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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3화 〉제국의 보물 제스 홀란트!(6) (63/111)



〈 63화 〉제국의 보물 제스 홀란트!(6)

황당하기 그지없지만, 아무튼 한나 누나의 투창으로 길이 뚫렸다.
문제는 길을 곧 오크가 채울 거라는 부분인데, 앨리스가 그걸 해결했다.

"먼저 가겠습니다."
"엇, 앨리스경!"
"뒤따라오십시오."

앨리스는 평온하게 말을 몰았다. 우리의 앞에 있던 건 수많은 오크 보병 무리.
개중에서도 장창병이  많았다. 꽥꽥거리며 대비하는 오크들.

"창을 땅에 박아라!!"
"꾸오오오!! 여기사를 눕히는 거다!!"
"인간 여자는 오크보다......"

이런 난잡한 말이 오갔다. 얼굴 가리개를 내린 앨리스의 표정은 확인할 수 없었지만, 그녀의 검격은 더없이 공정했다.
누구 하나 가릴 것 없이 목을 날렸으니까. 앨리스는 허공에 칼을 휘둘렀다.

서걱ㅡ
한 번의 파육음이 들린다. 이내 앨리스를 저지하려던오크 넷이 허물어졌다.
나는 말에 탄 앨리스와 오크 보병 사이의 거리를 가늠했다. 칼이 닿는 거리는 아니다.

'어떻게 한 거지?몸을 기울여야  거 같은데...... 검기?'

하지만 앨리스의 검에 검기는 보이지 않았다. 그때, 한나 누나의 감탄이 들려온다.

"키야. 백합, 백합 하더니 이유는 있었네."
"뭔데?"
"동생아, 눈이 없니?"

씨발,  알아볼 수도 있지. 내가 눈빛으로 재촉하자 한나 누나는 간단하게 설명했다.

"간단하잖아. 필요할 때만 검기를 길게 뽑아서 베는 거야. 굳이 무기까지 썰 필요도 없고 그냥 목만 슥삭!"
"어.... 보통 기사들은 처음부터 검기를 이글이글 뿜던데?"
"그건 능력이 부족하니까 그러지. 할 수만 있다면 저게 훨씬 효율이 좋아. 겉보기에도 무슨 마술을 부린 것 같고."

하기야 그렇다. 힘이 넘치면 기술이 필요 없다. 반대로 기술이 뛰어나도 힘을 아낄 수 있다.
문득 한나 누나의 투창을 떠올렸다.

"근데 누나가 창 던질 때는 기운이 아주 넘쳐흐르던......"
"쉿!! 나는 앨리스랑 방향이 다른 거야! 부족한 게 아니고."

괜히 윽박지르는 누나. 난 고개만 끄덕여줬다.

"아무튼 지금은 앨리스의 뒤를 받쳐줘야 한다는 거지?"
"그래. 얼른 돌격 명령이나 내리렴, 동생아."

좋다. 앨리스는 지금도 허공에 칼을 휘두르며 오크를 학살하고 있었다. 그녀가 말을 모는 영역 안으로  어떤 오크도 들어오지 못한다.
접근하려던 놈들은 죄 머리가 분리되는 중이었다.

"크아악!!"
"죽는 것마저 천박하구나."

피가 흐르는 앨리스의 검이 우아했다.

'진짜 멋지네.... 나는 언제쯤 저런 경지에.....'

아마 방패로는 힘들 거다. 아쉬움을 삼키며 크게 명령했다.

"전원 돌겨어억!! 적의 심장을 취한다!!"
"천인장! 천인장!!"

물밀듯이 밀고 들어가는 내 천인대. 이미 한나 누나와 앨리스가 휘저었던 병력이라 어렵진 않았다.
기사들은 앞장서며 칼을 휘둘렀고, 병사들은 자신의 역할에 맞게 행동했다.

승기는 확실히 잡았다. 나는 평소처럼 방패를 잡고 마구 밀고 들어갔다.

뻐엉-뻥! 여기저기 튕겨 나가는 오크들. 근처에선 한나 누나가 날 노리는 놈들을 막아줬다.

'등도 든든하고,  돌진을 막을 놈은 없고!!'

힘이 넘쳐난다. 나는 계속해서 전진하며 외쳤다.

"크흐흐흐!! 본인들이 제국이라 칭하더니,  막을 놈 하나도 없냐!!"
"꾸어어....."

마치 차를 끌고 인도를 달리는  같았다. 오크들이 교통사고라도 난 듯이 마구잡이로 날아간다.
해방감에 기쁨을 다시 표하려던 찰나, 거대한 충격이 내 방패를 덮쳤다.

꽈아아아앙! 예고도 없는 습격. 순간 손목이 꺾였고, 방패가 내 얼굴을 후려쳤다.

"커헙! 어, 어떤 새끼야!!"
"어린 애들을 괴롭히니 좋더냐?"

동굴에서 울려 퍼지는 듯한 목소리. 기운마저 실려서 더욱 크게 들렸다.
당황해서 방패 너머로 상대를 확인했다.

가장 먼저 보이는  전신을 뒤덮은 문신. 색색의 문신이 빛을 발했고, 인위적으로 만든 흉터도 양팔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목걸이에 귀걸이에 코 피어싱까지 각종 장신구는 다 착용했다. 키는 나보다 머리 하나쯤 크다.
저런 모습의 오크는 딱 한 종류였다.

"오크 주술사.....!!"
"그래. 갓 성인이 된 녀석들을 상대하면서 좋아하더군.  치졸하기 짝이 없는 인성은 잘 봤으니, 이젠 내가 상대해주마."
"씨발!! 오크가 어린지 늙었는지 어떻게 구별......"

말할 틈도 없었다. 오크 주술사는 단박에 접근해서 방패를 내려쳤다.
쿠웅하는 소리와 함께 발이 움푹 패인다.

방패는 멀쩡한데, 충격을 감당한 전신 관절이 삐걱거린다. 쿠웅-쿠웅-! 오크 주술사는 우직하게 방패를 내리찍었다. 다른 곳은 노리지도 않는다.
서로의 최강으로 붙어보자는 듯, 내 방패를 계속해서 팬다.

무거운 충돌음 사이로 주술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방패가 자랑인가?"
"지랄!!"
"그 자랑, 부수어주마."
"개놈의 자식이!!"

날 받쳐야 하는 지면이 자꾸만 꺼진다. 다른 오크들도 달려들지 않았다. 그저 주술사를 응원할 뿐이다.
 방패가 휘청일 때마다 이런 소리를 질러댔다.

"망크예트 어른!! 짓밟아주십시오!!"
"쿠오오!! 망크예트님!!"

진짜 어른 믿고 날뛰는 꼴이란. 저놈들에게 50kg짜리 특제 꿀밤을 먹여주고 싶었지만, 할 수가 없었다.

꾸웅ㅡ. 이젠 숫제 방패에 얼굴이 짓눌릴 기세다. 이 녀석의 연타는 묘하게 속도가 빨라서 재정비할 시간이 없었다.

"제기라알...."

이상하다.  육체 능력은 분명히 최상위권인데.... 기사조차 뛰어넘어서 앨리스쯤 돼야 육체 능력으로 날 이길 텐데?
그리 생각하던 때였다. 갑자기 주술사의 주먹이 멈췄다.

"허억, 뭐지?"

숨을 돌리며 재빨리 포션을 꺼내 삼킨다. 방패 너머를 보자 한나 누나가 창을 들고 주술사와 대치하고 있었다.

"동생! 늦어서 미안하다! 괴물 자식을 꽤 오래 붙잡고 있었네?"
"아는 놈이야?"

한나 누나는 주술사의 문양을 슬쩍 가리켰다.

"제사장 등급이잖아. 이 녀석 상대로  버텼어."
"아, 제사장......"

정확히는 몰라도, 분위기는 알았다. 인간의 전쟁에서 유명 기사가 나오면 사기가 올라가듯, 오크끼리도 제사장이 등장하면 사기가 올라갔다.

한나 누나는 평소보다 딱딱한 어투로 말했다.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거든? 이제부터 알아서 챙겨라."
"나 죽게 두지는 않는다며?"
"크큭, 금방 해치우고 갈게."

오크 주술사는 무뚝뚝하게 끼어들었다.

"이 창술사 년을 죽이면 다음은 거북이 등딱지, 너다. 멀리 도망가지 마라."
"썩을 것이 나를 앞에 두고!!"

땅을 박차는 한나 누나. 둘은 곧바로 서로 어울리며 공방을 나누었다.
신기하게도 누나는 오크 주술사한테 힘에서 크게 밀리진 않았다.

'일단은 신경 끄자. 중요한 건 따로 있어.'

적의 심장. 즉, 씨족의 어머니를 찾아야 했다. 열심히 전진했으니 조금은 가까워졌을 거다.
이런 생각으로 주변을 살폈다.

앨리스는 여전히 학살을 자행하는 중이었고, 천인대는 부지런히 싸운다. 그리폰 용병단도 마찬가지.
전진한 거리가 그리 멀지는 않았다. 조금 더 분발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순간이었다.

뿌우우우ㅡ

뿔피리 소리가 길게 퍼진다. 의문이 들었다. 인간 부대가 사용하는 종류는 아니고, 오크도 뿔피리는  쓰지 않는데.....

뿌우우ㅡ

이번엔 조금 짧게 울린다. 그쯤 되자 진원지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앞쪽. 그리고 거기엔.....

"씨족의 어머니?"

거대한 가마를 탄 늙은 오크가 있었다. 주술적인 장신구로 치장된 가마. 가마를 들고 있는 수십의 어린 오크.
그 주위를 호위하는 문신 가득한 주술사 무리.
늙은 오크는 입을 뻐끔거렸다.

"하도 시끄러워서 와봤더니, 기생충 같은 것들이 본녀의 자식을 해치는구나."

꿀꺽. 나는 침을 삼켰다.

'일단......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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