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4화 〉33화 - 약자를 향한 폭력 (34/74)



〈 34화 〉33화 - 약자를 향한 폭력

짐승의 신음소리를 찾아간 곳엔 강아지가 한마리 있었다.
공원의 구석진 울타리 부근이었다.

눈에 들어오는 강아지의 모습은 그야말로 처참한 상태였다.
반쯤 튀어 나온채 덜렁거리는 돌출된 눈알, 턱뼈가 완전히 으스러졌는지 다물지 못하고 덜렁거리며 아래로 축 늘어진  활짝 열려있는 주둥이.

"이게 무슨......"

[헐...]

[뭐야 이거????]


[실제상황이야??]


[끔찍해...]


조심스레 가까이 다가가자 녀석은 반항할 기운도 없는지 그저 고개를 스윽 돌려 쳐다  따름이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상태가 더 심각해 보였다. 이런 깊은 상처를 얻고도 죽지 않고 살아있는게 신기했다.
너무 혐오스러운 장면이기에 카메라를 다시 내쪽으로 돌렸다.


[복이 안색 창백해진거봐...]

[어떡해요?? 어쩌면좋아 정말]

'어떡해야 하지?'

어떻게 해야할지 잠시 고민을 했다.


[119 불러야 하는거 아니야?]


강아지의 애처로운 비명이 쉴새 없이 울렸다.
그 소리가 찢어질듯 날카로워서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종류의 소리였다.
하나의 작은 생명이 고통속에 스러져가며 울부짖는 소리였다.


[낑낑대는 소리를 도저히 못듣겠다...]

[나는 잠깐 소리 꺼놨음..내가 다 심장이 쿵쿵거리네]


구급대원을 부르는것도 방법중에 하나이지만, 수송 이외에  도움이 되진 않는다.
나는 진미령을 떠올렸다.

"근처에 동물병원 있잖아. 내가 거기 원장님도 알잖아."

[맞다 그때 그분!]

[근처에서 동물병원 한다고 했엇지 연락해봐봐]


방송중에 알게된 인연이라 시청자들도 기억하고 있었다.
강아지를 안아들고 대로변으로 나가 택시를 잡았다.
아직 동물병원이 문을 열었을 시간이 아니었다.
차 안에서 진미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뚜르르-

"여보세요?"

"미령씨. 부탁드릴게 있는데요."

"아, 네. 말씀하세요."

상황이 급박해 갑작스런 전화에 인삿말도 잊어버리고 대뜸 본론부터 말했지만,
목소리에서 다급함이 느껴졌기 때문일까? 그녀는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들어주었다.

"길에서 크게 다친 강아지를 발견했어요. 얼굴뼈가 뭉개진 수준인데 거기서 수술 가능할까요?"


"네? 네, 그럼 지금 병원으로 오고계신가요?"

"일단은 그러고 있습니다. 다른데로 가야할까요?"


"아니에요. 이 부근에 대형동물병원이 없어요. 아마 갈곳이 없을거에요."
"멀리 나가기엔 시간이 부족할 것 같으니 병원으로 오세요. 저도 금방 갈게요"

"네, 알겠습니다. 죄송해요 갑자기 이런 전화드려서."

"아니에요. 많이 놀라셨을텐데 조심히 오세요."


[후...너무 다급한 상황이라 뭔 말을 못하겠다]

[개새끼 한마리 가지고 오바는ㅋㅋㅋㅋㅋㅋ]

[와...너는 그냥 숨쉬지 마라]


[막상 눈앞에 포유류가 죽어가고 있으면 다 저럴걸?]

[강아지 상처보니까 사람이 한것 같은데 저런 싸이코새끼가 했을듯]


강아지 한마리 가지고 오버한다라...누군가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었다.
사람도 쉽게 죽어나가는 세상이니까. 당장 원래의 복이부터 자살하지 않았는가.
내가 동물애호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눈앞의 그런 참상을 외면하고 그냥 지나치긴 어려웠다.


인간은 본인의 삶이 고통스러우면 매사에 공격적으로 변한다.
저런 사람들은 안타깝고 불쌍한 사람들이다. 욕하고 매장하기 보다는 보듬어  필요가 있다.

"너무 뭐라고 하지말아요. 나쁘게 말하신분도 본심은 그렇지 않은거 다 알아요. 그래도 저를 포함한 다른 시청자분들이 불쾌하셨으니까, 제 방송 계속 보실거면 사과해주세요."


[죄송합니다...힘든일이 있어서 괜히 화풀이 했습니다]


결국 그는 채팅으로 사과를 했다. 내 방송에서 지금과 같은 상황이면 후원금과 함께 말을 하는게 일종의 관행이 되어버린 지금. 만원도 못  만큼 경제적 여유가 없다는 이야기 이기도 했다.
내 방송의 후원은 전액 기부이기에, 후원을 하는 심정의 허들이 더 낮은데도 말이다.


좋게 말해줘도 끝까지 굽히지 않는 꼴통들도 많은데, 저정도면 아주아주 양반이다.
한 순간의 실수라고 봐줘도 되겠지. 나도 생활고에 시달린적이 있었는데, 그땐 온 세상이 다 미웠으니까.

택시가 미끄러지듯 병원에 도착했다.
가까이에 살고 있었는지 진미령은 나보다 먼저 도착한  했다.
병원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빠르게 움직이면 어딘가 더 덧날까봐 상체를 최대한 흔들지 않으며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걸었다.

"오셨어요?"

"네, 이렇게 폐를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그러지마세요. 좋은일 하시는건데요."


병원 내부의 수술실로 강아지를 데리고 가자 그녀가 상태를 살펴보며 말을 이었다.

"지금 보조 인원이 아직 출근을 안해서, 저 좀 도와주셔야 할 것 같아요."


"네, 시켜만 주세요."

고사리 손이라도 빌려 써야할 상황이라, 약물 팩을 쥐어 짠다거나 수술도구를 건네준다거나 하는 보조를 돕기로 했다.

"일단 촬영 먼저 할게요."


서둘러 엑스레이(X-ray)와 CT 촬영을 했다. 제대로  진단을 내려야 수술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진미령은 촬영사진을 쳐다보며 말했다.

"상황이 생각보다 더 안좋아요."
"안면부 쪽에서 다발성 골절."
"하악 탈구에 권골 골절, 거기에 하악골 관절조직까지 골절 됐어요."
"수술중에 견디지 못하고 죽을수도 있습니다."

"일단 수술 시작하겠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보조 해주세요."


"예."

"각막이 다 녹아서 그냥 적출해야 될것 같아요. 가위주세요"


"네..."


장장 5시간에 걸친 대수술이었다.  사이에 직원들이 출근해 수술실로 들어왔다.
수술이 시작되고 얼마 안되어 간호사가 출근 했기에 내가 도울건 별로 없었다.
수술이 끝나고 지친 기색의 진미령이 걸어나왔다.


"수술은 잘 끝났어요. 회복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알겠지만..."


"네,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이게  일인걸요. 발견해서 데려온 복이씨가 더 대단하세요."

격려의 말이 오가고, 그녀의 표정이 조금 무거워졌다.


"상처가 너무 심해서 처음엔 교통사고를 의심했었는데..."
"차에 치였을때 으레 발생하는 복막파열이나 대퇴부 골절이 전혀 없었습니다."
"상처가 머리에만 집중되어 있었어요."

"그렇다는건, 사람이...했다는 말씀인가요?"

"확실하다고  순 없겠지만, 정황상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하아......"

안타까운 현실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대체 무슨 원한이 있어서 길거리에 사는 강아지의 머리통을 으깨 놓는단 말인가?
끔찍한 세상이었다. 부디 저 폭력성이 같은 인간에게 향하지 않기를 기도할 뿐이었다.


"일단은 들어가 보세요. 회복되는대로 연락 드릴테니까."

"네. 그럼 이만 들어가볼게요."


병원을 나서는 뒷맛이 상당히 씁쓸했다.


《제목 : 동물학대 현장 실시간방송》
[영상] [사진]

복이 아침운동 끝나고 공원에서 학대당한 강아지 발견함...
동물병원 데려가서 수술받게 하고 진짜 난리 났었음


ㄴ 충격적이더라
ㄴ 얼굴을 완전히 박살을 내놨던데
ㄴ 저지른놈 사람새끼가 아님 ㄹㅇ로
ㄴ 그런놈들 나중에 사람도 죽이는거 아님??
ㄴ 요즘에 묻지마 폭행하는 또라이들이 다 저런놈들일듯
ㄴ 어제도 커피숍에서 다짜고짜 주먹 날려서 기절시키고 또 때렸더라
ㄴ ㅅㅂ 존나 무서워서 살겠나


"누군지 몰라도 정말 몹쓸놈이네."

[존나 충격 ㄷㄷㄷㄷ]

[미친놈이 참 많어]


[그래서 나는 이불밖으로 안나가자너]

[넌  밖에 나가라 ㅋㅋㅋㅋㅋ]


"점심시간이 한참 지났네. 여러분들 식사는 했어요?"

[우린 먹었지]


[복이 배고프겠네 아침부터 뛰고 지금까지 아무것도 못먹었잖아]

"허기는 지는데 입맛은 없네요."

[그래도 밥은 챙겨먹어야지]


[ㅇㅈㅇㅈ 그러다가 근손실남ㅋㅋ]


[나는 복손실남]

"네, 밥 먹을게요. 나온김에 밖에서 대충 먹고 들어가야겠네."

눈에 띄는 가장 가까운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24시간 내내 영업하는 분식집이었다.
카운터에서 촬영 허락을 받고 자리에 앉았다.


"돈까스 하나 주세요."

[김천 돈까스는 못참지 ㅋㅋㅋㅋㅋㅋ]

[저런데 한번도 안가봣을것 같은데 ㅋㅋㅋㅋ]


[자연스러움 무엇?ㅋㅋㅋㅋㅋㅋㅋ]

주문을 마치고 얼마 안되어 기본 반찬과 국이 나왔다.


"내가 여기 올때마다 궁금한게 있는데."

말을 꺼내며 카메라로 테이블을 비췄다.
국그릇이 저절로 밀리며 움직였다.

"이거 대체 뭘까."


[그거 귀신이야 ㅋㅋㅋㅋㅋㅋㅋ]

[거울보면 귀신보임 ㄷㄷㄷㄷㄷㄷ]


[아 나 진짜 무서운거 싫어해 하지마루요]

[ㅋㅋㅋ저거 진짜 맨날 움직임ㅋㅋㅋㅋ]


[근데 또 테이블 아래로 쏟아지진 않음ㅋㅋㅋㅋ]

[미친과학자님이 60,000원 후원 하셨습니다!]
'국그릇이 뜨거워서 그릇 아래의 공간에 갇힌 공기가 팽창해서 테이블을 밀어내는 것임'


"아 그런거야?"
"그럼 이렇게 하면  움직이겠네."

국그릇을 들어 올리고 휴지를 한칸 깔았다. 휴지 위에 그릇을 내려놓자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뭐죠? 문과라 모르겠습니다]


[왜?? 왜때문에???]

[나도 문관데 알겠는데 위에 니들은 전공때문이 아니라 그냥 멍청한거 아닐까?]

[ㅋㅋㅋㅋㅋ문과싸움 레전드네 ㅋㅋㅋㅋ]

[이과가 모르겠으면 그냥 뒤지면 되냐?]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니들 다 컨셉이지??응? 저 간단한 원리가 이해가 안된다구??]


[모를수도 있지 똑똑한척 하지마셈 ㅡㅡ]


나도 별것도 아닌걸로 생색내고 싶진 않았기에, 따로 설명을 덧붙이진 않았다.
역시 분식집답게 돈까스가 금방 나왔다.


"감사합니다."
"자~ 먹어볼까. 나는 먼저 다 썰어놓고 먹는 편이야."


[그게 국룰이제~~~]


[난 먹을때마다 한조각씩 써는데?]


[스테이크냐 ㅋㅋㅋ 돈까스를 뭐하러 썰어가며 먹어]

[어릴때 경양식돈까스 첨먹고 진짜 너무 마싯어서 울었음]


[돈까스 사준대놓고 엄마가 치과 데려감...그래서 지금도 돈까스 싫어함]


[흐미 ㅋㅋㅋㅋㅋㅋㅋ 그건 치과가 나빴다 ㅋㅋㅋㅋㅋㅋ]

[엄마가 나쁜게 아니고?ㅋㅋㅋㅋㅋ]


[부모님 욕하긴 글차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탈룰라잼ㅋㅋㅋㅋㅋㅋ]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가며 칼질을  마치고 젓가락을 들어올렸다.


[pork는fork로님이 50,000원 후원 하셨습니다!]
'포크는 포크로 먹어야지 왠 젓가락이 튀어나와?'


"응? 나는 썰어놓고 젓가락으로 집어먹는게 편하던데."

[신토불이가최고야님이 50,000원 후원 하셨습니다!]
'한국인이 젓가락을 써야지 니가 무슨 양키냐?'


[포크단vs젓가락단 전쟁의 서막]


[엌ㅋㅋㅋㅋ근데 나도 젓가락으로 먹는데?]

[난 포크로 먹는데?? 돈까스는 포크로 먹지않나?]


[썰을때 포크랑 나이프 써놓고 젓가락 꺼내는게 어딨어]

[그럼 반찬도 포크로 집어먹음??]

[반찬은 젓가락으로 먹는데..? 어...?]


[그게 뭐냐 ㅋㅋㅋㅋㅋㅋㅋ]

[난 반찬도 다 포크로 찍어먹음]

"이건 또 무슨. 아닌 밤중에 홍두깨야."

정말 별걸로 다 논쟁을 벌인다.


[복아...가끔 널 보면 우리 삼촌을 보는것 같아]

[틀말투 ㅆㅂ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근데 말하는거 은근히 틀딱같어 ㅋㅋㅋㅋ]


[할머니 손에서 자랐나?]

"나 부모님 안계셔."


[탈룰라...]


[외쳐...탈룰라...]


[ㅅㅂ 장난치지말어 병신들아 분위기봐]

[소년소녀가장님이 200,000원 후원 하셨습니다!]
'복아 놀릴려고 그런건 아니었어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

"괜찮아. 모르고 그런건데 뭘. 그리고 이런걸로 상처 안받으니까 너무 그렇게들 하지말고, 오히려 불편해."


복이의 부모님은 나랑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어찌됐든 현재 부모가 없는건 맞았으므로 거짓말을 한건 아니었다.

[그래서 수익 기부하는건가?]

[힘든사람들 돕고 싶은 마음을 카지고 컸구나...]

[어려운 상황속에서 피는 꽃이 진짜라더니]


[진흙속에 피어나는  줄기 연꽃같은 사람이구나]


[육수들 토쏠린다고 욕하고 싶은데...그럴 분위기 아니라 참음.]


밥을 깨끗하게 비우고 가게를 나섰다.

"아무튼 일단 방송은 여기까지 할게."
"이따 보자. 복바복바"


[ㅇㄸㅂㅈ]

[복바복바~~~~]


[복손실 나는동안 숨 참는다 흐으으으읍!!]

[나도 참는다!! 흐우우우우우웁~~!]

인사를 나누고 방송을 종료했다.
포털사이트에 들어가니 내 방송의 영향인지 관련 기사들이 여러개 올라와 있었다.


<5년간 500% 폭증한 동물학대…엉성한 경찰 수사 매뉴얼>

<강화된 동물학대 처벌...최고 징역 3년형 실형>


<말 못하는 생명에 몹쓸짓, 근절되어야 할 동물학대>


역시나 가장 먼저 쓰여진 기사는 진기한의 기사였다.
그의 기사에만 오늘 내 방송에 대한 언급도 들어가 있었다.

원래도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사안이었지만, 마침  시간에 기사들이 올라오는걸 보니.
아무래도 내가 영향을 미친것 같았다. 내가 사회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되는것이 지금 방송을 하는 이유이지만, 이런 일로 그 파급력을 확인하게 되니 기분이 착 가라 앉았다.

진미령에겐 아직 연락이 없었다.
회복하는데 시간이 걸릴테니 조금 더 기다려보면 연락이 올거다.

가볍게 고개를 털며 미리 검색해둔 피트니스센터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저녁엔 운동방송을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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