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화 〉낯선 도시에서 (12/164)



〈 12화 〉낯선 도시에서

"리쿠르트 선생님은 괴물의 규정을 정확히 아나요?"
칼린이 그런 질문을 한 것은, 그들과의 점심식사를 끝마치고 리쿠르트와의 오후 수업시간을 가지는 중이었다.


"정말, 이번에도 예상도 못한 질문이 들어오네요.  궁금해 지신 건지 물어볼  있을까요?"
조금 이상했던 어제와 달리 일상으로 돌아온 듯한 리쿠르트의 모습에 칼린은 조금 안심하며 대답했다.


"떠돌이분들이 오늘부터 수업을 시작했었거든요. 근데 괴물의 규정은 정확히 되어있지 않다고 하더라구요."
"헤-"
그렇게 대답하며 리쿠르트는 머릿속에서 계획을 구상하고 있었다. 불확정 요소가 많은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게획이었지만, 서서히 구체화시킬 예정이었다.


"뭐, 괴물의 정의라면, 마나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을 해칠 가능성이 있는...그런거죠?"
그녀가 한 말은 갤러한이  말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칼린이 불만족스러워 보이자, 그녀는 머릿속을 쥐어 짜내서 한가지 덧붙였다.


"아, 그리고 생태의 순환 밖에 있는 생물이라는 조건도 있어야 해요."
처음 듣는 조건에 칼린이 반응을 보였다.


"생태순환 밖이요?"
"네. 우리가 사는 지구는 여러가지 생물들이 서로에게 먹고 먹히며 순환하는 구조랍니다. 그치만 괴물은 그런 순환구조 밖에 있는 거죠. 잡식성이라서 뭐든지 집어먹고, 사람까지 노리게 되는 생물들. 그건 일종의 돌연변이가 될 수도 있겠고, 괴물로서 분류되는 종이 될 수도 있겠죠."
그 말을 듣고 서야 칼린은 완전히 이해했다.  순환선의 밖에 서있는 이상, 인류가 괴물을 존중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리고 점심에 자신이 잠깐 가졌던 희망이 그저 고문이었을 뿐임을 깨달았다.

"...부족했나요?"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리쿠르트에게 칼린이 만면의 미소를 띄며 대답했다.


"충분해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


이후는 뻔한 일상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저녁을 먹었고, 저녁 수업이 끝나고 방에 들어왔다. 평소처럼 문을 잠구었고 휴지를 꺼냈다. 평소처럼 그의 입 안에 손을 집어 넣었다.

평소처럼 뽑아 냈어야 했다. 겁먹기 전에 뽑아 내야 했다. 마치 일상처럼 가볍게 뜯어 내고,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을 자각해야 했다. 당당히 뽑아낸  자신을 조롱하는 환각들에게 담배를 뿜고 자신을 저주하며 잠들었어야 했다.

'이상한 꿈을 꿨던 대가는 어때?'
커튼 뒤에서 고라니의 머리가 빼꼼 나왔다. 그저 환각일 뿐이라 커튼은 평평해서  기분 나쁜 그림이 되었다.

'들었지? 넌 생태계 밖에 있는 놈이야. 여기 사람들에게 받아 들여지겠다니, 하! 이 세상이 너를 거부하는데?'
"입닥쳐."
'오랜만에 누군가랑 카드게임도 해보고 성 사람들하고 친해지고, 어차피 계속 자라는 이빨 좀 뽑는다고 너가 인간 답게 살  있을 거라고 믿었겠지. 어리석은 전상민. 너와 그들은 본질부터 다른데.'
"입 닥치라고."
고라니의 눈과 입가가 일그러지며 마치 비웃는 듯한 형상이 되었다.

'가엾어라, 매일 저녁마다 찾아오는 낮과의 괴리감이 얼마나 클까. 근데 넌 그 떠돌이에게 괴물과의 관계를 물어봤을   기대 한 거야?'
칼린은  망설이지 않고 그의 송곳니를 잡았다. 동시에 큰 소리가 그의 귀에 울렸다.

'상냥함에 기대서 괴물인 자신을 인정받고 싶었겠지, 밖은 위험하고 무서울 테니까 편하게 살고 싶어  거야! 뻔뻔한 괴물자식아!! 기분나쁜-'
"입 닥쳐!"
그가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힘껏 자신의 송곳니를 잡아 뽑았다. 평소와는 다르게 집어 던지듯 뽑은 탓에 그의 이불에 피가 조금 튀었다.

"닥쳐! 닥쳐! 닥치라고!"
그렇게 말하며 그는 남은 한쪽의 송곳니도 뽑아 냈다.  다음은 휴지를 입 안에 넣어야 할 때였지만, 그는 그러지 못하고  손에 고개를 묻었다. 그리고 신경질적으로 이마를 긁어 댔다.


"씨발, 씨발, 씨발, 닥치란 말이야!"
그를 지배하고 있는 감정은 분노였다. 어떻게 보면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투정이기도 했다. 그의 이마에서 새빨갛게 피가 나기 시작했다.


"난..나는..."
피까지 흘리며 추하게 흐느끼던 그는,  20분 뒤에야 정신을 차리고 멍하니 허공을 올려다 보았다. 이마의 상처는 벌써 아물어 있었다. 그는 공허하게 고라니가 있던 곳을 쳐다보다가, 오른손으로 브이 사인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걸 입에 끼워 넣고 웃는 얼굴을 만들어 보았다.


#

요나는 어제 혼자 생각한 것들 때문에 오늘 칼린과의 대련이 어색해 지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들의 대련에 사적인 감성이  정도로 지루할 틈은 없었다. 칼린도 송곳니를 뽑는 것이 나름 억제는 되었는지 많이 안정적인 상태였다.


일은 대련이 끝나고 생겼다. 평소와 같이 바로 영주실로 향해서 작업을 하고 있던 요나에게 시종이 찾아왔다.

"무슨 일이냐."
요나가 그렇게 묻자, 문 너머로 시종의 약간 떨리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칼린님에 관련된 문제로 왔습니다."
그녀는 눈썹 한쪽을 치켜 올리고 하던 작업을 멈췄다. 그리고 시종에게 들어오라고 전했다. 시종은 이불을 들고 있었다.


"그건 뭐지?"
요나가 담배를 꺼내 물며 물어보자, 시종은 대답 대신 그 이불을 펼쳤다. 이불에는 붉은 얼룩이 신경질적으로 튀어 있었다.

"칼린님의 이불입니다."
시종의 말에 요나는 멀쩡히 쥐고있던 담배를 떨어트렸다. 가만히  선명한 자국을 바라보던 그녀는 담배를 다시 주우며 말했다.

"그건 피가 확실한가?"
"확실합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불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 입을 가져다 대서 불을 붙이고는, 의미도 없을 질문을 했다.

"원인은?"
"모르겠습니다."
알 턱이 없다. 상인이 가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초췌해지긴 했었다. 하지만 그 때 토한 것은 고기를 못 먹기 때문이었고, 그가 지병을 앓고 있을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매일마다 그와 대련한 그녀의 판단이다. 틀렸을 리가 없다.

-하지만 틀렸다면.
거짓말이 능숙한 칼린이다. 그리고 팔릴 것도 각오하고 있는 칼린이다. 만약 그가 자신의 병을 숨기며 남은 여생을 상품가치를 올리기 위해 발악하고 있는 것이라면-


"너가 본 것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마라. 성 내에 더이상 정보가 퍼지지 않도록 해. 그 이불은 나와 알레프, 너만이 아는 사실인 것이다."
"네, 영주님."
"그 말은, 이 사실에 성 내에 퍼질 시에 네놈의 직장은 공장직원이 된다는 거다. 확실히 알아들었나?"
"...네, 영주님."
시종은 그렇게 대답하고 문을 나섰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계속 담배를 피던 요나는 알레프에게 물었다.

"알레프, 성의 의사는 지금 어디에 있지?"
"아마 최전방 쪽에서 아직 군의를 맡고 있을 겁니다."
"일이 끝나는 대로 성으로 복귀하라고 전화해라. 최대한 빨리 오라고도."
"네, 주인님."
"지금 전화해라."
평정을 잃은 듯한 모습에 알레프는 자신의 주인을 걱정하듯 바라보다가, 이내 방을 나섰다. 칼린은 계속 담배를 피우며 떨리는 손을 멈추려고 했다. 다리를 떨고 있는 것은 그녀 스스로도 눈치채지 못했다.


#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란 무엇일까, 그건 돈이다!"
소니아가 당당하게 칼린에게 말했다. 칼린이 소니아의 기세에 눌려 약간 몸을 뒤로 뺐음에도 불구하고, 소니아는 그 기세를 죽이지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


"앞서   천박한 놈들이 말한 것들은 전부 돈으로 살수 있습죠. 세상의 견문은 정보상이나 책을 통해, 유흥은 그 자체가 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요. 경제라는 것이 개발된 이후로 돈의 가치를 뛰어넘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어요!"
열광적으로 그렇게 말하는 그녀를 보며 소파에 앉아있던 갤러한과 륑게가 작게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니까 제 이야기는 돈을 위주로 시작해 볼까 합니다, 도련님!"
 기세와는 별개로 소니아의 말은 칼린이 알아듣기 쉬웠다. 그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칼린도 기세를 타고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넵!"
"오, 대답 좋고!"
그 말을 하며 그녀가 가방에서 장지갑을 꺼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팔랑이는 것 세 장 정도를 꺼냈다.

"돈에 대해 설명할 필요는 없겠죠. 사람이라면 전부 돈에 대해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이 종이들은 불타거나 젖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나요?"
한 장을 그에게 밀어 넘기며 그녀는 말을 이었다.


"365일 매일 쉬는 날 없이 돌아가는 지폐공장은, 갖가지 마정석을 통해 지폐에 여러가지 마법을 부여 해두죠. 이 지폐 한장에는 6가지 마법이 사용되며, 지폐를 감별하는 데에는 총 24가지 마법이 필요하게 됩니다."
그리고 칼린에게 확인해 보라는 듯 손을 내밀었다.

칼린이 지폐를 집어 드는 모습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던 소니아는 그 표정 그대로에서 입만 힘들게 끌어올리며 질문했다.
"그렇다면,  모든 과정을 거친 기술의 결정체, 그 지폐의 가치는 어느 정도일까요?"

칼린은 지폐를 천천히 살펴 보았다. 위조 방지를 위해서 인지 상당히 화려한 그림이 인상적이었다. 어차피 아무것도 모르는 그는 대충 어림잡아서 뱉어 보기로 했다,


"음.. 이 책상 하나 정도일까요.."
돈에서 눈을 떼지 않고 걱정하는 표정을 유지중인 소니아에게서 정답을 읽어 내기는 어려웠다. 소니아는 그 말에도 꿈쩍하지 않고 돈을 바라보고 있다가, 화들짝 놀라며 돈을 낚아채면서 말했다.

"정답이에요! 아, 조금 아쉽지만요. 이 지폐는 100생텀짜리 지폐예요. 윌레인 왕국에서 지급되는 화폐중 가장 가치가 높고 희소성 있는 지폐죠. 보통 책상을 하나 살 때 이거 한장이면 되겠지만, 이 성의 책상은 고급 원목이라  지폐가  장은 필요할 거예요. 그러면, 이 100생텀을 벌기 위해서 우리는 무슨 일을 할까요?"
"괴물...이라도 잡나요?"
그 말에 소니아가 돈을 다시 지갑에 넣으며 뱉듯이 대답했다.

"오, 칼린. 괴물이 그렇게 씀풍씀풍 나오는 거였다면 우린 벌써 부자였을텐데. 보통 시체 10구를 치우거나, 용병으로 하루 일하거나, 미등록 마법사를 상대하면 받아요. 그래요, 칼린은 지금 시체 20구를 책상으로 쓰는 거예요."
찝찝한 표현 방식에 칼린이 책상에 기대던 팔을 뗐다.


"한번은 제가 큰 부상을 당했었어요. 의뢰를 준 도시의 병원에서 바로 치료를 받게 되어 목숨은 건졌었죠. 그런데,  때 치료비가 12000생텀이 나오더군요. 그 의사는 5분만 더 기다렸으면 10생텀짜리였을 저에게서 1200배의 돈을 뜯어낸 거예요. 그냥 뭐, 튀어나온 것들  집어넣고 꿰맨 걸로! 이 이야기의 결론은 뭘까요?"
칼린은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봤다. 릴로는  수 없는 표정으로 계속 칼린만 바라보고 있었고, 갤러한과 륑게는 둘이서  시작이라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 의술은 돈이된다?"
"땡! 땡땡! 땡! 틀렸습니다... 아니 생각해보면 맞긴 하네요. 복수정답으로 인정해 드릴게요. 정답은 발로 뛰어 당기는 노동직보다 사기꾼새.. 머리를 쓰는 일들이  돈을 많이 번다는 거예요!"
그렇게 말하면서 얼굴을 들이미는 그녀는 눈 안쪽에 어둠이 비치는 듯 했다.


"이제 노동의 가치라는  비웃음의 대상이 되었죠. 우리가 뼈빠지게 구르며 크게 한탕 하자! 하고 한1주일동안 굴러서 버는 돈을, 그 의사 놈은 30분만에 만들어 낸 비결, 그게 바로 교육의 차이예요! 하지만 교육이라는 건 비싸죠. 일반학교가 한 학기 등록금 약 7000생텀, 전문학교는 약 8000생텀, 대학교는 약 10000생텀인 걸 감안하면 말이죠. 빽 없는 어린이들이 혼자 다닐 수 있는 곳이 아니에요!"
칼린은 그녀의 말이 너무 빨라져서 분명 표준어로 말하고 있는데도 알아듣는데 한계가 오고 있었다.


"요컨데, 빽이 있다면 자립할 필요도 없고 자립해서는 안될 시기예요!"
그녀는 큰 소리로 분명하게 칼린에게 그렇게 전달했다. 그녀의 장황한 일장 연설이 끝나자, 뒤에서 구경하던 륑게와 갤러한이 박수를 쳤다. 칼린도 그들을 따라 어색하게 박수를 같이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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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난 다른 세명처럼 인생은 뭐다! 하고 세우고 사는 건 없어서 말이야... 세상 힘들다는 이야기도 벌써 소니아가 다 해준 것 같고. 그러니까 그냥 날로 먹어볼까."
릴로가  팔로 턱을 괴며 칼린을 그윽하게 바라보았다.


"여자 경험은 있-"
"잠시만요."
옆에서 대기하던 소니아가 릴로를 데리고 갔다.

"이제 두번째 날이야. 제발 조지지 말아."
"아, 실수."
그렇게 말하며 릴로는 다시 자리에 돌아갔다.

"미안, 먼저 잡담부터 하려고 했는데 말이지. 근데 난 다른 세명처럼 말재주가 없어서 말이야.. 이번 시간은 궁금한 점에 대답해 주는 시간으로 어때?"
그 질문에 칼린은 조금 고민했다. 물어볼 것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너무 많아서 추리는 중이었다.

"영주님은 이 나라에서 제일 강한 건가요?"
첫 질문으로 그런 말을 한 것은, 자신에게 검을 가르치고 있는 영주의 실력이 어느 정도로 쳐지는  궁금했기 때문이다.


"음, 제일은 아니지만 확실히 강하지. 전장에서는 '벨카의 전차'라고 불렸으니까 말이야. 이번 전쟁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열 명중 한명으로 꼽히고 있지."
릴로가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면서


"뭐, 강하다는  기준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말이야."
라고 덧붙였다.


칼린이 이해하지 못하는 듯 하자 릴로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마법사 같은 경우에는, 타고난 마법에 따라서 한방마다 전장의 판도를 뒤집는 괴물들도 있거든. 1대1상황이라면 몰라도 전장에서는 그런 마법사가  강하겠지. 단순히 사람의 강함으로만 따지면 압도적 최강이 따로 있어."
원래는 관심 없었지만 최강이라는 말이 칼린의 소년심에 불을 붙였다.

"그게 누구죠?"
릴로는 칼린의 셔츠 사이로 하얗게 드러난 목을 바라보고 있다가, 마치 얼버무리듯 말을 다시 시작했다.

"아...음. 가문도 없이 자수성가한 사람이지. 원래 떠돌이었는데 재능만으로 귀족계까지 가서 가문명까지 부여받은 사람이야. 이름이...제..제피? 그런 이름이었던 것 같은데.. 아무튼 1대1이나 소규모 패싸움 같은 거에는 가장 강한 사람이야."
그 이름을 떠올리기 위해 머리를 싸매다가 다른  떠오른 릴로가 정정했다.

"아, 이젠 최강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이번 전쟁에서 오른팔을 잃었거든. 아쉽지,  사람 엄청 쎘는데. 다른 질문은?"
뭔가 맥이 풀려버린 칼린은 고민하다가, 그냥 게임이나 하자고 제안했다. 핑계처럼 들릴 지도 모르겠지만 칼린 입장에서 평민의 단어들을 배울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었다.

"가르친 보람이 있구만."
륑게가 자랑스럽다는 듯,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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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으로 모여 게임을 하고 있으면 필연적으로 잡담이 오고 간다. 상대가 전문 도박사 같은 것만 아니라면, 카지노 판은 정보를 얻기 가장 쉬운 장소이다. 칼린이 전상민이었을 적 선배가 해준 조언이다.


"륑게랑 릴로는 외국인이었군요."
"맞아. 릴로는 사이가 좀 양호한 곳에서 이민  거고, 륑게는 음... 그냥 들어왔지?"
"?무슨 소리인지 잘.."
갤러한은 그 말에 륑게에게 시선을 넘겼다.

"뭐, 이딴 잡담때문에 게임을 관두라고?"
륑게는 그렇게 말했다가 주변의 시선에 눌려 카드패를 놓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릴로는 카산하크라고 하는 곳에서 왔어. 바다가 투명하고 아름다운, 항구의 나라지. 거기 사람들은 전부 릴로처럼 까매. 워, 방금  조롱하려고 한 말이 아니야. 진정해.
어쨌든, 카산하크는 윌레인 왕국과 사이가 좋은 편이지. 바다를 통해 무역하면서 서로 기호품같은 걸 많이 나누는 거야. 담배 같은 거. 뭔지 알아? 지금은 윌레인 안에서 생산하지만, 옛날에는 어림도 없었어. 전부 카산하크에서 대량으로 구매해왔지.
그래서 릴로는 이민이 좀 쉬웠지. 사이 좋은 나라에서 주민증같은 것도 전부 구비되어 있었으니까. 나는  달랐어. 충이라는 유목민족 출신이었거든."
"어떤 곳이었나요?"
"애, 말똥냄새가 멈추지 않는 곳이었지."
 말에 일행이 전부 크게 웃었다. 호탕하게 웃던 릴로가 무릎을 한번 치고서 말했다.


"야, 제대로 설명해줘. 궁금할거 아니야."
"아, 내입으로는 도저히 못 말하겠어! 부끄럽다고.."
"그럼 여기는 내가 설명하지."
갤러한이 끼어들었다.

"윌레인의 남쪽 부근에는 유목민족들의 땅이 있거든. 거기 사는 애들이 '충'이야. 간간이 접경지로 내려와서 약탈하고 돌아가는데, 이놈들은 거의 실패하지 않거든. 종족이 다른 느낌이야.
그래서  근방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당할라고 미리 가져갈 것들을 모아두고 있지. 조공처럼 말이야. 윌레인에서는 미칠 노릇이지, 약탈 민족에게 조공을 바치는 꼴이 되어 버렸잖아. 그렇다고 자기들이 언제나 막아줄 수도 없고 하니까 말릴 수는 없지만 말이야. '충'족에게는 철의 규율이 있거든. 말해봐, 륑게!"
륑게는  말에 목을 살짝 가다듬고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리고 허리를 똑바로 피고 과장된 표정을 지어서 말했다.

"아침해를 사랑하는 자라면 굴복하라!"
그리고 기대하는 듯 칼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칼린은 지금이 웃는 타이밍이었음을 알고 뒤늦게 좀 어색하게 웃었다.

"야, 미안하다. 재밌을 줄 알았는데."
갤러한이 그렇게 사과 하고서는 조금 풀이 죽은 륑게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요컨대, 굴복하지 않는 사람은 무조건 죽인다는 거지. 유목민족들에게는 문명도 사회도 없어서, 주민증같은 것은 생각도 못해.
그래서 륑게는 이민같은 수단으로 여기 온게 아니야. 그냥, 첫 약탈로 얻어먹은 과일주가 너무 맛있어서 '충'족에게서 도망쳐 나와서 나를 만났지. 난 약-간의 돈을 받아 륑게를 도와줘서 윌레인의 국민으로 만들어 줬고, 이후 릴로를 항구에서 만나 세명이서 돌아다니다가. 한 6년전에 소니아까지 합류하게 됐지."
"넌 나한테 1000생텀정도 빚진 거야, 갤러한."
륑게가 작게 으르렁댔다.

넷은 그렇게 자기들만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칼린은 그런 넷을 보며 미묘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분명 밖은 무섭고 힘든 곳이라고 들었지만, 이들은 서로만 있다면 어디서든 나름 즐겁게  수 있어 보였다.

지금  탁자에서의 카드게임이 그의 위치를 알려주는 듯 했다. 세상에 속해 있는 네명과 그렇지 않은 한명은, 같은 곳에 있어도 분명히 나눠지게 되어있다. 그가 가장 두려웠던 군중속의 고독이다. 그래서 지금 그가 그들에게 느끼는 감정은 일종의 질투였다.

하지만 그는 실수하지 않는다. 이를 악물고 그들을 마주하면, 비어 있는 송곳니 부분이 느껴지면서 지금은 그들과 마주해도 된다는 생각이 떠오른다. 같은 테이블의 끝자리 정도는 용서되지 않을까, 라는 욕심이 샘솟는다.

'뻔뻔해라. 염치가 있다면 그렇게는 못할거야. 생각이 있다면 즐거운 점심의 후폭풍도 떠오를거고.'
작게 지껄이는 환청의 말에 칼린은 부정조차  수 없었다. 다만 지금 그는 자리에 같이 있는 것 만으로도 비참할 정도로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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