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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화 〉협박의 기술 (39/111)



〈 39화 〉협박의 기술

"그러면 좋냐?? 쾌감이  커?"

진짜로 궁금해서 물어봤다. 반쯤 비꼬는 용도도 있었는데, 해본 적이 없어서 궁금증도 있었다.
내려오던 귀족은 귀찮다는  말했다.


"신입이신가? 나중에 해봐. 짜릿한 맛이 있다고."
"그래?"

하지만 딱히 해볼 생각은 들지 않았다. 뭣보다 자세가 너무 추했던 것이다. 여자랑  붙어서 삽입한 채로 보행하다니.....

'동물원 원숭이도 아니고.'

쯧, 난 혀를 차며 물었다.

"여기 있는 귀족들 가문을 알  있나?"
"하아아, 뭐 인맥이라도  있으셔? 그런 거 물으려면  말고 접수대에 가서 물어야지."
"오."


일리있는 말이다. 삽입한 채로 걸어 다니는  너무 충격적이긴 했지만, 놈이 딱히 잘못한 것도 없다.  녀석이 섹스를 하도록 내버려 두고 접수대로 향했다.
여관의 카운터를 살짝 바꾼 느낌이다.
접수대의 여자는 사근사근 웃으며  맞이했다.

"반갑습니다, 고급 회의장에 오신  환영합니다!!"
"인사는 됐고, 여기 귀족 목록이나  알 수 있을까?"
"죄송하지만, 그건 어렵습니다. 총사령관께서 자제분들의 신상은 철저히 보호하라고 하셔서....."
"하. 저렇게 얼굴이 빤히 보이는데."

총사령관은 신상을 보호해주는데, 정작 본인들은 1층까지 나와서 보행 섹스 중이다.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하기야..... 누가 물어본다고 대답해주는 게 이상하지. 나중에 가문으로 돌아가면 책잡힐 수도 있는 건데.'


난 은근슬쩍 지위를 들먹여봤다.

"내가 천인장인데도  되나?"
"증명이...."
"여기."


신분패를 내밀자 여자는 면밀히 살펴봤다. 웃으며 끄덕인다.


"확인했습니다. 다만 군 내부의 인물이라도 말하지 말라고 하셔서....."
"으음."


꽤 철저하다. 여기서 깽판을 놓는 것도 좋은 수는 아니었다.


'뭣보다 앨리스를 데려오지 않았어.'


앨리스는 훈련을 맡았다. 아무 때나 동원할 수는 없었다. 곁에 있는 건, 한나 누나와 에델뿐.
내가 인상을 찌푸리는 찰나, 한나 누나가 답답하다는 듯 나섰다.

"뭐가 문제야!! 어차피 폭력을 안 쓰고 찾으면 되는 거잖아?"
"그, 그렇긴 한데....."
"에델, 가문 목록 좀 줘봐."

한나 누나는 에델의 서류를  낚아챘다. 그러더니 2층으로 성큼성큼 올라가며 외친다.

"아리스 가문!! 아리스 가문 출신 있나!! 돈을 주러 왔어!!"
"이, 이게 뭔....."

재빨리 한나 누나의 뒤를 쫓았다. 여관의 2층은 복도식 호텔의 구조였다. 통로가 있고, 방이 죽 늘어선 모양.
그곳을 돌아다니며 쩌렁쩌렁 외치는 한나 누나.


"아리스 가문!! 없으면 루이 가문!! 얘네도 없으면....."
"이게 뭔....."

황당하다. 이렇게 무식하게 찾는다는 건가.
머리 대신에 몸을 실컷 써서 찾는 방식이었다. 더 골때리는 건, 한나 누나가 가문을 10개쯤 불렀을 때, 방문이 하나 열렸다는 사실이다.

"뭐야? 나는 왜 찾아?"
"오!! 너 누구길래?"
"방금 오릭스 가문 출신을 찾는다고....."
"제스!! 한 명 찾았어. 데려갈게!!"
"어어.....?"

건장한 덩치의 남자가 한나 누나한테 질질 끌려온다. 뒤늦게 녀석이 있던 방에서 귀족 자제 몇몇이 얼굴을 내밀었다.

"뭐야? 누구길래 여기서 소란이냐!!"
"너희는 상관없으니까 신경 꺼."
"대체...."


제길, 이러다가 이상한 소문이 퍼질 판이다. 귀족 자제들은 '고급 회의장'에서 최대한 행복해야 했다. '고급 회의장'이 위험하다는 소문이 퍼지면, 총사령관의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


'그건 안 되지!! 내가 무능해도 전쟁에 폐를 끼칠 순 없다고!!'

난 재빨리 웅성대는 무리에게 다가갔다. 한껏 웃으면서 그들을 달랜다.

"하하, 안녕하십니까. 천인장이자 홀란트 백작가의....."

웃는 낯으로 적당히 둘러대자 귀족들도 납득했다.


"흠, 그러니까 저 녀석이 데려온 사병이 문제를 일으켰다는 겁니까?"
"바로 그거죠. 책임을 물으려는 건 아니고, 그저 처분을 논의하는 거니까 걱정 마시죠."
"알겠습니다. 기회 되면 나중에 술이라도....."
"하하!! 시간이 남는다면요."


이때를 틈타 나와 인맥을 쌓으려는 걸 적당히 차단했다. 설명한 후에는 다시 한나 누나에게 돌아갔다.
누난 벌써 1층까지 녀석을 끌고 간 상태였다.


"이, 이거 놔라!! 내가 누군 줄 알고....!!"
"잘은 모르겠는데, 내 동생이 찾잖아. 찾으면 재깍재깍 나와야지."
"대체 동생이 누구냐!!"

하아아, 이놈의 대책 없는 누나. 나도 그렇지만, 한나 누나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일을 저지르는 걸까.
 한탄하면서 차근차근 설명했다.
설명을 전부 들은 녀석의 얼굴은 가관이었다.

"지금 오릭스 가문의 기사를 버리라는 겁니까....? 그게 무슨 뜻인지는 알고 말하는  맞습니까?"
"예예, 물론 알죠."

뭔가 여기까지 오니까 존댓말을 쓰게 된다. 특별한 이유는 아니고, 어디까지나 '고급 회의장'의 평화로운 분위기를 유지해주기 위해서였다.

'에휴, 이 정도면 애국자 맞겠지?'

난 자꾸 튀어나오는 욕과 반말을 삼키며 말했다.

"뭐 오릭스 가문에 기사가 한 명입니까? 아니잖아요. 게다가 지금 가진 돈도 별로 없을 텐데?"
"그, 그거는....."

한나 누나가 녀석의 품속에서 돈주머니를 슬쩍 꺼냈다. 아주 자연스러운 손놀림이라 도둑질이라는  티나지도 않았다.
녀석의 돈주머니에는 은화가  있을 뿐이었다.


"쯧쯧, 이거면 뭐 도박은 못 하겠네. 전쟁 끝날 때까지 도박도 못하고 여자 엉덩이나 주무를 겁니까?"
"그럴 수는 없는데..... 가문에다가  보내달라고 요청하면....."
"가문? 설마 지휘권을 다 넘겼다는 걸 말한다는 뜻입니까?"


난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 쳤다. 그러자 조금 불안한 표정을 짓는 오릭스 가문의 자제.

"무슨 문제라도.....?"
"당연히 있지!! 만약에 오릭스 가문의 병력이 전멸당하면? 지휘권을 넘겼으니까 화살받이로 쓰여도 항의도  하죠. 당연히 전멸 당할 수 있다는 겁니다."
"......."
"지휘권을 넘겨서 그렇게 된 걸 말해버리면 영원한 머저리가 되는  아닙니까? 그치?"
"그게 그렇게....."

녀석은 아직도 얼떨떨한 얼굴이었다. 난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팡팡 쳤다.
그리고는 고급 회의장 바깥으로 녀석을 끌고 나간다.

"어, 어? 어딜 가는 겁니까!!"
"쉿, 조용히. 둘이서만 할 말이 있으니까."

우리 셋은 오릭스 가문의 자제를 둘러싸고 으슥한 골목으로 향했다. 흥미진진한 얼굴로 바라보는 한나 누나.


"야, 말 좀 잘한다? 가문에서 이렇게 혀를 쓰지 그랬어?"
"가문에서는 가만히 있어도 행복하잖아."

주위를 확인했다. 인적은 확실히 없다. 녀석도 마찬가지로 확인했는지 표정을 조금 굳혔다.

"이제 말해 주시죠."
"그래. 내가 제안하고 싶은 건 말이다."


난 말을 조금 골랐다. 여기서부터 중요하다. 서약을 모조리 파기시키려면, 아주 그럴듯한 핑계가 있어야 한다.


'괜찮은  있기는 해.'


난 비밀 이야기를 한다는 듯 목소리를 낮췄다.


"내가 천인장인 건 알죠?"
"예, 아까 말씀하셔서...."
"그러면 내가 오릭스 가문의 병력을 지휘하는 것도 알겠네요?"
"어......?"
"마음만 먹으면 오릭스 가문의 병력을..... 희생양으로 쓸 수도 있다는 거야."

마지막은 반말. 효과는 확실했다.

꿀꺽-
녀석은 침 삼키는 소리를 내며 나를 바라봤다. 눈동자는 벌써부터 떨렸다.


"지, 지금 지휘관의 권력 남용을...."
"간단한 거야. 내가 마음먹기에 따라 오릭스 가문의 병력은 몰살당할 수도, 온전히 보전될 수도 있어. 무슨 뜻인지 알지?"
"예."

녀석은 결심한 듯 말했다.

"제게 원하는 게.... 있는 겁니까?"
"아까 말했잖아. 기사 한 명과 서약을 파기하라고."
"그, 그건 있을 수 없는....."
"아니면? 오릭스 가문의 병력이 몰살당하는  좋나? 그것도 네가 지휘권을 넘긴  때문에!!"
"어,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녀석은 반쯤 울먹이고 있었다.

"간단하잖아. 서약을 파기해. 그거 하나면 되는 거야."
"혀, 협박입니다. 이걸 말하면....."
"개소리!! 내가 여기서 무슨 말을 하든 증거는 안 남아. 밖에 나가면, 너 같은 머저리의 말을 믿을까? 아니면 망나니라는 소문은 있어도 천인장인 내 말을 믿을까?"
"......"
"잘 생각해. 뭘 선택할지."


물론 진짜로 화살받이를 따로 세운다거나 할 생각은 없었다. 그냥 공갈포일 뿐이다.

하지만 녀석에게는 다르게 느껴졌을 거다.
오릭스 가문의 자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같은 식으로 우리 부대 기사 10명의 서약을 파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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