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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화 〉제국의 보물 제스 홀란트! (58/111)



〈 58화 〉제국의 보물 제스 홀란트!

"숫자가 너무 많아!! 저걸 우리가......"
"동생! 정신 차려. 방향을 정확히 보라고."

한나 누나의 말에 간신히 정신을 붙들었다. 오크 군대는 얼핏 봐도 일만을 넘는 규모였다.

'하기야 저런 규모의 병력이 고작 용병단 하나를 노릴 리가 없지.'

그렇다면 누구를? 정답은 곧 나왔다. 사병들이 모인 부대. 막 훈련 중인 아군을 향하는 거였다.
빨리 가서 알려야한다. 그전에 의문이 들었다.

"제기랄!! 암만 전선이랑 가깝다고 해도, 여기는 국경 안쪽이잖아! 어떻게 일만이 넘는 오크가 쳐들어오는 거냐고!"
"정찰병이 포섭당했거나..... 정찰 경로를 들킨 거겠지."

한나 누나의 우울한 대답이었다. 제 5황자가 경고했던 일.
아군의 배신이 벌써 나타난 것이다. 나는 저 멀리 보이는 아군 진지를 관찰했다.

우리 부대의 위치는 진지 안에서도 비교적 동쪽. 오크 부대가 오는 방향은 서쪽, 반대 방향이다.
그래도 최소한의 준비 시간은 갖춘 셈이었다.

"좋아, 일단 부대로 복귀해서 천인대를 운용하자! 아군이 버티는 동안......"
"아니야. 아군은 못 버틸 거야."

한나 누나의 단언이었다. 의문에  눈빛으로 바라보자, 한나 누나가 말을 덧붙였다.

"제대로 진형을 갖추고 싸워도  무너지는 훈련 상태야. 그런데 기습을 받으면? 형편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어."
"그럼 어쩌자고!! 고작 해봐야 여긴 40명뿐이야."
"으음......"

한나 누나의 걱정은 이해했다. 이미 만반의 태세를 갖춘 놈들이니 만만치 않을 거다. 하지만 일만이 넘는 군세에 용병단 고작 40으로 뛰어든다?

'계란도 아니고 불알로 바위 치는 격이지. 끔찍한 고통과 함께 자멸할 거야.'

그렇게 실랑이를 벌이는 중이었다. 갑자기 아군 진지에서 일단의 무리가 이탈했다.

"도망...... 은 아니네. 뭐지?"

생각보다 절도 있는 움직임. 천여 명이었는데, 빛이 반짝이는 것으로 보아 무장도 제대로 갖춘 듯했다.
그들은 크게 돌아서 오크에게 노출된 동쪽 진지로 향했다.

"그새 대응해서 진형을 갖춘 건가?"

대체 어느 부대가? 기습을 일찍 눈치채고 무장을 챙겨서 집합할 정도면..... 그리 생각하는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앨리스의우렁찬 목소리.

"이기면 천인장님과 독대다!!"
"천인장! 천인장! 천인장!"
"전원 돌격하라!!"
"천인장! 천인장! 천인장!"

한나 누나와 나는 서로를 멀거니 바라봤다.

"내 부하들 맞지.....?"
"응. 동생아, 네가 생각보다 능력 있었던 모양이다."
"허허......"

귀족의 사병들이 모인 부대는 총 2만4천 명 규모. 그중에서 가장 빨리 반응한 게 바로 내 천인대였다.

뒤에 있던 그리폰 용병단원이 툭 던진다.

"이거 고용주 말이 허언은 아니었네."
"그러게 말이야."
"반신반의였는데 괜찮은 고용주였어."

칭찬은 좋았지만, 마냥 즐길 때가 아니었다. 부하들에게 뒤처질 수는 없다. 나는 무릎을 한껏 굽히며 외쳤다.

"우리도 돌격한다!!"
"음?"
"가장 앞장서서 싸우는 자에게 영광이 있으리!!"

퍼어엉ㅡ

몸이 폭발적으로 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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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습을 가장 먼저 감지한 건 앨리스였다.
훈련이 끝나고 모두가 쉬고 있던 시간, 앨리스는 명상을 하다가 투박한 살기를 감지했다.

'희미하다. 그런데 거대하군.'

어렴풋이 느껴지면서도 거대한 살기? 대규모 부대를 뜻하는 거였다.
여기까지 판단했다면 이후의 반응은 정해졌다. 그녀는 부하들에게 지시해서 쉬고 있던 병사들을 전부 집합시켰다.

병사들이 의문을 품으며 준비하는 동안, 앨리스는 부대의 참모인 히폴리타에게 달려갔다.
천막을 거칠게 열면서 외치는 앨리스.

"참모님!! 적습입니다."

정말 느닷없는 통보다. 게다가 어떠한 설명도 없었다. 그런데도 히폴리타는 침착하게 대꾸했다.

"확실한가?"
"제 명예를 걸겠습니다."
"준비는?"
"이미 지시해놨습니다."
"당연히 오크 부대일 거고...... 수준이나 규모도 파악할 수 있는지?"

앨리스는 고개를 저었다. 대규모인 것은 확실하지만, 수천 단위인지 수만 단위인지는 알기 힘들다.
수준도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감지한 건 단지 투박한 살기일 뿐이다.

설명을 들른 히폴리타는 미간을 조금 찌푸렸다.

"하필 제스 공자가 없을 때 일이 생기네."
"도련님은 곧....."
"언제 올지는 모르는 거지. 아무튼 알았다. 5분 후에 나가지."
"예."

앨리스는 그길로 나가서 병사들을 다그쳤다. 적습을 피부로 느끼지 못한 병사들인지라, 조금 엉성했다.

앨리스가 나간 후, 히폴리타는 쓰고 있던 서류를 한쪽으로 거칠게 밀었다. 대신에 서랍에서 완성된 서류  개를 검토한다.

'쓸 수 있는 작전은..... 대략 세 개 정도? 난전이 될 텐데 얼마나 먹힐지는 모르겠네.'

갑작스러운 습격. 게다가 정찰병이 아니라, 기사가 제일 먼저 습격을 눈치챘다.
전혀 좋은 상황이 아니건만, 히폴리타는 가볍게 웃었다.

"영웅은 위기 속에서 탄생하니까요."

영웅이 되기 위해, 또 그가 좋아하는 남자를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 히폴리타는 준비했던 것을 꺼내 들었다.


10분 후.
천인대는 놀랍도록 빠르게 진형을 갖추었다.
병사들은 깔끔하게 무장을 갖추었고, 기사들도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그럭저럭 갑옷을 껴입었다.
게다가 가장 많이 훈련했던 진형, 치고 빠지기에 최적화된 진형이었다.

히폴리타는 흡족하게 웃었다. 근처의 앨리스에게 말을 건다.

"거의 완성된 군대네."
"그렇습니다. 원래 실력은 정규병 이상이었으니, 군기만 잡으면 되는 거지요."

가장 중요한 군기는 제스 홀란트가 잡았다. 앨리스는 넌지시 그걸 언급하는 거였다.
속이 빤히 보이는 말이었지만, 히폴리타는 가볍게 웃어넘겼다. 제스 홀란트와 경쟁하던 때는 이미 지났다.

"뭐 좋아. 그럼 내 호위는 누가 맡을 거지? 앨리스경은 소중한 전력이라서 호위 따위나 하기는 아까울 텐데."
"그렇습니다."

앨리스는 그리 말하며 조금 머뭇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애초에 히폴리타에겐 호위 기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10명에 달하는 체링겐 가문의 기사가 그녀를 지킨다. 저기서 호위를 더 요구하는  과한 짓이었다.
눈빛을 받은 히폴리타는 히죽 웃었다.

"체링겐 가문의 기사들은 같이 싸울 거야."
"예.....?"
"강하잖아. 강한 사람이 앞장서야지."

맞는 말이다. 다만 히폴리타의 입에서 튀어나올 줄은 몰랐을 뿐. 호위를 내세운다는 말에 앨리스는 히폴리타의 평가를 조금 상향 조정했다.

소중한 도련님을 위협하는 건방진 공녀에서 최소한의 상식을 갖춘 공녀로.
앨리스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참모님이 맡으신 남자 부대에서 일부를 뽑으면 될 겁니다."
"음, 괜찮네. 딱 3명 정도면 되겠어."

불충분하다. 앨리스의 목구멍까지 치솟은 말이었지만, 그녀는 바로 삼켰다.
앨리스에게 중요한 건 제스지, 히폴리타가 아니었다. 뭣보다 호위로 3명밖에 빠지지 않으면 싸우는 전력이 늘어난다.

앨리스는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뭘 또. 일단 출발해야지. 떠드는 사이에도 우리 오합지졸 사병들은 무너지고 있을 거야."
"예."

앨리스는 병사들을 돌아보며 크게 외쳤다.

"우린 기습을당했다."
"예."
"불리한 상황이다. 다른 아군은 완성되지 않았고, 아직 온전하지 않은 우리들이 아군의 희망이다."
"예!"
"하지만 희망을 품어라. 제국의 백합이 그대들과 함께한다. 내가 쓰러지기 전까지 그대들에게 패배란 없다."

앨리스는 백금발을 휘날리며 외쳤다.

"내가  것 같은가?"
"아닙니다!!"
"가자. 그리고......"

여기부터 제스가 들은 장면이었다.

"이기면 천인장님과 독대다!!"
"천인장! 천인장! 천인장!"

제스 홀란트가 키운 천인대는, 일만을 넘는 오크를 향해 돌격했다.
병사들의 눈에 두려움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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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두두두ㅡ

사십여 명이 지축을 울리며 달려간다. 저 멀리 있던 아군 진지는 성큼성큼 가까워졌다.

'그래도 느려!!'

오크 부대는 이미 아군과 충돌한 상태였다. 가볍게 세운 목책은 무너진 지 오래고, 귀족가의 사병들은 진형을 이루지 않고 분투했다.
저마다 무기를 내밀며 싸운다. 아예 등을 돌리고 도망치는 자는 드물었으나, 체계적으로 반격하는 부대도 없었다.

그에 비해 오크 부대는 상당히 체계적이다. 늑대를  기병들은 양 날개를 이루며 진지를 휘저었고, 후방 부대는 일제 사격을 퍼부었다.
앞장서서 싸우는 이들의 체격은 우람차다. 전사 계급 오크들이 미친 듯이 무기를 휘둘러댔다.

얼핏 봐도 아군의 피해가 벌써 수천이다. 나는 이를 악물며 중얼거렸다.

"좋지 않아......"
"그러게 말이다."

한나 누나의 안색도 어두웠다. 그때였다.
내 부하들이 서서히 속력을 올리더니 아주 크게 돌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전장의  바퀴쯤 돌아서 오크의 후방을 노리는 움직임이다.

나는 저 움직임을 보고 경악했다.

"누나..... 저게 가능한 거야? 기병들이나 펼치는 작전이잖아."

우월한 기동력을 통해 후방을 교란한다. 보병으로 구성된  천인대와는 맞지 않는 작전이었다.

"가능해. 네 참모를 믿어봐, 동생아."
"히폴리타를......?"

물론 그녀가 뛰어나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기병의 작전을 보병이 펼치는 건......
의심하던 내 눈에 기이한 장면이 잡혔다.

쿠구구구ㅡ

점점 빨라진다. 내 부하들의 속도가 계속 빨라지고 있었다. 처음엔 행군 속도, 나중엔 구보, 전력 질주 순으로 점차 증가하더니 이젠 숫제 말이 달리는 속도였다.

"어, 어떻게......?"

나는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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