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화 〉63화 - 대지를 흔드는 재앙
오늘 밤이면 새로운 보급대가 올 시간이었다.
부상자 21명을 제외한 143명의 인원들 전원을 무장시켰다.
이젠 모두가 서로를 믿는다. 적어도 여기서만큼은 그래야 한다는 걸 모두가 느낀 것이다.
분열과 불신은 곧 파멸을 뜻하기에.
중상자들이 많은만큼 경상자들은 얼른 자리를 털고 일어나려 했으나, 그냥 충분히 쉬어두라는 지시만 내렸을 뿐이다.
정찰이 없는 일과 시간엔 늘 같은 일정이 반복되었다.
나와 한소희는 초능력 훈련을, 부대원들은 제한된 탄약으로 사격훈련과 포술훈련 등 군사 훈련을 했다.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모두가 살기 위해서 악착같이 배워나갔다.
전투 상황을 상정한 가상의 모의 훈련도 병행되었다.
전투원들에게 소희와 나의 초능력에 대해 설명 해주고, 전투 시 우리에게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우리의 능력이 사용되었을 때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등 전투작전이 오고 갔다.
일과가 끝나고, 밤이 깊었을 때 추가 보급대가 도착했다.
이 늦은 밤에 도착한걸 보니, 지휘관이 오늘 안에 도착해야 한다며 얼마나 강행군을 시켰을지 눈에 선했다.
자고 있던 장 대위가 힘겹게 일어나고, 나는 깨어있었기에 힘들 것도 없었다.
"안녕하십니까. 4차 보급대 대장인 홍병목 상사입니다."
"반갑습니다. 현재 보급 대장인 장인하 대위입니다."
"공략 팀장 오복 대위입니다.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이번에 들어온 보급대의 규모는 총 103명으로 전투원 70명에 보급원 37명으로 이루어졌다.
예상을 깨고 전투원들이 많이 들어온 건 희소식이었다.
그에게 여태까지의 사건들과 현재 상황을 알렸다.
"허어어..."
역시나 저런 반응을 보일 줄 알았다.
특히 선발대와 1차 보급대가 다 전사한 게 충격인듯했다.
더군다나 여태까지 사상자가 500명을 넘는다는 건 정말 이 사태가 세간에 알려지면 온 세상이 발칵 뒤집어질 일이었다. 심지어 희생이 끝난 것도 아니었고, 현재진행형이었다.
그리고 홍 상사는 5번에 걸쳐 사람들이 수백 명이 들어갔음에도 별 다른 소득이 없자,
국가가 압박을 심하게 받는 중이라는 이야길 전해줬다.
인권단체부터 시작해서 외신에서도 한국의 행태를 보라며 안 좋게 보도하는 등, 사이비 단체는 등불처럼 들고 일어나 권력자들이 악마에게 먹혔다며 전 국민을 저 곳에 쳐넣어 죽이려고 한다고 발광을 한다고 했다. 그리고 몇몇 각성자들이 끔찍한 사고를 치는 바람에 실제 여론도 좋지 않다고 했다.
바깥에선 고작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았을텐데.
벌써부터 잡음이라니. 하긴, 대중들은 늘 그렇다.
인간 개개인은 똑똑하지만, 대중이 되면 무지해진다.
권력자들은 자신의 밥그릇을 위해서 선동과 날조를 한다.
그 밥그릇이 탐욕스럽게도 커다랗기에 늘 갈등과 불화를 낳는다.
슬슬 적합자를 더 찾기도 어렵고, 공략 일주일이 다 되도록 진전이 없자, 적합자가 된 사실을 숨기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했다. 그런 이유로 다음 지원부터는 규모가 많이 줄어 들거라고 했다. 최악의 경우 추가 지원이 없을 수도 있었다.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일이고, 어차피 여기서 원기옥이나 모으며 더 이상 질질 끌 생각도 없었다.
일단 밤이 늦었기에 향후 일정은 내일 토의하기로 했다.
아침이 밝아오자, 화기를 점검하고 탄약을 확인했다.
전 병력이 배를 든든히 채웠다.
드디어 결판이 난다.
수 많은 희생을 겪어가며 전 지역을 탐색하며 전투를 치뤘고,
이제 남은 곳이라곤 남쪽의 숲 지역 하나뿐이었기에.
213명의 전투원과 부상자를 포함한 58명의 전투 보조인원, 총원 271명의 최후의 결사대가 완성되었다.
거동이 불편하지 않은 보조인원들까지 모두 개인화기로 무장 시켰다.
전투 경험이 쌓인 병력들로 구성되었고, 강력한 초능력자까지 두 명을 보유한 이번 공략대 최대의 전력이었다.
비장함이 감도는 가운데 군대는 보무도 당당하게 걸어 나갔다.
하루를 꼬박 이동했다. 희미하던 숲이 가까워짐이 느껴졌다.
괴수의 습격 없이 하룻밤이 지나갔다.
다음날이 밝고 나와 소희가 먼저 나가서 살펴보니 숲이 아니라 산이었다.
복귀하여 그에 대한 보고가 이루어지고, 오늘 해가 떨어지기 전에 당도가 가능한 거리였기에 속행했다.
마침내 산의 초입에 들어선 부대는 여기서 하루를 더 보내고 해가 뜨면 산행을 시작하기로 했다.
내일이 되면 나와 소희가 먼저 산을 훑어보고 괴수가 있다면, 산악전은 엄청나게 불리하기에, 나무를 불태우며 올라갈 작정이었다.
해가 뉘엿뉘엿 떨어지며 하늘이 어둠으로 물들려는 그때였다.
지진이라도 난 듯이 바닥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뭐야, 갑자기?"
"지진인가? 어어엇!"
여기서 자연재해를 겪은적은 없기에 모두가 당황을 했다.
곧이어 대지가 쩍쩍 갈라지며 그 균열이 드러났다.
그리고 갈라졌던 대지가 위로 솟구쳐 올랐다.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의 거대한 괴성을 내지르며 몸체를 드러낸 녀석은, 거대한 거북이였다.
산이라고 생각했던 게 사실은 놈의 등껍질이었던 것이다.
전설 속의 현무가 저러할까.
여태까지 실제 동물들의 선에서 비교가 가능했던 괴수들과 괴를 달리하는 육중한 동체에 좌중이 한순간에 압도당했다.
계속 놀라고 있을 틈은 없었다.
"뒤로 빠져!"
이미 솟구쳐 오른 대지로 인해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었다.
놈이 저 거대한 몸체로 병력들을 뭉개는 순간 끝장이다.
전 병력이 급속 후퇴를 거듭하는 동안, 놈은 천천히 몸을 돌려 거대한 대가리를 우리쪽으로 향했다.
놈의 체내에 저장되어 있던 하이드로퀴논과 과산화수소가 결합되며 세상 밖으로 뿜어졌다.
난데없는 불꽃 브레스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괴수들은 타고난 피지컬을 이용해 물리적 공격을 가하지, 저런 화학적인 공격 방식은 그야말로 상상도 못한 공격이었다.
"끄아아악!"
"아악!아아아아아악!"
불꽃에 직격당한 병력들이 산채로 불에 타버리며 끔찍한 단말마를 내뱉었다.
대체 어떻게 공격을 해야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대갈통이 너무 커서 중력으로 내리누를 수도 없었다. 이상하게 능력 발현 자체가 안 됐다.
특정 부분에 가하는게 아니라 하나의 객체 전체를 누르는 거였나.
한소희도 마찬가지로 놈을 저지할 방법이 없는듯 했다.
그때 직격하진 않았으나 스치듯 지나간 화염에 온몸에 화상을 입은 채 널부러진 임보람이 보였다.
잽싸게 그녀를 안아들고 달렸다. 녹아내린 피부에서 기포가 부글부글 올라왔다.
"정신 차려봐!"
"어...팀장님...나가면 데이트...하고 싶었는데...나...당신...좋...아...하."
"야아! 임보람!"
그녀는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다.
이별은 이렇게 늘 갑작스레 찾아온다.
작별 인사를 건넬 틈도 없이......
나는 조용히 그녀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펑- 슈우웅-
박격포가 불을 뿜었지만 놈의 거대한 동체는 그 재질도 범상치 않은지 별 타격이 없어보였다.
등껍질은 공격해 봐야 아무 의미가 없을 테고, 그나마 노출돼있는 대가리나 다리도 유의미한 피해를 입히기가 어려워 보였다.
투다다다당-
총알을 마구 난사하는 인원들이 있었지만, 거대한 바위산에 총을 쏘는 느낌이었다.
백린탄이 등껍질에 있는 나무들에 불을 질렀고, 놈은 활화산을 등에 업은듯 활활 불타는 등껍질을 업은 채 입에서 뜨거운 불꽃을 뿜어댔다. 불타는 지옥에서 온 듯한 미친 거북이가 한 걸음을 내딛자 대지가 비명을 지르며 내려 앉았다. 밟힌 사람들은 형체도 찾을 수 없었다.
"현궁 가져와! 현구웅!"
현재 다섯 기가 구비되어 있는 대전차 미사일을 다급하게 찾았다.
미사일 쏘는 법은 배워뒀기에 나도 하나 붙잡았다.
직사모드로 놈의 대가리를 조준하고 발사했다.
Fire & Forget이 가능한 자율무기이기에 발사 후 그대로 도주를 이어가며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미사일은 착실하게 놈의 머리통을 자동조준해 쫒아가며 적중했다.
연이어 미사일 4대가 적중하며 큰 폭발을 일으켰다.
놈은 대가리를 흔들며 괴성을 내질렀다.
그대로 이어진 2차 사격이 차례로 놈에게 닿았다.
총 10발의 미사일을 머리통에 박아넣은 거북이 괴수는 머리통이 곤죽이 된 채 아래로 고개를 떨궜다.
하지만 놈의 다리가 풀리지 않았다. 머리가 죽으면 다리도 주저 앉아야 하지 않나?
어떻게 저렇게 굳건하게 서있는거지.
그때였다.
놈의 꼬리에서 뱀 대가리가 튀어 나오며 주변을 휩쓸었다.
그 거대한 크기에 걸맞게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졌다.
엄청난 길이를 자랑하는 뱀은 거북이보다 머리통은 작았으나 그 신축성과 속도 덕에 오히려 불을 뿜어대던 거북이보다 더 위험했다.
뱀의 아가리 속으로 사람들이 그대로 사라져갔다.
채찍같은 몸뚱이에 치이거나 깔리는 사람들이 그대로 피 곤죽이 되어버렸다.
놈의 대가리가 나를 향해 쏘아져 왔고, 미리부터 달리고 있던 나는 겨우 정면충돌을 피했다.
나를 집어삼키는 걸 실패한 놈이 몸통을 흔들어 출렁거리듯 나를 후려쳤다.
"커헉!"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고통이었다.
그 한 번의 공격에 갈비뼈가 전부 박살 나며 내장을 마구 찔렀다.
아군이 기회를 틈타 발사한 두 발의 미사일이 놈을 향해 날았지만, 머리에 닿기전에 놈이 흔들어댄 몸통에 박혀 들어갔다. 타격이 없지는 않았으나 놈을 침묵시키진 못했다.
뱀을 향해 총알이 빗발치고 박격포가 어떻게든 해보려고 본체의 등껍질과 다리부분을 공격했다.
하지만 길쭉하게 늘어난 뱀 대가리는 무자비하게 인간을 학살했고, 거대한 몸뚱이까지 걸음을 옮기며 밀어붙이자, 병력의 괴멸이 멀지 않은 순간이었다.
한소희에게로 향하는 뱀의 아가리를 보며 미친 듯이 능력을 사용하려고 했으나, 놈은 짓눌러지지 않았다.
"왜! 왜 안되는 거야! 아아악!"
푸슈웅-
놈의 대가리로 미사일을 쏘아보냈지만, 놈은 다시 한번 몸으로 받아냈다. 몸 곳곳에 구멍이 뚫리고 내부가 터져나갔지만, 질긴 생명력을 가졌는지 아직도 쌩쌩했다. 자세히 보니 상처가 아물고 있었다.
깜짝 놀라며 거북이 대가리를 바라보자, 마찬가지로 회복중이었다.
감당 불가능한 끔찍한 재앙이었다.
이미 꼬리에서 튀어나온 뱀만으로도 부대원들이 다 죽어나가게 생겼는데, 거북이까지 다시 눈을 뜨면 전 인원이 몰살 당하는데 몇 분이나 걸릴까. 1분은 버틸 수 있을까.
벌린 아가리를 피하며 몸통에 스치듯 얻어맞고 날아간 한소희가 초능력을 바닥까지 긁어모았다.
그녀의 양팔 전체가 푸른 빛으로 휩싸이며 어깨 위로 넘쳐 흐르는 빛의 입자가 흩날렸다.
꽃잎같이 흩날리던 입자가 한 조각씩 끼워맞춰지며 등 뒤로 선명한 꽃의 형상을 빚어냈다.
아름다운 푸른색 수국이었다.
단 한줄기의 굵은 넝쿨이 놈을 향해 뻗어 갔다.
꽈드득-
정신없이 활개치던 뱀이 본인만큼 두꺼운 푸른 넝쿨에 칭칭 감기며 움직임을 멈췄다.
순식간에 희미해지는 넝쿨을 보며 시간이 얼마 없음이 느껴졌다.
박격포를 들고 달려 놈의 아가리 내부에 그대로 난사를 했다.
여러발의 포탄이 순식간에 놈의 머리통을 곤죽을 내놨다.
꼬리가 당겨지며 뱀의 머리통이 다시 등껍질 속으로 들어갔고, 거북이 대가리가 깨어났다.
한소희는 이미 피를 쏟으며 기절한 후였다. 나는 소희를 안아들고 불꽃 세례를 피하기 위해 미친 듯이 달렸다. 내가 있던 자리로 붉은 화염이 휩쓸고 지나갔다.
남은 인원들이 없는지 총성도 폭격음도 들리지 않았다.
그래, 이 난리 통에 살아남았다면 차라리 모두 달아나는 게 나았다.
승산이 없었다.
싸워봤자 의미가 없기에 도주를 택하려는데, 거북이 놈이 내 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누가 거북이를 느리다고 했는가. 진짜 엄청나게 빨랐다. 덩치가 커서 걸음이 큰게 아니라 다리가 움직이는 속도 자체가 빨랐다.
순식간에 내 쪽으로 다가온 거대한 놈은 이내 내 머리 위의 하늘을 뒤덮어 버렸고, 고개를 들어 올리니 놈의 배 밖에 보이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배가 약점일까 했지만, 뱃가죽도 아주 튼튼해보였다.
놈이 그대로 주저앉으며 나를 깔아 뭉개려고 했다.
나는 소희와 함께 쥐포가 되기 싫어서 정말 젖 먹던 힘까지 다해서 뛰었다.
쿠웅-
흙먼지와 함께 거대한 충격파가 주변을 휩쓸었다.
나는 버르적거리며 바닥을 굴러 몸을 일으켰다.
간발의 차로 놈의 공격을 피한 나는 도주가 불가능 하다는걸 깨달았다.
그 누구도 이 전장에서 도망칠 수 없다.
그리고 꼬리쪽의 뱀 대가리가 슬며시 고개를 내밀었다.
헛웃음이 나왔다.
이런 규격 외의 미친 괴물이 있어서 괴수를 씨를 말리듯이 잡았는데도 공략이 안됐던 거구나.
차라리 처음부터 숲 쪽으로 왔으면 선발대가 전멸하고 포탈이 적색이되서 사람이 덜 죽었을텐데.
이딴 괴물이 있다는 얘기는 없었잖아. 이거 죽일 수는 있는 거야?
전차 끌고 와서 자주포를 난사하거나, 전투기가 와서 공대지유도탄 난사라도 해야 하는거 아니냐고.
아니면, 뭐, 전술핵이라도 갈겨야 하는거 아니냐고!
"이걸 도대체 어떻게 잡으라는거야!"
악다구니를 써봤자 아무것도 해결되는 게 없었다.
소희는 분명히 잠시나마 뱀 머리를 붙잡았다.
그녀의 능력과 내 능력이 다르기에 가능한 기예일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내 능력에 마지막 희망을 걸어볼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놈의 거대한 동체 전체를 찍어누를 수가 없었다.
놈의 머리에만 힘을 집중하려고 해도 말을 듣지 않았다.
변화가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