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6화 〉될 놈은 된다 (106/111)



〈 106화 〉될 놈은 된다

리우 영지엔 제대로 된 성이 없었다.

즉, 나를 비롯한 300여 명의 병력이 효율적으로 싸우기 힘들다는 거다. 우리를 맞이한 리우 남작은 감격한 얼굴이었다.

"가, 감사합니다. 설마 저희를 구하러 오실 줄이야......"
"나중에 실망할 거 같아서 미리 말해두는데, 우린 도망칠 예정이야."
"예에?"

나는  아는 만큼만 설명했다.
내가 이끄는 병력이 전부는 아니며, 나는 그저 미끼일 뿐이라고.
설명을 들은 리우 남작의 얼굴은 도리어 밝아졌다.

"그러면  좋습니다! 이번 전투에서 이길 확률도 있는 거 아닙니까?"

그 과정에서 네 영지민들은 작살날텐데?
뒷말은 겨우 삼켰다. 좋아하는 마당에 굳이 초치고 싶진 않다. 리우 남작은 어디선가 청초한 미녀를 한  데려왔다.

"그..... 영웅호걸은 전투 전에 여색을 품는다고 했습니다. 부족하지만 이거라도......"
"열 배의 적을 앞둔 마당에 여자를 따먹으라고?"
"그, 그게."

근데 솔직히 싫지는 않았다. 여자의 안색도 파리한 것이, 병약 미녀 같았기 때문이다.

'먹는 건 좀 그렇고, 손맛이나 보자.'

나는 리우 남작이 데려온 미녀를 끌어당겼다. 그러자 백허그 자세로 내게안기는 그녀.

"흣....!"
"마음에 안정이 필요해서 말이야."

적당한 크기의 가슴을 마음대로 주무른다. 유독 탄력이 넘쳐서 만지는 맛이 있었다.

"아흐... 흐읏!"

나쁘지 않다. 낮은 확률이지만 죽을 수 있는 상황. 미녀의 가슴은 나를 좀 진정시켜줬다.
십여  동안 가슴을 비롯해서 엉덩이, 배, 사타구니 따위를 탐미하다가 놓아준다.
이미 미녀의 얼굴엔 홍조가 가득했다.

"하아.... 하아, 더 하셔도 되는데....."
"더이상은 흥이 나질 않아서."

짧게 대답하고 몸을 돌렸다. 수인종의 습격은 아침부터 시작된다.
해가 중천에 뜬 지금쯤이면, 외곽을 넘어 이곳 근처에도 왔을 거다.

이곳에서 시력이 가장 좋은 사람은 나. 잔뜩 힘줘서 관찰하자, 어렴풋이 수인종연합의 깃발이 보였다.

"준비해라! 놈들이 나타났다!"
"예!!"

내가 이끄는 병력은 삼백. 하지만 지금은 그 절반만 내 곁에 있었다.
나머지 절반은?

'퇴로를 확보 중이지. 그냥 후퇴해서는 금방 따라잡힐 테니까.'

뒤쪽을 흘긋 확인했다. 가파른 산비탈.
미리 매복하기도 좋고, 길이 좁아서 숫자의 이점을 살리기도 힘든 길이다.

물론 히폴리타가 알려준 퇴로였다.

내 백오십 남짓한 병사들은 부지런히 남작의 저택에 숨었다. 일종의 시가전, 정확히는 저택에서 싸우니 가택전이 맞을까.
리우 남작은 늠름한 병사들을 보며 감탄했다.

"제 저택에 백오십이나 들어갈 수 있다는 건 처음 알았습니다."
"쓸데없는 소리하지말고, 길안내 준비나 해. 저택이 비상 통로가 있는 확실하지?"
"예! 물론입니다."
"근데 이 조그만 영지에서 무슨 비상 통로까지 만들지?"
"헤헤.... 그건 선조님들이 만드신 거라 저도모르겠습니다."

몇 대에 걸쳐서 만든 모양이다.
저택의 비상 통로는 내가 정해둔 퇴로 근처로 연결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사람 생각은 비슷하니까, 도망치기 좋은 지리라고 생각했으리라.

수인종 연합이 다가오자, 리우 남작은 조금씩 떨었다.
고작해야 담장밖에 없는 그의 저택을 믿기는 어렵긴 할 거다.

저 멀리서 들리는 함성.

"영주의 집이다!!"
"최고 미녀는 저런 곳에 많다!"
"흔적도 남기지 말고 짓밟아버려!"

수인종 연합이 점차 속도를 올린다. 저들의 생각이야 뻔했다.

'이런 곳에 있는 영지병은  주먹거리도안 된다는 거겠지.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는군.'

뭐 리우 남작을 따르는 서른의 영지병을 보면 수인종의 자신감도 이해는 되었다.
저들은 그저 벌벌 떨고 있었으니.

"나는 대충 얼굴 보여주고 도망칠 건데, 너는 어쩔 거냐?"
"저, 저는......"
"정 무서우면 미리 저택에 들어가 있던가. 대신에 비밀통로 안내는 확실히 해야 한다. 아니면 내가 먼저 널 죽일 거야."
"넵!!"

황급히 영지병을 데리고 줄행랑치는 리우 남작. 결국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또 혼자인가."

아니지, 최소한 방패는 함께하잖아?
등에 걸쳤던 방패를 꺼낸다. 어느새 가까워졌는지 수인종 연합의 진격 소리가 가슴을 두드렸다.

두두두두-

훌쩍 뛰어 담장 위로 올라간다. 문득 방패가 더 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더 큰 방패...... 누구든 지킬 수 있게. 아무도 내 여자들을 건드리지 못하게!'

가벼운 다짐이었다.  욕망에 따른 다짐이기도 했고.
나는 수인종의 숫자를 대강 헤아려봤다.

'원래 오천이라고 했는데...... 그것보단 적은데?'

달려오는 중이라 정확히 세기는 힘들어도 오천은 확실히 아니다. 이천? 삼천?
일부러 낮게 잡았다.

'그래 이천 명. 저기 이천의 병력 앞에 나홀로 맞서는 거다!'

항상 해왔던 일. 방패를 들고 날뛴 후에, 적절히 뒤로 빠지는 것.
그걸 다시 하려고 했다. 묵직한 방패를 들고 담장 위에서 크게 뛰어오른다.

잠시 하늘을 날다가바닥에 착지. 50kg의 방패가 육중하게 흙바닥을 두들겼다.

쿠우웅-

"날 봐라ㅡ!"

나도 모르게 양기가 실렸다. 덕분에 멀리 퍼지는 음성.
수인종 수천의 시선이 내게 쏠린다. 날 것 그대로의 살기가 넘실거렸다.

"크르르?"
"저 자식.....!!"

알아보는 놈도 있는 모양이다. 나는씩 웃으며 외쳤다.

"너희들의 원수가 왔다! 수인종 최강인 호족? 내 방패 아래에 무릎을 꿇었다. 멍청한 타조족?  방패를 따라오지도 못했다."
"크르....!!"
"오늘도 내 방패 앞에서 너희는 무릎 꿇을 거다. 설욕하고 싶다면  쓰러뜨려라!!"

달려오던 수인종들이 마치 정지한 것 같다.
그만큼 스릴 넘치는 선언이었다. 더불어 터지는 폭언.

"실력도 없는 잡것이야!"
"죽여!! 산 채로 찢어서 먹어라!"
"저 녀석 내장을 파먹는 놈은 형님으로 모시마!"

어그로 집중된 게 아주 좋았다. 유인은 확실히 성공할 거고, 약속 장소에 도달하기 전까지 죽지만 않으면 되리라.

'근데..... 가능한가?'

문득 수인종과 너무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멍청한 나머지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씨발..... 도망치려면 다시 담벽을 넘어야 하잖아?"

도발은 어디까지나 담벽 위에서 했어야 했다. 괜히 멋 부린다고 담벽에서 뛰어내린 것이다.
높지도 않은 담벽이다. 하지만 쇄도하는 수인종이 앞에 있으니, 이렇게 높아 보일 수가 없었다.

"빨리.... 넘어가야 하는데.....!"

잠시 주춤거리는 사이, 가장 날쎈 엽표족 하나가 접근한다. 잘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후려치는 녀석.

"간을 빼먹어주마!"

콰아앙-!

겨우 막았다. 알고 막은  아니라, '간'이라는 단어가 들리길래 본능적으로 방패를 들이밀었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급하게 막은 탓에 방패째로 날아간 것이다.

후욱-

몸이 뒤로 처박는다. 내 뒤에 있던 건 담벽.
등이단단한 벽과 충돌하자, 속이 울렁거렸다.

"커헉....!"
"다들 봤지? 아무것도 아닌 놈이야!"

아무것도 아닌건 맞다. 그래도 작전대로만 했으면 괜찮았는데......
수없이 몰려오는 수인종들이 보인다. 아까 세봤던 숫자가 이천은 넘었는데......

'씨발, 미끼를 거절할 걸 그랬나.'

순간 후회가 들었다. 전쟁에 취한 거다. 내 능력에 맞지 않는 자리를 너무 오래 맡았던 거다.
방패 너머로 묵직하게 돌진하는 타조족이 보였다. 저런 놈들이 수천이면......

"죽어도 나 혼자는 못 죽는다고!!"

그래도 의지를 꺾지는 않았다. 이번 전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얻었던가.
나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칠 녀석들이 한 바구니도 넘었다.

그놈들을 뒤로하고 죽을 순 없다.

우직-!

굳건히 방패를 들고 발을 땅에 박을 때였다.
느닷없이 이상한 음성이 들린다.

[축하합니다!]

"응......? 이거 설마......"

혹시? 하는 생각과 그래도 아니겠지.... 하는 생각이 교차한다.

[선천 특성의 개화 조건을 만족하셨습니다!]
[특성- 모든 여자를 위한 방패]

"상태창? 이제 와서 상태창이 뜬다고.....? 대체 조건이 뭐였길래....."

황망한 음성이 대답하듯 다음 문구가 나왔다.

[개화 조건]
[1. 천 명 이상의 적에게 홀로 맞서기.]
[2. 열세의 상황에서도 투지가 꺾이지 않을 것.]
[3. 여자에게 미치기.]

음성은 마지막 문구를 끝으로 사라졌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이제부턴 선천 특성을 잘 활용하시길 바랍니다, 환생자님!]

“허..... 씨발.”

환생한지 이십오  만에 처음 보는 특성이라니. 그것도 선천 특성이란다.
이름만 봐도 느껴졌다. 태어날 때부터 지닌 특성.

순간 내 머릿속을 스친 생각은 한 가지였다.

‘역시 될 놈은 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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