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화 〉이제는 내 기사(2)
실바를 씻겨주는 건 금방 끝났다.
무엇보다 그녀의 속살이 너무 타이트해서 폭풍 섹스를 못했기 때문이다.
'꿰뚫을 수는 있는데, 고통이 심할 테니까.....'
실제로 짧은 피스톤질의 결과로 그녀의 속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거기에 포션을 발라주는 거로 마무리 애무를 대신했다.
묙욕시설 밖으로 나가기 전, 나는 노예를 시켰다.
"적당한 옷 좀 가져와. 여자용 평상복 말이야."
"예."
그녀의 속옷은 흠뻑 젖었고, 내가 찢었기 때문에 더 쓸 수가 없다. 가벼운 선물이라고 생각해도 좋으리라.
노예가 옷을 가져오는 사이, 우리는 상쾌하게 몸을 말렸다. 참고로 드라이기는 실프다. 철제 원기둥 안에 실프를 넣어서 바람을 계속 만드는 거다.
후우웅-
"신기합니다, 천인장님!! 정령을 이토록 사소한 곳에 쓰다니....."
"뭐 출력이 약해서 전투에는 쓰지도 못해. 애초에 전투에 쓸 정도면 이런 취급을 받지도 않고."
그녀는 몸을 말리고 머리를 거칠게 터는 중이었는데, 내가 실프를 대신 잡았다.
"말려줄게. 똑바로 서봐."
"아..... 감사합니다!!"
후우웅-. 실프의 바람이 머리를 말린다. 문득 샐러맨더도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뜨거운 바람도 만들고.... 요리할 때도 쓰고 개꿀인데.'
아쉽지만 가문에서 데려온 회의 보조는 실프와 운디네. 두 정령만 쓸 수 있다. 난 적당히 만족하며 실바의 머리를 말렸다.
툭툭 털어낼 때마다 물방울이 비산한다. 물 때문에 뭉친 덩어리를 손으로 훑어 풀어줬다.
실바는 한동안 가만히 있다가 입을 열었다.
"......대접받는 것 같습니다, 천인장님."
"대접 맞아. 누가 이렇게까지 해주겠냐."
실바가 다시 입을 다문다. 사실 전부 꼴리는 대로 행동한 거였지만, 사람마다 해석은 다양한 셈이다.
물방울이 앞쪽으로도 튀길래 실바의 가슴에도 바람을 흩뿌렸다. 그러면서 주물거리는 건 당연하다.
손을 가득 채우는 그녀의 가슴. 살덩이를 가지고 놀다가 유두를 건드렸다.
"흐으으....."
"거 참, 말려주기만 해도 이런다니까."
"차, 참겠습니다."
대략 10분쯤 지나자 그녀의 머리는 뽀송뽀송해졌다. 킁킁-. 운디네로 씻어서 그런지 냄새도 괜찮다.
바깥에서 들리는 목소리.
"옷을 가져왔습니다."
"놓고 가."
난 노예가 가져온 옷을 실바에게 건넸다. 그러자 재질을 만지고는 감탄하는 그녀.
"좋은 건데.... 조심스럽게 입고 돌려드리겠...."
"그냥 받아."
"괘, 괜찮습니까?"
"뭐 얼마나 한다고."
솔직히 가격도 몰랐다. 그냥 집에서 흔히 보는 옷이니까 안 비싸겠지 생각할 뿐이다.
아주 멀끔해진 우리는 다시 천막으로 향했다. 섹스 2차전은 아니고, 가볍게 저녁이나 먹으면서 대화하기 위함이다.
내 천막은 멀지 않아서 금방 도착했다.
"다 왔군."
스르륵-
문을 걷고 들어가자, 기다리고 있는 앨리스가 보인다. 식사에 참여하라고 지시해둔 상태였다.
앨리스를 보자마자 바짝 경례를 올리는 실바.
"충성!! 제국의 백합을 뵙습니다!"
조금 황당했다. 나는 천인장인데, 앨리스를 부르는 칭호가 더 간지나지 않나? 게다가 나를 옆에 두고 경례를 올리다니....
"실바? 나한테 다시 인사해봐."
"아, 앗!! 실수했습니다!!"
쩔쩔매는 실바. 귀찮아서 대충 넘어가기로 했다. 앨리스가 준비했는지, 적당한 크기의 테이블과 의자 3개가 있었다.
털썩 주저앉으며 묻는다.
"앨리스 경, 음식은 언제 나와?"
"곧 나옵니다."
"고기?"
"훈제 돼지와 치즈로 알고 있습니다."
그저 그렇네. 툴툴대는데, 실바의 눈이 초롱초롱해진 게 보인다.
"트, 특별식입니까?"
"어.....?"
아, 보통 훨씬 맛없는 거로 먹던가. 헛웃음으로 얼버무리며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하하, 아무튼 말이야. 앨리스 경, 의논할 게 있어."
"말씀하십시오."
"여기, 실바 말이지. 내 개인 기사로 삼으면 어떨까?"
".....?"
눈썹을 슬쩍 올리는 앨리스. 그녀의 도도한 얼굴이 탐스러웠다.
실바도 물론 시원스레 생겼지만, 이렇게둘을 동시에 보니......
'미안하다, 실바. 얼굴은 좀 부족해. 그래도 맛있었어. 특히 쫄깃한 속살이....'
앨리스는 나와 실바를 번갈아 보더니 말했다.
"실바 경도 기사라고 알고 있습니다. 분명 모시는 분이 있을 텐데요."
"있기야 있지. 그래도 뺏어올 생각이야. 실력이 탐나잖아?"
앨리스의 얼굴이 조금 일그러진다. 같은 기사라서 소위 '기사 감수성'이 발동한 걸지도 모른다.
지켜보던 실바가 황급히 끼어들었다.
"오, 오해하지 말아 주십시오!! 저는 협박받은 게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모시는 분을..... 버리고 싶습니다."
"정말인가?"
쏘아붙이듯 말하는 앨리스. 상당히 드문 말투였다. 하기야 앨리스같이 고지식한 기사는 이해 못할 수도 있다.
'특히 앨리스는 탄탄대로만 달렸으니까.... 다른 경우를 잘 모르겠지.'
난 실바를 대신해서 설명했다.
그녀가 모시던 귀족은 어지간히 폐급이며, 범죄도 꽤 저질러서 충분히 서약을 파기할 만하다고 말이다.
표정을 굳히는 앨리스.
"그래도 기사는 끝까지 충성해야 합니다. 주인을 판단하는 건 기사가 아닙니다."
"아주 훌륭해. 그래서 내가 믿기도 하고..... 하지만 모든 사람이 앨리스 경 같을 수는 없잖아?"
그녀처럼 원칙을 모두가 지킨다면 배신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실바는 조금 부끄러운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살짝 가라앉은 분위기인데, 마침 음식이 들어왔다. 스멀스멀 풍기는 돼지 훈제의 냄새.
난 실바 앞에 접시를 놓으며 격려했다.
"괜찮아, 배신이라고 생각하지 마."
바로 끼어드는 앨리스.
"배신 맞습니다. 주인을 모시지 않는 기사는...."
"탈출!! 그게 훨씬 어울리겠어. 실바는 이때까지 고통받다가 탈출한 거라고. 뭣보다 서약에 기사의 제약만 있는 건 아니잖아?"
주인도 마땅히 의무를 다해야 한다. 경제적인 보상은 당연하고, 최소한의 품위를 지킬 의무도 있었다.
그걸 지적하자, 앨리스도 잠시 주춤한다.
"그건...."
"상대가 먼저 의무를 저버린 셈이야. 너무 화내지 말자고."
"......"
끝까지 내 말에 수긍하진않았지만, 그래도 대놓고 반대하진 않는다.
'휴, 애 체하겠다. 기껏 데려왔더니 입도 못 대고 있는 거 아니야?'
슬쩍 확인한 실바는 눈치를 보면서도 고기를 맛나게 먹는 중이었다. 이런 방면에서 걱정할 필요는 없었던 모양이다.
우적-우적-
끝없이 실바의 입으로 들어가는 고기. 잠시 봤을 뿐인데 벌써 1인분 이상이 사라졌다.
난 앨리스한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앨리스 경, 생각해봤는데 말이야. 내가 지휘하는 귀족가 사병들, 잘하면 꾈 수도 있겠더라고."
"예."
"갑자기 사병 몇백이 늘어나면 가문에 부담될까?"
앨리스는 잠시 멈칫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손가락으로 셈한다.
"몇백은 부담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다른 곳의 지출을 줄여야 할 겁니다. 개인 지출이 아니라, 사업 단위로 줄여야 되겠지요."
"으음....."
"차라리 그런 건 어떻습니까?"
앨리스는 내 옷을 가리켰다.
"도련님이 명품 사랑을 멈추시는 겁니다. 그러면적어도 사병 서른은 거뜬히 보충할 겁니다."
"명품 사랑.....?"
난 옷을 만지작거렸다. 이게 그렇게 좋은 건가? 평범한 거 같은데....
앨리스는 한숨비슷하게 내쉬며 말했다.
"후우우, 도련님은 어릴 적부터 명품을 좋아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말도 제대로 못 할 나이부터요."
"아....!!"
기억났다. 난 지구 출신이다. 갑자기 중세로 오니까평범한 옷은 너무 불편했다. 그래서 어릴 때 불편한 옷은 찢어버리고, 부드러운 옷만 골라 입었다.
'그냥 재질에 대한 불평만 좀 했던 건데..... 그게 명품으로까지 이어졌나?'
그 말을 듣고, 앨리스와 내 옷을 비교하자 좀 다른 거 같았다. 두께에 비해 훨씬 말랑한 것부터 시작해서 바느질 등의 마감도 철저한 편이다.
'어쩐지 실바가 놀라더라....'
난 멋쩍게 뒤통수를 긁었다.
"이제 불평할 나이는 지났지. 크흐음!! 평범한 옷도 입어볼까?"
"예, 꼭 그래 주십시오, 도련님. 아까 말하신 사병을 들이는 계획에도 도움이 될 겁니다."
"내 전용 부대를 만들면, 앨리스 경이 훈련 좀 봐줄래?"
".....시간이 남으면 하겠습니다."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나름 도란도란한 분위기라고 생각한다.
식사가 끝났을 무렵엔 접시가 텅텅 비었다. 배를 문지르며 중얼거리는 실바.
"더.... 먹고 시포요오....."
"달라고 할까? 대신에 접시 못 비우면 징계다."
"아, 아닙니다아아....."
실바는 헤실헤실 웃으며 답했다.
그녀는, 오늘 5인분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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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던가.
실바를 내 기사로 만드는 일을 굳이 지체하긴 싫었다.
"밤에 해치워버리자!"
나는 앨리스와 실바를 대동하고, 멜팅 남작가의 천막으로 쳐들어갔다.
촤아아-
천막을 찢을 기세로 열자, 안에서 허둥지둥하는 소리가 들린다. 보이는 사람은 단 두명. 귀족으로 보이는 남자와 칼을 찬 여자 한 명이었다.
난 뚜벅뚜벅 걸어가며 말했다.
"그쪽이 멜팅 가문의 차남인가?"
"누, 누구냐!! 네 정체부터...."
실바를 확 잡아당긴다. 멜팅 가문의 차남이 실바를 보고 정지한다.
"어, 어? 네가 왜 여기에....? 분명 부대로 끌려갔다고...."
"리우님. 할말이 있습니다."
"이년!! 지금 나를 내려보면서 말하는 거냐!!"
갑자기 기세등등해진 멜팅 가문의 차남. 평소 어떤 태도였는지 뻔히 보인다.
실바는 당황하지 않고대꾸했다.
"예, 왜냐면 서약을 파기할 거니까요. 더 이상 쓰레기 같은 당신과 그 가문에 얽매이지 않을 겁니다."
"뭐, 뭐.....?"
잠시 놀랐던 남자는 이내 분노를 표했다.
"이년이 뭘 믿고 까부는 거냐!! 수습 기사 나부랭이 주제에, 기사 취급해줬더니....."
"불법 도박장 뒤를 봐주는 게 언제부터 기사의 일이었습니까!!"
"아니....."
"그뿐만이 아닙니다. 예쁘장한 영지민 납치, 고리대금업자한테 뒷돈 받기, 상단과 담합해서 물가 올리기! 이딴 게 언제부터 기사의 일이었냐는 겁니다!!"
멜팅 남작가 차남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 주변의 눈치를 보는지 마구 두리번거린다.
"이걸 진짜!! 넌 내일부로 기사 자격을 박탈당할 줄 알아라. 어디 평민 출신 나부랭....."
"그건 안 되겠는데."
내가 한 발짝 나섰다. 마침 달빛이얼굴을 비춰서 분위기가 적절했다.
"넌 또 누구....."
"제스 홀란트. 홀란트 백작가의 삼남이자, 실바의 새 주인이다."
녀석의 얼굴은, 끝없이 창백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