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화 〉제국의 보물 제스 홀란트!(3)
정신이 없다. 주변에서몰아치는 검격이 너무 매서웠다.
가끔씩 반격하던 것도 잊고, 지금은 그저 방어에 몰두했다. 다치고 나니까 깨달은 것이다.
'진짜 전쟁이다! 목숨..... 목숨을 잃을 수도 있어!'
까아앙ㅡ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방패가 아주 훌륭하다는 점. 일반적인 마나 메탈도 기사의 검기에 반쯤 대항할 수 있다. 그런데 마나 메탈을 다섯 번이나 압축한 방패니까 뚫릴 리가 없었다.
'내부는 더 훌륭하고 말이야.'
"거북이 등딱지 같은 놈!! 이 자식 죽이고 나면 방패는 무조건 내 거다!!"
"지랄 마, 저 방패 군단장님께 진상할 거다!"
미친놈들이 내 방패를 지들 소유물인 것마냥 말한다. 한 방 먹이고 싶었는데, 몸이 군데군데 쓰라렸다.
처음에 찔린 옆구리는 물론이고, 어깨와 허벅지도 얕게 베였다. 손가락은 방패를 다루느라 너덜너덜하다.
솔직히 아직도 힘은 넘쳤는데, 발휘할 수가 없었다. 이를 악물고 방패를 끌어당기는 찰나, 반가운 목소리가 꽂힌다.
"동새애애앵!!"
"한나 누나!!"
콰직ㅡ
누군가의 심장으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천천히 쓰러지는 오크 너머로 등장한 건 한나 누나였다.
"말했지? 내가 동생 죽게 내버려 두지는 않는다고 말이야."
"어......."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도 그럴게, 한나 누나의 모습이 너무 무서웠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로 물들인 형상. 지금도 좀 전에 죽인 오크의 피가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중이었다.
'팬티도 피에 젖었나.....? 아니지!! 날 구해준 누나야.'
실없는 생각을 재빨리 치웠다. 한나 누나는 창을 한 바퀴 휭 돌리며 외쳤다.
"내 동생 건드리려는 놈들은 내 창부터 꺾던가!! 자신 없으면 저리 꺼져!!"
"어디 기사도 아닌 인간 나부랭이가!!"
"앙?"
자신있게 덤비는 오크 한 마리. 녀석의 곡도가 채 휘둘러지기도 전에, 한나 누나는 땅을 박찼다.
파앗-
"어.....?"
오크의 눈앞에서 사라진다. 한나 누나가 다시 나타난 곳은 녀석의 옆이었다. 이내 창을 찔러서 목을 꿰뚫는다.
"끄으어......"
단말마를 뱉는 오크. 한나 누나는 아주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자, 다음에 또 죽을 놈 있나?"
"휴, 흉턴이.....!"
"보통 여자는 아니다."
주춤거리는 오크들. 그사이에 나도 놀고 있던 건 아니었다. 재빨리 최상급 포션을 꺼내서 몸에 덕지덕지 발랐다.
눈에 보이는 속도로 아무는 상처들. 얼마 지나지 않아 난 멀쩡해졌다.
'역시 돈이 최고야!!'
한나 누나는 재빨리 다가와서 물었다.
"동생, 괜찮아? 어디 다친 건 없고?"
"다쳤는데 포션 발랐어!!"
"빠르기도 해라......"
떨떠름하게 대답한 누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상황이 좋지 않다."
"왜? 내가 한 몸 던져서......"
"그래. 네가 희생해서 피해를 줄이긴 했지. 하지만 완벽하지도 않았어. 지금 그리폰 용병단이 너무 크게 당하고 있어."
"아......"
그리폰 용병단은 나를 뒤따라서 기병 삼백을상대해야 했다. 당연히 피해가 클 거다.
다만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
'어차피 제 5황자의 전력이야! 중요한 건 내 천인대인데.....'
한나 누나의 눈치를 살폈다. 누나는 창을 휘둘러 한 녀석을 또 죽이고는 말했다.
"네 천인대는 괴상한 짓을 또 벌이더라."
"응?"
"직접 봐봐. 펄쩍 뛰면 보이긴 할 거야."
한나 누나 말대로 제자리에서 크게 뛰었다. 신체 능력이 초인적인 수준이라 꽤 높이 뛴다.
'지구의 농구 선수들은 비교도 안 되는 수준이지.'
허공에 체류하는 잠시 동안 전황을 눈에 담았다. 그리고 착지한 나는 잠시 말을 잊었다.
"......저것도 히폴리타야?"
"아마도."
"대단하네."
나는 아까 본 광경을 떠올렸다.
그니까 내 부대는 일종의 인질극을 벌이고 있었다. 오크 쪽의 지휘관으로 보이는 녀석을 잡고 협박하던 것이다.
'심지어 그게 통했어!!'
100%는 아니다. 일부 오크들은 망설이고, 일부는 도리어 분노하며 싸운다. 중요한 건 전력을 분산시키는 효과가 생겼다는 거다.
'100명이 전선에 있는데, 50명만 싸우면 결국 전력이 줄어든 효과지!'
이것도 어떻게 보면 각개격파였다. 나는 히폴리타의 능력에 감탄했다.
"인질극..... 상상할 수는 있지만, 대체 어떻게 통한 거지?"
"잘 모르겠다. 우리였다면, 폐하가 잡힌 게 아닌 이상에야 그냥 무시할 텐데 말이야. 오크의 풍습은 조금 다른 모양이지?"
단순히 풍습이 다른 건 아닐 거다. 그랬다면 미리 파악하고 제국 쪽에서 이용했어야 했다.
'아마 뭔가 조건이 있는 거겠지? 히폴리타는 독자적으로 알아낸 거고......'
대단하다. 덕분에 천인대 쪽은 큰 피해가 없는 듯했다. 도리어 오크 궁병을 상당수 격파했으니, 큰 성과를 올렸다.
안타까운 건 그리폰 용병단.
"용병단을 구하러 가야겠어."
"호오, 네 천인대를 그렇게 믿는 거야?"
"당장 상황은 나쁘지 않으니까."
그렇다면야. 한나 누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한쪽 방향으로 길을 뚫었다. 오크들이 달라붙었지만, 큰 어려움은 없었다.
"흐아아압!!"
뻐엉-. 내 방패가 돌진한다. 무식하게 한 차례 공간을 만들면 한나 누나가 그 공간을 지켰다.
우린 꽤 괜찮은 조합이었다.
"동생, 전쟁터에 오더니 사람 다 됐어!"
"암만 그래도 다시는 안 올 거야."
적당히 대답하며 방패를 휘두른다. 조금 더 가자, 위태로운 그리폰 용병단이 보였다.
벌써 삼 분의 일은 사라진 상태. 늑대 기병에 둘러싸여 겨우겨우 자리를 지키는 중이었다.
'그나마 그리폰 용병단이라서 버텼어. 평범한 용병이었으면......'
전멸하고도 시간이 남아서 저놈들이 다른 곳으로 쳐들어갔으리라.
난 안도하며 방패를 들고 돌진했다.
"고용주가 왔드아아아!!"
"허, 의리는 있는 녀석이네."
그리폰 용병단을 포위한 늑대 기병을 후려친다. 몇몇 늑대를 날려버리자 구멍이 뻥 뚫렸다.
"트롤 먹이로 던져줄 놈!! 아까부터 저거 하나 때문에....."
"제기랄, 누가 저격이라도 해봐!"
잔뜩 불평하는 늑대기병들. 하지만 저격해야 할 궁병은 이미 뿔뿔이 흩어졌다.
나는 용병단에게 외쳤다.
"내 쪽으로 빨리 와! 일단 포위를 벗어나고 생각하자!"
"좋다."
하나둘씩 몸을 빼는 그리폰 용병단. 끝까지 붙잡는 놈들도 있었으나, 한나 누나가 적당히 물러나게 만들었다.
"허어억, 허억..... 진짜 이번 고용주랑 일하면 오크는 질리도록 죽이겠어."
"동감이다...... 벌써 공적도 세운 거 같은데?"
숨을 몰아쉬며 떠드는 용병들. 그러면서도 자연스레 전투 진형을 짰다.
'역시 싸움 짬밥은 무시할 수없어.'
짧은 재정비가 끝나자, 나는 목표를 제시했다.
"일단 내 천인대와 합류하자."
"그다음엔 어쩔 생각이지, 고용주?"
"내 참모가 생각할 거야!!"
황당하다는 표정. 하지만 난 당당했다.
'내 판단보다 히폴리타의 판단이 백 배는 옳아! 독자적으로 행동하기보다는 일단 합류해서 조언을 듣는다.'
내 주제를 안다는 것. 드물디드문 장점이었다.
용병들이 어떻게 반응하든 간에, 나는 천인대 쪽을 가리켰다.
천인대는 오크 궁병의 잔당을 처리하는 동시에 기병 일부를상대하고 있었다.
"자, 감히 내 부하를 괴롭히는 저기병들을 해치우자!!"
"알았다."
"돌겨억!!"
묘한 타이밍이었다. 내가 그리폰 용병단을 이끌고 출발하는 순간, 천인대 쪽에서도 누군가 말을 몰았다.
백합이 새겨진 갑옷. 특히나 화려한 게......
"앨리스경?"
그녀는 나를 똑바로 보고 달려오고 있었다. 중간에 있는 백수십의 기병이 보이지 않는다는 듯.
앨리스는 얼굴 가리개를 잠시 올렸다. 나와 눈이 마주친 채로 입을 뻐끔거린다.
'모시러 가겠습니다, 도련님......?'
이곳은 전쟁터다. 그것도 오크 본대에 가까워서 위태롭기 짝이 없는.
그런데도 앨리스는 편안하게 선언했다.
잠시 넋을 놓는 사이, 앨리스와 오크 기병이 충돌하기 시작했다.
"화려한 기사다!!"
"말부터 노려라. 끌어내리고 짓누르면 누구든 죽는다!!"
"찔러라!!"
잔뜩 흥분한 외침. 오크 기병들은 콧김을 뿜으며 앨리스에게 붙었다.
한 번에 세 명. 양옆과 정면에서 덮친다. 투박한 살기가 하늘을 찌를 듯하다.
앨리스의 검과 오크 기병의 곡도는 동시에 움직였다. 그리고..... 결과는 일방적이었다.
"어어.....?"
앨리스는 승마한 채로 우아하게 검을 털어냈다. 피가 바닥에 퍼지는 동시에, 오크 기병 셋의 허리가 쪼개진다.
상반신과 하반신이 분리되며 바닥에 뒹굴었다.
이후는 일방적이었다. 오크들은 차마 앨리스에게 접근할 엄두를 못 냈고, 그녀는 평지를달리듯 말을 몰았다.
다그닥-다그닥-
이윽고 내 앞에 도착한 앨리스. 그녀는 훌쩍 뛰어내려 한쪽 무릎을 꿇었다.
살짝 핏방울이 묻은 얼굴 가리개를 올린다. 앨리스의 푸르른 눈빛이 나를 찔렀다.
그녀는 응당 그래야 한다는 듯, 평온하게 말했다.
"도련님, 모시러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