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2화 〉암투(暗鬪) (62/164)



〈 62화 〉암투(暗鬪)

"잘 모르겠네요."
일부 귀족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었다. 아무리 그들의 위업이 대단하다고는 해도, 지휘관인 요나 뿐 아니라 부대원 하나하나가 그 영광을 나눠 받는 것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자들도 있었다.

"요나경도 조금 지나치게 주목받는 것 같아요. 베일라 클로 가문에게는 조금 과분한 관심이라고 생각되네요."
요나의 성장세는 위험하다. 지난 생일파티를 놓친 자들은 이제 요나의 편에 설지 요나의 적에 설지 확실히 정해야  때가 왔다. 제일  문제는 아직 요나의 부대는 활동 중이라는 것이다.

"다임 상회와 분쟁이 있던 것 같은데요."
듣는 귀가 빠른 자들은 거기까지 눈치챌 수 있었다. 요나에게는 그저 숨기고픈 사실이지만, 다임상회 입장으로는 이는 널리 퍼뜨리는 게 이익인 상황이다. 아직은 둘 중에서는 다임상회가  유리한 상황이다.

요는, 현재 이 사교장에는 전후복구부대의 임무 성공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반정도는 그녀를 물어 뜯기 위해 모여 있다. 요나가 말한 것처럼 한가한 축하자리가 아닌, 진짜 암투(暗鬪)의 현장이었다. 물론 요나도 이를 모르고 부대원들에게 일상감만을 강조한 것은 아니다.

"지금 들어오는 겁니까... 본인들의 축하 사교장에 늦는다니-"
어느 귀족은 그렇게 말하며 사교장의 문이 열리는 것을 보았다. 그 문 너머로, 도합 11명이 가로 일렬로 들어왔다. 가운데에 서 있는 것은 요나였다.


하나같이 고급 정장을 입은 그들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들어왔다. 그리고 이어서, 경계하면서도 거만한 자세로 접시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오케스트라가 음악을 채 준비하기도 전에 그들은 음식을 가져가기 시작했다.


귀족들은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물론 그들이 저지르고 있는 무례에 대해서는   것도 없지만, 진짜 두려운 것은 따로 있었다.

부대원들은 전부 무장하고 있었다. 제대로 중무장을 한 것은 아니지만, 각자의 무기를 들고 파티 홀로 들어왔다. 근위병도 장교도 아닌 손님신분의 민간인들이 무기를 차고 사교의 장에 들어왔다.


근위병은 그런 그들을 바라보면서도 그 어떤 제제도 가하지 않았다. 그 말은, 이번 일로 요나의 지위는 왕궁내 무구가 착용이 가능한 지점까지 올라왔다는 뜻이 된 것이다.


부대원들은 마치 그것이 당연하다는  무례를 범하고 있었다. 그래, 그 일상감이 중요했다. 부대원들이 이 자리에서 긴장하고 있어서는 안됐다. 요나는 자신의 부대원들의 무지마저 이용해내고 있었다.


"왜 그러냐, 도르베?"
아스타는 빵을 집어먹으며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도르베를 돌아보았다. 도르베는 그 말에 어색하게 웃으며 답했다.

"아니다. 신경쓰지마라. 나도 이제 귀족이 아니고..."
그는 왕궁의 사교장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고위 귀족이 된 적은 없다. 단 귀족으로서 다른 귀족의 성에 들어갈 때는 무장해제가 기본 원칙임을 떠올리며 영주의 계획을 의심하고 있기는 했었다. 사교장에서 다른 귀족들의 반응을 보고 나서야 그는 확신할 수 있었다.

'대단하군.'
그녀는 처음 말 한마디를 꺼내기도 전에 사교장에 자신의 권력을 내 비췄다. 도르베는 그녀가 자신들의 지휘관으로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주목."
그녀는 자신의 부대원들을 헤치며 단상위로 올라와, 목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모든 귀족들을 마주하며 담배와 잔을 꺼냈다.


"인생에는 수많은 선택의 기로들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 중에는 인생이 걸려있는 중대한 선택들도 있는 법이지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잔을 옆으로 들이 밀었다. 그리고 시종에게 손짓했다. 시종은 급하게 단상위로 올라가 그녀의 잔을 채워주었다. 잔에 붉은색 와인이 가득 차면서, 거기에 음각되어 있던 다임상회의 시그니쳐 마크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최근에 저에게 있었던 중대한 선택의 기로는 두가지가 있었습니다. 첫번째는 역시, 전후복구부대의 지휘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누구도 손대지 않으려던 위험한 종마였죠. 저는 망설임없이 그 고삐를 휘어잡았고, 첫번째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녀는 담배를 입에 물고 천천히 연기를 머금었다. 그리고 그것을 뱉어 내며 다시 말을 시작했다.


"두번째는 이번 임무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결사대의 이름을 등지고, 우리 용맹한 부대원들은 불가능에 가까운 임무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리고 제 무모에 가까웠던 임무를 수행해냈죠. 모두 그들을 축복해 주세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잔을 들어 올린 뒤 한 모금 크게 들이 마셨다.


"슬슬 시간이 되었겠군요. 창 밖을 보시면 부대원의 사진이 걸린 비행선이 보일 것입니다.  비행선은 바로 내일 왕도를 떠나 윌레인 전역을 가로지를 것입니다. 우리 부대원들의 성공을 축하하며 암울한 시대의 국민들에게 윌레인의 위대한 등불을 전해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녀의 잔은 딱 다임상회의 마크가 보일 정도로만 차 있었다. 라드는 그녀가 왜 굳이 다임상회의 컵을 가져온 것인지 예상이 가서 조용히 숨을 죽였다.

"감히 여러분에게 말하건데, 안정적인 미래는 성공적인 선택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때로는 무모해 보이는 선택이 성공의 지름길이 되어 주는 것이죠. 그러면 이제, 부디 벨카와 소금부대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잔을 들어 주십시요."
그녀는 담뱃불을 상회의 컵에 비벼서 껐다. 그리고  담배를 컵에 던져 넣고 그 잔을 높이 들어 올렸다.

요나의 상황을 아는 모든 자가 그 모습에 떨었다. 그녀는 방금 그것으로 상회와의 전면전을 선언했다. 모르는 자들의 환호성과 아는 자들의 소리 없는 경악속에서, 그녀는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당당하면서도 요염한 웃음이었다.

"건배."
작게 속삭이듯 나온 그 말에 안에 있는 귀족 모두가 환호를 내질렀다. 요나에게 반대하는 자 조차도 잔을 높이 들 수밖에 없었다. 넓었던 그 사교장을, 요나는 들어 온지 10분도 되지 않아 벨카라는 괴물의 아가리로 만들었다. 그리고 오케스트라와 함께, 진짜 파티가 시작되었다.




라드는 테라스로 나와 있었다. 요나의 선전포고를 다임상회에서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관한 문제였다. 상회의 정보를 얻는 속도를 생각하면 당장 내일 모레정도면 에테롬에게까지 이 소식이 전달될 것이다. 아니, 늦어야 내일 모래지 당장 요나와 적대를 선택한 귀족이 보고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지금의 라드는 다임상회에게 고용되어 요나의 공적을 늘려준 것이나 다름없는 위치이다. 이 소식을 듣고 나면  큰 보복이 들어올 지도 모르는 일이다. 라드는 다가오는 에테롬과의 접선일까지 에테롬이 자신을 팽하지 않게  만한 수단이 필요했다.


테라스의 저 멀리에는 조명을 받으며 거대한 몸짓을 자랑하고 있는 비행선이 보였다. 라드는 거기에 걸린 자신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며 주머니에서 금화를 하나 꺼냈다.

저 비행선이 이제 윌레인 전역을 돌아다니게 될 것이다. 이후부터 요나쪽으로 전세가 급격히 유리해질 것은 뻔한 일이었다.

'요나의 임무를  우선해야 한다.'
그는 자신의 행동방침을 정했다. 다만 자신의 누이가 아직 다임 상회의 손 안에 있는 이상, 대놓고 상회의 임무에서 등을 돌릴 수도 없었다. 그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금화를 돌리고 있을  였다.

"여기서 뭐하세요, 라드씨?"
테라스로 나오며 그에게 말을 건 것은 칼린이었다. 지난 임무 이후로 라드는 칼린의 신뢰를 얻었고, 칼린은 요나가 신임하고 있는 부하였다. 라드로서는 그와 친하게 지내지 않을 이유가 없다.

"고생하는군. 이런 자리에서도 가면을 벗지 못하는 구나."
"네, 뭐... 가면을 쓰고 있어도 얼마나 말이 많이 걸려오는지..."
얼굴을 가려도 9등신이라는 압도적인 비율은 눈에 띄었다. 사교장에서 그를 숨기기에는 너무 눈에 띄는 요소가 많았다. 물론 가면을 벗었다면 더 큰일이 벌어졌을 터였다.

"그래서 쉬러 나온 건가?"
"잠깐 숨좀 돌리려고 갤러한에게 자리를 맡기고 나왔어요."
칼린은 그렇게 말하며 라드의 옆에 섰다. 그리고 테라스에 기대서 비행선을 바라보았다.


"라드씨는 뭐하고 있었는데요?"
 질문에 라드는 잠깐 고민하다가 금화를 계속 돌리며 답했다.

"사람이 많은 자리는 무섭거든."
그의 말투에 농담스러운 뉘앙스가 가득했기에, 칼린은 그저 웃으며 더 따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라드가 계속해서 손에서 굴리고 있는 금화를 보았다.


"그..건 뭔가요?"
"응? 이거?"
라드는 칼린이  금화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보았다. 그는 이리저리 손가락으로 금화를 굴리다가 마지막에는 손가락사이에 하나씩 끼워 넣어 총 네개의 금화를 보여주었다.


"뭐... 어떤 멍청이가 만든 장식용 금화지. 관심있나?"
"아니, 금화 말고, 그... 그 손가락으로 굴리는 짓이요. 어떻게 한 거예요?"
아무래도 칼린은 금화가 아닌 라드의 손동작에 관심을 가졌던 것 같았다. 라드는 네 개의 금화를 다시  곳으로 겹치는가 싶더니 어느새 금화를 하나로 되돌렸다.

"배워 볼래?"
전생에는 카지노에서 일했던 그이다. 이런 손장난에는 자신도 모르게 마음을 빼앗겨 버리고는 한다.

"가르쳐 주시는 건가요?"
라드는 그의 말에 그 금화를 하나 튕겨주었다. 칼린이 그걸 받자, 라드는 그에게 다가와 손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았다.

"맙소사 칼린, 여기 있었나. 여기저기에서 계속 춤을 요구해서 정말 곤란-"
도르베가 사교장에서 도망쳐 나오듯 테라스로 달려온 것은 그쯤이었다. 그는 칼린과 라드가 느리게 손을 꼼지락거리며 금화를 굴리는 모습을 보고 어떤 상황인지 혼란이 와서 말을 못 꺼내고 있었다.

"뭐야, 도련님."
라드의 질문에 도르베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스타와 친한 도르베로서는 라드가 그렇게 믿을만한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칼린을 찾으러 온 거다. 신경 끄도록."
"아, 도르베! 그러지 말고 이거 한 번 보세요!"
칼린은 그렇게 말하고서 라드를 한번 톡 쳤다. 라드는 칼린을 바라보다가, 곧 다시 금화를 이리저리 굴리며 그 마술을 보여줬다. 도르베는 거기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다가 놀란 듯 말했다.

"라드, 너.... 2면 마법사였나.."
"도련님, 이건 마법이 아니야."
그는 일그러진 웃음을 걸치며 금화를 하나 던져줬다.

"마술이라는 거지. 간단하게 말하면 속임수야. 어때, 도련님도 배워 볼 텐가?"
라드로서는 이제 부대원들과의 관계를 재정립해야  때이다. 그닥 사이가 좋지 않은 도르베를 구슬릴 수 있다면, 아스타의 적대심도 어느정도 해결될 것이다. 륑게와 이리하는 그 뒤로 시간을 들여가면 된다.

도르베로서는 속임수라는 말에 귀가 뜨였다. 아스타는 자신의 싸움이 너무 정당하다고, 약간의 속임수가 필요하다고 하고는 했다. 어쩌면 이런 것이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요구하는 건가?"
"그럴리가. 난 친구가 없거든. 친해지자고 꼬시는 거야."
"그런거라면..."
도르베는 의심을 약간 거두고 칼린과 함께 테라스에서 동전을 굴려댔다. 달밤 아래 쫙 빼 입은 남성 셋이서 그러고 있는 장면은 꽤 우스워 보였다.


"진짜 걱정할 필요 없는 자리였네. 다들 엄청 친절하셔!"
"고럼고럼, 우리가 영웅님들인데."
릴로와 소니아는 속 편한 소리를 하며 여기저기의 음식을 즐기고 있었다.


"이렇게 속 편한 자리인 줄은 몰랐어. 뭔가 걱정했던 게 바보 같네!"
"말 했잖아!"
륑게도 소니아의 머리를 거칠게 헤집으며 지나갔다. 그는 갤러한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핀을 찾았다.

"야, 핀..."
핀은 귀족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정장이 잘 어울리는 떡대형 체구인 것을 둘째 치고, 장님이라는 점에서 마음 편히 들이대보는 여성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조금 곤란해하는 핀을 보고 륑게는 머리를 감쌌다.

"뭐하는 거야, 저놈은..."
그리고 그는 바로 그 자리로 들어가 핀을 끌고 나왔다.

"누, 누구? 누구시죠?"
"뭐하는 거야, 너."
"아, 륑게군요. 하, 다행이다. 진짜 쫄았잖아요... 말 한마디 정도는 해 주세요."
"거절은 확실히 하라고. 네 주변에 있던 여자들 얼굴을 봐야 됐는데."
"아니, 저는 사실 얼굴까지는 일일이 식별 안되니까... 솔직히 여기저기서 추켜세워주니까 나쁘지 않던데요?"
"영주가 경계하라  게 그거야,  멍청아. 그나저나.."
륑게는 주변을 적당히 두리번거리다가 질문했다.

"갤러한  봤냐? 애가 안보이는데."
"저는 당연히 못 보죠. 그런 걸 왜 물으시-"
"아이, 누가 너 장님인거 몰라? 뭐,  탐지 초능력같은 걸로 어디 있는지 못 알아보냐? 꼬시고 싶은 여자가 있는데, 윙맨이 필요해."
"뭐야, 그런거면 저랑 해요! 저 잘 도와줄 자신 있어요!"
"넌 너무 범생이야. 갤러한이랑 내가 죽이 진짜 잘 맞는 단 말야."
륑게의 말에 핀은 살짝 풀이 죽었다.

"아무튼, 못 찾으면 됐다. 너무 휩쓸리고 다니지 말고, 한번에 한 사람씩 꼬셔. 간다."
핀은 륑게가 그 말을 하고 떠난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불만스러운 듯 뚱한 표정을 짓다가 혼자 되뇌었다.


"누가 범생인지 보여드리죠...!"


륑게는 그런 핀을 두고 한참 지나고 나서야 갤러한을 찾을 수 있었다. 그를 찾기 어려웠던 것이 당연했다. 그는 인파에 둘러싸여 있었다.

"실례합니다-"
륑게는 그 인파를 뚫고 갤러한의 손을 잡아 끌었다.


"너 뭐하냐?"
"아니, 칼린이 날 대타로 새우고 도망쳤었거든. 처음에는 전부 칼린이 어떤 사람인지 물어 대기에 대답해주다가 점점 무공담같은  물어 봐와서..."
"그래서 신나게 이야기해 주고 있던거냐? 너도 참 태평하다.."
륑게는 그렇게 말하고 갤러한에게 어깨동무를 걸었다.

"그딴 것보다 나 좀 도와주라."
"어떤거?"
"여자 꼬실건데, 윙맨 좀 돼 줘."
슬슬 늙은이들에게 괴물 잡은 이야기를 해주는 것도 질려가던 참이었다. 갤러한은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꿈도 꾸지 마라. 귀족과 원나잇이라니, 정신나간 짓이다."
벌써 계획을 짜던 그들을 중재한 것은 요나였다.


"아니, 가벼운 하룻밤정도는..."
"그들에게 건수를 주지 마라. 괜히 벌통을 헤집는  아니야."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술을 홀짝였다. 륑게는 살짝 원망스러운 듯 그녀를 바라보다가 변명하듯 다시 입을 열었다.


"거.. 조용히 넘어갈 수도 있는 거 아뇨?"
"물론, 대부분의 원나잇은  자리에서 끝나겠지. 하지만 이중에는 날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자들도 있다. 그런 자들의 허니트랩을 경계하려면 아예 원천을 차단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요나는 그 말을 하고서 웃었다.

"그 말을 하기 위해 너와 릴로를 찾고 있었다만, 타이밍 한번 끝내 주는 군. 뭐, 이제 됐다. 혹시 칼린은 어디 있는지 아나?"
갤러한은 그녀의 말에 조금 경계하며 물었다.


"그를 왜..."
"왜냐니, 곧 회의시간이다. 그를 데려가야 해."
아, 하고 갤러한은 면도해서 말끔해진 턱을 몇번 쓰다듬다가 말했다.

"회장 안에 있으면 분명 사람이 몰려 있을 테니까, 어디 테라스로 나가 있는 거 아닐까요?"
"확실히 그렇군. 그럼."


이리하는 이 자리가 역겨워서 참을 수 없었다. 몸에서 기름이 흘러나오는 듯한 귀족들, 구역질 나게 번들거리는 회장, 버터냄새가 나는 듯한 느리고 끈적한 음악까지. 가장 참을 수 없는 것은 당장 그 회장 밖에 대기하고 있는 것이었다. 자신의 얼굴이 박혀 있는 마도방식의 비행선. 참을  없을 정도의 모독이었다.


때문에 그녀는 주변의 모든 요소를 무시하며, 그나마 참을 만한 음식과 술에 집중했다. 기계식 차량을 타고 있을 때 까지는 좋았다. 왕국이 다른 방향의 기술 발전을 도모하는 것 같아 만족스러웠고 칼린이 옆에 있어 나쁘지 않았다.

"...제기랄."
그녀는 다시한번 성 밖에 그 위광을 뽐내며 정착중인 비행선을 보았다. 그녀의 은발은 검은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오만하게도.

그녀는 담배라도 필 생각으로 자신에게 말을 거는 귀족들을 헤치며 테라스로 발을 옮겼다.




"뭐야, 칼린. 여기 있었네."
"이리하? 이리하씨도 쉬러 오신 건가요?"
칼린은 몸을 기괴하게 비틀면서 손가락을 움직이려 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런 칼린을 보면서 보기 힘들다는  대답했다.


"뭐... 그렇긴 한데, 뭐하고 있는 거지?"
"그냥, 간단한 속임수나 가르쳐주고 있었지."
대답은 라드가 대신했다. 이리하는 그제서야 라드와 도르베도 같이 있으며, 전부다 같은 금화를 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뭐, 지금 안에서 하고 있는 사교파티보다는 재밌어 보이네."
"뭐야, 너도 해볼라고?"
"아니. 끼지 마."
이리하는 그렇게 말하며 라드를 쳐내고 칼린의 옆으로 다가갔다.


"... 우리가 비행선을 띄우다니."
"그러게요. 대단하지 않아요?"
칼린의 말에 이리하는 조금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대단하다니... 좋은 의미로?"
"? 나쁜 의미일 게 있나요?"
이리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비등록 마법사라면 마도방식의 기술을 환영할 리 없다.


"칼린,  혹시..."
저 비행선이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는 건지 모르냐, 라고 말하려 할 때였다.


"다들 여기 모여 있었나."
난입해 온 것은 요나였다.

"칼린, 가자.  회의가 시작된다."
"아, 네."
칼린은 동전을 고쳐 쥐고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 이리하는 영주의 반응을 보고 확신했다. 칼린은 아직 아무것도 모른다.

"잠깐..."
이리하가 칼린의 손을 붙잡았을 때였다. 진짜 무게감이 느껴질 정도의 살기가 그녀를 덮쳐 왔다. 요나가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손 놔라."
그녀는 짧게 말하며, 칼린의 반대 손을 붙잡았다. 더이상의 경고는 없을 것이라는 말투였다. 칼린은 미묘한 기류를 느끼며  손이 잡힌 채로 애매하게 서있었다.

"당신 설마..."
"이리하, 그 어떤 변명도 다른 말도 필요 없다. 놓지 않는다면 손 째로 베어내겠다."
지나치게 공격적인 요나의 발언에 칼린의 표정도 바뀌었다.

"요나, 갑자기 왜 그러세요!"
"가만히 있어."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결국 이리하는 손을 놓았다. 그녀는   그림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서 영주와 적대할 이유는 없다.

"칼린과 접촉하지 마라, 미망인. 그리고..."
요나는 칼린을 끌어당기며 자신의 품에 넣었다. 칼린은 엉거주춤하게 영주의 가슴에 얼굴이 묻혔다.

"입조심하도록."
그렇게 말하고서 요나는 그대로 칼린을 끌고 갔다. 칼린은 질질 끌리며 소리쳤다.

"라드씨! 금화요!"
"그냥 가져."
라드는 그렇게 말하고서 흥미로운 듯 이리하를 쳐다보았다. 이리하는 분노에 전신을 파를 떨고 있었다.


'이건 이용할 수 있을려나.'
그렇게 생각하며, 라드는 동전을 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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