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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9화 〉환생해서 여자 독식 (99/111)



〈 99화 〉환생해서 여자 독식

 성은 내가 지킨다!

더피 백작의 성은 곧  첩이 가진 성이었다. 그러니 최선을 다해 지킬수밖에.
그런데 아직  사실을 모르는 부하들의 시선은 조금 달랐다.

"천인장님....."
"동생, 미쳤어? 네가 갑자기 왜.....?"
"저희도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뭔가 기이한 오해가 자꾸 쌓인다. 나는 지끈거리는 두통을 참았다.
아, 돌겠네.  자식들이 들어가야 지원군이  이유가 있지.

"다들 빨리 들어가!! 헛소리하다가 수인족 몰려온다고!"
"아, 예!"

끼이이익-
성벽이 아주 조금 열린다. 대략 서너 명이 비집고 들어갈 너비. 기병은 둘도 지나가기 힘들다.
다들 어떻게든 몸을 넣으며 성벽을 통과했다.

"천인장님, 무사하셔야 합니다!"
"고운 얼굴 다치시면 안 됩니다."

다들 내 걱정(?)을 해주며들어간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끝까지 말을 안 듣는 녀석은 있었다.
타닥-
말에서 내리는 소리. 그녀가 엉덩이를 치자, 말은 히힝거리며 성문으로 달려갔다.

"도련님, 저는 도련님의 기사입니다."
"하아.... 앨리스 네가 성벽 위에 있어야...."
"맹세했습니다. 이 한 몸이 스러지기 전까지, 도련님을 죽게 하진 않을 거라고 말입니다."
"......"

앨리스의 충성 서약이 떠오른다. 이렇게까지 말하자 그녀를 말릴 방도가 없었다.
에델은 머뭇거리며 들어갔다.

"저, 저는 마력을 거의 다 써서...."
"알아. 이렇게 빨리 온 것도 네 덕이잖아."

에델은 오는 내내 바람을 일으켰다. 뒤에서 순풍을 불게 해서, 말의 체력과 속도에 보탬이  것이다.
백 명도 넘는 인원에게 계속 사용했으니, 지칠 수밖에 없다.
나는 등 뒤로 손을 흔들어줬다.

"얼른 충전하고 다시 나서줘. 기다리고 있을게."
"알겠습니다, 제스님."

결국 남은 건 앨리스와 나, 단둘이다.
우리가 처음 돌파할 때는 물러났던 수인종들도 슬슬 다가오기 시작했다.

"저놈들을성에 들이면 더 곤란해진다! 빨리 몰아쳐라."
"구오오-!"

엽표족 몇이 달려든다. 사나운 기세에 그에 걸맞은 속도. 범인은 제대로 반응하자고 못하고 즉사하리라.

"흠."

앨리스는 그에 맞서 고고하게 검을 내리그었다. 얼핏 헛짓거리로 보인다.
하지만 그녀의 검이 허공을 가른 직후, 엽표족의 몸이 반으로 갈라졌다.

"크아아아....!!"

쩌적- 털썩. 정수리부터 사타구니까지 그어진 선명한 붉은 선.
엽표족은 내장을 통째로 쏟아내며 절명했다.
같이 덤빈 다른 놈들도 운명은 비슷했다. 가까이 가지도 못한 채, 앨리스의 검격에 숨통이 끊어진다.

"커헉....!"
"거, 검이 보이지를....."

목이 분리되거나, 상반신과 하반신이 분리되는 녀석들. 앨리스의 방어는 아주 깔끔했다.
그에 비해 나는?

"이 자식 별거 없다!! 두드려!"
"누가 방패만 뺏어봐라!"

터엉, 팅 따위의 소리를 내며 열심히 얻어맞는 중이다.  그래도 둘러싸여서 죽을 맛인데, 앨리스랑 비교되니까 더 슬펐다.

"제길!! 무시하지 말라고!"

그래도 이젠 어느 정도 기술을 써먹을 수 있다.
나는 기세 좋게 달려오는 수인족을 관찰했다.

"내가 방패로 날릴게!"

왼발, 오른발, 다시 왼발을 디디며 크게 도약. 예상 경로가 깔끔하게 그려졌다.

"흡."

달려오는 놈의 힘을 역이용해 그대로 넘긴다. 반대편에서 덤벼들던 수인족과 엉키는  보였다.
쿠당탕탕-!

"저딴 기술에 당해?"
"아, 아니.... 아무것도 못 하는 놈인 줄 알고...."

수인족끼리도 서로 화내고 있었다. 그야 성안으로 들어가는 병력을 막아야 하는데, 단 두 명이서 버티고 있으니 답답할 것이다.

그렇게 약 5분을 버티자, 앨리스와 나 말고는 남은 사람이 없었다. 재빨리 위를 향해 외친다.

"닫아! 성문 닫으라고!"
"하, 하지만 천인장님이 아직....."
"닥치고 명령하는 대로 해! 나를  믿나?"
"미, 믿겠습니다."

끼이이익ㅡ
성문이 다시 닫히기 시작한다. 이내 쿵하는 소리와 함께 굳어 걸어 잠근다.
수인종들은 우리에게 원망의 눈초리를 보냈다.

"이 자식들 때문에 공성이....."
"다 죽어가던 놈들이 살아났다."
"분명 중요 인물일 거다. 둘이라도 해치워!"

달려드는 수십의 수인종. 앨리스와 나는 등을 맞대었다.
그녀의 뜨거운 체온이 전달된다.

"후우우, 도련님."
"응?"
"전에 말한 적이 있지요. 저는 도련님을 싫어한 적이 없다고 말입니다."
"그랬지."

나는 방패를, 앨리스는 검을 휘두르며 대화했다.
수인종은 계속 달려들었으나, 우리는 큰 틈을 보여주지 않았다.

"저는 도련님이 이렇게 변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했습니다."
"나는똑같아. 항상 그렇듯, 여자를 밝히고 편한 길을 찾지."
“도련님 생각은 그렇습니까?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닙니다.”

앨리스는 단호했다.
일격에 적을 참살하는 그녀의 검격만큼이나 말이다.

"나는 그저 망나니......"
"아직도 그렇게생각하는 자는 정보가 느린 머저리와 도련님 본인밖에 없습니다. 깨어나십시오."
"......"

나는 입을 다물고 방패를 휘둘렀다.
솔직히 나라고 모를까.  평가에 바뀌었다는 건 누구보다도  알았다.
그야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지니까 모를 수가 없다.

'하지만 그걸 인식하기는 싫어. 왜냐면 망나니에서 벗어나면  일이 너무 많거든.'

망나니가 가끔 한 가지 일을 훌륭하게 해내면? 칭찬받는다. 그래도 사람인 구석이 있구나, 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미 뛰어난 사람이  번 실패하면? 모두가 실망하는 법이다.

‘나는 어디까지나 언더독으로 남고 싶어. 모두의 저평가 속에서 활약하고 싶다고!’

앨리스는 더피 성을 흘긋 바라봤다.

"이곳을 목숨 걸고 지키시는 것도 단순한 호의는 아닐 겁니다. 아마 영주에게 빚을 지워두려고 하시는 거겠지요."
"어......"

나는 방패를 휘두르며 고민했다. 어차피 내 첩이 되면 공표될 텐데, 미리 밝힐까?
차라리 그게 낫다. 계략을 꾸몄다는 쪽보다는 내 것을 지킨다는 게 자연스러우니까.
나는 아주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이 성은 내꺼야."
"......?"

잠시 앨리스의 검격이 흐트러진다. 그녀는 랑족 셋의 접근을 허용했다가, 이내 한 번에 베어냈다.
촤아악-

"소유권을 넘겨받으신 겁니까?"
"그건 아니고, 더피 백작이 내 첩이 되기로 했어."
"......!!"

앨리스가 점점 위태로워진다. 말을 멈출까 고민했는데, 다행히 그녀는 평정을 되찾았다.

"놀랍군요. 그러면 더피 가문이 홀란트 가문이 병합되는 것입니까?"
"그건 아니겠지. 그냥 우리 둘이 결합했을 뿐이야. 만약에 내가 가주가되면 둘을 통합할 수야 있겠지만."

앨리스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움직임에 조금 더 힘이 들어간다.

"이걸로 확실해졌습니다. 가문의 사람들은 어찌 볼지 몰라도, 외부 사람들은 도련님을 어마어마한 잠룡(潛龍)이라 생각할 겁니다."
"후우..... 아무래도 그렇겠지."

기대를 충족시킬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점점 더 사람을 끌어들이는 걸 어떡하겠나.
어느새 우리 주위엔 수인종 시체 수십 구가 쌓였다. 더이상 덤벼들지 못하고 주춤거리는 놈들.

잠시 소강상태가 되자, 앨리스는 나를 바라봤다.

"도련님의 최종 목표는 무엇입니까? 어디까지 올라가고 싶으십니까?"
"내 목표.....?"

나는 피에 젖어 조금 무거워진 방패를 꽉 잡았다.
목표라..... 그건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똑같다.

"세상의 모든 미녀를 따먹고 싶어."
"......"

잠시 침묵하던 앨리스는 이내 수긍했다는 얼굴이 되었다.

"독식, 세상을 독식할 수 있는 자리를 원하시는군요."
"따지자면...... 그렇지?"

앨리스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제가 발판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독식할 수 있는 자리는....... 황제뿐이니까요."
"어?"

아니, 씨발 그것까지 바라는 건 아닌데?
뭐라 반박하려던 순간, 수인종들이 다시 거세게 몰아쳤다.

"어떻게든 해치워라!!"
"정예 전사가 도와주러 왔다. 이제 죽일 수 있어!"
"타조족이 돌아왔다!  멍청한 놈들이 설욕할 거야!"
"구우우우ㅡ!"

너무 다양한 외침 때문에 더이상의 대화가 불가능하다.
우리는 다시금 전투에 집중했다.

어째.... 앨리스의 어깨에 힘이 조금  들어간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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