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화 〉64화 - 별의 죽음
방식을 바꾼다. 생각을 달리한다.
중력. 만유인력에 원심력이 작용하는 힘.
자연계의 4대 힘 중 하나.
우주의 근간을 이루는 것 중 하나.
시간이 점점 느리게 흐르기 시작한다.
아니, 외부에서 관측하는 나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보일 뿐이다.
모든 상식을 뒤틀고 사고를 개변한다.
내 안에 하나의 소우주를 만들어 냈다.
그 안에 빛나는 별을 만들어 냈다.
억겁에 가까운 긴 시간동안 별을 지켜보았다.
나는 그를 사랑하였고, 그도 나를 사랑하였다.
긴 긴 시간 동안 열렬히 타오른 별은, 이내 그 수명을 다해가며 차갑게 식어가기 시작했다.
중력붕괴를 일으키며 끝없이 수축하는 그를 보며 내 영혼은 깊은 슬픔에 잠겼다.
적색거성으로 변하며 화가 난듯이 부풀어 오르더니 이내 계속 늘어나는 중력에 의해,
체념하듯 맑게 빛나는 백색왜성이 되었다.
미안해. 아프게 해서 미안해.
계속해서 중력이 더해졌다.
끊임없이 강해지는 중력에 의해 초신성 폭발이 일어나게 되고 별은 비명을 질렀다.
미안해...
중성자별이 된 나의 아이는, 이제 그만 쉬게 해달라고 하였으나.
나는 계속해서 중력을 더했다.
극도로 압축된 질량이 최후의 수축을 일으키고.
내가 창조하고, 사랑했던 별은 싸늘한 시체가 되었다.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
검은 안개로 이루어진 왕관의 위로 블랙홀이 떠올랐다.
내 의지를 따라 거대 괴수가 빨려 들어왔고.
무한대에 가까운 강력한 중력에 의해 원자 굵기의 길쭉한 가닥이 되며 소멸했다.
내 의식은 그대로 끝없는 암흑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시간도 공간도 멈춰버린 어둠만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나는 죽어가던 내 아이의 아픔과 슬픔을 느끼며 끊임없이 절규했다.
***
"속보입니다. 블루 포탈이 변화를 일으키며 녹색으로 바뀌었고, 정부는 이를 그린 포탈이라 명명..."
"조사 결과 포탈 내부의 규모가 대한민국의 1/4 규모로 밝혀져 충격을 주는 가운데...구조대가 들어가 현장을 수색해 생존자를 발견했습니다. 생존자는 단 한 명으로 밝혀져...현재 의식이 없는..."
"내부에서 있었던 일의 유일한 증거인...생존자가 포탈 내부를 촬영한 영상으로...당국은 영상 자료의 분석에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곧 대중들에게 공개될..."
"매장된 시신들을 수습해 유족에게로 돌려보내는..."
포탈 공략의 유일한 생존자는 구조되고 며칠이 지나도록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
최고의 의료진들의 갖은 노력에도 별 다른 차도를 보이지 않았다.
정부는 영상자료를 은폐하고 비공개를 조건으로 해외에 팔아넘기려 했다.
이럴 때를 대비해 받은 언질이 있는 진기한이 본인의 기자 인생을 걸고 막아냈다.
모든 사람들이 권력층의 조작 없이 포탈의 진실을 알 수 있도록.
이 과정에서 굴지의 기업 총수의 딸이었던 신분을 드러낸 진미령의 도움도 톡톡히 받았다.
그녀가 없었으면 진실은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했을 터다.
어느 관사 안, 그녀의 목소리가 녹음된 녹취록이 흘러나왔다.
이런 상황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준비된 파일의 재생이 끝나고 진기한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이런 식이면 매우 곤란합니다. 분명히 영상은 대중에게 공개하기로 약속되지 않았습니까?"
"안에 담긴 내용의 파급력이 너무 커요. 내부 검토가 이루어지고서야 가능할 일입니다."
"그러면 해외로는 왜 빼돌리는 겁니까?"
"빼돌린다니요! 우방국에 정보를 주는 것뿐입니다."
"비겁한 변명입니다. 이번 일 절대 좌시하지 않겠습니다. 이 녹취록을 외부에 공개하고, 정부에서 진실을 은폐하려 한다고 알릴겁니다."
"흥, 계란으로 바위를 치려거든 맘대로 하시오."
진기한은 이를 갈며 주먹을 꽉 쥐었다. 언론이라고 권력에서 자유로운게 아니다.
원래라면 그래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이상적인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때 그의 곁으로 전화기를 든 보좌관이 다가왔다.
"받아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 예! 진 회장님. 예, 예? 아...그러셨군요. 어, 예, 예. 잘 알겠습니다."
앵무새처럼 알겠다는 말만 반복하던 담당자는 뱁새 눈을 뜨며 표정을 굳혔다.
"아주 훌륭한 인맥이 있어서 그리 뻣뻣하게 굴었구려? 능구렁이를 앞에 두고도 모르고 있었구만."
의식을 찾지 못하는 그녀의 병실에서 마주친 진미령은 자신이 도울 일이 있으면 돕겠다는 의사를 전해왔었다. 그 진 회장의 막내딸이란 얘기를 듣고 얼마나 놀랬는지. 평범한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 경영권 승계에서도 빠지고 세간에 얼굴을 알리지도 않았지만, 자신의 입지가 떨어지는건 아니라고 했었다.
알고보니 VIP병동도 국가에서 마련해 준게 아니라 진 회장 산하 의료 재단의 도움을 받은 것 이었다.
"그럼 원본 파일은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진기한은 그녀가 목숨을 걸고 찍어온 영상을 소중히 품에 넣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 선정우에게 전달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복이 씨는 이 영상을 통해 더 발전된 공략대를 원했습니다. 본인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준비 조차 내부에서의 변수에 전부 대응하지는 못할 거라고 말했어요. 더 체계화되고 더 효율적인 무장과 인원 구성을 위한 자료가 될 거라고 했습니다."
"그 모든걸 미리 알려주었다는 게 놀라울 뿐입니다. 그녀는 진실로 미래를 보고 온 거겠죠. 걱정 마십시오. 제가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겠어요."
선정우가 편집해서 올린 영상은, 영화처럼 한 시간 정도로 구성된 영상들이었는데.
수십 개국의 언어로 번역된 이 영상들의 조회수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갔다.
서비스 이래로 쓰여진 모든 기록을 갈아 엎을 수준의 노도와 같은 기세였다.
그들이 겪은 보름간의 시간은, 가감 없이 전 세계인들에게 공개됐고.
공략대는 범세계적인 영웅이 되었으나, 그 영광을 받을 자들은 모두 진토가 되었고,
남아있는 한 사람조차 의식이 돌아올 기약이 없는 상황이었다.
[복아......]
[현실은 영화보다도 더 끔찍하구나...저런 곳에 사명감 하나때문에 자진해서 갔다고? 어떤 곳인지 알면서도? 믿어지지가 않는다...우리랑 같이 떠들고 게임하던 복이가...]
[의식은 아직도 없는거래? 왜 제대로 된 보도가 없는거야 그저 의식이 없다고만 하네]
[전사자 유족입니다...모두가 한 마음으로 똘똘 뭉쳐서 역경에 부딪히다 발생한 희생이어서 그나마 마음이 좀 편하네요...철저하게 장기말로 소모된게 아니라 지휘관이던 그녀가 모두를 지키려고 애쓰는 모습과 상실의 슬픔을 겪는걸 보며 저도 울었습니다...아버지도 자랑스러울 겁니다.]
유수와 같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사람들은 포탈의 영웅들을 잊지 않았다.
영상은 수 없이 반복 재생되었고, 포탈로 인해 세상이 망가질거라 경고했던 그녀의 예언에 반하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 포탈을 보며 사람들은 그들이 종말을 막아냈다고 찬양했다.
그녀를 신격화하는 단체들도 나타났을 정도였다.
마지막의 그 거대괴수가 순식간에 어디론가 사라진걸 보면 그럴만도 했다.
갑작스레 사라진 괴수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잘은 모르겠지만, 그녀가 처리했음이 확실했기에.
"금일 포탈 공략 도중 전사한 순국선열들을 기리고자 하는 훈장 수여식이 있을 예정입니다...정부는 이에 따른..."
총 763명의 인원들 전부에게 훈장이 내려졌다.
유일한 생존자에게는 무공훈장과 보국훈장이 최고등급으로 수여되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는데, 훈장엔 무궁한 명예가 있지만 먹고 사는데 도움이 되는건 아니란 것이다.
정부가 전사자들의 보상금을 쉬쉬하며 미루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유가족들이 들고 일어나고, 지도부는 혼란스러운 정국을 이어갔다.
그 와중에 정부는 그린포탈을 국유지로 선정했다.
"정부는 포탈의 소유권을 포기하라!"
"들어갈땐 보상금으로 유혹! 나와서는 나몰라라! 현 정부는 퇴진하라!"
"훈장으로 눈 가리고 아웅하냐! 유가족 피눈물 흘리게 하는 정부는 필요없다!"
"나라를 지킨 사람들에 대한 대우가 이거냐! 참전용사 냉대하는 시대 착오적인 정부는 사퇴하라!"
온 세상이 시위로 가득찼다.
유족들의 보상을 요구하는 소리, 그린 포탈의 권리에 대한 이의제기 등,
대중들은 이번 일을 좌시하지 않고 들불처럼 들고 일어났다.
계절이 바뀌었다.
푸르른 봄에서 완연한 여름이 되기까지 수 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그녀에겐 연명치료만 이어졌을 뿐, 의식이 돌아올 기미는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공개된 치료 모습에 대중들은 슬퍼하였다. 전문가들이 뇌사나 다름없다는 판정을 내렸기 때문에.
"복이 씨, 희망이는 잘 크고있어요. 어찌나 똑똑한지 눈치도 빠르고 말도 잘 알아들어요. 아참, 이름은 희망이라고 지었어요. 왠지 복이 씨랑 잘 어울리는 이름 같아서요. 얼른 일어나서 희망이랑도 놀아주고, 저랑도 맛있는거 먹으러 가요."
"이제 제 밀어주는 기사가 없이도 전 세계적인 스타십니다. 허허... 얼른 쾌차하셔야죠. 아들놈이 열렬한 팬이 되버렸습니다. 싸인 한번 해주셔야죠."
"사장님, 영상 수익은 쌓여가는데, 제 월급은 밀리고 있습니다. 당장 털고 일어나서 입금 좀 해주세요. 자꾸 이러시면 노동부에 신고 하겠습니다."
그녀가 만들어둔 인연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그녀의 쾌유를 빌었다.
그럼에도 그녀의 표정엔 미미한 움직임 조차 없었다.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서늘한 가을이 찾아왔다.
힘에 취하거나 또는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 무차별적인 테러를 벌이는 초인들이 튀어나오며, 세상을 공포로 물들였다.
그에 따라 멀쩡하게 살고 있는 대다수의 초인들 마저 사회적 인식으로 인한 피해를 입기 시작했다.
"야, 저 사람 그건거 같아."
"그거?"
"괴물들 있잖아...정신병 앓고..."
"어머, 그래서 저렇게 약통 들고 다니면서 먹는거야? 끔찍하다. 우리 딴데로 가자."
"이봐, 그렇게 소곤거리면 다 들린다고 X 년들아. 뭐? 정신병? 이런 개 씹!"
커피숍의 테이블을 가차 없이 때려 부순 남성은 그대로 달려들어 그녀들의 얼굴을 주먹으로 가격했고,
첫 번째 피해자는 안면의 뼈가 산산조각 났음에도 목숨은 건졌으나, 두 번째 피해자는 힘 조절이 아예 안된 상태로 얻어 맞아 그대로 얼굴이 박살이 나며 사망했다. 그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주변 구조물을 있는대로 다 때려 부쉈다. 끔찍한 테러 현장이었다. 그의 난동이 출동한 병력에 의해서도 제압이 안되자, 결국 이뤄진 일제사격으로 인해 장렬히 산화했다.
세계 각국은 각성자에 대한 통제 법안을 내놓았고, 그 강도가 선을 넘어섰다.
결국 각성자들은 각성자 인권 위원회를 설립해 본인들의 권리를 찾으려 싸웠다.
펜대를 굴려서는 좁혀지지 않을 입장차이였다.
떨어진 낙엽이 모두 쓸려나가고 추운 겨울이 찾아왔다.
초능력이 포탈에서만 각성이 가능한것이 아니었다면, 이미 양측에 전쟁이 일어났을 수도 있을 정도의 긴장감이 맴돌았다. 초인의 숫자가 조금씩이지만 점점 늘어났다.
또한 적합자도 늘어났다. 적합자들은 처음엔 일반인들의 편이었지만, 하얀방에 한참을 시달릴때쯤 예언자였던 그녀의 일기장이 세간에 풀리게 되며 그 해결의 실마리가 포탈이라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각성자 없이 공략을 하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최초 포탈 공략의 기록을 통해 알고 있던 적합자들은, 동병상련의 마음까지 통하며 모두 각성자의 편으로 돌아섰다.
하얀방에 시달리며 정신증을 호소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 세상이 양분되기 시작했다.
인류가 반으로 갈라져서 전쟁이라도 벌이게 생긴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계속해서 나타나는 포탈에 들어갔어야 할 각성자와 적합자들이, 포탈은 생기지 않은 채 각성만을 하기에 벌어진 현상이었다.
"선생님, 약을 먹어도 안되고, 주사를 맞아도 안됩니다. 죽을 것 같습니다. 매일 밤 꿈속에서 수십 년은 보내고 온다고요! 차라리 죽고싶을 지경입니다."
"약을 처방해 드리겠습니다."
"이 X발! 약이 소용없다고 방금 말했잖아! 지금 남의 일 취급하는거야? 으아아!"
"환자분, 진정하세요."
매번 이루어지는 같은 상담은, 처음엔 효과가 있었을 지언정 갈수록 그 효과가 눈에 띄게 떨어졌다.
상담 치료와 약물 치료가 병행되며 환자가 차도를 보여야 하는데, 전혀 그런게 없이 악화만 되니 정신과도 속수무책이었다.
점점 초인들이 사고를 치는 비율이 높아지고, 적합자들조차 폭력성을 드러내기 일쑤였다.
얼어붙은 세상을 녹이는 봄이 찾아왔지만, 각성자와 비각성자 두 계층간의 갈등은 전혀 녹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조금은 시들해졌을까 싶었던 그녀에 대한 관심은, 최초 포탈 공략대의 추모 1주기가 다가오며 다시 불타올랐다.
"오늘 국립현충원에서 이루어지는 추모 1주기 행사는 대통령이 직접 참관하며...생방송으로 송출 될 예정으로..."
대통령과 주요인사들이 참여한 추모 행사는 엄숙하게 이루어졌다.
생방송으로 송출이 되었고, 유족들도 참여했다.
보상금 문제는 대충 처리가 되었으나,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도 있는 법이다.
"우리 아들 살려내! 살려내라고오오오오!"
"금쪽같은 내 새끼! 아이고, 그 곱던 우리 아가가 피어보지도 못하고 갔어! 당신들 때문에!"
"대통령님! 국가가 우릴 속인거 아닌가요? 네? 분명히 제 남편은 목숨은 위험하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구요! 돈이고 훈장이고 뭐고 다 필요없으니까아아! 이제야 세상에 나온 우리 아이는 어떡해요!"
가족을 잃은 유족들의 슬픔은 아직도 희석되지 않았고,
몇몇 사람들이 고스란히 그 분노를 행사장에서 표출했다.
대중들은 그들에게 공감해주기도, 무례하다 비난하기도 하였다.
이제 인터넷이 되는 사회에 살면서 포탈 영상을 보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지금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을 꼽으라면 포탈의 유일한 생존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포탈이 공략되고 1년이 되던 그 시점에.
삐이이―
환자감시장치의 모니터에서 길게 울려퍼지는 기계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다급하게 달려온 의료진들이 조치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가 감겨있던 눈을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