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9화 〉전후(戰後)복구부대 (19/164)



〈 19화 〉전후(戰後)복구부대

에테롬은 전화를 받고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발신인은 요나였다. 드디어 칼린의 교육이 끝났음을 전하려고 연락했으리라. 그는 바지에 허리띠를 끼우다가, 살이 더 찐 것을 알고 불만스러운 듯 얼굴을 구겼다. 그리고 그냥 허리띠를 던져버렸다.

그대로 문을 나서려던 에테롬은 뭔가를 떠올리고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그는 지하로 들어갔다.

"주인님, 무슨 일이십니까."
갈색 피부의 남자가 서있었다. 그의 질문에 에테롬이 면목없다는 듯 사람 좋은 웃음으로 답변했다.

"이야, 정말 급한 전화였어요. 저는 잠깐 나갔다 와야 할 것 같은데, 할란도 조금 쉬고 있으세요."
그렇게 말하며 그는 짤뚱한 몸을 뒤뚱거리면서 안쪽으로 들어갔다. 거기엔 눈이 가려진, 만신창이로 다쳐 있는 남성이 의자에 묶여 있었다. 에테롬은 조금 숨을 고르다가 옷의 소매를 걷었다.

"비싼옷이니까."
그렇게 말한 그는 묶여 있는 남자의 이빨 사이에 걸려있던 작은 톱날을 천천히 뽑아냈다. 느리게 이빨 사이의 잇몸을 갈라내며 소름 끼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아아아아아악!"
절규하는 그 남자의 정수리를, 에테롬이 주먹으로 세게 내리쳤다. 이빨이 부딪히며 톱날이  깊숙히 박혔다. 그리고 그렇게 눌린 상태에서 그는 기어이  톱날을 끝까지 뽑아냈다.


"하던  끝내고 가야죠."
그렇게 말한 그는, 가슴팍에 조금 틘 핏자국을 노려보다가, 다시 옷을 갈아입기로 결정했다. 다시 뒤뚱거리며 계단을 오르다가, 할란에게 말을 전했다.

"2시간정도 방치해두고, 다시 들어가서도 가족 위치 안 불면 다시 톱 넣고 이번엔 불로 달궈요."
"네, 주인님."
그의 확답을 듣고 나서 에테롬은 다시 셔츠를 갈아입으러 올라갔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흠이 있어서는 안됐다. 그의 마음속에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


"네 힘은 '햇빛을 받으면 안된다'인 거냐, '해가 떠있으면 안된다' 인거냐?"
요나는 칼린과 대련하던 중 문득 떠올라 그걸 물었다. 칼린도 휘두르던 검을 멈추고 생각해보았다.


"그건 즉.."
"완벽하게 햇빛이 차단되는 곳에서는 힘을 쓸 수 있는 거냐?"
그 질문에 칼린도 천천히 생각해 보았다. 힘을 숨기고 지냈던 지난날들은 물론, 숲에 있을 때에도 한번도 생각해  적 없는 일이었다.

"저는  모르겠는데요?"
"그런가."
 대화가 어제의 일이었다.


"어서와라."
아침을 다 먹은 칼린을 부른 곳은 성의 객실, 즉 빈 방이었다.

"여기는 왜..."
그렇게 묻는 칼린에게 요나가 준비한 것을 보여줬다. 심까지 철로 되어 있는, 요나가 휘두르기도 조금 벅찬 대형 메이스였다.

"이걸 구부려서 묶어 봐라."
요나의 말에 칼린은 그녀를 한  바라보았다. 불 꺼진 방에서 창밖으로 들어오는 역광때문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해가.."
"그래. 일단 해봐."
그 말에 칼린은 터덜터덜 메이스 앞으로 갔다. 그리고 최대한 용을 쓰며 그걸 구부리려 해 보았다. 그러나 구부리기는 커녕, 드는 것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이건 진짜 무리인  같아요, 영주님..."
힘없이 그렇게 말하는 칼린을 멍하니 바라보던 영주는 평정을 가장하며 뒤에 창문에 암막 커튼을 쳤다. 그리고 칼린에게 말했다.

"넌 어둠 속도 대낮처럼 볼  있었지. 메이스를 잡아 구부려 봐라."
완전히 빛이 차단된 공간이지만 요나의 말대로 칼린은 메이스를 보는 데에는 아무 지장이 없었다. 칼린은 안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혹시나 라는 감각으로 메이스를 잡고 힘을 줬다. 여전히 메이스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무리인 것 같아요, 영주님. 도저히 안돼요."
요나는 어둠속에서 조금 생각하다가, 암막 커튼의 틈새로 살짝 비쳐 들어오는 빛을 보았다. 반쯤 의심을 하면서도 요나는 커튼을 다시 쳤다.


"지금 다시  보거라, 칼린."
"다시요?"
"그래."
물론 칼린은 그 빛이 보이지는 않았어서, 영주가 커튼을 조금 고쳐 치고 다시 시키는 걸로만 보였다. 그래도 요나가 그렇게 시키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다시 메이스를 잡았다.

그리고 힘을 줬다가, 너무 쉽게 구부러져 버려서 깜짝 놀라 메이스를 놓쳐 버렸다. 악력때문에 우그러지고 구부러진 메이스가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땅에 떨어졌다. 요나는 그 소리를 듣고 커튼을 치웠다.

"네 힘은 완벽한 햇빛의 차단이 발동조건인 듯하구나. 말 그대로 한 줄기 태양빛조차 허용되지 않는 어둠말이다."
그 말에 조금 의문이 든 칼린이 질문했다.


"달빛도 태양빛이 반사되며 나오는 것 아닌가요?"
그리고 반사적으로 입을 막았다가, 그녀라면 자신이 살던 세계의 지식이 밝혀져도 문제없는 것이 기억나 천천히 경계를 풀었다. 애초에 쓸데없는 걱정이기도 했는데, 이 세계에서도 알려진 상식이었기 때문이다.

"마법적인 힘이나 주술적인 힘은 그 원리보다는 모양새가 중요한 느낌이지. 제멋대로의 능력인 거다. 과학을 접두 시키려 하지마."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그 메이스를  손으로 들어 올렸다. 이리저리 파손된 메이스를 들고 있는 그녀는 미치광이 화가의 인상화같은 이미지였다.


"이 메이스는 '뤼스퉁'이라 불리는 무기이다. '갑옷'이라는 의미지. 괴물의 척추에 철을 몇겹 감싸서 만든 메이스로, 갑옷을 입은 사람과 비슷한 경도이기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그 메이스를 이리저리 돌려보며 말했다.

"넌 그걸 쥐어 터트려 버렸군."
칼린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그걸  모양으로 만드는 데 별로 힘도 주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즉, 그는 밤이 되면 가볍게 갑옷입은 사람을 곤죽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뭐, 밤에 힘조절에 장애가 생기는 것 같지는 않았고, 평소처럼 가장하는 것도 어려워 보이지는 않았다. 내가 분석한 게 틀린가, 칼린?"
"...아뇨. 맞습니다."
밤의 칼린의 괴력은 조절할 수 없는 느낌보다는, 낮보다 힘을  줄 수 있다는 느낌 정도였다. 요나의 말 대로 힘조절에 장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메이스가 칼린의 눈에는 짜부라진 시체로만 보였다.


"앞으로 간간이 이런 식으로  능력을 확인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지. 뭐, 낮의 네놈도 상당한 신체능력이 있다. 딱히 빛이 없어도 네놈은 천부적인 재능이 많아. 예를 들어  근밀도 말인데..."
그녀가 말을 시작하려 할 떄, 방에 노크음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문 밖에서 익숙한 노집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을 끊어서 죄송합니다만, 영주님. 에테롬님이 성에 도착하셨습니다."
요나는 그 말에 잠깐 서있다가,  기괴한 꼴이 되어 버린 메이스를 짊어졌다. 그리고 방을 나서며 말했다.


"뭐, 이제 시간은 많을 테니, 그건 대련 중에 말해 주도록 하지. 리쿠르트가 요양할 동안은 그 시간을 전부 대련에 투자하겠다.  지금 낮에도 빠르게 강해질 필요가 있어."
"강해질 필요요?"
되묻는 칼린을 돌아보며 요나가 상냥하게 웃었다.

"그래. 이것도 돌아와서 말해주지. 앞으로 시간은 많을 테니까."

#

"아, 오셨군요!"
에테롬은 설레는 마음에 문 밖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녀의 뒤에 칼린이 보이지 않는 것을 눈치채고 그녀의 노집사와 그녀를 번갈아서 쳐다보았다.

"뭐, 일단 들어가시죠. 천천히 이야기해 드리겠습니다."

"칼린을 파시지 않으시겠다구요?"
에테롬이 얼굴을 붉히며 그렇게 물었다. 그러나 요나는 침착하게 응수했다.


"네. 그는 제 성에 머무르게 될 겁니다."
그 상인은 벅차오르는 숨을 자제하려고 애쓰다가, 천천히 맨정신을 찾고 조금 침착해졌다.

"우리 계약했던 것이 아니었나요?"
"굳이 따지면, 계약은 하지 않았죠. 그저 소유권이 저에게 있으니 끌리면 팔아드리겠다고 언질을 줬을 뿐입니다."
"저는 그게 상인으로서 제시하는 암묵적 제안이었고, 영주님도 충분히 그 의미를 아시고서 받아들였던  같은데요?"
"상인의 법도까지 이해하기에는 영주가 알아 둬야 할 것이 너무 많더군요."
에테롬은 흥분을 거두고 나서야 조금씩 머리가 다시 돌아갔다. 지금 요나의 말투는 전에 비해 상당히 공격적인 것이 되었다. 아마 사교파티에서 꽤 좋은 평가가 퍼졌으리라. 분수에 안맞는 공적이 생긴 시골 영주가 상인과 적대하다가 몰락하는 일은 드문 일도 아니다.


"요나경. 뭐, 제 이야기를 듣고 판단해 보시죠. 지금 요나경의 땅은 순조롭게 넓어지고 있겠지요. 개척도 훌륭히 진행되시는 듯하고, 자세히는  봤지만 직물공장 확장계획도 순조롭게 이행되고 계신  같았습니다. 벨카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진심으로요.
그런데 그..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하는 소형 도시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그겁니다. 빠르게 발전하고 있으면 도시를 굴릴 자본같은 것은 그냥 솟아나는 걸로 착각하죠. 도시가 커질수록, 필요한 자본 양은 늘어납니다. 경제라는 거예요.
결코 기분 나쁘게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만, 벨카는 아직 저를 잃기에는 너무 작은 도시가 아닐까요..?"
전쟁의 판도를 뒤집은 영웅이라고는 해도, 철도조차 깔리지 않은 시골의 젊은 영주이다. 왕도의 상인과 사이가 틀어져서 좋을 점은 단 하나도 없다. 그러니까 요나에게 에테롬이 아직 요나와 대적할 생각이 없다는 것과 그가 칼린을 간절히 원하는 점은 상당한 행운이었다.

"그 어떤 말을 하셔도 이건 이미 결정 사항입니다, 에테롬경. 더이상 무를 수 있는 결정이 아니에요."
하지만 요나는  행운에 타협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다른 뒷배가 생기셨나 본데, 신중히 생각하세요. 감히 말씀드리지만 저는 왕도의 가장 부유한 상인중 다섯 손가락에 꼽힙니다."
"나라에 봉사하는 자가 어찌 뒷배가 있겠습니까. 굳이 있는 것을 말해보라고 한다면... 그래, 나라 그 자체지요."
그 말뜻을 현재 상황에 빗대서 생각해보고 바로 이해한 에테롬은 경악의 표정을 드러냈다.

"당신 설마.."
"네, 맞습니다. 그는 이제..."

#

"전후 복구부대요?"
"그래. 전부 그걸 위한 훈련들이다."
요나가 칼린에게 굳히기 기술을 사용하며 말했다. 칼린은 빠르게 탭을 세번 치고, 일어나서 말했다.

"저를 군인으로 넣었다구요?"
요나는 담담하게 그 자리에 앉아서 땀을 닦으며 말했다.

"뭐, 내가 직접 지휘하게 될 부대이다. 평소에는 벨카에 거주하고 있다가 임무가 떨어지거나 파견 명령이 오면 움직이면 돼. 왕명으로 직접 개설이 부탁 된 부대니까 총동원법에 의거, 상인도 나에게 불합리한 일을 저지를 수는 없게되지. 오히려 벨카에 지원하게 될 상인은 늘어난다."
좋게 들렸지만 이상했다. 머릿속에 무수히 떠오르는 질문들 중, 칼린은 가장  물음표를 건져 올려 질문했다.

"정말 그것 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나요?"
"그럴리가. 에테롬정도 규모의 상인이라면 얼마 안가 다른 방법으로 벨카를 조여 오기 시작하겠지."
"그렇다면.."
"그러니까 그러기 전에 벨카를 강경하게 만들어야지. 전후 복구부대의 일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다. 불만에 가득 찬 폭도를 제압하는 일을 하게 될 수도 있고, 혼란한 상황을 이용하는 범죄들도 경계해야해. 시체냄새를 맡고 오는 괴물의 진압은 물론 전쟁 후 복구라는 임무는 국민들에게 욕받이가 되기에는 최적의 위치지. 그래도 모든 것을 상쇄할 정도의 파격적인 조건도 하나 생겼다."
"그게 뭔데요?"
요나가 그 질문에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이번에 얻게 된 빅센마르크의 영토까지 이어지는 열차의 철로가 벨카에 깔리게 될 것이다. 복구부대의 보상수입과 철도로 에테롬이 우리에게 수를 쓰기 전에 도시를 초성장 시킬 것이다."
칼린은 비약되는 이야기에 머리를 싸맸다.

"아니, 그럼 바로 시작하던가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부대의 첫 출동은 언제죠?"
"한 달 뒤, 정식으로 부대가 개설된다. 소수 정예 형태에 힘든 일만 하게  테니, 떠돌이들과 지원자를 포함해 약 10명정도의 부대가  거다."
그는 대화를 따라가지 못해 정신이 아득해지고 있었다.

"1달 후에 바로 실전에 투입된다고요? 전 이제 검술의 기초가 끝났는데..."
"진정해라 칼린."
요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칼린의 곁에 쪼그려 앉았다.


"확실히 네 검은 귀족 애송이 정도 수준이다. 갖가지 묘한 기술들을 사용하지만 글쎄, 경계하고 있는 무장한 단련된 자를 이기기에는 벅찬 기술들이지. 아직 마나의 흐름을 이용하는 법도 모르고, 마법도 사용할 수 없다. 밤에 나오는 그 강한 힘은 숨기며 살아야 하지. 그래도 다행인 것은 있다."
그녀는 칼린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을 이었다.

"너도 나도 천재라는 점이다. 네 몸은 낮에도 상당히 강하다. 근력의 강함이 아니라, 밀도의 강함이다. 마나도 제어하지 않는 네놈이 그렇게 마른 몸으로 내 칼을 받아쳐  수 있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갑작스럽게 파고들어오는 칭찬에 칼린은 조금 쑥쓰러워져서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알게 모르게 마나를 제어하고 있는 것 정도라고 생각해 왔습니다만.."
"아니, 그런건 훈련 받지 않은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마나의 제어는 적어도 매일 훈련하면서 한달은 소모해야 가능한 기술이야. 바꿔 말하자면 누구든 한달만 투자하면 할 수 있는 것이라는 뜻도 된다만… 네 비밀은 유연하고 촘촘한 근육이다."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뒷짐을 지고 명령했다.


"보여주도록 하지. 브리지 자세를 만들어 보아라."
브리지 자세란 시선을 하늘에 향하며 팔과 다리로 허리를 굽히는 상태로 지탱하는 자세이다. 칼린이 그 자세를 취하자, 요나가 말을 이었다.

"거기서 천천히  팔을  봐라. 한 팔 씩 들어올리는 거다."
"그러면 넘어질텐데요?"
"해라."
단호하게 말하는 그녀의 말에 칼린은 눈을 감고 양 팔을 들어올려 보았다. 그러나 무리는 가고 있었지만, 무너지지 않고 있었다.

"맙소사."
그 말을 하고서 결국 칼린은 무너져 버렸지만, 적어도 한 20초정도를 그 자세로 버티고 있었다. 요나는 넘어진 칼린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그게  무기이다. 어떤 자세에서도 검을 휘두를  있는 유연하고 강인한 근육.  한달동안 네놈만이 가능한 아류 검술을 완성시켜주마."
자신도 모르고 있던 '낮'의 자신의 능력에 아직도 어안이 벙벙해 있는 칼린에게, 요나는 목검을 던져 주었다.

"맞는 검을 찾는 일부터 시작하지. 첫번째 무기는 우리 국가의 제식 검이다. 살아남기 위해 배우는 것이라 생각하고 연습해라. 뭐, 평소에도 훌륭히 내 지도를 따라왔으니 평소처럼만 해도 좋다."
칼린은 그 조금 짧은 양날검을 들고 가만히 있다가, 더이상 자신에게 선택지는 없다는 것을 알기에 자세를 잡았다. 이색의 훈련이 시작되었다.


#

리쿠르트의 수업시간이 전부 훈련시간으로 전환된 지금, 그녀가 모든 훈련을 끝내고 샤워까지 마쳤을 때는 이미 저녁시간이 되어 있었다. 여느 때처럼 샤워를 끝마치고 저녁을 먹은 요나가 업무에 들어갔을 때였다.

"정말 맞는 판단을 하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녀의 노집사가 걱정되는 듯한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칼린은 엄무를 멈추고 물었다.

"네 주인이 하는 판단에 의심이 가는가?"
"그 부대의 일이 쉽지 않을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부대의 지휘업무에 총동원령이라는 압도적인 어드밴티지가 딸려 있음에도 벨카에 철도를 설치한다는 거래까지 해낼  있었던 것은 요나의 타협기술 때문에 이뤄진 결과가 아니다. 그런 조건으로도 다들 피하는 부대인 것이다.


"걱정마라. 모든게 순조롭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업무를 다시 진행했다.

1시간정도가 지나고 요나가 시계를 확인했다.

"이번주말에 칼린의 마법적성을 확인하기 위해 왕도로  것이다, 통행권과 다른 준비를 끝마쳐 놓아라."
"네, 주인님."
그렇게 말한 콧노래를 부르며 겉옷을 걸쳐 입었다. 입가에 미소를 숨길 생각도 없었다.


"조금 산책을 다녀올 테니 방에서 대기해라."
그렇게 말하며 방을 나서려던 그녀가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노집사쪽을 돌아보며 질문했다.


"나한테 이상한 냄새는 안 나지?"
노집사가 가볍게 고개를 가로젓는 것을 확인한 그녀는, 다시 콧노래를 부르며 방을 나섰다.

'즐겁구나. 실로 즐겁다.'
이제 칼린을 만날 것이다. 그가 자신의 목에 이빨을 박아 넣고,  피를 양분으로 자라나리라. 누구의 잡피도 아닌 자신의 피만을 마시리라. 그 몽롱한 쾌감이 끝나면, 젖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자기혐오와 죄송함으로 점철이 된 얼굴을 보이리라.


아아, 칼린. 넌 이제 나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 이 모든 것이 내가 너를 '나의' 괴물로 만들어가는 과정일 뿐이다. 그 세포 하나까지 나의 피로 이뤄지게 만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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