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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화 〉춘천행(3) (71/74)



〈 71화 〉춘천행(3)

고개를 숙인 채 숨소리만 내는 그녀를 데리고 도착한 곳은, 최고급 풀빌라였다.
평일인 데다 비수기인지라 주변 객실이 텅텅 비어서 왠지 기분이 더 좋았다.

"우와아! 이게 다 뭐에요? 세상에- 어떻게 이런 곳이 있지?"

조용하던 한소희는 객실에 딸린 수영장을 보자 언제 그랬냐는  신이 나서 활개를 쳤다.
수영복을 미리 준비하지 못했지만, 갑작스레 예약하는 이런 손님들이 없지는 않은지.
사장님이 골라 입으라며 몇 벌을 꺼내 보였다.

나는 평범한 반바지형 팬츠를 골랐고, 소희는 래시가드를 골랐다.
저거 유행시킨 놈은 정말 내가 기필코 찾아내서 죽여버리고 말 테다.
예전엔 수영복 하면 두말도  하고 비키니였단 말이다.

아무리 짜증 나는 래시가드지만 우월한 기럭지에 볼륨감 있는 몸매에 걸쳐놓으니 이것 또한 훌륭했다.
패션의 완성은 몸매 따위가 아닌 얼굴이니만큼 그 아름다운 미모가 화룡점정이었다.

옷을 갈아입고 나온 한소희는 먼저 준비하고 있던 나를 보더니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오빠, 위에 입을 거 없어요⋯?"

상의가 탈의 된 내 상체는 내가 봐도 장난이 아니었다.
원래 평범했던  몸은 각성을 거치며 조각상처럼 다듬어져 있었다.
미켈란젤로가 봤으면 필시 이 모습을 예술품으로 남겼을 테다.

"없는데. 티셔츠라도 입을까?"

"네⋯뭐라도 좀 입어주세요. 민망해요⋯."

어쩔  없이 입고  셔츠 속에 받쳐 입었던 흰 티를 입었다.

"이제 됐지?"

그녀가 뭐라 대답하려고 하는 순간.
나는 이미 그녀를 잡아채서 수영장으로 던져버렸다.

"꺄악-!"

원래라면 균형도 잡지 못하고 수면에 꽂혀 들어가는 게 던져진 사람의 운명이거늘.
한소희는 공중에서 아크로바틱한 동작을 취하며 균형을 잡고는 발끝부터 수면에 닿았다.

풍덩- 나도 그대로 배치기 다이빙을 하며 물에 뛰어들었다.
물이 사방팔방으로 거칠게 튀어 올랐다.

촤악촤악- 가슴팍까지 오는 수심의 풀장에서 서로 물을 뿌리며 장난을 쳤다.

"꺄햐악!"

"푸하하하-"

"악! 잠깐, 타임, 타임! 반칙이에요!"

내가 얼굴만 집중적으로 공격하자 그녀는 반칙을 운운하며 시간을 벌려고 했다.
기회만 생기면 바로 반격하는걸 한두 번 당해본 줄 아나.
물싸움은 끝날 때까지 쉬지 않고 휘몰아쳐야 승리하는 법.

"항복! 그만해여-"

나는 항복선언을 받아내고야 무자비한 손속을 멈추었다.

"치사해요. 봐주지도 않고."

"승부의 세계는 냉철한 법."

물놀이를 끝내고 몸을 말리고 있으니 이내 신청해둔 바비큐 세트가 준비됐다는 연락이 왔다.
숯과 돼지 삼겹살과 목살, 그리고 약간의 소고기로 구성된 메뉴였다.
우리는 식사를 위해 공용 바비큐장으로 향했다.

"두 끼 연속 고기⋯?"

"왜? 살찔까 봐  그래? 이런데 오면 원래 이렇게 먹어줘야 해."

"네에? 고기를 앞에 두고 다이어트 타령이라뇨? 좋아서 그러는데요."

"아⋯."

고기에 숯 향을 입히며 기가 막히게 고기를 익혀나가기 시작했다.

"이거 탄 거 아니야. 마이야르 반응이야."

끝부분이 검게 그을린 걸 가위로 잘라내며 갈색 부분만 쳐다보도록 변명을 했다.
숯불에 제대로 구워낸 고기는 캠핑의 묘미 중의 묘미다.

맥주가 한 모금 들어가자 절로 크으- 하는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소희도 소리는 내지 않았지만, 찡그려지는 진실의 미간을 숨길 순 없었다.

타오르는 불꽃과 허공으로 흩날리는 불티를 가만히 보고 있자면, 괜히 감상적인 기분이 든다.
소희도 그런 것 같았다. 몽롱한 얼굴이 한껏 풀어져 있었다.

"오늘 정말 너무⋯좋아요⋯. 행복하다는 게 이런 기분인가 봐요."

"자주는 아니어도 가끔씩 오자."

"정말요⋯?"

"응."

말로는 하늘의 별도 따다 준다는데, 뭔들 약속 못 할까.

식사를 하고 있자니 시끌벅적한 소리와 함께 남자 네 명이 바비큐장으로 들어왔다.
공용은 이게 단점이다. 타인이랑 같은 공간을 사용해야 하는 것.
그들도 불편한 건 마찬가지인지 우리를 발견하자 잠시 침묵했지만, 이내 자기들끼리 다시 떠들기 시작했다.

흘깃거리며 소희를 훑는 것도  눈엔 다 보였다.
이정도 미인은 태어나서 처음 볼 확률이 다분했으므로, 나는 같은 남자로서 이해하고 넘어갔다.
내가 뭐라고  입장이 아니기도 하고.

"이제 들어가서 얼큰한 라면 끓여 먹을까?"

"콜!"

원래는 라면도 야외에서 먹으려고 했지만, 괜히 불편해서 자리를 피했다.
객실 내부에서 간단한 취식은 가능했기에 가스레인지를 켜고 라면을 끓였다.
보글보글 끓는 라면을 그대로 후후 불어 입가로 가져갔다.
후루룹- 물놀이  바비큐에 라면이라니. 이거는 필살기나 다름이 없다.

식사를 마치고 비치된 보드게임을 했다.
띵- 띵- 종이 울릴  마다 손이 겹쳐졌다.

"오빠- 제가 먼저 쳤는데 왜 자꾸 손 가져다 대요!"

"니가 빠른 거지 내가 뒤늦게 가져다  게 아니야."

"정말이죠? 손잡으려고 그러는  아니죠?"

"에이~  뭐로 보고."

정확하게 잘 봤다. 손 만지고 싶어서 그랬어. 이런 나라서 미안해.

할리갈리로 시작된 게임은 우봉고, 로스트시티, 루미큐브를 거쳐 젠가로 끝이 났다.

"아, 재밌다. 둘이서 놀아도 이렇게 재밌는 줄 처음 알았어요."

"그랬으면 다행이네. 슬슬 씻을까?"

"⋯⋯네."

이제 그만 씻자는 말에 그녀는 급격하게 소심해졌다.
오해를 풀어줄 때가   같았다.

"소희야."

"네, 네?"

"그런 거 아니니까. 그냥 쉬다가 갈 거야. 씻고 쉬면 돼."

"어, 아아?"

그녀는 고장  듯 몇 번인가 의문 섞인 음성을 내뱉더니.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죄송해요. 제가 멋대로 오해해서는⋯."

"괜찮아. 충분히 할 수 있는 오해야. 내가 딱히 진지하게 변명하지도 않았고."

"네, 죄송해요⋯. 그럼 씻고 올게요."

그녀가 먼저 씻으러 들어갔다.
그리고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했다.
샤워실 내부가 들여다보였기 때문이다.

'홀리쒯!'

별다른 반응이 없는 한소희를 보니 내부에선 외부가 보이지 않는 구조였다.
천천히. 한 올, 한 올, 그녀의 옷이 벗겨지고.
나는  눈이 붉게 충혈되도록 눈을 깜박이지 않았다.

샤워를 마친 소희가 나오고, 곧이어 나도 씻고 나오자 소희의 표정이 이상했다.

"오빠⋯혹시 봤어요⋯?"

"응? 뭘?"

"아, 아니에요.  들은 거로 해주세요."

"실없긴."

너도 봤다는 얘기지? 응? 비명이라도 지를 줄 알았더니. 조용히 본 거잖아? 그치?
그러니 이번 일은 그냥 서로 묻어두자.
슬슬 잘 준비를 하던 그때였다.

똑똑똑-

"음, 뭐지?  시간에 노크 소리가 들릴 일이 있나?"

"제가 나가볼게요."

소희는 누구세요라고 물으며 문을 열었다.
방문자라면 주인밖에는 없어야 하는데, 문밖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은 한 명이 아니었다.
아마 나만큼이나 감각이 발달한 소희도 분명히 느꼈을 것이다.

"안녕하세요!"

"네, 무슨 일로⋯?"

아까 마주쳤던 네 명의 남자들이었다.

"혹시 합방해서 같이 놀면 어떨까 싶어서요. 아까 보니까 일행분이 남친도 아닌 것 같던데 맞죠?"

소희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맡긴다는 표시였다.

"그렇긴 한데, 저는 이제 쉬려고 했거든요. 그쪽들이랑 놀고 싶지도 않고요. 그만 돌아가 주세요."

"아이참, 왜 이렇게 딱딱하게 구실까? 그냥 술이나 한잔 하자구요."

소희는 놈들과 닿기가 싫은지 뒷걸음질 쳤고, 녀석들은 머릿수를 믿고 까부는지 그대로 방으로 밀고 들어왔다. 많이 취해 보이지도 않는데  저러는지 의문이었다.

철컥- 금세 방문이 닫히고 잠금장치까지 걸어졌다.
놈들은 성큼성큼 걸어서 베란다의 창문을 걸어 잠그고 커튼을 쳤다.
그리고는 눈빛과 말투가 돌변했다.

"씨발년이 뒤질라고. 도도하게 굴고 있어."

"네가 데려온  병신새끼는 찌그러져서 가만히 있는  보이지? 얌전히 굴라고. 다치기 싫으면."

"하- 이런 상등품은 난생처음인데. 오늘 한 번으로는 안 되겠는데? 너는 두고두고 우리랑  만나야겠다."

놈들의 입에서 거름망 없이 새어 나오는 저급한 말들이 이어졌다.
그리고 제일 앞에 나와 있던 한 놈이 소희에게로 손을 뻗었다.
별안간 붙잡힌 손목이 그대로 비틀렸다. 부러뜨리진 않았으니 저것도 많이 봐준 거였다.

으아악- 비명과 함께 놈이 자지러졌다.
그때였다. 나조차도 놀랄 속도로 다가온 한 녀석이 소희의 복부를 두들긴 것은.

억- 소리와 함께 두 발이 공중으로 떠오른 소희는 그대로 턱에 주먹이 꽂히며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그와 동시에 놈의 속도를 인지하자마자 움직인 내가 당도해 놈의 옆구리에 발차기를 날렸다.

놈은 옆구리를 가격당하면서도 기어코 내 다리를 팔뚝으로 붙잡았다.
반대 발로 바닥을 박차며 그대로 뒤꿈치로 얼굴을 후려갈기자, 놈은 붙잡은 다리를 놓으며 고개를 숙여 피했다.

 새끼, 초인이었다.
초인들이 저지르는 범죄는 차원이 다르다.
사람을 죽이고도 가방에 넣어서 야음을 틈타 맨몸으로 장거리 이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산을 타고 이동하며 각종 카메라의 감시망을 손쉽게 벗어난다.
초인이 작정을 하고 범죄에 몸을 담으면 꼬리를 잡기가 정말 어려워진다.

"이 씨발 새끼들. 니들 이번이 처음 아니지."

씹듯이 말하는 나에게 놈은 비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오늘 묻을 연놈이 둘 더 생겼을 뿐이지."

어느새 일어난 한소희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턱이 시퍼렇게 멍들어 있었다.
단순 구도만 봐도 2:1인데 무슨 자신감으로 우릴 묻는다고 하는 걸까.
자세를 잡은 걸 보니 복싱이었다.

초인끼리 신체 능력은 백중세다. 조금 더 강하고 약하고의 차이는 있지만, 그 차이가 드라마틱하게 벌어지진 않는다. 이미 인간을 아득히 넘어서고 그 한계치까지 끌어 올려진 신체 능력은 훈련을 통해 강화할 수도 없고, 놀고먹는다고 약화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무술로 인한 역량의 차이는 나타날 수 있다.
놈은 그걸 믿는 듯 했다. 초인이 아닌 시절에도 2:1 정도는 우습게 이겼을 테니.
녀석은 뭔가 착각하고 있다. 우리는 턱을 한  맞는다고 기절하거나 다리가 풀리지 않는다.
무방비 상태로 턱을 얻어맞은 소희도 충격량에 멀리 날아갔을 뿐 곧바로 일어나서 다가왔다.

"소희야, 어떡할래? 내가 그냥 끝내? 아니면 한바탕 붙을까."

"붙을래요. 나 지금 엄청 화났어요."

"너 뭔가 착각하는데, 네가 생각하는 것 보다 머릿수는 더 절대적이야."

아, 물론 니들 수준에서.
나는 의기양양한 녀석에게 넌지시 경고를 전해줬다.
이젠 다구리 맛을 보여줄 시간이었다.

한소희가 바닥을 박차고 놈에게 달려들었다.
사람한테 손도  대던 순박한 스무 살의 여린 여인은.
그동안 이뤄진 나와의 전투 훈련으로 이미 없어진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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