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9화 〉기분나쁘고 위험한 (29/164)



〈 29화 〉기분나쁘고 위험한

"무기를 집어 넣어라. 일하러 가자."
해롤드는 자신이 던졌던 손도끼를 주우러 가며 그렇게 호령했다. 흩어지는 자치병력들을 바라보는 칼린에게 그가 질문했다.


"오늘 저녁에도 술집에 오나?"
칼린은 고개를 세로로 저었다. 그걸  해롤드는 다시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가 바닥에 가래침을 뱉으며 이동했다.


자치병력이 떠난 후 자리에는 부대원들만이 남아있었다. 칼린이 떨구었던 검을 다시 줍고 있을 때, 갤러한이 다가왔다.

"칼린, 얼마나 무모한 짓이었는지 설명해 줄 필요는 없겠지."
갤러한은 조금 화난 듯 했다.


"성공했잖아요."
칼린이 그렇게 말하자, 릴로도 다가와서 말했다.

"무기를  미친놈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때 무기를 버리고 설득했지. 미친짓이었어."
그러고 도르베를 돌아보며 말했다.

"저기 반반한 꼬맹이는 말로는 100명도 죽일 기세였지만, 그렇지도 않았군."
칼린은 자신의 장검을 둘러메고 릴로를 돌아 보았다.

"그 상황에서 현명했던 건 도르베 뿐이였어요. 어째서 무기를 내리지 않았죠?"
갤러한은  말에 조금 화가 났다.

"꼬맹아, 영주 아래에서 평화롭게만 살아와서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 모르나본데-"
"-그렇게!"
칼린이 그의 말을 끊으며 다시 소리를 질렀다. 자각도 못하고 있었지만 그도 조금 화나있었다.


"그렇게 평생 모든 것을 경계하면서 검만 쥐고 사실겁니까.."
갤러한에게 칼린의 방독면 안의 얼굴이 보이지는 않았다. 다만 목소리가 떨리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우리를 보세요.. 전후 복구부대라는 이름으로 와서 전쟁고아들을 경계하고, 마을 주민들과 불화나 만들고 있었잖아요. 갤러한, 제가 중단하지 않았으면 그 칼을 뽑았을 거잖아요. 몇명이나 죽일 생각이셨습니까?"
"...그들은 우리를 믿을 생각이 없었어."
"우리도 똑같았잖아요!"
갤러한은 그 말에 조금 뒷걸음질 쳤다.

"우리는, 우리는 그들을 믿었습니까? 전 이곳의 참상을 치우고 나니 술도 음식도 안들어갔었는데, 여러분은 그냥 먹고 즐기더군요. 자기 마을을 지켜보겠다고 변변찮은 기술도 없는 젊은이들이 모여서, 그 결과로 미쳐버린 자들을 비웃으면서 자기들이 이상하다는 것은 못느낀 겁니까?"
그의 목소리가 격하게 떨리고 있었다. 약간의 흐느낌이 있었다.


"모두에게 마리에게 보여준 상냥함의 절반만 보여줬어도 마음을 열었을 겁니다! 도대체 뭐가 달랐는데요! 술집이라는 장소때문에 그랬습니까? 아니면, 그 꼬마에게 상냥했던건 전부 빌어먹을 동정심이었나요?"
그는 하늘을 잠깐 바라보고 말했다.


"모두들 그냥... 그냥 여유가 없었을 뿐이잖아요.. 그냥 그정도의 문제였는데.."
그렇게 말하고 칼린은 발걸음을 옮겼다. 멈춰선 것은 라드의 앞이었다.


"라드씨, 이게 어제일에 대한 저의 반박입니다. 상냥함이라는 건 상대에 맞춰서 베푸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 힘든길을 고르는구나."
"마땅한 길을 걸을 뿐입니다."
칼린은 그렇게 말하고 현장으로 돌아갔다.


"멋지네."
이리하가 나즈막히 말했다.


#

그 날 술집에는 칼린 혼자 가게 되었다. 카운터에 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칼린은 손을 뻗어 독해보이는 술을 하나 잡아 병으로 들이 마셨다.

"칼린언니.."
그러는 중 그에게 다가 온것은 마리였다. 칼린은 반갑게 반겨주려다가,  아이의 얼굴에 섞인 슬픔을 보았다. 칼린이 가면을 고쳐쓰고 의자에서 내려와 쪼그려 앉아서 물었다.

"무슨  있니, 마리?"
마리는 그런 칼린의 품에 안겼다. 칼린은 자신의 옷이 젖어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엄마가 오늘 말해줬어."
그의 가슴에 둔탁한 것이 와닿았다.

"우리 아빠가 죽었대."
칼린은 주변을 둘러 보았다. 모두가 상실을 떠안은 모습이었다. 안주도 없이 술을 마시며 그저 살아있을 뿐이었다. 그들의 눈 안에는 이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칼린은 이 어린아이가 그렇게 될까봐 무서웠다. 바깥에 떼를 지어 돌아다니면서 현장에서 여러가지를 훔치고 다니는, 어른의 얼굴을 한 아이들처럼 될까봐 겁이 났다. 그러나 해줄 말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칼린은  아이를 더 세게 껴안으며 같이 눈을 감았다.


"너 애들 위로는 못하는 구나?"
청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칼린 앞에 있던 것은 이리하였다.

"이리와봐, 꼬맹이."
이리하가 그 꼬마를 잡아 올려 자신의 어깨에 태웠다.


"자, 마리. 아버지는 어떤사람이셨니?"
마리는 대답하고 싶지 않은 듯 했다.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푹 숙이는 마리를 보며 칼린이 그녀를 멈추려 할 때였다.


"대답 안해주면, 여기 사람들한테 물어보고."
이리하는 그렇게 말하고서 술집이 울릴정도로 큰 목소리를 냈다.

"여기 로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줄 사람은 없습니까?!!"
그 목소리는, 울고있던 마리를 잠깐 멈추게 할 정도로, 술집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을 잠깐 돌릴 정도로 컸다. 그러나 누구도 입을 열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리하도 포기는 하지 않았다.


"여기!! 로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줄 사람은 없습니까?!!!"
쩌렁쩌렁하게 울리던 소리는 조용히 흩어져 갔다. 아무도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술집을 나가려는 사람도 없었다. 이리하는 거기에 걸었다.

"여기-!"
거기까지 말했을때, 한 남성이 손을 들어 올렸다. 그 남자는 조용히 일어나 자신의 잔을 들었다.

"...정말 별거 없는 이야기지만, 로이는 이발솜씨가 끝내줬었지. 입구쪽에 앉아서 줄을 섰다가, 로이의 이발을 받으면서 술을 마시고는 했어."
그는 그렇게 말하고 입구쪽의 자리를 한번 돌아보았다. 많은 생각이 떠오르는지 그 남자는 그저 하염없이 그 자리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로이를 위하여!"
그런 함성이 들린것은 구석의 테이블이었다. 라드를 제외한 모든 부대원들이 거기에 모여있었다.


"이봐, 오늘 우리가 여기있는 모든 테이블의 술을 사도록 하지. 대신 우리 게임에 좀 맞춰줬으면 좋겠어."
륑게가 테이블에 올라서서 말했다.

"이제부터 로이의 이야기가 하나씩 나올  마다 우리 테이블에 있는 전원이 '로이를 위하여!'라 복창하고 한잔씩 마실거야. 술값은 마지막까지 남은놈을 제외하고 더치로 할거고. 간단한 게임이지. 잘부탁한다."
잠시의 정적 후에, 중앙쪽 테이블에 혼자 마시던 여성이 일어나 말했다.


"나, 12살에 걔 짝사랑했었어."
"로이를 위하여!"
다시한번 그런 함성이 울리고, 빈잔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일종의 리듬감마저 느껴지는 소리였다.


"이제와서 하는 말이지만, 로이는 사람말을 뒤지게 안듣는 편이었지."
""로이를 위하여!""
"로이가 자기 등에 점이 있는지 없는지로 내기한 적이 있어. 이발할때 쓰던 길쭉한 거울을 가져와서 확인시켜줬었지. 그 꼴통이 그 내기에 30생텀이나 걸었던거 알아?"
"""로이를 위하여!"""
후렴처럼 들리는 그 소리는 점점 커져갔다. 테이블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씩 참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너네 걔가 무당벌레 무서워했던 거는 아냐?"
""""로이를 위하여!!!""""
칼린은 그 장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테이블의 손님들이 하나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일부는 테이블을 합쳤고, 일부는 웃었고, 일부는 울었다. 표정들이 돌아오고 있었다. 너무나 간단한 방법으로, 흑백이었던 그곳에 다시 색이 돌아오고 있었다.

"로이는 일곱살때까지-"
장신의 여성이 그렇게 말하고 있을 때, 술집의 문이 거칠게 열렸다. 거기서 들어온 것은, 이미 어딘가에서 한잔 걸치고  듯한 해롤드였다. 갑자기 얼어붙은 그들을 지나치며, 해롤드는 카운터에서 술병을 하나 꺼냈다. 술잔은 꺼내지 않았다.

"...  동생이 처음으로 이 술집에 왔을 때는 나랑 같이 있었거든."
비틀거리는 발걸음을 옮기며, 그는 중앙 테이블에 올라갔다.


"난 동생한테 비싼 술을 사줄 생각이었어. 근데 그해는 흉작때문에 아빠가 좀 힘들었거든. 돈이 술 한잔값밖에 없던거야."
모두를 둘러보던 그는 말을 이었다.

"그러자, 로이는 그 돈을 받고 비싼 술병을 꺼내왔어. 동생이 어른이 되는 것을 축하한다며 말이야."
회상에 젖은 듯 카운터를 쳐다보던 그는 술병을 높이 들어 올렸다.

"로이를 위하여...!"
"""""로이를 위하여!!!!"""""
칼린은 그 모든 장면을 보면서 알  있었다. 살아있는 사람들이 살아남을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는 이리하의 위에 목마타고 있는 마리를 보았다. 마리는 울고 있었다. 동시에 웃고 있었다.

"애가 느끼기에는 조금 어려운 감정일텐데 말이야."
이리하가 살짝 고개를 숙여 칼린에게 말했다. 칼린은 웃으며 이리하와 주먹을 맞댔다.


그 게임은 점점 발전해가서, 잠시 뒤에는 그저 아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그사람을 위해 잔을 들어 올리는 게임이 되었다.

"기타를 끝내주게 잘치던 다모스를 위하여!"
"""""다모스를 위하여!!!!"""""
"좆도 아는게 없던 로하임 선생을 위하여!"
"""""로하임을 위하여!!!!"""""
"아으...용맹하게...용맹하게 끝까지 싸웠던, 나의 아내, 아냐를... 아냐를 위하여...!"
"""""아냐를 위하여!!!!!"""""
가만히 앉아서  장면을 바라보는 칼린의 어깨에 누군가 손을 얹었다. 갤러한이었다.

"넌 자동으로 술값 더치 참가야. 아무리 마셔도 못빼."
칼린은 갤러한의 말에 작게 웃었다. 그리고 마시고 있던 술병을 집어 들고 가면을 반정도 올렸다.


"고마워요, 갤러한."
갤러한은 무심한 표정으로 자신의 술병을 들었다. 그리고 굳이 칼린에게 대답하지 않으며 병을 들이 댔다. 칼린은 가볍게 건배하고 술을 마셨다. 처음으로 취기가 올라오는 듯한 기분이었다.

"칼린, 난 딱히  삶의 방식을 바꾸자고 결심한 건 아냐. 다른 모두도 그럴거고. 아마 너가 없는 곳에서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주저없이 칼을 뽑을거야."
갤러한은 자신들이 일으킨 기적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말했다.

"떠돌이의 인생이나 전쟁을 겪은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어. 이게 몸이야기가 아닌 건 너도 알겠지. 살라인에게 건배!"
건배를 외치고 술을 들이마신 갤러한은 입가를 닦으며 칼린을 바라보았다.

"정신력의 문제나 사상의 문제같은 것을 말하는 게 아니야. 가혹한 환경에서는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일이야. 어떤 방식으로든 고장나버리고 어딘가는 죽어버리지. 그리고 그런 사람들끼리만 만나다 보면, 그래. 대화를 할 수 없게 되어 버리지. 죽은 자는 말이 없거든."
그렇게 말하고 갤러한은 칼린의 목에 팔을 둘렀다.

"...네가 앞으로 어떤 세상을 겪든, 어떤 일을 경험하든, 최선을 다해서 살아다오."
칼린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건배에 맞춰 잔을 들어 올리는 것으로 응수했다.


#


"진짜 죽을  같아.."
릴로가 그렇게 불만을 토하며, 늘어진 풍선처럼 현장에 왔다. 갤러한도 눈가에 짙은 다크서클이 생겨서 릴로와 서로 부축해주고 있었다.

"아으에..아스타는..?"
갤러한의 질문에 구석에 쪼그려 앉아있던 핀이 대답했다.

"후오오오오아..후.호.화장실에 가 있어요.. 도르으베가 도우러 따라갔어요.."
"야, 그래도 너어어어어언..넌, 눈이 안보여서 므악 어지럽지는 않겠다.."
옆에서 같이 쪼그려 헛구역질을 하고 있던 륑게가 핀에게 그렇게 말하자, 핀은 대답 대신 그를 옆으로 밀었다. 내리막길로 몇바퀴인가 구르는 륑게를 보며 핀이 말했다.


"펴응생 장님의 숙취같은 건 경험 못해보을겁니다.."
"저런, 많이 괴로워?"
"아아, 소니아씨.."
핀의 옆으로 다가온 소니아는 그의 등을 가볍게 토닥였다. 이런 순간에 보이는 그녀의 상냥함이 핀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이런, 눈물까지 흘리잖아. 물좀 가져다줄까?"
"아아, 감사하읍니다. 부탁드려요."
"5생텀."
핀은 자신이 잘못들은 줄 알았다.


"뭐라구요?"
"5생텀. 따뜻한 꿀물은 10생텀."
얼이 빠진 핀은 가만히 있다가 다시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말했다.


"...로해요."
"응, 뭐라고?"
"..꿀물, 8생텀으로 하라고요, 젠장!"
"고럼 고럼! 다녀올게!"
그렇게 말하며 소니아는 가볍게 달려 나가서 바닥에 박혀있는 륑게에게도 말을 걸었다.


칼린은 조금 높은 곳에 앉아 그런 모두를 바라보고 있었다. 담배를 꺼내 물며 그는 작게 웃었다.


"취한사람 구경하는 거 좋아해? 악취미네, 칼린."
이리하가 옆에 와서 앉았다. 평소처럼 전신갑옷을 입고 있는 상태였다.

"아뇨, 딱히 그런거는 아닌데."
"그래? 난 좋아해."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가만히 앉아있었다. 칼린은 역시 아직은 그녀가 거북했다. 어제 보인 모습은 멋졌지만, 종잡을 수 없는 행동이나 말때문에 라드 다음으로 꺼리고 있었다.

"어제는 감사했어요."
그러나 감사인사는 전해야 했다. 그녀 덕분에 마리가 웃을 수 있었다.

"네가 감사할게 있던가?"
웃으며 그렇게 말하는 그녀에게 칼린은 약간의 미소로 답했다. 이리하는 그런 그의 모습을 보다가 말했다.

"그러고보니, 어제도 가면 벗기려다가 실패했었지."
칼린은 그 기억을 다시 떠올려 보았다. 갤러한이 칼린의 맨얼굴에 대해 말하고 도망쳐 버린 탓에, 술집의 취객들과 일행들에게서 가면을 지켜내야 했었다.

"어림도 없어요."
칼린이 당황하며 머리를 뒤로 빼자, 이리하는 웃으며 그가 물고 있던 담배를 잡았다.


"뭐, 하관만 봐도 이쁘게 생겼다는 건 알아. 딱히 더 벗기고 싶지도 않고. 누구나 숨기는  있지."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칼린이 물던 담배를 뺏어 물었다.

"아! 무슨 세균이 들어있을 줄 알고 남이 물던거를 물어요! 뱉어요!"
"네 입에 있던 거잖아."
"예, 근데.. 뭔가 거북해서.."
칼린은 그렇게 말하며 이리하의 담배를 빼앗아 지져 끄고 새로운 담배를 꺼내 건내 주었다.

"너도 괴짜야."
"그럴까요?"
서로를 보며 웃은 그들은 다시 자신의 일행들을 내려다 보았다. 잠시 가만히 그들을 지켜보던 칼린은 작게 말했다.

"뭐, 계속 보니까 버릇들기는 하네요."

#

"이게 다 무슨 꼴이지?"
라드가 성에서 나와 웃으며 물었다. 핀이 꿀물을 홀짝이며 대답했다.


"어제 술자리는 좀 과했답니다.."
"흠- 그으래?"
그렇게 말하고 현장으로 들어가려는 라드를 칼린이 막아섰다,

"여, 휴머니스트. 이번에는 무슨일로?"
"라드씨, 자치병력분들에게 사과하고 와 주세요."
라드는 턱을 잡고 눈을 오른쪽 상단으로 굴리며 고민하는 듯한 제스쳐를 보이다가 대답했다.

"그쪽에서 먼저 무기를 꺼냈고, 난 저항만 한건데도?"
"라드씨 정도의 실력이라면, 안다치게 하고 제압 가능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칼린의 즉답에 라드는 이빨을 보이며 웃었다.

"그러지 뭐. 근데 사실 이미 하고왔어."
예상외의 답변에 칼린이 조금 주춤했다.

"진짜요?"
"너네가 술집에서 신나게 놀 동안 말야. 그.. 엠마? 그녀의 집에서 쓰러진 그녀를 두고 다같이 술을 마시며 풀었지. 해롤드가 술집에 갔을 때 이미 조금 취해있지 않았던가?"
확실히 그랬었다. 다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라드라면 하지 않았을 것 같은 일이었다.


"왜죠?"
칼린의 질문에 라드는 조금 상처받았다는 투로 말했다.

"이봐, 나도 정당방위로 한 짓이었지만, 그렇게 심하게 다쳤다고 하면 마음은 아프다고. 임무를 위해서도 관계에 지장이 가면 안되니까 말이야."
칼린은 조금 놀란 눈으로 라드를 바라보다가, 어색하게 뒷걸음 쳤다.


"제가 라드씨를 오해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제대로 상식은 있으셨군요."
"나한테만  너무하네~"
"아, 죄송합니다. 그럼, 점심식사때 뵈요."
그렇게 말하고 현장으로 가는 칼린을 보며 라드가 혼자 되뇌었다.

"뭐, 실패한 트랙이면 노선을 빠르게 바꿔야 하기도 하고.."


#

"으아, 시발... 도저히 못하겠다."
숙취 때문인지 하나둘씩 탈락자가 나오고 있었다. 갤러한은 일을 하다가 그런 말을 뱉으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아, 토할것같아.."
릴로도 그런 갤러한을 보고 주저앉아 버렸다. 륑게는 이미 수레안에 꾸겨 들어가 잠들어 있었다.

"뭐야, 지원부대라고 일을 똑바로 하는 건 아니구만."
낯선 목소리에 륑게가 얼굴을 덮는데 쓰던 수건을 치웠다. 거기에는 조금 익숙해 보이는 얼굴들이 있었다.


"아아, 당신들은 분명... 안되겠어. 기억이 안나. 같은 테이블이었던가?"
륑게의 말에 모인 사람들이 폭소했다.


"어제 그렇게나 마시더니, 뻔한 결과지. 뭐가 '술로는 안진다!!'냐."
그들은 술집에 모였던 마을 주민들이었다. 그들중 일부가 현장에 찾아와 있었다.


"여기는  오셨어요?"
상대적으로 정신이 멀쩡한 도르베가 그렇게 묻자,  앞에 있던 중년 여성이 답했다.


"뭐, 그냥.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몸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은 현장에서 조금 도와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 그렇게 생각한 사람들끼리 가는 길에 만났어."
칼린은 그 말에 옮기고 있던 수레를 멈추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손을 내밀었다.

"잘 부탁드려요."
"빠르게 끝내자구."
서로 인사대신 그렇게 말하고, 그들도 조를 분배해 나눠지기 시작했다. 총 14명으로 7조가 더 생겼다.

한창 일하고 있을 때, 성문이 열리며 자치병력이 나왔다. 평소보다 늦은 시간이었다.


해롤드는 병력을 풀어 소금부대원들과 마을의 주민들을 전부 모았다.

"자치병력의 대장으로서 전할 말이 있다."
그는 많이 침착해 보였다. 개판나있는 몰골은 그대로였지만, 행동에 여유가 생긴 듯 했다.


"우리는 이제 마을 밖으로 정찰을 다닐 예정이다. 괴물의 근원지를 찾기 위해서이다. 근원지로 추정되는 곳을 발견하면 '미끼'는 전부 처분한다."
그렇게 말했다가, 그는 말을 고쳤다.


"..아니, 방치되어 있는 시신들을 전부 안치시킬 것이다. 뭐, 병력의 절반은 두고 갈테니 괴물 사냥은 그들에게 계속 맡기면 된다. 그럼."
그 말을 마지막으로 마을을 나가려던 그는 발걸음을 멈추고 덧붙였다.


"네놈들의 노고에 감사를 표한다. 본격적으로 싹을 자르는 작업은 마을 복구가 끝나고 나서 해야 할테니까, 계속 수고해줬으면 한다."
일단 마을의 부흥이 먼저니까.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마을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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