀 있을 거다.
'내가 고려할 부분은 전혀 아니고 말이지.'
나는 문득 궁금해서, 그냥 호기심에 물었다.
"누나, 근데 이렇게 가까이 붙으려는 이유가 뭐야? 대화는 떨어져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잖아.“
내 말에 쌍심지를 켜는 한나 누나.
”지금 태어날 때부터 같이 있던 나 말고 저년을 편드는 거야?“
아니, 같이 지낸 세월을 따지자면 앨리스가 더 긴데요?
난 자연스레 올라오는 의문을 삼켰다. 이런 거로 태클 걸었다가는 뼈도 못 추릴 기세다.
’같은 가문 출신이라서 신분으로 압도할 수도 없고.‘
아무튼 가족인데 너무 친근하게 군단 말이지. 꼭 꼬시려는 것처럼.....
난 어깨를 으쓱거리며 시선을 돌렸다.
”스트레스받네.“
지금 조물거리는 식사 보조 따위로는 부족하다. 이년이 아무리 신음을 흘려봤자 충족감을 주지는 못했다.
훨씬 거칠게 다룰 수 있는..... 진짜 죄인이 나타나 주면 안 될까?
그렇게 생각하던 와중이었다.
우리가 지나가던 곳은 산길, 그곳에서 으레 서식하는 놈들이 등장했다.
채재재쟁-
칼을 뽑으며 나타나는 일단의 무리. 숫자는 대략 40명이었고,어수룩해 보이는 놈은 없었다.
거친 기세를 뿜는 산적들은 이렇게 외쳤다.
”전부 무기 버리고 항복해라!! 저 남자만 넘기면 무사히 보내주마!!“
”음.....?“
당연하게도, 산적은 전원 여자였다.
그것도 성욕에 잔뜩 굶주린.
’파티네, 여자 파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