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0화 〉순진한 뱀파이어 (20/111)



〈 20화 〉순진한 뱀파이어

"넌 이름이 뭐냐?"

간단한 질문이다. 그런데 혼혈 뱀파이어는 의외라는  눈을 크게 떴다.

"이름....이요?"
"그래."

어차피 노예로 삼을거라지만, 이름은 알아야 하지 않겠나. 근데 녀석은 대답하질 못했다.

"자,  몰라요....."
"응?"
"그냥 태어났을 때부터 잡종이라고 불려서..... 이름은 딱히."

내가 지어줘야 하나? 난 어깨를 으쓱였다.

'혼혈 뱀파이어라. 혼뱀? 너무병신 같고..... 헤르파가 낫겠다.'

그냥 문득 떠오른 이름이다. 그런 것 치고는 예뻤다. 뱀파어의 얼굴보다도.

"헤르파 어때?"
"오.... 헤르파..... 좋아요!!"

그리 말하며 활짝 웃는 녀석.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가는 걸 감지했다.

'뭐야, 그냥 마법 노예로 삼으려고 쟁취한 건데 자기를 구해줄 줄 아는 건가?'

그건 좀 곤란한데..... 아니면 구원 메타로 갈까?
마음속 깊이 따른다면 그보다 좋은  없다. 일단은 선인인  행동하기로 했다.

"어쩌다 여기까지  거야?"
"그..... 원래 산속에 숨어 지냈는데, 오크한테 쫓기다가.... 여기까지 왔어요."
"흠, 노예 출신은 아니네."
"따, 따돌림은 당했어도 노예는 아니에요!!"
"그래?"

인간 마을에서 살았으면 바로 노예행일 텐데,어디 뱀파이어 마을에서 살기라도 했나 보다. 그런 곳이 있다는  처음 알았지만.
처녀일까? 갑자기 의문이 스쳤는데 일단 넘어갔다.

"네 과거 좀 말해봐. 최대한 간략하게."
"그니까......"

대충 요약하자면 이랬다.
미르 공작은 헤르파의 엄마를 먹고 버렸고, 엄마는 극히 낮은 확률로 임신했다.
임신했으니, 고향인 뱀파이어 집단으로돌아갔는데 거기서 따돌림을 당해 나왔다는 거다. 산속에 숨은 이후엔, 말했던 대로오크에게 쫓겼고.

"엄마는..... 절 낳을  죽었어요. 원래다쳤다고 해요...."
"흐으음, 안됐구나."

평범하게 불행한 이야기다. 적당한 동정심은 들었지만,  거기까지였다.

'이런 걸로 일일이동정하면 끝도 없어.  앞가림하기도 바쁘다고.'

생각은 이랬지만, 입은 부드러운 미소를 만들었다. 내 유일한 장점, 존나 잘생겼다는  오랜만에빛을 발한다.

나는 웃으면 아주 선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그간 많이 힘들었겠어. 이젠 내가 거둬주마."
"지, 진짜요.....? 저는 마법도 잘 못 하는 반푼이인데....."
"괜찮다."

그래서 더 좋은 거니까.
인간이 부릴 수 없는 뱀파이어지만, 반푼이인 혼혈은 충분히 부릴 수 있다.
지금 경우엔 아예 마음부터 얻을 기세였다.

헤르파를 꼭 안고, 다독거리자니 뜨거운 시선이 느껴졌다.
한나 누나와 앨리스의 황당하다는 눈빛들.

특히 누나는 입모양으로 날 쏘아붙였다.

'여자 타락시키는  취미인 놈이 누구를 거둬?'
'쉬이잇!! 그런 건 비밀이야.'
'씨발, 누구나 아는 것도 비밀이라니.'

한나 누나는 포기한 듯 고개를 저었다. 내 부드러운 손길에 헤르파는 내게 완전히 파고들었다.

"따뜻해요..... 진짜로."
"그래."
"저 사람들은 날 보자마자 노예라고 외쳤는데.... 아저씨는 달라요."
"으음."

나도 노예라고 생각했다만.
이래서 첫인상이 중요하다. 난 이름부터 물었던 선택에 다시금감탄했다.

이왕 하는 거, 완전히 착하게 나가자.
근처에 기립하던 에델에게 눈짓했다.

"가서 먹을 것 좀 가져와. 옷이 해졌으니까, 어디 망토라도 구해오고."
"......예."

에델은 순순히 명령을 따랐다. 내가 먹을 예정이었던 부드러운 빵과 우유가 헤르파의 손에 쥐어진다.

"먹어도.... 돼요?"
"얼마든지. 널 거둔다고 했잖아. 이제부터 마법도 익히고, 네 능력을 마음껏 펼치게  거다."
"......!!"

헤르파는 힘차게 끄덕이며 빵을 베어 물었다. 딱히 예쁘진 않았는데, 동작이 치트키라  귀엽긴 하다.

그때쯤 슬슬 다가오는 방해꾼 무리.
미르 가의 방계와 어딘지도 모르겠는 후작가의 방계였다.

"이보시오, 제스 공자."
"오!! 이름도 알아?"
"특정 방면으로는 유명한지라.... 아무튼 내가 여기 리암 공자와 잘 상의해보았소."
"날 빼고 뭘 상의했다는 거야?"

이 도둑 자식들아.
애초에 쟁탈전에 끼어든 건 나였지만, 그런 기억은 깔끔하게 지웠다. 유리한 것만 채워 넣어도 모자란 기억력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잡종의 소유권은 우리에게 있소이다.관습에 따르면 먼저 발견한 쪽이 소유권을 지니는데, 우리는 동시에 발견했소."
"나는?"
"그대는 끼어든 것 아니오?"
"오......"

존나 흠잡을 곳 없는 논리다.
먼저 봤으니까, 내꺼라는 뜻. 유치하지만 그게 관습이었다.

근데 내가 어디 물건을빼앗기는 놈이던가? 헤르파는 이미 내 손에 들어온 유용한 마법 노예다.
절대 넘겨줄  없었다.

턱을 괴고 잠시 고민한다.

'흠, 어쩌지? 관습법상으로는 넘기는 게 맞는데..... 잠깐.'

저게 적용되는  어디까지나 '물건'에 한했다. 노예도 물건인  맞지만, 헤르파는...... 아직 노예가 아니었다.

"헤르파, 너 노예 할 거냐?"
"네....? 아니요!!"

빵을 먹다가 화들짝 고개를 젓는 헤르파. 물론 방계 놈들도 이걸로 물러나진 않았다.

"저런 잡종은 노예로 삼는  당연하오!! 너무 우기지......"
"아니, 평범한 뱀파이어면 몰라도 말이야. 이 녀석은 귀족의 핏줄이 섞였잖아?"

헤르파는 미르 가의 가주가 싸지른 자식이다. 뱀파이어의 피가 섞였다고 마냥 노예로 부릴 수 없다는 소리다.
그걸 설명하자, 미르 가문의 방계는 더욱 기세등등해졌다.

"가주님의 피가 섞였다면 응당 우리가......"
"너네는 성인이 된 여자도 가문의 일원으로 치냐?"
"어......"

그런 곳은 없다. 귀족가의 여식은 나이가 차는 것과 동시에 가문과 연이 끊어지는 게 당연지사.
바깥에서 어떻게 살아가든 관여하지 않았다.

"굳이 따지자면, 헤르파는 자유민이지. 성인이 된 귀족 가문의 핏줄이잖아?"
"그, 그건......"
"헤르파한테는 자유 의지가 있어. 이 녀석이 너희를 선택할  같지는 않은데?"
"......"

이쯤 오자 방계 놈들도 더 반박하지 못했다. 먼저 관습을 언급했으니, 내가 말한 관습도 존중하는 게 당연하다.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지 중얼거리는 미르 가문의 방계.

"가주님 핏줄인지 확실하지도 않은걸......"
"아, 그쯤이야 확인할  있지."

난 에델을 손짓으로 불렀다.

"가서 마법 시약  가져와."
"핏줄 확인 용도입니까?"
"눈치 빠르네."

정통성. 핏줄이 얼마나 진한지 체크하기 위한 마법도 존재했다.
마법 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시약이 존나게 비싸다. 어머니가 챙겨준 물건이다.

'나중에 자식이랍시고 아이를 내밀면 꼭 확인하라고 그랬지..... 역시 어머니가챙겨준 건 다 쓸모가 있어.'

에델은 자그만 상자를 꺼냈다. 거기서 시약을한 줌만 쥔 후, 손바닥에 얹는다.

"네 피랑 헤르파의 피를 한 방울씩 떨어뜨리면 돼. 이게 뭔지는 알지?"
"아, 알고 있소......"

불안한 얼굴로 상처를 내는 미르 가의 방계. 헤르파는 거리낌 없이 피를 떨어뜨렸는데, 결과는 간단했다.

우우웅-

서로 공명하며 빛을 뿜는 피. 빛이 약하긴 했지만, 확실히 반응한다.
가문의 사람이라는 거다.

'그나저나 헤르파는 따지자면, 직계 딸인데 반응이 약하네. 저 방계 놈이 어지간히  친척인가 보군.'

마무리까지 끝나자 두 가문의 방계는  따지고 들지 못했다. 대신이 이를 갈듯이 작별 인사한다.

"집결지에서 봅시다. 제스 공자, 그대의 만행은 꼭 기억하겠소."
"우릴 마냥 무시하지 않는 게 좋았을 거요."

비슷한 말을 던지는 두 녀석.  대강대강 손을 흔들었다.

"맘대로 해. 어차피 평판은 신경 쓰지도 않으니까."
"칫!!"

더 떨어질 평판이 있던가? 올톰 시에서 반역자를 잡은 거로도 부모님의 기대를 뛰어넘은 거다.
전쟁터의 활약은 바라지도 않았다.

두 무리가 떠난 후, 우리는 잠시 휴식을 취했다.
헤르파는 힘들었는지 낮잠에 빠졌다. 햇빛을 받아도 멀쩡한 걸로 보아 속설은 역시 믿을 게 못 되는 모양이다.

나도 털썩 누워서 푸른 하늘을 구경하는데, 에델이 슬금슬금 다가왔다.
좀처럼 먼저  거는 일이없는 녀석인데.

"뭐냐, 에델?"
"제스님,  잡조..... 헤르파라는 뱀파이어는가문으로 바로 보내는 게 어떻습니까?"

가만히 있자, 에델은 설명을 이었다.

"가문으로 보내서 세뇌와 함께 마법 교육을 하는  좋을 겁니다. 뱀파이어와 대마법사의 피를 이었으니 재능은 대단할 테고요."
"흐음, 에델."
"예?"
"말했잖아. 난 헤르파를 제대로 거둘 생각이라니까."

에델은 단호하게 반대했다.

"혼혈 뱀파이어는 가문의 전력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안개화로 정찰하는 건, 인간이 절대 할  없지요. 가주님이 분명 좋아하실......"
"뭣보다!!"

에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본다.

"그건 헤르파가 노예가 되는 거니까 싫어. 처음  아이지만, 꼭 동생 같았단 말이야."
"고작  때문에......"

에델은 이해할  없다는 반응했다. 이어서 갖은 이유를 대며 반박했지만, 내가 전부 거절했다.

참고로.
뱀파이어는귀가 아주 밝다. 잠들어 있어도 자신의 이름이나오면 바로  만큼.

헤르파는 에델과 내 대화를 들으며 귀를 잔뜩 쫑긋거리는 중이었다. 내 시선은 에델이 아니라 자는 척하며 엿듣는 헤르파를 향했고.

"암만 그래도 노예는  된다니까!!"

쫑긋-

"마음이 갔단 말이야!!"

쫑긋-쫑긋-

마지막으로, 뱀파이어의 잠귀가 밝다는 건 에델이 알려준 사실이었다.

"제스님의 입지를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런 건 별 관심도 없어."
"하아아......"

우린 헤르파만 모르는 연극을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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