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화 〉기분나쁘고 위험한
죽여야 한다. 전부 죽여야 한다.
괴물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자세한 생각은 할 수 없었다. 그저 본능에 가까운 의지로 자신의 새끼들을 죽여온 것들을 맹렬하게 증오하고 있었다.
그래서 괴물은 더욱 신중해 졌었다. 자신의 증오만큼이나 깊게 땅 속으로 숨고, 죽은 자신의 알들로 함정을 팠다. 괴물이 인간을 유인해낸 수단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선택한 방법과 같은 것이었다.
그들을 중간에 놓친 괴물은 다시 한번 파고들었다. 그리고 얌전히 숨을 죽이다가, 10명정도의 기척을 발견했다. 그 괴물은 조용히 자신의 더듬이들을 빼낼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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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은 계속해서 지팡이를 튕기며 말했다.
"형태는...형태는 새끼들처럼 뱀의 형태가 아니네요. 뭐랄까.. 민달팽이나.. 고래? 같은 느낌으로, 길다기보다는 짧고 두꺼운 느낌이에요."
그는 감고있던 눈을 조금 떴다. 뭐를 보기 위해서 라기 보다는 그저 감각을 살리기 위해 뜬 것이었다.
"그리고..그리고 해롤드씨의 부대원들이 봤던 것은 아마 저 괴물에게 달려있는 더듬이예요. 등을 기준으로 여기저기 뻗어있어요."
"그 말은 튀어나오는 더듬이들을 다 잘라버리면 몸뚱이를 꺼낸다는 건가?"
이리하의 말에 핀이 말했다.
"아직..아직은 몰라요. 하지만 그게 정답일 것 같아요."
"뭐-야, 큰일인줄 알았더니 결국 할건 똑같았군. 이리저리 튀어나오는 것들은 전부 터트리면 된다는 거 아니야."
아스타는 그렇게 말하며 몸을 풀었다.
"저 괴물이 우리를 눈치챈 것 같아요. 천천히 더듬이를 뻗어와요. 16...17개 정도 되어보여요."
"그러면, 기본적인 작전은 똑같이 유지한다. 숲에 얼빠지게 있으면 나무 사이에서 놈의 더듬이를 피해야 해. 전부 빠르게 둥지로 들어가 진열을 잡는다."
갤러한이 그렇게 말하고, 일행들은 모두 괴물의 둥지로 발을 향했다.
핀은 둥지의 바깥에, 그의 주변에는 륑게와 라드가 양면을 바라보며, 그리고 둥지의 중심에는 나머지 일행들이 각자의 무기를 뽑고 조용히 공격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무가 흔들리는 소리 사이에서 대원들은 모든 감각을 살려 주변을 경계중이었다.
고요를 깬 것은 핀이었다.
"아스타 위치 기준 3시방향, 도르베 위치 기준 5시방향으로 옵니다! "
"아스타! 3시방향! 도르베, 5시방향!"
륑게가 그렇게 외쳤다. 아스타는 단검으로 자신의 손바닥을 긁어냈다.
"쳐먹여주지!"
그리고 튀어나오는 더듬이를 피하며 그 피를 뿌렸다. 뒤이어 엄지손가락으로 버튼을 누르듯 주먹쥔 손을 눌렀다.
폭발음과 함께, 더듬이 하나가 찢어져 날아갔다.
"하나 처리!"
그 말과 동시에 도르베는 자신이 깔아놓은 방어막을 발판삼아 촉수의 위까지 점프했다. 그리고 몸을 구르며 그의 세검으로 더듬이를 찢어내며 떨어졌다.
"두개처리!"
도르베의 그 말과 핀의 말이 겹쳤다.
"칼린에게서 6시방향, 도르베에게서 3시방향, 갤러한에게서 11시방향!"
칼린에게 뻗어나오는 더듬이들은 느리게 보였다. 바닥을 뚫으며 나오는 그것을, 들고있던 쌍수도로 채 나오기 전에 베었다. 칼린은 그 감각이 불쾌해서 몸을 조금 떨었다.
갤러한은 11시방향에서 떨어진 뒤 주머니에서 후춧가루를 꺼내 터트렸다. 그리고 나오자마자 발작하는 더듬이를 가볍게 베어냈다.
"갤러한, 4시방향에서 하나 더 옵니다!"
그 말에 갤러한은 4시방향으로 돌아보고 날아오고 있는 더듬이를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한번 방향을 꺾어 갤러한을 추적해왔다.
"이런 씨-"
그러나 그 더듬이가 갤러한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 촉수는 자잘한 자극때문에 갤러한을 놓쳤다. 그 자극은 라드와 륑게였다.
기회를 놓친 더듬이는 갤러한이 바로 베어냈다.
"...몇개째지?"
"방금 그거 쳐서 다섯개째! 카운팅 놓치지 마라, 칼린!"
갤러한의 근처에 있던 릴로가 말했다.
"죄송합니다!"
칼린은 그렇게 대답했다. 솔직히 정신이 없어 실수했다.
"이리하! 바로 아래! 라드씨랑 도르베씨는 저를 엄호해 주세요! 제 기준 12시로 하나 옵니다!"
이리하의 무기는 검같은 고상한 것이 아니었다. 그건 검이라기 보다는, 무디고 두꺼운 철판같았다. 그녀는 올라오는 더듬이를 피해내고 그 철판으로 짓이기듯 더듬이를 쪼갰다.
"여섯!"
륑게는 핀을 향해 뻗어나오는 더듬이를 그의 곡도로 찢었다. 그리고 잘린 조각이 핀을 향해 떨어지려는 것을 라드가 밧줄로 후려쳐서 치웠다.
"...쳇."
"고맙다니, 별말씀을."
둘을 그런 대화를 나누고 다시 위치를 정비했다.
"방금껄로 일곱개다! 몇개나 남았지, 핀?"
"갤러한, 4시방향! 방금 칼린이 한마리 더 잡았어요! 아, 릴로랑 아스타 사이로 하나!"
핀은 분주하게 소리치고 있었다. 대답할 여유가 없어 보였다. 위험한 상황이긴 했지만 상당히 순조로웠다.
"소니아에게 7시, 도르베에게 3시방향으로 하나! 각도를 보면 소니아씨에게 가고 있어요!"
"이걸로 열두개!"
릴로가 소리쳤다. 소니아는 철퇴를 휘두르며 핀에게 물었다.
"핀! 몇개나 남았어?!"
핀은 일정 간격으로 지팡이를 튕기며 쉬지 않고 말했다.
"약...약 여섯개? 다섯개? 소니아! 2시방향! 이리하를 향해 두개가 교차로 나옵니다! 엄호해 주세요!"
"다 오라고, 씨발!"
혼전 속에서 칼린은 생각하고 있었다. 검의 무게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갤러한의 말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검의 무게는 네가 베려고 하는 생명의 무게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는 검이 너무 무거웠다. 서걱,하는 소리와 함께 그 더듬이를 파고들어가는 순간 그 검은 마치 바위처럼 느껴졌다.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를 어떻게든 선행이나 해피엔딩으로 메꿔보려는 사람일까?'
어쩌면 그의 자기혐오가 그가 무리해서 괴물을 죽이고 있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칼린! 5시!"
울리는 그 소리에 칼린은 뒤를 돌았다. 느리게 움직이는 그의 시야 속에는 모든 것들이 보였다. 그는 쌍수도를 잡고 뒤로 몇발짝 물러 선 뒤, 튀어나오는 더듬이에 휘둘렀다. 베는 감각이 손에 쌓여갔다.
'나는 어째서 사람을 잡아 죽인 괴물조차 죽이는 것을 망설이는가.'
그 이유를 안다. 지금 마주하고 있는 것이 자신과 같은 괴물이기에, 자신과 함께있는 자들보다는 자신과 적대에 있는 것들과 가까운 존재이기에. 내가 그것들의 입장에 있었다면 먼저 자신들의 새끼를 잡아죽인 인간들을 같이 죽였을 지도 모르기에.
핀의 눈이 떠지는 것이 보인다. 경악의 표정이다. 다른 동료들이 고개를 돌린다. 그 방향을 향해 칼린도 고개를 돌린다. 이리하의 정면으로 거대한 것이 올라오고 있었다. 땅이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점점 느려지는 시야의 사이로, 그는 달리고 있었다. 다시한번 생각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뭘 하고 있는가.'
그는 이리하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뒤늦게 반응한 이리하가 발걸음을 떼고 있었다. 하지만 늦었다. 그녀의 눈빛에 낭패감이 드러났다.
바닥에서 그 괴물이 몸뚱이를 꺼냈다. 주둥이부터 튀어나오는 그것은 새끼때의 모습을 완전히 잃은 것처럼 보였다. 뱀보다는, 그래. 사람의 이빨을 달고 있는 메기같이 생겼었다.
그것이 튀어나오며 근처 돌들이 흩어졌다. 당황한 동료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핀의 떨어지라는 소리도 들린다. 아니, 들리지 않는다. 그에게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칼린은 이리하에게 도달했다. 그리고 이리하를 그 자리에서 밀쳐냈다.
"아아아아악!!"
고통스러운 비명이 터져나왔다. 칼린은 이리하를 밀쳐내고 튀어나온 괴물에게 팔을 물렸다. 칼린의 팔이 짓이겨 졌다.
"칼린!"
이리하가 그녀의 대검으로 괴물의 배를 찔렀다. 그걸 신호로 잡은 듯 부대원들이 일제히 공격을 시작했다.
"본체! 저게 몸통입니다!"
칼린은 아직 물려있는 자신의 팔을 보았다. 우스꽝스러운 꼴로 짓이겨 져 있었다. 그는 자신의 어깨를 잡고 뽑아내듯 힘을 줬다.
"으아아아악!"
그가 끼고 있던, 갑주가, 옷이 찢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물려서 파여버린 팔부분을 기점으로 칼린의 맨 팔이 애처롭게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이빨에 긁히고 뭉개지며 빠져나온 그의 팔은 맨눈으로 보기 힘들 정도의 형태가 되었다.
팔을 완전히 빼낸 칼린은 그대로 괴물에게서 떨어졌다. 이리하가 그를 받아냈다.
"칼린! 괜찮아?"
이리하는 넝마처럼 늘어진 그의 팔을 바라보고 칼린을 보았다.
"팔...오른팔만 빼면.."
칼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통때문에 머리가 어질어질 했지만, 의외로 이빨을 뽑은 것보다 더 아프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다시 싸우려는 거야?!"
이리하가 경악하며 묻자, 칼린은 그녀를 돌아보고 무슨 말을 하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야 괴물이 나왔잖아요.."
칼린은 언제나 묘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던 이리하가 두려웠다.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지 알 수 없었다. 모두와 나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는 듯 보였지만, 특별히 누군가와 친해지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었다. 어느 순간부터 칼린에게 자주 말을 걸기 시작하게 된 후에도, 칼린은 그녀의 표정을 읽을 수 없는 점을 경계했다. 그녀가 은발인 탓도 컸다.
그러나 그런 이리하가, 지금 자신을 약간의 경악을 담고 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시선이 불편했다. 자신을 두렵게 보는 것 같아 싫었다.
"가세하겠습니다!"
핀이 그렇게 말하고 걸치고 있던 활을 꺼냈다. 진정한 의미의 총력전이 시작되고 있을 때, 이리하와 칼린만이 다른 장소에 있는 듯 발걸음을 멈추고 있었다.
"저는..저는 다시 싸우러 가겠습니다."
칼린은 그 소리를 듣고 이리하의 시선을 피하듯 등을 돌리고, 떨어트렸던 무기를 쥐었다. 오른팔은 완전히 사용할 수 없게 되어 버린 듯 했다. 걸레짝처럼 늘어진 그 팔을, 칼린은 대충 어깨를 사용해 휘둘러 보았다. 조금, 아주 조금은 움직일 수 있었다.
이리하는 칼린이 신기했다. 이상한 가면을 쓰고 나오고는, 영주와 같이 살던것 치고는 묘하게 검소했다. 반정도는 던져보듯 한 부탁도 그냥 선뜻 들어줬다. 본격적으로 관심이 생긴 것은 그가 전장 위에서 이상한 설법을 논했을 때 였다. 제정신이 아닌 놈이지만, 재미있을 것 같은 놈이었다.
괴물에게 팔을 물려 뜯기고 힘으로 악바리로 이빨 틈새에서 팔을 뽑아낸 뒤, 비명이나 한탄조차 뱉지 않고 바로 검을 주워 전장으로 돌아가는 것은, 그런 것은 예상 못했다.
그는 자신이 상대하고 있는 괴물을 죽이는 것을, 자신의 목숨보다 우선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에 대한 애착이 적은 것인지 상대에 대한 살의가 강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어느쪽 이유든 적당히 미친 놈이라면 불가능할만한 일이었다.
그녀는 칼린의 검은 부분을 보게 된 것 같았다. 물론 지금 그딴걸 신경 쓸 시간이 아니라는 걸 안다. 하지만 놀란 가슴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갤러한은 칼린이 뛰어오는 것을 보았다.
"칼린! 싸울수 있나?"
"아무 문제 없어요!"
칼린은 그렇게 말하고 자신의 쌍수도를 한 손으로 쥐었다.
'실전이 처음인 놈이 저정도 부상으로 움직인다고?'
갤러한은 마음속으로 그렇게 떠올렸지만, 지금은 여유가 없었다.
"그럼 부탁한다! 본체에 총공격이야, 짜낼 수 있는 힘 다 짜내라!"
본체는 거대했다. 반정도 몸을 빼고 나온 그것은, 약 3층정도 건물의 크기였다.
"라드, 륑게, 핀은 원거리에서 놈의 움직임을 계속 교란시켜! 도르베는 놈의 시야 근처에서 계속 움직이면서 시선을 잡아! 아스타! 최고 화력으로 부탁한다! 나머지는 보이는 곳은 일단 베고 때린다. 실시!"
갤러한은 그렇게 말하고서 폭탄 두개를 꺼냈다. 그도 실제로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다.
"큰걸로간다..."
아스타는 사용하고 있던 단검 두개를 다시 집어넣고 목에 걸려있던 작은 검을 꺼냈다. 그리고 그 검으로 손목을 그었다.
"터져버려라!!"
그리고 그 피를 다른 손으로 괴물의 몸에 발라냈다.
그동안, 다른 모두는 괴물의 시선을 분산시키며 공격하고 있었다.
괴물은 혼란스러웠다. 마치 자신이 어디로 나올지 아는 듯한 움직임으로 자신의 더듬이를 전부 잘라내 버렸다. 이제 그 괴물에게 감각기관은 평균정도의 후각과 신통치 않은 시각뿐이었다.
동시에 괴물은 화가났다. 그 모든 공격들, 괴물에게는 닿지 않을 공격들이다. 그 괴물의 피부는 두껍고 매끄러웠다. 검만으로는 데미지를 줄 수 없었다. 그 사실을 똑바로 알게 될 수록, 괴물의 분노는 커져갔다.
"도르베!"
소니아가 그렇게 소리쳤다. 괴물이 흥분해서 무차별적으로 고개를 흔들어 댔다. 아직 바닥에 박혀 있는 부분을 흔들며 지진을 일으켰다.
"도르베! 일단 내려와!"
그리고 그 괴물의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교란시키고 있던 도르베는 방어막들을 깔아가며 다시 땅으로 내려가려고 했다. 우연히, 정말로 우연히 날뛰던 괴물이 도르베가 설치해 뒀던 방어막을 부셨다.
"..! 이런!"
도르베는 헛디딘 발 아래로 급하게 방어막을 덧대어 보았지만, 늦었었다. 그의 몸은 새로 깔았던 방어막에 부딪히고 굴러 바닥으로 떨어졌다.
"갤러한! 준비 끝났어!"
아스타는 그렇게 말하고 주먹을 쥐었다.
"동시에 터트린다! 셋, 둘-"
그런 아스타와 마주하며, 갤러한은 폭탄을 던졌다.
폭탄은 괴물의 등을 따라 구르다가, 아스타의 피가 묻은 곳으로 향해갔다.
"하나! 지금이다!"
아스타는 그 신호에 맞춰 엄지를 내렸다. 굉음과 함께, 괴물이 크게 허리를 굽혔다. 꽤 큰 데미지가 들어간 듯 했다.
"도르베!"
그 틈을 타 아스타와 칼린이 도르베를 향해 뛰어갔다.
"나머지는 쉬지마! 계속해서 공격해!"
압도적인 크기와 경도 앞에서 그들의 공격은 얼핏 무의미해 보였지만, 폭발로 인한 충격이 컸는지 괴물이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라드! 륑게! 합세해라! 핀은 거기서 계속 활을 쏴!"
"넵!"
짧게 대답하고 핀은 계속 화살을 쏘았다. 라드와 륑게는 각자 검을 뽑고 서로 반대방향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꿈틀대고 있는 괴물을 그저 찌르기 시작했다.
"쉬지마! 계속 찔러! 소니아, 릴로와 위치를 교대해라!"
소니아의 무기는 철퇴였기에, 갤러한은 차라리 쌍수도를 쓰는 칼린이 총력에 맞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도르베가!"
"나도 눈 달렸어!"
소니아가 그렇게 말하면서 달려왔다. 칼린은 도르베에게서 다리를 옮기며 쌍수도를 굳게 쥐었다.
끝이 보였다. 괴물도, 소금부대도 알 수 있었다. 그 괴물은 형편없는 시야로 자신을 공격하고 있는 10마리의 미물들을 돌아 보았다.
그 괴물이 다음에 한 짓은 결코 전략을 가지고 저지른 일이 아니다. 괴물은 그저 고통스러워서, 아파서, 괴로워서, 슬퍼서 울었다. 목을 놓아 울었다. 그게 기회를 만들었다.
소리가 하늘을 찢어낼 듯이 울렸다. 그 굉음에 인간의 청력이 버틸 수 없었다. 진영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칼을 놓지 마!!"
목이 찢어져라 소리지르는 갤러한이었지만, 그 말이 모두에게 전달될 일은 없었다. 하나둘 씩 검과 무기를 내리며 피가나기 시작하는 귀를 움켜 막았다.
청력이 좋은 칼린은 그야말로 고문이었다. 튼튼한 고막이 그의 외상은 막아 줬지만, 머릿속이 끝없이 울리며 구토를 유발했다. 그는 다급하게 가면을 올리고 구토했다. 소리로 시야를 파악하는 핀에게는 눈앞이 번쩍거리며 현기증을 앓는 듯한 증상을 겪고 있었다.
느린 울음소리를 끝마친 괴물은 공격이 멈추었음을 눈치챘다. 그것은 몸에서 무기들을 털어내듯 몸을 흔들며, 스스로를 회복하려 하고 있었다.
"놈이 회복한다!"
갤러한은 그렇게 외치며 포션을 꺼내 핀을 향해 달려갔다. 대원들도 하나 둘 씩 정신을 차려갔다,
"핀! 나다!"
갤러한이 무릎을 꿇고 허공을 더듬고 있는 핀의 입에 포션을 흘려 주었다. 그릭 고개를 돌렸다.
"상태가 회복된 사람은 대답해!"
갤러한이 그렇게 소리질러 보았지만, 대답 대신 칼린만이 비틀거리면서 그에게 다가올 뿐이었다. 그는 가면을 다시 고쳐쓰며 걸어오고 있었다.
"칼린! 상태는 괜찮나!"
"청력은 복구된 것 같아요!"
"핀을 맡고 있어! 다른 부대원들에게 포션을 전하고 올게!"
그렇게 말하며 뛰어가는 갤러한을 바라보던 칼린은, 핀을 내려다 보았다. 핀은 괴로운듯이 입을 열었다.
"아...아으...쓰러트렸나요?"
"핀, 빨리 정신 차려요! 못쓰러트렸어요! 놈이 회복중이야!"
핀은 그 말에 조금 버둥거리다가 일어났다. 그 괴물은 그 자리에 가만히 우뚝 서 있었다.
괴물의 몸에 있던 베인 상처들이 사라져 갔다. 찢어진 틈새가 서서히 다시 합쳐지는 듯 했다. 끈적이며 완전히 합쳐진 상처들의 위로 다시 두꺼운 가죽이 덮어졌다. 그 모든 싸움의 흔적들이 사라져 갔다.
"말도안돼..."
단 한순간. 단 한 순간에 그들의 순풍이 역풍으로 돌변하였다. 갤러한이 일행들에게 포션을 나눠주는 동안, 도르베는 쓰러져 있었고, 괴물은 회복중이었다.
"저..저거.."
핀이 마른 입술로 그렇게 입을 열었다.
"저거?"
칼린이 되묻자, 핀은 자신의 귀를 막았다. 보고싶지 않은 것을 본 사람이 눈을 가리듯.
"저거..더듬이까지 회복중이에요.... 이제 더이상은 승산이 없어요.."
그렇게 말하고 핀은 절망한 듯 고개를 숙였다. 칼린은 현장을 바라보았다.
모래먼지가 자욱하게 깔려 맑은 날씨에도 안개가 낀 듯 앞이 보이지 않았다. 숨을 들이마시면 모래가 씹혔다.
그 너머로 실루엣처럼 드러나는 그의 부대원들은, 낭패라는 표정으로 달려나오고 있었다. 도르베는 아스타에게 업혀 있었다.
그는 자신의 오른팔을 내려다 보았다. 만신창이로 고장나 있었다. 이제와서 그 무거운 통증이 조금씩 느껴졌다. 이빨을 뽑은 것 보다 안아픈 것이 아니었다. 다른 방향으로 아팠던 것이다.
"칼린! 후퇴다! 저놈, 더듬이까지 재생 중이야! 여기서는 후퇴하고 정규 군대를 파견시킨다!"
갤러한이 그렇게 소리쳤다. 모두의 지치고 분한 얼굴이 보인다. 흙먼지 너머로 거대한 검은 실루엣이 있다. 장벽처럼 보인다.
'우리가 이 마을을 두고 지금 후퇴한다면..'
그의 쌍수도는 여전히 무겁다. 한손으로 들고 있으려니 두배로 무거웠다. 반대팔은 어깨로 휘두르는 게 최선인 상태이다.
'군대가 이곳으로 올 때 까지 마을이 버틸 수 있을까..'
그의 자기혐오는 여전하다. 괴물에게만 유독 무자비하게 굴려는 것은, 그 자신도 괴물이니까. 그도 알고 있다.
'요나,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었을까요..'
햇빛이 떨어지는 청량한 하늘을 바라보며 칼린은 조금 얄궃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요나라면 분명히 지금 병력을 기다리자고 했을 것이다.
그는 아니다.
그의 눈앞에 갑자기 무대가 떠올랐다. 흙먼지 사이로 마치 신기루처럼, 언젠가 본 기억이 있던 무대이다. 조금씩 시야를 장악하던 그 무대는 결국 칼린의 시야 전체를 가져갔다. 현장의 모든 소리마저 차단되었다. 그리고, 무대 위의 붉은 색 커튼 사이로 매끄럽고 하얀, 길게 뻗은 손이 나온다. 손가락을 세개 피고 있다.
'1막은 괴물의 자기혐오. 가장 무거운 것이 타인의 생명이요, 가장 가벼운 것이 자신의 몸뚱이요. 그렇다면 가장 가벼운 것으로 가장 무거운 것을 취하는 것이 괴물의 도리.'
희극 풍으로, 짐짓 멋을 낸 듯한 목소리가 나온다.
'그렇다면 하고싶은대로, 그 몸뚱이를 깎아 생명을 취하거라.'
그 말과 함께 커튼을 잡고있는 손의 손가락이 하나 접혔다.
'종막까지는 2막이 남았어... 다녀오라구.'
그리고 그 손은 조용히 커튼을 잡고서 열어 젖히며- 다시 그 현장의 풍경이 돌아왔다. 그 너머에는 아직 가만히 서있는 괴물이 보였다. 무대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다른 일행들은 벌써 칼린의 옆에서 후퇴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다.
"가자! 칼린!!"
갤러한의 말에, 칼린은 소드브레이커를 허리춤에서 뽑아 입에 물었다. 그리고 자신의 쌍수도를 뽑아 들었다.
"야, 너.. 너 무슨짓을 하려고-"
갤러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칼린은 뛰었다. 괴물을 향해 달렸다.
어쩌면 그가 누군가를 돕고 다니는 것은 선의가 아닌 자기혐오이다.
어쩌면 그가 무리하고 있는 것은 잘못된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을 천천히 침식시키고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모든걸 감안하면서도 그는 어떤것도 포기할 수 없었다. 그걸 깨닫는 것이 너무 오래 걸렸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
흙먼지를 뚫고 달렸다. 제한된 시야에서 핀의 지원도 없었다. 그러나 무모하게 뛰었다. 당연하다는 듯, 그 괴물의 더듬이들이 그를 향해 뻗어 왔다. 칼린은 그 더듬이들을 여러 자세로 피하면서 서서히 본체에 다가갔다.
흙먼지 사이로 그 괴물의 몸이 보이기 시작할 때, 수평방향으로 더듬이가 날아왔다. 달리고 있는 그로서는 한번 퇴보해서 피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충혈된 눈으로 그는 그 수평으로 뻗은 더듬이를 노려보고, 슬라이딩으로 지나쳤다. 마침내 그는 본체에 도달했다. 누운듯한 자세로. 순식간에 다른 더듬이가 그를 향해 덤벼 들었다. 저항할 수 없는 자세였다. 다른 누군가였으면 거기서 죽었으리라.
그는 기합을 넣었다. 목청이 찢어질 듯 소리 질렀다. 고통스러워서, 아파서, 괴로워서, 슬퍼서 악을 뱉었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허리를 세워서 모든 혼신의 힘을 검격에 실었다. 그의 쌍수도가 괴물의 배를 갈라냈다.
괴물은 다시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아무리 칼린의 몸이라도, 지근거리에서 연속으로 두번은 버티지 못했다. 그의 눈과 귀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지금이라면 가능하다. 그의 마음속에서 떠오르고 있는 것. 지금이라면 할 수 있겠다. 그렇게 요동치는 것. 그걸 해내야 한다.
칼린은 물고있던 소드브레이커를 오른손 역수로 잡아내고, 움직이지 않는 팔을 어깨와 명치로 억지로 고정했다. 그리고 들고있던 쌍수도를 집어 던지고 괴물의 갈라진 상처에 그의 몸을 때려 박듯, 소드브레이커와 함께 자신의 오른팔을 집어 넣었다.
그의 여기저기 부서지고 뒤틀린 팔에서 난생 처음 듣는 소리들이 나며 우겨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근육까지 벗겨져있던 팔에 자극적인 감각들이 뇌리를 덮쳐왔다. 그상태에서 그는 다만 포기하지 않기 위해 소리를 질렀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상처 틈에서 하얀색 빛이 새어 나왔다. 마치 서로의 비명을 감추려는 듯 양쪽이 소리지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괴물의 몸 안쪽에서, 거대한 나무가 자라난 것 같았다. 상처를 기점으로 괴물의 몸 여기저기가 안에서 부터 찢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투명한 적색의 나뭇가지 같은 것들이 거기에서 튀어나왔다. 괴물의 정수리까지 뚫어내고서야 성장을 멈춘 그것은 그야말로 나무였다.
흙먼지가 걷힌 현장에서 소금부대원들이 목격한 것은, 완전히 움직임이 정지된 괴물과, 거기에 부상당한 오른팔을 꽂은 상태로 무릎꿇고 있는 칼린과, 괴물의 안에서 터져나온 듯한 거목같은 '무언가'였다. 그것은 잠깐 있다가 액체가 되어 흐르기 시작했다. 현장을 장악하게 된 그것의 냄새는 피냄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