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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화 〉후전적 천재 (10/111)



〈 10화 〉후전적 천재

뜨거운 게 부글거린다.

분명 얼마 전까지는 음기로 인한 차가움이 대세였는데, 지금은 속이 뜨겁게 끓어올랐다.
이러다 내장도 익어버리는  아닐까?

'귀족 가문 내장탕...... 아니, 헛소리하지 말고 지금 내가 무슨 상태지?'

천막이 보이는 것도 같았다. 그래도 방치된  아닌 모양이다.

"도련....... 결국 사병이라도....."
"저희는 괜찮......"

날 두고 의논하는 소리가 들린다. 무슨 의논인지는 모르겠다.
얼른 정신을 차려야 하는데, 속이 후끈거리는 게 너무 심했다. 도저히 버틸  없을 정도.

간신히 버티는 와중, 곱게 씻은 여자 한 명이 들어왔다. 얼굴은 기억나지 않는데, 괜히 익숙한 것으로 보아 가문 사람인 모양이다.
날 보고 얼굴을 붉히는 그녀.

"내가 도련님을......!!"

잠깐, 뭐 하려고? 지금  환자인데 대체......
따질 힘도 없다. 마치 꿈속에서 웅얼거리듯, 입만 뻐금거릴 뿐. 결국 나는 다시 의식을 놓고 말았다.

하물에서 음기가 흘러나와 몸이 조금 식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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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정신을 차린 건 한참이나 지나서였다.
중간에 희미하게 의식이 돌아온  몇  있었는데, 그때마다 내 위에 올라탄 여자가 바뀌어 있었다.
돌아가면서 먹었다는 거다.

'진짜...... 환상적이군.'

앨리스가 믿고 맡길만한 여자라면 당연히 가문의 사병밖에 없었다.
번갈아서 들어온 여자들이 가문의 사병이었던 모양이다.

'어쩐지 느낌이 찰지다 싶었어. 노예랑은 확실히 달랐지.'

안 그래도 사병을 먹고 싶었는데,  된 셈. 누가 봐도 내가 먹힌 거라는 사실은 애써 무시했다.

번쩍-. 눈을 힘차게 뜨자 조심스레 들어오던 병사 한 명이 깜짝 놀란다.

"깨, 깨어나셨습니까, 도련님?"
"그래. 방금 일어났어."
"몸은 멀쩡하십니까?"

 부글거리던 배를 더듬었다. 아무 느낌도 없이 깨끗하다.
도리어 힘은 넘쳐나서 문제였다. 당장 의식을 잃기 전보다 몇 배는 증가한 기분.

"괜찮은 거 같은데?"

웃으면서 답하자, 병사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하필 내 차례에......"
"응?"
"아, 아닙니다!! 단장님을 부르겠습니다!"

병사는 빳빳하게경례를 날리더니 천막을 나갔다. 앨리스는 대기 중이었는지 금방 들어왔다.

"도련님!! 회복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그래. 이젠 멀쩡하다고."
"도대체 얼마나 수련을  하신 겁니까? 흡성 마법진에서 흡수를 실패해서 앓으신 분은 처음........"
"크흐음!!"

난 헛기침으로 앨리스의 말을 뭉갰다.
이어서 주먹을 불끈쥔다.

"나 좀 강해진 거 같지 않아? 이전보다 기운이 몇 배는 늘어난 거 같은데?"
"그건.... 맞습니다."

앨리스는 대답하면서도 조금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 애매한 얼굴은 뭐야?"
"으음, 도련님은 양기폭주를 겪으셨습니다. 혹시 뭔지 아십니까?"

모른다. 정확히는 이름만 들어봤다.
고개를 내젓자 앨리스는 차분하게 설명했다.

"양기폭주는 위기 상황에 반응해 몸이 기운을 폭발시키는 반응입니다. 일부 재능있는 사람에게만 일어나죠."
"오, 재능......?"
"무술이나 마법의 재능이 아니라, 기운 회복 능력을 타고나는 재능입니다."
"아하."

그니까 나는 선천적으로 양기를 잘 만든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양기폭주도 일어났고.

"양기폭주 상태가 되면, 두 가지 방법으로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뭔데?"
"첫 번째는 폭주한 기운을 컨트롤하는 거고, 두 번째는 음기를 마구 쏟아부어서 진정시키는 겁니다."
"그래서 병사들이......."
"실례했습니다."

앨리스는 깊게 숙여 사과하며, 사병들도  한 명씩 사죄할 거라고 설명했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는데 말이야. 날 위한 거기고 하고.....'

난 적당히 넘어가며 물었다.

"그럼 잘 된 거 아니야? 흡성 마법진의 음기도 결과적으로 흡수했고, 병사들 음기도 결국 받았고."
"겉으로 보면 그렇습니다. 하지만 양기폭주를 겪으면, 그간 모았던 음기가 전부 증발합니다."
"뭐......?"

그걸 어떻게 모았는데!!
내가 경악하자, 앨리스는 재빨리 설명을 덧붙였다.

"대신!! 기운의 총량은 배로 증가하게 됩니다. 즉, 잠재력이 높아진다는 소리지요."
"아...... 위기를 겪으면서 기운이 늘어난다. 뭐 그런 식인가?"
"그보다는 폭주로 인해 그릇이 넓어지는 셈입니다. 원래 기운 생성은 잘했으니, 그릇이 넓어지면 총량이 증가하는 거지요."
"으음."

난 고개를 까딱였다. 앨리스의 말에 따르면 양기폭주를 겪으면, 힘을 잃는 대신에 잠재력이 증가한다고 한다.

'근데 난 당장의 힘도 늘어났는데?'

의문을 가지고 바라보자, 앨리스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도련님은 꽤 많이 늘어난 것 같습니다. 조화가 없어도 기본보다 강할 정도로요."
"후천적으로 천재가 됐다는 거지?"
"......기운에 한해서 그렇습니다.“
”흐흐흐.“

나는 진하게 웃었다.
핍박받던 25년을 견뎌냈다. 다른 사람 기준으로는 몰라도 내 생각엔 형들과 아버지의 멸시가 있었다.

‘좋아, 드디어....... 나도 천재다!!’

세상의 모든 미녀를 따먹기 위한 여정에 첫발을 올린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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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건'을 겪은 이후로 사병들은 나를 좀 부담스러워했다.

정확히 말하면, 눈을 못 마주쳤다고 봐야 하리라.
한참 앓던 나를 따먹은 게 그렇게 좋았을까? 아니면 배덕감을 느껴서 그랬을까?
충성의 대상 위로 올라탔으니 그럴 만도 했다.

사실  전혀 신경 쓰지 않았지만, 겉으로는 화난 태도를 유지하기로 했다.

'그래야 얘네들이 죄책감을 가질 거 아니야.'

죄책감을 가진 부하를 먹는  더할 나위 없이 쉽다. 순전히 그 목적을 위해 분위기를 차갑게 만들고 있었다.
물론 방해꾼이 있었지만.

"야, 언제까지 삐질 거야?"
"하아아, 누나."

한나 누나는 이해할수 없다는 나를 쳐다봤다.

"그렇게 싫었어?"
"크흠, 의식을 잃고 당한다고 생각해봐."
"넌 그런 것도 좋아하는 변태라고 생각했는데......"

꽤 작게 중얼거렸지만, 다 들렸다. 내가 항변하려는 찰나, 에델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제스님,  말이 있습니다."
"오, 어쩐 일로?"
"다른 귀족 가문과 동행하는  어떻습니까?"

에델은 그렇게 서두를 떼며 차근차근 주장을 펼쳤다.
정리하자면, 오크 제국이 매수한 블랙 용병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안전하게 가자는 거다.
한나 누나도 그 의견에 동의했다.

"맞아, 혹시 알아? 웨어 울프가 아니라 고위 뱀파이어라도 튀어나오면 곤란하다고."
"그 정도까지는 앨리스경이 해치울  같은데......"

앨리스를 힐끗 보자, 괜히 딴청 피우는 게 잡힌다. 아닌 척해도 이런 칭찬에 약한 편이다.
한나 누나는 못마땅한 듯 말했다.

"그렇기야 하겠다만...... 혹시라는 게 있잖아."
"맞습니다. 도련님, 악독한 놈들이라 무슨 수를 쓸지 모릅니다. 동행하면  안전해지겠지요."

하지만 나는 별로 합류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뭣보다 이번엔 남자를 징집하는 거잖아? 합류하면 자연스럽게 남자랑 붙어있게 된다고!'

여러모로 불편하다. 특히 내가 무능하다는 점에서.
난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생각 없어. 그럴 바에야 누나가 가서 용병이나 좀 데려오는  어때?"
"내가?"
"응, 가는 김에 저기 짐덩이 노예들도 좀 팔아버리고."
"하기야 저걸 처리하긴 해야 하는데...... 개조도 안  걸 누가 사겠어?”

개조..... 그게 문제인 건 맞았다.
개조되지 않은 노예는 가격이 뚝 떨어진다. 개조 과정에 귀찮기 그지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싸게 내놔도 안 사가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나 크게 예쁘지도 않은 산적이라면 더더욱......’

내가 기운을 뽑아버렸기에 전투 노예로 쓸 수도 없다. 결국 산적들을 팔아치울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어떻게든 개조시켜서 노예처럼 만드는 것!!’

나머지 교육이야 차차 받는다고 쳐도 성감대 개조는 필수다. 그걸 해야만 수요가 생기기 때문.

나는 산적들을 바라봤다.
산속에 살아서 그런지 대체적으로 거칠지만, 본판은 다들 괜찮다. 적어도 가슴은 부드러울 것 아닌가.

“엉덩이는 좀 딱딱하게 되고.”
“응?”
“아, 아니야. 그것보다...... 내가 하는  어때?”

뜬금없는 말에 한나 누나가 고개를 기울인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저것들 노예들 개조하는 거 말이야.”
“그걸.....?”
“내가 하겠다고. 40명 전부.”

한나 누나와 앨리스, 산적들을 표정이 전부 멍청하게 변한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는 태도.

나는 당당하게 선언했다.

“장담할게. 일주일이면 저놈들 전부 훌륭한 노예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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