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0화 〉내기의 보상 (30/111)



〈 30화 〉내기의 보상

한편, 히폴리타는 골머리 싸매는 중이었다.

제스 홀란트가 부대를 휘어잡은 방식은 금방 파악했다. 사실 파고들 것도 없었다.
워낙 간단했거니와 물어보기만 해도 전부 알려줬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상품으로 내걸다니..... 그렇게 희생적일 줄이야.'

지체 높은 귀족이다. 쉽지 않은 결심이 필요했으리라.
히폴리타는 자신을 따라다니는 호위에게 물었다.

"이튼!! 여자 병사들 반응은 어때?"
"여전합니다. 어떤 걸 제시해도 똑같습니다."
"에휴휴....."

며칠 만에 이토록 완벽히 휘어잡을 줄이야. 역시 만만히 볼 자는 아니었다.
자신도 비슷하게 기사들을 사용할까 했는데, 차마 그럴  없었다. 이들은 노예가 아니라 기사다.
그나마 희망은 150명 남짓한 남자 병사. 히폴리타는 책상을 톡톡 두들겼다.

"남자들 포섭 작업은 끝났지?"
"예. 공녀님의 명성을 언급하니, 다들 따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들의 대우는 말씀하신 수준으로 맞췄습니다."

기사는 궁금한 게 있는  물었다.

"그런데 독립 중대를 만드는  허락해줄까요?"
"당연히 해줘야지. 내가 본 그릇이 맞다면 허락할 거야."

제스 홀란트는 자신과 비슷한 부류. 애초에 방해 공작을 펼치지 않는다고도 약속했다.
즉, 정정당당한 승부를 원하는 것이리라.

"그자가 어디까지 파악하고 있을까?"
"개별적으로 접촉하고, 병사들에게도 입단속을 시켰으니 며칠은 더  겁니다."
"확실하지?"
"상대측의 최고 실력자인 제국의 백합은 훈련장에만 있었습니다. 기사들도 훈련할 때만 움직였으니, 괜찮을 겁니다."
"좋아, 반응이 늦어질수록 유리하지."

역시 교육한 대로 철저히 움직였다.
아직 며칠의 여유가 있는 셈인가. 히폴리타가 팔짱을 끼며 작전을 궁리할 때였다.

천막 바깥에서 발소리가 들려온다. 철커덕-. 갑옷 소리도 같이 들리는 것으로 봐선 일반적인 용건은 아니었다.
히폴리타의 호위 기사가 전부 긴장한 순간, 천연덕스러운 목소리가 퍼졌다.

"공녀님, 들어가도 됩니까?"
"물론이죠."

제스 홀란트였다. 무슨 용건으로? 히폴리타는 눈을 가늘게 뜨며 문을 노려봤다.

천막을 헤치고 등장한 제스 홀란트는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훤칠한 얼굴에 미소가 걸린다.

"아, 공녀님. 제안할  있습니다."
"말해보세요. 혹시......"
"그쪽 독립 중대와 모의전을 벌이는  어떻습니까?"
"......?"

눈을 부릅뜨는 히폴리타. 머리를 한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분명 며칠 후에나 알게 된다고 했는데? 호위 기사를 노려보자 그도 허둥거렸다.

'설마 정보원이 있었나?허술해 보였던 남자 병사들이 함정이었어?'

히폴리타는 애써 평정을 유지했다.

"무슨 소리인가요?"

책상 너머로 엉뚱하게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린다.

"아..... 앞뒤  빼고 말해버렸다....."
"과시하지 마세욧!!"
"네.....?"

여전히 천연덕스러운 반응.  연기력에는 히폴리타조차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하아아, 내가 너무 섣불리 움직였다는 건 인정할게요. 그런데 미리 정보원을 심어놓고 과시하는  비겁하지 않나요?"
"정보원이요....?"

제스 홀란트와 그 부하들이 속삭인다. 히폴리타는 고개를 쭉 빼며 입모양으로 추측했다.

".....누가 말했더라?"
"한...... 입니다."

한? 한으로 시작하는 병사가 누구였지. 히폴리타는 인명록을 훑어봤다. 한스만  명이다. 한리, 한토니 따위를 합치자5명은 되었다.

'좋아, 이 5명은 제외하자. 일단 정보원 하나는 걸렀네.'

체링겐 가의 신동은, 아주 쓸데없이 독립 중대원 다섯을 줄이고 있었다.
아무튼 독립 중대를 만들려고 하던 건 들켰다. 조금 짜증 나지만, 며칠 빨리 들킨 것뿐이다.
신경이 날카로워진 히폴리타가 툭 뱉는다.

"모의전은 또 뭔가요?"
"아, 설명이 좀 빠졌는데..... 그쪽이 독립 중대를 만드는 것 같으니까, 기량도 살필 겸 모의전이나 하자는 거죠."
"호오."
"인원은 당연히 150명으로 맞출게요."

자신이 그토록 넘친다는 건가. 히폴리타는 눈이 이채를 띄었다.
역시 배포가 큰 남자다.
제스 홀란트는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손바닥을 쳤다.

"참, 내기나 하나 할까요?"
"내기요?"
"모의전도 그냥 하면 재미없으니까...... 뭘 좀 걸죠."
"나쁘지 않네요."

어차피 무조건 이긴다. 히폴리타의 생각이었다.
저 남자가 어떤 능력이 있든 상관없었다. 자신은 실전을 겪었고,  남자는 겪지 못했다.

'평생을 웅크린 사자잖아. 능력만 있을 뿐, 경험은 없어.'

대화의 흐름을 계속 넘겨주긴 싫다. 히폴리타는 대뜸 뱉었다.

"내기의 보상은 제가 정하죠."
"오....."

마음대로 하라는 듯 어깨를 으쓱이는 제스 홀란트. 히폴리타는 그를 노려보며 고민했다.

'가장 치명적인 거. 저 남자가 부대를 휘어잡은 비법이 뭐였지?'

성욕이다. 자신을 미끼로 내걸어 부대를 통합시킨 사내. 그걸 막으면 치명적이리라. 몸이 문제다!!
히폴리타는 자신 있게 외쳤다.

"제가 이기면, 두 달 동안 그쪽 몸을 독점하겠어요!!"
"......?"

아, 말이 좀 이상하긴 했다. 하지만 의미는 명확했다.
머리에 섹스밖에 없는 머저리 자제라면, 이상한 의미로 받아들이겠지만, 명석한 제스 홀란트는 다를 것이다.

'저자가 부대를 휘어잡은 근원. 그걸 막는 조건이라는 걸 눈치채겠지?'

그럼 나한테는 뭘 요구할 거냐? 독립 부대의 해산? 아니면 자신의 두뇌?
히폴리타는 흥미진진하게 그를 바라봤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제스 홀란트는 아주 단순한 인간이었다.

"어...... 그럼 제 보상도 똑같은 걸로 할게요."
"에엥? 대, 대체 왜!! 아무 의미 없는 짓인데!!"
"아니, 몸을 요구하길래..... 나도 했는데."

히폴리타는..... 점점 혼란에 빠졌다.

---------


이겨도, 져도 이득이잖아?
난 체링겐 공작가의 신동이라는 여자가 신기했다.

'사실 성욕을 숨기고 있었나.'

병사들을 통해 경험했다. 억눌린성욕이 해방되면 무시무시하다. 이 여자도 그럴 가능성이 있었다.

'아무튼 지면 히폴리타가 나를 따먹고, 이기면 내가 히폴리타를 따먹고? 손해 볼 수가 없네.'

일이 어떻게 이리도  풀렸을까. 기이할 노릇이다.
 싱글싱글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남은 건 날짜를 잡는 것뿐이다.

"그럼 모의전은 언제로 할까요?"
"아, 아니..... 그보다 보상이....."

어디서!! 내 이득을 포기할 생각은 단 하나도 없다.
 단호하게 말했다.

"일주일 후. 그때가 좋겠네요. 그럼 이만!!"
"잠시만요!!"

왠지 처절하게 들리는 외침이었지만, 무시했다.  자업자득이다.
그러게 누가 엉뚱한걸 보상으로 달라고 시켰나.

히폴리타의 천막에서 꽤 떨어진 후, 난 한나 누나에게 물었다.

"근데 독립 중대 이야기가 너무 뜬금없었나?  저렇게 놀랐지?"
"아, 그거 내가 엿들은 거라서."
"엿들었어....?"

기사한테 기척을 들키지 않는다. 한나 누나가 분명도적은 아닐 텐데..... 실력이 그 정도였나.
용병의 평균 실력은 분명히 낮았다. B급 용병만 되어도 상위 1%인데, B급이 수습 기사보다 약할 정도다. B+급은 되어야 수습 기사와 대등했다.

'물론 A급 용병은 평기사쯤 되지. 한나 누나는 그중에서도 확실히 상위권이고.'

상위권 A급 용병이 기사한테 기척을 숨길 수 있던가? 조금 이상하긴 했다.

"누나, 혹시......"
"말해봐."

평소처럼 털털한 한나 누나.  갸웃거리며 물었다.

"용병왕 같은  아니지?"
"푸흡, 뭐?"
"아니..... 용병왕은 신분을 숨기고 다닌다길래."

용병왕. 진짜 왕은 아니고, 그냥 용병 중에 가장 쎈 놈이다.
녀석의 취미는 익히 알려졌는데, 바로 신분을 위장하고 약한 녀석들과 노는 거였다.

'하도 이상하니까 용병왕인 줄 알았네.'

한나 누나는 폭소를 터트리며 부정했다.

"푸흐흐흐, 그렇게 봐주는 건 고맙지만 말이야. 내가 용병왕을 하기는 너무 어리지 않아?"
"하긴..... 30년 전부터 활동하던 인간이니까."

어이없어하는 반응을 보니까 아닌 모양이다. 시기도 맞지 않다.
 적당히 납득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무의식적으로 훈련장 쪽을 향했는데, 토너먼트가 거의 끝난 분위기였다.
어렴풋이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저런 상품 대신에 천인장님을 주십시오오오!!"

 달라니, 건방지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충성스럽다고 해야 하나.
헛웃음을 흘리며, 소리 지른 녀석을 봤는데.

"오."

좀..... 아니,  이뻤다.
못이기는 척 넘어가고 싶을 만큼.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