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화 〉에필로그
칼린은 그 장면을 마지막으로 기절했다. 다른 부대원들도 차라리 기절하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은 일단 수습이 먼저였다.
괴물의 시체는 회수할 수 없었다. 불은 헛간까지 옮겨붙었고, 술집과 헛간은 완전히 무너졌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불이 다른 곳까지 옮겨 붙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이리하가 기절한 칼린을 업었다. 소금부대원들은 영주의 성을 향했다. 영주는 성 밖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짐들도 전부 밖에 나와 있었다.
"...당신들은 정말 잘해주셨습니다."
영주가 그렇게 말했다. 누구도 굳이 대답은 하지 않았다.
"예상보다 빠르게 복구작업을 끝내셨고, 마을의 단합도 이끌어 냈었습니다.. 이제 성 앞의 건물들도 다시 사용하게 될 거예요."
그렇게 말하고서 영주는 갤러한의 앞으로 다가왔다.
"괴물도 잡으셨죠?"
갤러한은 대답 대신 들고있던 자루를 건내주었다. 영주가 열어보니, 그 안에는 괴물의 눈알이 들어있었다.
"전 여러분의 임무가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설령 우리 마을의 술집이 불타고, 그곳의 모녀가 죽었고, 제 아들은 백치가 되어버렸지만요. 개인이 아닌 영주로서는 여러분은 할일을 다 한겁니다."
영주의 말에는 높낮이가 없었다. 흘려내듯 말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너네 불한당을 내쫓는 것은 영주로서 하는 일이 아니다. 지금 당장 우리 마을에서 나가줬으면 하네."
벌써 완전히 해가 떨어졌다. 조금 추워졌고, 어두웠다. 동료들은 부상이 심하다. 그러나 아무리 뼈굵은 모험가라도, 이 순간에 하루나 이틀정도만 숙박을 더 시켜달라고 물어 볼 수는 없었다. 아니, 오히려 마을이 더 위험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자네들을 데려온 마부들과 마차는 마을 후문 앞쪽에서 대기중이라네. 위험한 일이 생길 것 같아 내가 보내놨지."
"...배려 감사드립니다. 이만."
갤러한은 무겁게 고개를 숙이고 짐을 들었다. 동료들 모두가 각자의 짐을 챙긴 것을 확인한 그는 발걸음을 옮겼다.
영주는 떠나는 그들에게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바라보다가 성으로 돌아갔다. 이 마을은 다시는 외부인을 반기지 않으리라. 서서히 죽어갈 것이다. 늙은 영주는 이 마을과 함께 죽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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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차는 아직 앞이 보일때 최대한 마을에서 멀리 떨어지기로 결정했다. 마차 안의 그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반 정도는 고된 하루를 보냈던 탓에 잠들었다.
소니아는 마차 안에서 요나에게 통신을 걸었다.
'괴물은 잡았나?'
요나의 말에 소니아는 이를 악물었다.
"괴물은... 괴물은 잡았습니다."
요나도 뭔가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무슨일이 있나보군.'
"표본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것이..그것이 날뛰어서.."
소니아는 말을 하다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녀도 떠돌이 일을 하며 많은 일에 무감각해져 있었다. 그러나 이번일은, 그녀로서도 버티기 힘들었다.
'... 지금 복귀중인 건가?'
"부상자가 있어서.. 시간도 늦었으니 근처 숲에서 하룻 밤 야영하고 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부상자 보고하라.'
"칼린이 내상과 오른팔이 그... 그냥 총체적으로 다 부서져 있고, 도르베는 오른다리 단순골절입니다."
통신 너머가 조용해졌다. 소니아가 다시 말하려는 순간,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칼린은 마을에서 다쳤는가?'
소니아는 그런 요나의 목소리에 소름이 끼쳤다.
"아, 아뇨! 괴물과 싸우다가 입은 부상입니다! 그, 그리고 마법에 각성한 듯 합니다!"
겁먹어 즉답한 소니아였다. 요나는 다시 답장이 없다가 원래의 목소리를 되찾았다.
'그의 마법은 어떤 것이었지?'
"피를 고체화시키는 능력같았는데.. 그 범위가 압도적으로 컸습니다. 자세한건 우리도 아직 안물어 본 지라.."
'그렇다면 됐다. 벨카로 복귀한다면 내가 직접 물어보도록 하마.'
영주는 그 통신을 끊으려다가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칼린의 부상에 신경쓰지 마라. 간단하게 부목을 대고 붕대로 대충 감싸. 그거면 된다.'
"그치만-"
'그치만은 없다. 지휘관으로서의 명령이다.'
그렇게 말하고 칼린은 통신을 끊었다. 소니아는 도저히 요나가 제정신같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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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중간쯤에 그들의 마차는 멈춰섰다, 각자의 텐트를 치고 가운데에는 불을 피웠다. 이리하는 소니아의 말을 듣고, 칼린의 부상에 부목과 붕대는 자기가 대겠다며 칼린을 데리고 자신의 텐트에 눕혔다.
이리하는 조금이라도 더 조치를 취할 생각으로 그를 빼돌린 것이었다. 물론 그정도로 망가진 팔을 어떻게 해 볼수는 없겠지만, 일단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고 싶었다.
그정도의 부상을 끌고 정신을 유지하고 있던 것이 기적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연고를 꺼내고 그의 팔을 바라본 그녀는 터져나오는 경악을 입을 막고 참아야 했다.
칼린의 팔이 낫고 있었다. 상처들이 오므라지며, 묘한 소리와 함께 뼈가 맞춰지고 있었다. 낮의 괴물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이..이건.."
이리하는 숨을 참았다. 영주가 했다고 한 말이 떠올랐다. 영주는 그에게 저급 치료를 요구한 것이 아니었다. 이걸 감추기 위한 밴딩을 원한 것이었다.
"으으으..."
신음소리를 내기 시작한 칼린을 보면서, 이리하는 당황해서 한걸음 떨어졌다. 그리고 곧 정신을 차리고 그에게 다가갔다.
"너...너도.."
비자각적인 회복에, 압도적인 회복속도, 극한상태에서도 무리없이 발동되는 효율.
"미등록 마법사였구나!"
전후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최고 효율의 회복마법이다. 분명 마정석의 땔감이 되기 싫어 숨겨왔으리라. 그녀는 그렇게 외치고서 부목과 붕대를 꺼냈다.
"그런가, 그렇구나! 너도 미등록 마법사였구나!"
급하게 칼린의 팔을 밴딩하고서, 이리하는 밝게 웃었다. 그녀의 얼굴에 그런 표정도 나온다는 것을 소금부대원 아무도 몰랐으리라.
"서로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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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점심쯤에야 칼린은 정신을 차렸다. 식은땀 범벅으로 비명을 지르며 일어난 그는 주변을 둘러 보았다. 그 무엇도 불타고 있지 않았다. 모든것이 꿈이었다는 것을 안 칼린은 눈을 감싸고 잠깐 뻗었다.
"정신차렸구나, 칼린."
도르베가 수척한 얼굴로 그렇게 물었다. 칼린은 그 자세 그대로 대답했다.
"네... 어떻게든요.."
그러다가 칼린은 자신의 오른팔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느끼고, 그 방향을 보았다. 깁스가 되어 있었다. 칼린이 당황해서 주변을 돌아보자, 이리하가 말했다.
"팔은 좀 괜찮아?"
칼린은 그녀를 보았다. 여전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지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요나가 한사코 다른 조치 없이 부목과 붕대만 감으라고 해서... 미안하지만 그정도로만 했다. 내일 아침에는 도착할 것 같으니까 조금만 참아."
이리하는 그렇게 말하며 그 붕대를 한 번 손가락으로 찔렀다. 칼린은 당황하며 몸을 뒤로 빼고서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붕대는... 붕대는 이리하씨가 말아 주신 건가요?"
이리하의 표정을 읽을 수 없다.
"응. 내가 감았지."
이리하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칼린은 그게 불안했다. 뭔가 이상하지는 않았냐고 묻고 싶었지만, 질문 하는 것 자체가 지뢰가 될 것이다. 아직 살아있는 걸 보면 들키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렇게 믿는 수 밖에 없다.
혼란스럽고 어지러웠다. 칼린은 다시 쓰러지듯 잠들었다. 도르베가 그 모습을 보며 작게 혀를 찼다.
"분명 부상도 부상이지만, 많이 힘들거다. 칼린은 그 둘하고 특히 친했었으니.."
안타까운듯 그렇게 말하고서, 그도 눈을 감았다. 별로 대화할 흥이 나지 않았다. 그저 조용하게 벨카에 도착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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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는 길에 대부분의 부대원들은 물만 마셨다. 밥을 먹을 수 있었던 건 라드와 릴로, 륑게 정도 였다. 마부들은 음식을 먹지 않는 그들이 걱정이 되어서 자신들의 보존식을 내밀어 보기도 했으나, 그 누구도 받아 먹으려 하지 않았다. 저녁이 되어 야영을 하면 일부 텐트에서 비명이나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해서 수면환경도 좋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이 벨카에 도착했을 때, 임무를 성공한 용사의 면모는 보이지 않았다. 거의다 살아있는 시체같은 몰골을 하고서 꼬질꼬질하게 들어왔다.
"하고싶은 말이 많았다만... 이래서야 무슨 말을 할 수도 없겠군. 모든 사정은 내일 듣도록 하지. 해산해라."
요나는 모두를 모아서 그렇게 말했다.
"잠깐.. 영주님-"
뭔가를 말하려는 갤러한을 한손을 뻗어 저지하면서 요나는 굳이 한번 더 말했다.
"'내일'이다. 들어가라, 갤러한."
그리고 요나는 칼린을 데리고 성으로 돌아갔다. 비척거리며 따라가는 칼린을 보고, 갤러한은 그저 바닥을 내려다 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그들의 여관으로 걸어갔다. 숙소를 신청하지 않은 라드만이 발걸음을 반대로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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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는 어땠나요, 라드?"
에테롬이 그를 반기며 안내했다. 그들이 있는 곳은 지하 창관이었다. 방 하나를 잡아 들어간 그들은 비싼 술과 잔 두개를 챙겼다.
"이야, 고되고 힘들었습니다. 보너스가 필요할 것 같은데요."
건조하게 뱉는 라드의 말에 에테롬이 웃었다. 그리고 그의 잔에 술을 따랐다.
"근처 영지에서 활동하던 상인을 보내서 얼마나 일을 성공하셨는지 보려고 했는데... 글쎄 들어가지도 못했다는군요!"
라드는 옅게 웃으며 술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잔을 내려 놓으며 말했다.
"능력은 충분히 보여준 것 같네요."
에테롬은 만족스러운 듯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라드, 앞으로도 잘부탁드립니다."
라드는 가만히 에테롬의 손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팔에 밧줄이 있는것을 알면서도 손을 내밀었다.
"상인의 배짱이라는 건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요!"
에테롬은 그렇게 말하며 천연덕스럽게 내민 손을 내리지 않았다. 라드도 손을 내밀어 악수를 했다.
"...무서운 형씨란 말야. 적어도 적으로 보는 일은 없도록 하자고."
"하하! 제가 할 말이에요, 라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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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린, 수고했다. 고생했겠구나."
요나는 그렇게 말하며 칼린에게 다가왔다. 칼린은 가면을 벗었다.계속 벗고 싶었었다.
"팔은 좀 어떤가?"
그 말에 칼린은 자조적으로 웃었다. 그리고 대고 있던 부목을 팔을 펴서 부숴버렸다.
"그날 저녁에 바로 나은것 같더라고요.. 기절해 있었던지라 잘은 모르지만."
요나는 그런 그의 팔을 보았다. 상처하나 없었다.
"칼린, 많이 힘든가?"
요나는 칼린의 팔을 잡고 그렇게 물었다. 칼린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중간까지는 분명 힘들었지만 보람찼다. 받아들여지는 것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그냥 전부 기쁘고 좋았다. 그 모든것이 자신의 안일한 생각으로 무너지는 데에는 채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모르겠어요. 정말 성공했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칼린은 요나의 팔을 붙잡고 고개를 떨궜다.
"제가.. 괴물주제에..괴물주제에 뭐라도 하고 싶었던거...그거가..전.."
요나는 가만히 그런 그를 내려다 보았다.
"제가...제가 얼마나 어리석었던 걸까요, 요나..."
바들바들 떨고있는 그를 보며 요나의 가슴 속에서부터 검은 욕망이 다시금 떠올랐다.
"아아, 칼린... 정말로 어리석은 짓을 했구나.."
요나는 흐느끼는 그를 감싸 안으며 작게 속삭이듯 말했다.
"네가 그 제안을 하지 않았더라면, 갤러한이 그 괴물을 끌어내서 죽였을 텐데. 그 꼬마가 입은 상처는 그녀의 어머니가 같이 견뎌줬을 것이다."
칼린은 무너지고 있었다. 아, 무너지고 있었다. 요나는 알 수 있다.
"네가 설득하지 않았다면, 그 제안에 넘어갔던 모두가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없었겠지. 차라리 독단으로 하는 것이 나았을지도 몰라.. 그랬다면 너만의 책임이었을 것이다. 그렇지?"
그의 등을 쓰다듬는다. 요나의 얼굴이 붉어졌다. 숨이 거칠어진다.
"실수투성이 괴물이구나.. 널 받아줄 수 있는 건 이 세상에 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일까지 터졌으니까, 다들 네 정체를 알면 괴물끼리 편든거냐고 분노할거야. 불쌍한 칼린, 고립되어가는구나."
칼린의 흐느낌이 오열로 넘어가기 시작할 때, 요나는 젖은 눈길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렇지만 언젠가 말했던 것처럼, 나는 네 곁에 있다. 나만 믿어라. 내 판단을 믿어. 모든 판단을 나에게 맡겨. 부대원들에게도 속을 숨기거라. 타인과의 관계를 경계해. 리쿠르트도 갤러한도 네 정체를 알면 떠나갈거야. 넌 끔찍한 괴물이니까, 칼린.."
품에 안은 칼린과 함께, 그녀도 조금 떨었다. 그녀도 떠돌이들로 급조된 팀에게서 첫 임무부터 완벽한 성공을 바라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소문도 잘 나지 않을 나라에서 버린 작은 마을을 골랐다. 부대원들의 역량은 생각보다 뛰어났고, 임무는 성공했다. 그거면 되었다. 샘플을 회수 못한 것은 아쉽지만, 대신 기회가 생겼다.
"나만을 믿어라. 오직 나만을."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던 기회. 요나는 즐거움을 참을 수 없었다.
왕국 산하 전후 복구 부대, 소금부대의 첫 임무가 그렇게 끝났다. 장기적인 치료가 필요한 부상을 입은 자는 2명, 사망자는 부대원 내에서 0명. 괴물의 근원처리 및 마을복구작업 무사 성공. 그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를 전부 수행해냈다.
첫 임무는 완벽히 성공했다. 기분나쁘고 위험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