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화 〉낯선 도시에서 (6/164)



〈 6화 〉낯선 도시에서

리쿠르트는 칼린의 상태가 끔찍하다는 것을 알아챘다. 수업중 그는 이따금 허공을 보고 있었고, 간간이 집중이 완전히 풀려서 글을 쓰다가도 멍하니 멈춰버리고는 했다. 안색도 초췌해져 석고상 같은 피부에 짙게 다크서클이 생겨 있었다.


그의 수업태도가 바뀌기 시작한 계기가 요나와의 대련이란 것은 명확했다. 그러나 요나에 대해 이야기할 때 보이는 두려움과 경계심 섞인 눈빛을 보면, 별로 호의적인 일 때문에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리쿠르트는 요나의 학대가 의심되었다.


"잠깐 쉬도록 하죠, 칼린. 집중하기 힘드신 것 같네요."
리쿠르트가 그렇게 말하며 책을 덮었다. 칼린은 거기에 뭔가를 말하려고 하다가, 이윽고 고개를 푹 숙이며 순순히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그런 칼린을 걱정되는 듯 바라보던 리쿠르트는 뭔가 떠올랐다는 듯 자신의 정장 안에서 작은 케이스를 꺼냈다. 케이스 안에 있던 것은 담배였다.

"기분 전환용으로 하나 해보는 것도 좋을  하네요. 이게 뭔지 아시나요, 칼린?"
칼린은 그게 뭔지 정말 잘 안다. 전상민이었을 때부터 그는 애연가였다. 그리고 그가 이세계에서 가장 바랬던 것중 하나이기도 하다. 리쿠르트는 눈에 띄게 관심을 보이는 칼린을 보며, 어쨌든 흥미를 끄는데에는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유행하는 기호품이죠. 담배라고 부르는데, 최근에 국내에서도 재배에 성공해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되었답니다. 원래는 정말 비싸서 이렇게  개비씩 들고 다니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어요."
그녀는 가방에서 또다른 파우치를 꺼내,  안에서 성냥을 꺼냈다.

"이 막대를 성냥이라고 하는데, 들고 다니면서 어디서든 불을 붙일 수 있도록 도와주죠. 다만 여름에는 자기 멋대로 불이 붙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보관에 조심해야되요."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는 칼린에게 보여주듯 성냥에 불을 붙였다. 칼린의 눈이 평소의 두배정도로 커졌다.

그녀는 담배를 입에 물고 성냥으로 불을 붙이며 숨을 들이 마셨다. 이윽고 담배에 불이 붙고, 그녀가 연기를 뱉었다. 회색의 연기가 그녀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칼린은 담배에 시선이 달라붙어 눈을 깜빡이는 것조차 잊고 있었다. 담배연기가 마치 그녀가 연주하는 음악의 선율처럼 보였다. 타 들어가는 소리가 칼린의 귀를 자극했다.
그리고 리쿠르트는 심하게 기침을 하며 담배를 내려놓았다.


"큽.. 죄송해요. 멋진 모습만 보이고 싶었는데, 역시 저에게는 너무 버겁네요. 저도 방금 처음으로 접해  거랍니다. 큽. 음. 어머님이  통 보내주셔서 말이죠. 영주님이 주신 것도 한개비 들어있고... 한번  보시겠어요?"
한참 콜록대던 그녀는, 기침하면서 헝클어진 갈색 머리카락을 정돈하며 그녀가 물었던 담배를 돌려 칼린에게 건내 주었다. 칼린은 말하는 법을 까먹어서 목이 떨어질 듯이 고개를 흔들고서는 떨리는 손으로 그걸 받았다.

그리고 그는, 손가락 사이에 익숙한 그 감촉을 느끼며 담배를 입에 댔다. 한 모금 빨아 들이자 뜨거운 연기가 그의 입 안을 타고, 폐를 거치며, 조금 따끔한 자극이 그의 식도에 다가왔다. 담배에 익숙하지 않은 그의 몸이 처음 받아보는 자극에 목을 울렸다.

칼린이 격하게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리쿠르트는 웃으며 그가 가져간 담배를 받아 버리려고 했다. 그러다가 칼린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


칼린은 눈가까지 붉어져서 눈물을 찔금 흘리면서도, 확실히 웃고 있었다. 그는 기침이 잦자 다시한번 담배를 깊게 빨고서는, 마치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겠는 듯 고개를 숙여 흐느끼는  웃었다. 동시에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눈물은 단순한 기쁨의 눈물만은 아니었다. 그리움, 안도감, 감사함 등의 갖가지 감정이 섞인, 아마도 그밖에 이해할 수 없는 눈물이었다.

리쿠르트도 처음으로 이렇게 감정을 내보이는 칼린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녀가   칼린은 스승에게 순종적이지만 최대한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 하던 학생이었다. 그가 갑작스레 담배 하나로 이렇게 격렬하게 자신을 드러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녀는 묻고 싶은 것이 아주 많았다. 다만 지금 묻는 것은 해선 안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그녀는 조용히 칼린에게 담배케이스와 손수건을 밀어주었다.


"칼린, 전  담배라는 것에는 평생 익숙해지지 못할  같네요. 괜찮으시다면 받아주시겠어요?"
리쿠르트의 말이 칼린의 마음에 직접 닿았다. 그는 자신이 지금 얼마나 이상해 보일지 알 것 같아서, 고개를 푹 숙인채 그저 감사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한동안 수업실에 흐느끼는 소리만이 울렸다.

#

알레프에게 눈이 퉁퉁 부은 칼린이 말을 걸어 온것은 시종들의 저녁시간이 끝난 직후쯤 이었다.


"집사님, 영주님을 잠깐 뵐  있을까요?"
그가 영주를 먼저 만나려 한 적은 없었다. 집사는 놀란것을 내색하지 않으며 그를 영주실로 안내했다.

"영주님, 칼린이 영주님을 만나뵙고 싶어 합니다."
"들어와라."
조금의 시간차를 두고 답변이 돌아오자 집사가 문을 열었다. 거기에는 큰 책상에서 평소와 다름없이 일하고 있는 요나가 있었다.


"칼린, 그래. 무슨일로 여기에 왔지?"
그녀가 서랍에서 담배를 꺼내며 말했다.


"영주님, 혹시 저를 거두어 주시고 이렇게 교육까지 시켜주시는 이유를  수 있겠습니까?"
요나는 그 말을 듣고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조금 생각해보다가, 칼린이 본격적으로 말을 배운 이후에 그에게 팔릴 것이라는 이야기를 따로 해주지 않았던 것이 떠올랐다.

"그건.."
팔기 위해서다, 라는 말이 왜인지 그녀의 목에 걸렸다. 적의가 없는, 어쩌면 자신을 믿고 있을 상대에게 가혹하게 구는 것은 아무리 그녀라도 조금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언제까지 숨길 것은 아니다. 그녀는 목을 가다듬고 다시한번 말했다.


"왕도의 상인과 거래를 했다. 우리 영지에서 너를 가르치고, 어느정도 사회화가 된다면 고가에 팔 것이다. 갑자기 그건  묻는 거지?"
요나는 그가 화를 내거나 눈물을 흘릴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그럼 저는 언제 팔립니까?"
그러나 그녀의 예상과는 다르게, 그는 담담하게 다음 질문을 이어갔다. 심지어 조금 편해 보이기도 했다.


"거래가 잡힌 건 아냐. 그저 충분히 교육되었다 싶으면 팔 것이다. 아마 한달에서 두 달 정도 걸릴 듯 하군."
"어디로 팔릴지는 모르는 거죠?"
"뭐, 어느정도 교육도 되어 있고, 글을 쓸 줄도 알고, 그 정도의 외모다. 평범한 노예같은 걸로 팔리지는 않을 거다. 어디를 가도 이 정도의 생활은 영위할 수 잇겠지."

요나는 안심시키기 위한 약간의 거짓말을 섞어서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서 자신이 왜 이런 거짓말을 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팔리고 나면 여기에 계신 분들과는 더이상 관계가 없어지는 건가요?"
칼린이 그런 질문을 했다. 요나는 그 질문에 뭐가 좋은 대답일지 조금 고민하다가 사실을 말하기로 했다.

"말하는게 어색해서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모르겠다만, 내가 들은  맞다면, 그래. 너가 팔리고 나면 우리와 관계는 완전히 사라진다.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지. 질문한 게 이게 맞나?"
"네. 그게 궁금했어요. 감사합니다."
칼린은 그렇게 대답했다. 조금의 안도감까지 묻어나오는 듯한 그 말이 요나의 심기에 거슬렸다.

"내 성이 불만족스러웠나보군?"
칼린은 그 말에 반색을 띄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그저 신세만 지고 있으니까, 언제까지 신세를 지게 될지 확실히 하고 싶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한 칼린은 등을 돌려 영주실을 나왔다.

요나는 나가는 칼린을 보고 있다가, 아려오는 죄책감에 담배를 크게 들이 마셨다. 그런 그녀를 보며 문 앞에서 대기하던 알레프가 말을 걸었다.


"영주님, 실례합니다만, 제가 느낀 바를 말해도 되겠습니까?"
"말해라."

"칼린은 영주님과 만난 이후로 눈에 띄게 의기소침 했었습니다만- 오늘 그를 보고 알았습니다. 그는 오늘 뭔가를 결심했습니다. 퉁퉁 부은 눈으로도 보이더군요. 그가 이런 질문을 한 것은 그의 결심과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요나는 그 말을 듣고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꾸기며 물었다.

"숲에서 살던 것을 성으로 거두었는데 불만스러울 것은 대체 뭐지? 그는 나를 무서워하고 있나?"
"일종의 경계심은 느꼈지만, 그게 영주님을 향한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니 부디, 지금 느낀 감정으로 그를 몰아세우는 것은 삼가해 주시길 바래서 말씀드립니다."


요나는 그 말을 듣고 서야 자신이 과하게 흥분한 것을 알아챘다. 그녀는 한번 심호흡 하고서 그녀의 현명한 노집사를 바라보았다.

"고맙군. 정말 쓸모 있는 조언이었다. 역시  집사는 유능하군."
"과찬이십니다."
"내일은 상인이 우리 영지를 떠나는 날이다. 아침에 우리 성에 방문하게 될 것이다. 요리사들에게 고급 요리를 준비하라고 전해두고, 리쿠르트에게는 내일은 오전수업이 없을 것이고 오전 동안은 되도록 방 안에서 나오지 말라고 해. 칼린에게는 귀빈이 올 테니 식사와 대화에 참여하라고 '내일 아침에' 전해. 말은 저렇게 했지만, 막상 직접 상인을 만나는  알면 겁먹을 지도 모르니까. 부탁하지."
"네, 주인님."
집사는 그렇게 말하고  밖으로 나갔다. 문이 닫힌 영주실에서 그녀는 자신이 묘하게 감정적이었음을 깨닫고 잠깐 자기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


칼린은 밀려들어오는 흡혈 욕구에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동시에, 이 세계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할 자신에 대해 절망하고 있었다. 흡혈욕구가 나날이 커져감에 따라 어차피 언젠가 걸릴 일을 두려워 말고, 차라리 성 내의 사람들의 피를 빨아먹고 도망치자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담배를 받았다. 그가 그렇게도 간절히 바라던 문명과의 연결고리를 얻게 되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순수한 선의였다. 그의 스승이 준 담배는 그가 '인간'으로서 생각할 수 있도록 해줬다.


자신을 '인간'답게 살게 해주고 있는 성의 사람들에게 그런 끔찍한 일을  수는 없다. 그리고 그가  성의 사람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최대한의 보상은, 괴물인 것을 들키지 않고 조용히 교육을 마치고 팔려 나가는 것이다. 그는 담배가 들어있는 은색의 케이스를 양손으로 꼭 쥐며 이를 건내  자신의 스승을 떠올렸다. 그리고 모두를 위해서 자신을 죽이기로 결심했다.


"해야  일이다."
그는 스스로에게 되뇌며 입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힘차게 그의 송곳니를 뽑아버렸다.

"아..아으.."
한쪽을 뽑은 그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에 휩싸여서 몸을 웅크렸다가, 맞은편에 남은 것도 뽑기 위해 아직 피를 한껏 머금은 입 안으로 다시 손을 집어넣었다. 피가 흐르는 것을 막기 위해 그는 반대쪽 손으로 자신의 턱을 받쳤다.


"욱..."
흘러나오는 피가 그의 기도로 들어가 헛구역질이 나왔다. 코 안쪽에 진한 쇠냄새가 아찔했다. 식은땀과 같이 흐르는 눈물이 계속 입에 들어와 괴로웠다. 집어 널은 자신의 손가락을 물어 뜯고 싶을 정도의 고통이었다. 그러나 그는, 고개를 들어올려 눈물마저 삼키고 하던 것을 계속했다.

"흡!"
그 소리를 마지막으로 나머지 이빨 하나가 부러지듯 뽑았다. 고통때문에 떨린 손이 그의 실수를 만들었다. 위로 뽑아내야  것을 잇몸을 완전히 찢어내며 옆으로 뽑아버렸다.


넝마가 된 입을 가리며 그는 화장실에서 휴지를 길게 말아 입 안에 되는대로 우겨 넣었다. 갑작스러운 이물감과 고통으로 급하게 휴지를 뱉은 칼린은 변기에다가 저녁 먹었던 것을 피와 함게 토해냈다. 올라온 신물이 그의 이빨을 자극하며 욱신거리는 감각이 엄습해왔다.

그는 그 성안에서는 완전한 사람으로서 있기로 했다.  모든 것을 감안하면서도, 아마도 매일 저녁마다 돋아날 송곳니를 스스로 뽑으면서 그의 각오를 다질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