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화 〉제국의 보물 제스 홀란트!(8)
"다들 여기로 모여!!"
우렁찬목소리. 이런다고 해도 바쁘게 싸우는 병사가 몸을 빼서 달려올 수는 없다.
내 목적은 여유 있는 병력을 한곳에 결집하는 거였다.
'오크를 언제 일일이 상대하겠어? 원래부터 목적은 씨족의 어머니를 사로잡는 거. 딱 하나뿐이야!!'
내 외침에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먼저 달려왔다.실바를 비롯해 몸을 섞었던 16인의 기사다.
"천인장님, 부르셨습니까?"
"어..... 너희는 어째 하나도 안 죽었냐?"
"죽을 수 없습니다. 천인장님과 함께 하려면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기사라고 생존율이 100%는 아니다. 당연히 내 천인대에서도 많은 사상자가발생했다.
'그런데도 16인의 기사는 전부 살았다는 거지? 참 잘 뽑기는 했어......'
역시 하렘을 호령할 제스 기사단다웠다.
다음은 앨리스였다. 그녀는 숨결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채로 부름에 답했다.
"도련님, 무슨 일이십니까?"
"너는 나랑 같은 전투를 한 거 맞지......?"
"예, 열심히 싸웠습니다."
도저히 그래 보이질 않는다. 아니면 체력을 보존했나. 아무튼 믿음직스럽기는 했다.
마지막으로 온 건 그리폰 용병단. 처음에 40명이었던 인원이 지금은 고작 열 명 남짓이었다.
'여기 내 누나도 있었는데.... 제길.'
장례는 확실히 치러주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누나가 30명이나 되니까, 약간 먼 친척이 죽은 기분이긴 했다. 이후에 기타 병력이 조금 더 왔다.
"오십 명이라.....히폴리타, 이걸로 뚫을 수 있을까?"
"가능해요."
여전히 자신감 넘치는 그녀의 대답.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번엔 대체 무슨 방법으로......?"
"모의전 때 보여줬던 거, 지금은 훨씬 개량됐어요."
그리 말한 히폴리타가 부하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그녀의 부하가 우렁차게 소리친다.
"제스 천인대, 그물 사용을 허가한다!!"
"와아아아!!"
병사들이 품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펑펑펑-. 귀여운 폭발음에 연속적으로 들렸다. 폭발 자체는 위력이 별로지만, 그 결과로 튀어나온 그물이 중요했다.
각자 싸우던 오크들이 그물에 엉켜서 쓰러진다. 그 뒤는 간단했다.
"죽어어엇!!"
"꾸오오...."
분노를 머금은 칼질과 분수처럼 치솟는 피. 일시적으로 전황을 압도하는 꼴이 되었다.
'예산을 처발랐군. 정령의 힘을 담은 신발이나, 방금 그물을 쓴 신무기나.....'
히폴리타는 내 등을 툭 밀었다.
"얼른 가요!! 딱 이 순간, 우리가 일시적으로 앞서는 지금 호위를 뚫어야 해요!!"
"마, 맞긴 해."
타이밍을 놓치면 안 된다. 나는 크게 외쳤다.
"저기 늙어빠진 오크가 보이나?"
"예!!"
"우리의 목표는 다 늙어서 죽을 날을 기다리는 오크다. 설마 저것 하나도 못 잡을 것 같나?"
"아닙니다!!"
"가자. 빨리 해치우고 회포를 푸는 거다!!"
와아아하는 함성과 함께 오십의 병력이 튀어 나간다. 아군이 전선을 밀어내는 상황.
다른 오크의 방해는 거의 없었다. 오직 씨족의 어머니, 늙은 오크의 호위만 처리하면 된다.
두두두두ㅡ
땅을 뒤흔들며 달렸다. 나는 말했던 대로 오직 늙은 오크만 바라보고 달렸는데, 갑자기 그녀가 나를 쳐다봤다.
찰나 교환되는 시선. 늙은 오크는 비뚜름하게 웃었다.
"주제를 모르는 것."
"뭐?"
분노하려던때였다. 갑자기 양옆이 허전해진다.
촤아아! 아군을 대신해서 보이는 건 피분수. 잘 따라오던 그리폰 용병단원 둘이 단숨에 사라졌다.
"이게 뭔......"
상황은 끝나지 않았다. 촤아아! 다시 끔찍한 소리가 들리며 이번엔 남자 병사 둘이 명을 다한다. 전부 비명조차 내뱉지 못한 죽음이었다.
다시금 늙은 오크와 눈이 마주친다. 그녀의 곁에 있던 두 쌍도끼가, 지금은없었다.
"말했잖느냐. 주제를 알아야 한다고."
"이게......"
저 녀석한테 분노해봐야 시간 낭비일 뿐이다. 대신해서 크게 외쳤다.
"앨리스겨어어엉!! 이놈들이 괴상한 짓 한다아아!!"
"무, 무슨 부하에게 이르는 것이냐?"
늙은 오크의 황당함이 여기까지 전해졌는데, 그냥 무시했다. 앨리스는 평소처럼 즉답했다.
"도련님은 그냥 달리십시오. 이곳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믿을게!!"
해맑게 대답하고 뛰었는데, 늙은 오크의 눈에는이상하게 보인 모양이었다.
"네깟 기사 나부랭이가 뭔 건방을 떠는것이냐!! 저년부터 죽여라!!"
앨리스부터? 갑자기 조금 불안해졌다.
'오크족 쌍도끼는 둘이잖아? 그리폰 용병단도 일격에 죽인 놈들이 앨리스를 협공하면......'
그리 생각하던 때, 앨리스 주위에서불빛이 번쩍였다. 뛰어난동체시력으로 간신히 봤는데, 오크 쌍도끼의 공격에 대응해서 검을 휘두른 거였다.
오크족 쌍도끼를 마주해서도 앨리스의 평온함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저 간간이 불꽃이 튀길 뿐이다. 몇 번의 충돌이 생긴 후, 앨리스는 나를 향해 나지막이 말했다.
기운을 담에 귀에 꽂히는 말.
"거의 파악했습니다. 금방 따라가겠습니다."
"크큭, 그래야 앨리스지!"
조금 늦췄던 속도를 다시 올렸다. 저기에 쓸데없이 지원 병력을 보내봐야 방해일 따름이다. 우린 우리의 할 일을 하는 게 맞았다.
난 늙은 오크를 향해 외쳤다.
"네놈들의 믿음이 묶였는데 어쩔 거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믿음이구나!"
"허, 본녀를 이리도 능멸하는구나."
늙은 오크의 가마가 하강한다. 이때까지도 오크 수십이 가마를 지고 있었던 것이다. 가마를 내려놓은 그들은 삽시간에 칼을 빼 들었다.
채재쟁. 날카로운 소리에 이어 쇄도하는 오크들.
'가마꾼 겸 병사였나? 그래봤자!'
무난한 오크 병사 수십일 뿐이다. 그리폰 용병단과 병사 대부분이 달려가서 녀석들을 맞이했다.
나와 16인의 기사는 여전히 달리는 중이다.
"하, 비장의 수 같았는데 어쩌나? 숨긴 게 또 있기라도 해?"
있을 리 없다. 가마 속에 오크가 숨어있다고 해도 무섭지 않았다. 늙은 오크는 이때까지도 가만히 앉아 있었다.
"기어코 본녀가 움직여야 하는 게냐."
"헛소리 말고 얌전히 잡혀.......음?"
태산이 움직인다. 순간 그런 느낌이 들었다.
씨족의 어머니, 늙은 오크가 몸을 일으킨 것이다. 몸이 너무 커서 움직이지 못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보통 오크의 10배는 되는 저 몸뚱아리는..... 제 발로 설 수 있었다.
"씨, 씨발.... 놀랍기는 한데 뭐 어쩌라고!! 이제 다 왔어!"
"천인장님, 저희가 팔다리 하나씩 잡겠습니다!"
녀석과 내거리는 10m도 채 남지 않았다. 자신감 있게 땅을 박차는 순간, 내 눈앞에 번쩍였다.
콰아앙!! 이어서 들리는 어마어마한 소리, 그리고 허공을 비산하는 내 핏방울. 부하들의 놀란 눈이 슬로우 모션으로 흘러간다.
"끄어어......."
쿠당탕탕. 달려오던 기세 그대로 땅에 처박혀 몇 바퀴를 굴렀다. 잠시간 무슨 일인지 상황 파악조차 못 했다.
저벅. 위압적인 소리와 함께 늙은 오크의 목소리가 들린다.
"본녀가 그저 아이들을 낳아서 어머니가 된 것 같았더냐?"
"어어....."
"경쟁자는 모조리죽였다. 위험한 놈들은 이 손으로 처리했다. 내 자식만 남을 때까지 투쟁했단 말이다."
저벅. 다시 들리는 투박한 발소리. 16인의 기사가 덤비는 모습도 얼핏 보였지만, 놈들도 죄다 튕겨 나갔다. 갑옷이 사정없이 찌그러지는 것으로 보아 경상은 아니다.
"그런데 네깟 놈이 뭐라고 본녀를 무시하는 게냐? 기술도 없이 어디되다 만 놈이!!"
마지막 한 걸음. 이어서 덮치는 주먹. 황급히 방패를 들었다.
쩌어어엉! 방패가 비명을 질러댄다. 한 대는 버텨도, 두 대는 힘들다는 듯 웅웅 울리고 있었다.
"흥, 이번에도 어찌 살았구나. 바퀴벌레 같은 놈."
"끄으으으....."
아까 꿀밤을 맞은 충격 때문에 말도 잘 안 나왔다. 방패를 다시 들어야 하는데 불가능하다.
팔이 덜렁거리고 있었다.
'제기랄..... 신체강화가 아니라 무기에도 기운을 담을 수 있었어야.....'
늙은 오크의 주먹이 다시금 올라간다. 순전히 방패의 품질로만 통하는 건 여기까지인가.
체념이 머릿속에 들어찰 때였다.
"반푼이 인간의 생애는 여기서 끝을....."
"도련님!!"
쿵-쩌어어엉ㅡ! 바람처럼 등장한 앨리스. 그녀의 보검은 드물게 이글거렸다.
앨리스의 격정을 나타내듯, 검기가 날을 타고 넘실거린다. 그녀의 어깨너머로 보이는 건 늙은 오크의 뒤틀린 얼굴.
앨리스는 피가 잔뜩 묻은 갑옷을 입고 말했다.
"죄송합니다, 조금 늦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