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화 〉16인의 괴물
다음 날 아침.
"아으으으......"
돌아버리겠다. 나는 손 하나 까딱하지 못했다.
뱃속이 허하다. 마치 일주일을 넘게 굶은 것처럼 속이 텅 비었다.
그뿐인가. 머리가 핑핑 도는것이 마약이라도 한기분이었다.
"끄으음."
머리를 살짝 올리는 것만으로도 신음이 나온다. 나는 아직까지도 매여있던 안대를 살짝 풀었다. 땀에 젖었다가 말라서 퀴퀴한 냄새가 난다.
꽤 오랜만에 보는 빛 때문에 눈이 부시다. 알고 보니 해가 꽤 높이 떠 있었다.
'아침 10시쯤....?'
주변에 기사는 하나도 없었다. 마지막까지 나를 탐하던 녀석이 10분 전에 나갔던 것이다.
진짜 징한 놈들이었다.
스륵-. 누군가 천막을 걷고 들어온다. 에델이었다.
"제스님...... 괜찮으십니까?"
"아니."
표정이 확 굳는 에델. 그녀는 다급한 얼굴로 다가와 몸 곳곳을 더듬었다.
"다치신 겁니까? 만약 그랬다면 부대고 뭐고....."
"그건 아닌데 말이야. 그냥 너무 힘들어."
"아....."
"물론 밤새도록 섹스는 해봤지. 여러 명이랑 섹스하는 것도 해봤지."
나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하지만 힘이 넘쳐나는 여기사 16명과 밤을 새워본 건 처음이야. 진짜 짐승인 줄 알았다고....."
"사정은 몇 번이나 하셨습니까?"
"글쎄다. 20번 이후로는 의미가 없어서 안 세봤는데."
사정을 10번 넘게 하면 뭐가 나오지도 않는다. 그저 저릿저릿한 쾌감과 함께 고추가 움찔거릴 뿐이다.
에델은담요를 가져와 부드럽게 덮어줬다. 마치 피해자를 다루는 듯한 태도다.
"고생하셨습니다."
"확실히..... 진짜 함부로 병사들 성욕을 자극하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어."
"조금 위험한 방법이긴 하지요."
"중간에 좀 중재할 생각은 없었고?"
에델은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제가 소음을 줄이지 않았으면 부대의 전병력이 깨어났을 겁니다."
"그러면?"
"16명과 난교 중인 제스님을 봤겠지요."
"크큭."
확실히 곤란하다. 내 체면을 보나, 부대의 사기를 보나.
이미 16명이 먹는 걸 봤다면, 무슨 의욕이 들어서 훈련을 열심히 하겠나. 이건 반드시 비밀이어야 했다.
에델은 조심스럽게 내 배를 가리켰다.
"제스님.... 여기 이건 뭡니까?"
"응?"
고개를 들어 겨우겨우 확인하자, 붉게 부풀어 오른 키스마크가 보인다. 마지막에 떠난 놈이 남긴 흔적이었다.
천인장님을 사랑한다나, 뭐라나. 언젠가 나를 독점할 거라고 선언한 녀석이다.
'어디 그런 놈이 한둘이겠냐만.'
"키스 마크야."
"그..... 칼 모양입니다."
"수십 번은 했거든."
일종의 도트 그림이었다. 키스 마크로 칼 문양을 새기는 것.
대화를 하다 보니 갑자기 아랫도리가 아파진다.
"끄으으으....."
"아프십니까?"
"존나 아파."
20번을 쌌으니 당연한 일. 잠시 떼어내고 싶을 정도로 아렸다. 난 환자 같은 손길로 에델을 붙잡았다.
"나 꽁꽁 싸매서 목욕 시설까지 가줄래? 좀 씻어야겠어."
전신에 애액과 땀으로 흥건하다. 대부분 말라붙었는데, 그래서 더 찝찝했다. 특히 내 몬스터는 몇 명한테 들어갔다 나왔는지 세지도 못했다.
'다들 천인장님 물건 좀 집어넣는다고 난리였지. 그나마 발기가 밤새 유지돼서 다행이야.'
아니었으면 경쟁이 더 치열해졌을거다. 에델은 조금 안쓰러운 눈길로 보다가 승낙했다.
"잘 숨겨서 운반하겠습니다."
"고마워."
"지금은 지휘관 선발전이 진행 중입니다."
"잘됐네. 내가 상대한 16명은 제 실력을 못 낼 거야."
밤새 미친 듯이 섹스해놓고 본일 실력이 나올 리 없다. 나는 안심하며 씻으러 갔다.
운디네에서 나오는 따뜻한 물을 맞으며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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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난 꽤 멀쩡한 정신으로 일어났다. 기운 폭주현상 이후로 몸도 꽤 튼튼해져서 가능했다.
'하여간 회복에서는 천재니까.'
어제소모한 양기를 좀 가늠해봤다. 생각보다 많았다. 여기사들이 계속 흡수한 것도 있었고, 나도 즐기면서 알게 모르게 양기를 뿜었다.
어제 밤 내내 천막에는 내 양기가 넘쳐흘렀다. 그래서 여기사들이 더 발광하기도 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소모한 양기가 많았으니.
"대충 일주일은 참아야겠어."
섹스를 잠시 멈춘다. 어렵지 않았다. 어제 질리도록 했으니까.
정신을 차리자, 곁에서 보호하던 에델이 말을 걸었다.
"식사하시겠습니까?"
"그래야지."
고기와 탄수화물이 그득한 음식을 퍼먹는다. 허겁지겁 먹는데, 앨리스가 들어왔다.
그녀는 음식에 고개를 처박은 나를 지그시 관찰했다.
으적-으적-
"아, 앨리스 경. 무슨 일이야?"
음식으로 볼이 부푼 상태. 앨리스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더니 보고했다.
"모의전에 데려갈 인원을 뽑았습니다. 도련님 지시대로 거의 실력 순서대로 선발했습니다."
"잘했어."
"예, 지휘관으로 뽑힌 병사는 대부분 기사 출신입니다. 이름은......"
이름이 하나씩 호명된다. 난 그럴 때마다 핏기가 싹 가시는 걸 느꼈다.
전부..... 전부 어제 임명한 '제스 기사단' 소속이었기 때문이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분명 지휘관에 뽑히지 말라고 지시했건만!!'
혼란스럽다. 엘리스를 향해 물었다.
"그.... 그놈들 실력이 좋았나?"
"예. 의심의 여지 없이 뛰어났습니다."
"해롱거리지는 않았고?"
"조금 체력이 부족해 보이긴 했는데, 그걸 상쇄시킬 정도로 투지와 살기가 넘쳤습니다. 일선에서 돌격하기에 최고의 인재들입니다."
"투지와 살기.....?"
"예, 전투 때 반쯤 이성이 날아가서 날뛰는데 저조차도 섬뜩할 정도였습니다. 도련님이 봤다면 조금 공포에 질렸을 수 있습니다."
씨발, 좆됐다. 대충 그림이 그려졌다.
'어젯밤이 너무 즐거웠겠지. 살면서 처음 해본 경험.....'
나를 잊지 못하는 거다. 그냥 선발전에서도 잘하면 나를 또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제기랄, 하지만이래서야 내가 짠 계획을 성공시킬 수가 없다.
'기사를 일반병으로 위장시키는 거..... 그걸 못쓰잖아.'
혹시 계획적이었나. 난 앨리스에게 물었다.
"지휘관으로 뽑힌 녀석들 말이야. 기색은 어떻던가?"
"그게 조금 이상했는데, 전체적으로 살짝 후회하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그랬겠지..... 계획적인 건 아니고 그냥 싸우다 보니까 본능이 발휘된 거다. 즉, 나와의 하룻밤이 여기사 16명을 광전사로 만들었다는 뜻.
난 한숨을푹 내쉬며 손을 내저었다.
"잘했어. 나가봐."
"예, 도련님. 앞으로 훈련은....."
"모의전에 나갈 녀석들을 집중적으로 봐줘. 다른 인원은 백합 기사단원한테 맡기고."
"알겠습니다."
앨리스는 차분히 나갔다. 내가 머리를 감싸는데, 에델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제스님, 차라리 잘됐습니다."
"뭐가? 내 계획이 완전히 망가......"
"차마 말은 못 했습니다만."
에델은 잠시 끊었다. 나와 눈을 마주치고는 힘주어 또박또박 말한다.
"제스님 계획. 구.렸.습.니.다."
"......?"
"진짜입니다."
"왜.... 왜!! 나름대로 괜찮은......"
에델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제스님은 그게 힘으로 돌파하는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많이 나왔던 전술입니다. 병법책을 뒤져도 분명 있을 테고요."
"어..... 뻔하다는 거야?"
"예. 특히나 히폴리타 체링겐 같은 인재라면 무조건 고려했을 겁니다. 애매한 규모의 전투에서 쓸만한 전략이니까요."
예측 당하면 무조건 진다. 히폴리타와 나의 차이는 그 정도였다.
그러면? 난 에델을 노려봤다.
"내 전술이 뻔했다는 건 알겠어.차라리 전술을 못 쓰게 된 게 더 좋겠네. 그러면 이제 어떻게 이기자는 거지?"
"제스님에겐 제스님의 방법이 있습니다."
"......?"
나만의 방법. 그런 게 있었던가.
뭐 성욕으로 부대를 휘어잡긴 했어도 다른 건 몰랐다. 에델은 친절하게 말을 덧붙였다.
"최전방에 나서십시오."
"뭐?"
"히폴리타는 문관입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뒤에서 지시하는 게 고작입니다. 하지만 도련님은 튼튼하시지 않습니까?"
"몸은..... 그렇지."
팔씨름을 통해 기운의 컨트롤도 배웠다. 원래 신체 능력도 뛰어났고. 히폴리타보다는 확실히 월등하리라.
내가 동의하자 에델은 예쁘게 웃었다.
"그러니 앞장서십시오."
"달랑 방패 하나 들고?"
"정확합니다. 어차피 모의전이니, 도련님이 죽는 일까지는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뭉툭한 연습용 칼을 쓸 거 아닙니까?"
"음.... 그래야지."
아군끼리 전력을 갉아먹을 순 없다. 진검을 써서 사상자가 나오면 곤란했다.
"도련님은 죽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스 기사단'이 보기엔? 도련님은 온실 속의 화초일 겁니다. 혹시라도 맞으면 아주 큰일 나는 존재 말입니다."
"아...... 보호본능을 자극해라?"
"네."
에델은 나를 보고 단언했다.
"도련님이 위기에 처하는 순간, 상대는 16명의괴물을 맞이하게 될 겁니다."
16명의 괴물.
어젯밤을 떠올리자 그 표현이 이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