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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3화 〉범부가 싸우는 법(2) (93/111)



〈 93화 〉범부가 싸우는 법(2)

이대로는 답이 없다!!

더피 백작의 결론이었다. 차라리 수인종 연합이 무식하게 성이들이박았으면 이길지도 모른다. 그녀가 편집증적으로 준비한 방어시설이 성이 잔뜩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처럼 성 외부의 민가와 각종 시설만 파괴하면? 영지의 미래가 사라졌다.

'정규군은 개뿔..... 영지민 다 굶어 죽을 판이야.'

지금도 10만이 안 되는 영지민, 저놈들이 시설을 파괴하면 더 아래로 떨어질 것이다. 굶어 죽거나, 도망치거나.

더피 백작은 그녀의 충실한 기사단을불렀다.

"구피 기사단!! 출정을 준비해라!"
"예!"

총 스무 명으로 이루어진 기사단. 단원끼리 실력 편차가 좀 크다는 게 아쉬웠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수준이었다.
뭣보다 그녀의 영지 순위를 생각하면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성벽 위에 석궁이랑 활을 준비해!"
"예!"

그녀가 부리는 궁병은 정규군이 아니었다. 평소 사냥을 하거나, 가끔씩 궁술 교육을 받는 영지민이다.
어차피 원정을 떠날 것도 아니고, 성벽 위에서 활만 쏘는 역할이니 효율적으로 굴리는 것이다.

즉, 정규군은 죄다 근접병이라는 뜻.
방어는 잠시 궁병, 석궁병에게 맡기고 출정할 계획이었다.

"북문 앞에 1부대부터 5부대까지 집합!"
"예! 각 마을의 경비대는 어떻게 합니까?"
"그걸 말이라고 물어? 따로 뭉쳐서 따라와."
"충성!"

더피 백작은 성벽에서 주위를 계속 주시했다. 당장 보이는 수인종 연합의 숫자는 7천을 넘는다.
저들은 종족별로 흩어져서 파괴행각을 벌이고 있었다.

"다 부셔!! 인간이 있으면 찢어버리고, 식량이 있으면 먹어 치워라!!"

이런 외침을 뱉으며 중요 시설을 부순다.더피 백작은 그녀의 부관을향해 중얼거렸다.

"지금은 방심하는 것 같아도, 정작 내가 나가면  몰려오겠지?"
"그럴 겁니다."
"하필 발이 빠른 놈들이 많아. 엽표족이나 타조족이나....."
"각개격파는 힘들 듯합니다."

하지만 각개격파를 해야 한다. 수백 단위인 그녀의 정규군으로 평지에서 수인종 7천에 맞서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한 번만.....  번만 성공하면 그 자식이 나를 도와줄 거야."
"약속을 믿으시는 겁니까?"
"이거라도 믿지 않으면, 잡을 지푸라기도 없어."
"......"

침묵하는 부관. 그도 과묵하게 고민했지만, 뾰족이 나오는 수는 없었다.
더피 백작은 한숨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저놈들도 내 영지에 대한 정보는 알고 왔겠지?"
"예. 자세한  몰라도, 군사 규모나 성이 튼튼하다는   겁니다."
"그러면..... 차라리 희생시키는  낫겠어."

부관이 더피 백작을 휙 돌아본다. 그녀의 입에서 '희생'이 나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씁쓸하게 말하는 그녀.

"나는 대단한 전략가가 아니야. 오히려 영지를 발전시키고, 방비를 철저히 하는 행정가에 가깝지."
"어.... 그보다는 무력이....."
"아무튼! 기막힌 묘책이 없으니까 누군가는 희생될 수밖에 없다는 거다."

그녀는 차분하게 부관에게 설명했다. 더피 백작의 작전을 들은 부관은 침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나중에 원망을 들으실 수도 있습니다."
"뭐 어때."
“지휘는 제가 맡겠습니다.”
“......고맙다.”

희생 끝에 가장 소중한 걸 지키면 된다.
더피 백작은 마음의 일부를 애써 짓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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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파는 이즈음에 더피 백작의 성에 도착했다.
그녀는 전쟁이나 전술에 대해 꽤 무지했다. 제스의 옆에서 보고듣기는 했어도 딱히 관심이 없던 탓이다.

헤르파는 단지 안개화한 상태로 위로 치솟았다.

"오빠가 정찰하랬어. 위에서 보면훨씬 편하겠지이.....?"

아는 게 없으니 그냥 넓게 보자. 그러면 뭐라도 말할  있겠지.
헤르파는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헤르파가 충분히 올라가서, 성과  주변의 마을이 한눈에 들어오게 됐을 즈음, 성문이 열렸다.

"어.....? 사람들 나온다."

헤르파는 열심히 관찰했다. 언뜻 햇빛이 반사되는 것으로 보아 창칼을 든 사람들이었다.
수효는 대략 600명. 헤르파는 손가락을 접으며 갸우뚱거렸다.

"저걸로 이길  있나아....?"

얼핏 봐도 성을 둘러싼 수인종의 숫자가 훨씬 많다. 창칼을 든 무리는 계속해서 전진했다.
이제는 후퇴한다고 해도, 성에 들어가기 전에 따라잡힐 거리였다.
이내 인간을 발견하고 신호를 하는 수인종들.

아우우울ㅡ
높은 울음이 널리 퍼진다. 수인종이라면 대충 알아들을 수 있는 신호였다.
헤르파는 눈을 반짝이며 감탄했다.

"괴물들이 모인다아.....!!"

성을 감쌌던 수인종들이 달리기 시작한다. 충분히 바깥으로 나온 인간 무리.
수효도 고작 600여 명. 잡아먹기 이보다 좋은 것은 없으리라.

두두두ㅡ
지축을 뒤흔들며 달린다. 수인종 연합이 집합하는 속도는 각기 달랐다. 엽표족(치타)이나 타조족은 이름처럼 신속하게 모였고, 랑족은 비교적 느렸다.

게다가 인간 무리가 나온 곳은 랑족이 있던 곳의 반대다. 거의 성을  둘러와야 하는 터라, 랑족 혼자 동떨어진 느낌이었다.

"우움..... 나처럼 따돌림당하나?"

헤르파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순간, 랑족이 지나치던 성문이 벌컥 열렸다.
거대한 성문이 최대한 빠르게 열리고, 거기서 진짜 병력 오백이 튀어나온다.

헤르파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병력..... 많다아....?"

그녀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해석할 능력까지는 없다. 헤르파는 단지 관찰만 했다.
비교적 느린 랑족을 향해 돌격하는 인간 병사들. 생각보다 빨랐으며, 랑족을 도발하는 법을 잘 알았다.

"개만도 못한 것들아!!"
"늑대 주제에 개한테 깔려살면 안 죽고 싶냐!"

갑자기 병사들이 튀어나와서 당황하던 랑족이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크르르, 개.....?"
"그래! 하룻강아지한테 꼼짝도  하는 것들이 뭔 늑대랍시고 으스대는 거냐!"
"......죽인다!"

랑족의 목표가 바뀐다. 그들은 새로 튀어나온 병력을 향해 달려들었다.
딱  순간, 랑족 혼자서 수인종 연합과 분리된 것이다.

헤르파는 재밌다는 듯 중얼거렸다.

"헤에에..... 인간들 잘 싸운다아!"

그녀의 말마따나 랑족과 싸우는 병력은 실력이 상당했다. 특히나 가장 앞장서서 할버드를 휘두르는 더피 백작이 눈에 띄었다.

"영지의 미래를 지켜라! 너희의 자식을 생각해!"
"영주님과 자식을 위해!"

다들 마을이 부서지는 걸 생생하게 목격했다. 잔뜩 악에 받쳐 싸우는 인간들. 랑족은 이들을 감당하기 버거워했다.

"후우우움....."

헤르파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더피 백작이 이쪽에 있다. 그러면 처음에 나온 병력은?

어차피 모든 전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녀는 간단하게 시선을 돌려 반대편을 확인했다.

"하, 학살이에요오...... 불쌍해요오....."

끄아악! 따위의 비명이 어렴풋이 들려온다. 하나같이 인간의 비명이었다.
암만 포위당했다고 해도, 너무 손을 쓰지 못하고 죽어 나가는 인간들.
무지한 헤르파조차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미....끼?"

처음에 나온 병력은 단지 무장만 갖추었다. 수인종의 이목을 끌기 위한 미끼였던 거다.
창칼을 든 600여 명의 사람은 힘없이 쓰러졌다. 수천의 수인종에게 포위되었으니, 실낱같은 희망도 없다.

"불쌍해애애.....!!"

마지막 사람이 쓰러졌을 즈음, 반대편에서도 사건이 벌어졌다.
더피 백작이 그녀의 기사단과 힘을 합쳐 랑족의 수장을 베어낸 것이다.
의기양양하게 수급을 들고 외치는 그녀.

"늑대 새끼들 대가리를 죽였다!! 이깟 놈들에게 겁먹을 것 없으니, 죄다 쳐죽여라!"
"와아아아-!"

더욱 거세게 몰아치는 병력. 처음엔 호기롭던 랑족도 점차 기세가 꺾였다.
수많은 랑족이 쓰러지고, 결국 도저히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순간.
랑족들은 일제히 등을 돌렸다.

"나중에 보자!"
"내 자손이 복수할 것이다!"

말만 그럴듯하게 외치며 도망가는 랑족들. 이미 절반 이상이 나자빠져서 후퇴하는 숫자조차 작았다.

작전 성공. 분명한 성공이다.
그런데 더피 백작의 눈에는 부관의 뒷모습이 눈에 어른거렸다.

미끼 부대를 지휘하겠다고 떠나던 모습. 그리고 미끼임을 알고서도 당당하게 무기를 쥐던 청년들.

그들의 목숨을 발판으로 얻은 게 이거였다.

“랑족 수장의 수급.......”

더피 백작은 수급을 소중히 감쌌다. 이것만 있으면...... 제스 홀란트의 지원을 받을  있을 것이다.

문득 그에 대한 소문을 떠올렸다.

“지휘관이  후에도 여성편력이 대단하다고 했던가......?”

나도 제스 홀란트의 취향이었으면 좋겠군.
그녀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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