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0화 〉병(충)해 (70/164)



〈 70화 〉병(충)해

갤러한은 방 침대에 누워서 언제나 와 같이 리쿠르트에게 편지를 써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들려오는 노크소리에 문을 열었다. 문 너머에는 칼린이 있었다.

"잠깐 괜찮을 까요?"
손에는 도수가 가벼운 맥주가 한  들려 있었다. 갤러한은 이빨을 드러내며 웃으면서 문을 열어 주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하하, 별거 아니에요. 그냥 갤러한에게 묻고 싶은 게 있어서요."
칼린은 들어오며 문을 닫고, 테이블 앞에 앉았다. 갤러한은 찬장에서 잔을 두개 꺼냈다. 고작해야 이틀 지나면서 타는 열차의 개인실에 찬장까지, 그에게는 지나치게 사치스러운 여행이다. 단 리쿠르트와 같이 타기에는 제격일 것 같았다.


"뭐하고 계셨어요?"
칼린은 바닥에 꾸겨진 종이들을 보며 비웃듯 웃는다. 갤러한은 굳이  말을 무시하며 테이블에 앉았다.

"잔은 하나만 꺼내자고. 난 병으로 마실게."
갤러한은 그렇게 말하고 병을 쥐어 칼린의 잔을 채워줬다. 칼린은 그걸 양손으로 받는다. 갤러한은 술을 받을  그런 동작을 하는 문화를 모른다. 조금 신경 쓰인다. 그래, 조금.


"건배!"
그 둘은 짧게 잔을 부딪히고, 목을 울리며 맥주를 마셨다. 누구 먼저라 할  없이 동시에 테이블에 잔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갤러한이 입가를 소매로 닦고 있을 때였다.

"갤러한씨."
"엉?"
"제가 뭘 잘못했나요?"
미묘한 긴장감. 조용한 방 안에서 열차가 흔들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게 무슨 소리냐, 갑자기?"
"갤러한씨 요즘 절 피하시잖아요. 오늘도 한마디도 안 하셨고..."
칼린은 조금 씁쓸한 표정으로 술잔을 바라본다. 술잔을 내려보고 있는 그는 무서울 정도로 아름답다. 그래, 무서울 정도로.

"야, 내가 영주를 피하면 피했지, 너를 왜 피하냐..."
갤러한은 짐짓 어이없는 척을 하며 넘기려 해본다. 칼린은 가만히 술잔을 바라본다. 그리고 시선만 갤러한에게 돌린다. 정교한 유리 인형 같다.


"...그런가요?"
사람을 꿰뚫어 보는 듯한 저 시선은, 칼린이 요나에게 가르친 것인가, 아니면 그  인가. 주인과 종자가 쌍으로 닮아간다. 아니, 축제 전까지 그 둘은 분명 완전 다른 사람이었다. 바뀐 것은 갤러한의 시선밖에 없다.


"다행이다... 저, 부대에서는 제대로 모두의 동료로 있고 싶거든요. 다시 혼자 남기는 싫어요."
칼린은 웃는다. 그래, 그 웃음은 외로움과 고통으로 얼룩진 그것이다. 하지만 이미 색안경을 낀 갤러한은 그 웃음을 제대로 읽고 있는 것인지 혼동이 갔다. 지금 확실하게 해야 한다. 그 때의 일을 지금 묻지 않는다면, 그의 불신은 언젠가 칼린을 상처 입힌다. 칼린은 나쁜 놈이 아니라는 것도, 그렇게 위험한 비밀을 혼자 숨길 자식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면 묻는데 망설일 필요는 없다.

"칼린-"
갤러한은 힘들게 운을 띈다. 칼린은 평소처럼 약간 웃으며 그를 바라본다. 그래, 칼린이라면, 그가 아는 칼린이라면 이런 상황에 진지하게 묻는 말에 진심으로 대답해 준다. 믿을 수 있는 동료이다.

"--- -- --- -- -- -- --?"
증기기관차 특유의 시끄러운 기적(汽笛)소리가 울려 퍼졌다. 정적이었던 방 안에 타이밍 좋게, 마치 갤러한의 말을 덮어 내 듯 소리가 지나갔다. 칼린은 움츠린 몸을 풀고 갤러한을 보며 웃었다.

"햐, 깜짝 놀랐네요... 계속 깜짝깜짝 놀란다니까요, 저는. 그래도 묘하게 중독성 있지 않나요?"
"응? 아, 뭐..."
갤러한은 적당히 대답을 얼버무렸다. 그가 하려던 말이 기적소리에 씹혀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에이씨, 맥주 쏟았네... 죄송해요, 갤러한씨. 먼저 나가 볼 게요. 어울리는 옷이 있어야 할 텐데..."
"하하, 칠칠맞긴. 네르바에서 옷도 하나 사야겠구만."
"뭐예요, 반쯤 은 창문을 열어  갤러한 잘못이죠!"
갤러한은 아주 작게 창문을 열어 두고 있었다. 환기라는 이유였다.


"그러면, 내일 뵈요. 짧았지만 좋았어요."
"싱겁기는, 뭐하러 온 건지. 됐어, 가."
갤러한은 시원하게 웃는다. 칼린이 가고도 한참을 생긋거렸다. 칼린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자, 그의 표정은 다시 굳는다.


잘못 본 게 아니다. 갤러한은 확신한다. 색안경의 결과로 잘못 본 것 따위가 아니었다.

칼린의 표정은 경적 소리가 울리는 동시에 일그러지지 않았다. 그 사이로 들려오는 자신의 질문을 들으면서 일그러졌다. 그리고 급하게 자신의 맥주잔을 넘어트렸다.

그는 명백하게 자신과 영주 사이의 일을 감추려 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는 영주와의 관계에서 일방적인 피해자가 아니다.


이제는 정말 모르겠다. 적어도 모두와 동료로 있고 싶어하는 것과, 부대를 아끼는 것은 진심인 것 같았다. 아니, 그게 진심일까. 그는 또 무엇을 숨기는 것 인가.

갤러한은 고민 끝에 리쿠르트에게 보내려던 편지를, 리쿠르트가 회수하기 전에 다시 꺼냈다. 그리고 거기에 추가로 몇 글자를 적었다.


'추신. 성 안에서 벌어지는 일 같은 걸 나한테 알려줄 수 있을까? 칼린이나 영주에 관련된 거라면 더 좋고, 굳이 아니더라도 사건 같으면 나한테 알려줘.'
이대로면 리쿠르트가 불안하겠지.

'나도 당신이 성에서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니까.'
굳이 한문장을 더 쓰고, 갤러한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이틀을 빠르게도 흘렀다. 아마 귀족들의 관광열차를 처음 접해본 그들로서는 더더욱 빠르게 지나갔다고 체감되리라. 그들이 여행객이었다면, 관광과 휴양의 도시 네르바를 두고 그런 생각은 못했을 것이다.

여기저기 북적이는 인파에 생기를 띄는 사람들의 얼굴. 뒷골목이라는 개념에 근접하는 것조차 허락하지 못하도록 하는 개방된 거리. 갖가지 고급 숙박 시설과 레져를 위한 시설들. 귀족들의 사치를 위한 다양한 상점.


칼린은 연신 놀랄 수밖에 없다. 그는 이제서야 이 세계의 도시들을 경험해 보는 것이었다. 도시들은 벌써 근대의 색을 띄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여흥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은 없었다. 그들은 바로 영주의 성으로 발을 옮겼다.

조금 현대적으로 바뀌어 가는 건물들에 비해 웅장한 고딕풍으로 세워진 성은, 일종의 테마 파크와도 같은 느낌을 주었다. 사실 완전히 틀리게  것도 아니었다. 성이라는 것은  도시의 권력의 상징성으로 남겨두는 건물이 되었으니까.


"인사드립니다. 벨카의 영주 요나입니다."
요나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네르바의 영주에게 인사한다. 원탁이 아닌 자리에서 그녀가 감히 제8영주들과 말을 놓을 기회도 이유도 없다.

"고개를 들어라."
네르바의 영주는 그렇게 말한다. 그는 낮부터 술에 조금 취한 듯 자리에 거의 걸치듯 앉아있다. 가볍게 하품을  그는 팔을 움직이는 것조차 귀찮은 듯 손 만을 까딱하여 시종을 부렸다. 그리고, 회의에서도 봤었던 그의 종자가 요나에게 종이를 가져다 주었다.


"거기에 표시되어 있는 곳이 각지의 사병들이 모일 장소가 될 것이다. 그 종이는 숙박비의 어음같은 것이고. 부디 그 지점에 대신 갖다 놔주겠나?"
요나도 일단 영주이다. 같은 영주에게 너무 거만한 자세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같은 영주라는 직책 사이에도, 그들의 위치의 높낮이차는 상당하다. 8영주라는 것은 왕에게 보고하는 것보다 먼저 임의로 원탁회의를 통한 결정을 내릴 권한을 가진 주요 도시의 수장들. 즉, 그들이 원탁회에서 결정한 사안은 왕명보다 빠르게 체결된다.

"...알겠습니다."
네르바의 영주는 요나가 고개를 숙이는 것을 보고는 관심도 없다는 듯 손을 흔들어 그들을 보냈다. 그리고 떠나가는 그들의 등에 대고 말했다.

"그 지점에 마차도 준비되어 있다. 알아서 타고 가도록."




요나는 그 숙소에 들어가 어음을 제출했다.


"와, 시발. 벨카는 촌동네가 맞구나."
"오, 이곳을 사병의 대기소로 만든 건가."
"뭐야, 와본 적 있어?"
감탄사를 뱉던 아스타는 릴로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응? 아, 넌  때 없었지. 너 가고 소니아랑 넷이서 활동하면서 여기에  3일정도 있었어."
릴로는 숨쉬듯 말하고 화려하게 꾸며진 로비에 손을 대 보았다.

"그  네르바에 연쇄살인마를 잡아 달라고 불려왔었는데...  숙소에서 머무르면서 추적 했었지. 이 숙소의 건축 양식이 카산하크꺼인거 알아?"
그녀는 평소에 보이지 않는 깨끗한 웃음을 달고 그렇게 말했다.


'자랑할 만한 고향이 있어서 부럽구만. 나도 자랑 하나 해볼까? 내 고향에서는 배고파지면 사람들을 죽이고 집에 불을 질러."
"새끼, 감상에 빠질 시간을  주네."
륑게의 비꼬는 듯한 말에 릴로가 한쪽 눈썹만 치켜 올리며 웃는다. 어차피 서로 웃자고 하는 농담인 것을 안다.


"작업 끝났다. 빨리 가자. 충족이 언제 올  모른다."
요나는 그렇게 말하며 여관의 뒷문을 통해 부대원을 이끌고 나왔다. 거기에는 마차가 한 대  있었다.

그렇게 크지도 않은 마차가, 단 한 대.

"...이건 아니지..."
조금은 대우가 좋아졌다고 생각했던 그들이 어리석었다. 이젠 다른 귀족들의 견제까지 받아야 한다는 것을, 부대원들은 이제서야 체감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한산한 곳이었다. 아니, 한산보다는 황량이 맞는 느낌이었다. 다른 약소 마을과 비슷한 느낌이었지만, 지금까지 지나온 도시들과 비교하면 몇 곱절은 더 추례해 보이는 것이 현실이었다.


칼린은 이 지역을 보자 마자 왜 국가에서 이 곳에 병력을 상시대기 시키는 선택지를 고르지 않았는지 알 수 있었다. 이 마을은 영지라고 부를 수도 없었다. 성조차 없는 곳이다. 잔인한 말이지만 굳이 비교하자면 네르바에 속해 있는 마을보다도 자치기능이 결여된 것처럼 보였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지 보여."
이리하가 멍하니  황량한 풍경을 바라보는 칼린에게 다가왔다.


"어째서 이런 곳이 '영지'로서 구분되어 있나, 그런 생각이지?"
"...비슷해요."
이리하는 자신들이 타고 온 마차를 바라보고서 말했다.

"이 너머는 완전한 황야야. 거기의 주인은 충족이지. 그래서 언제나 침입이 끊이지 않는 곳이야."
모래바람이 불어온다.  안쪽까지 건조해지는 듯한 풍경이다.


"...누가 이런 땅을 관리하고 싶겠어? 어딘가의 영지에 소속된 마을이 되면, 영주는  땅을 관리해야만 해. 손해 밖에 생기지 않는 일이지. 모두가 부담스러워 하는 이 땅은 또 버리지는 못할 곳이거든. 여기를 버리면, 충족의 영역은 닿는 곳마다 넓어 질 테니까."
그녀는 지나온 길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네르바의 영주는 이들에게 '자치권'을 줬어. 쉽게 말해서, 다른 영지와 선을 그은 거지. 이 곳을 영지로서 인정한 거야. 다른 8귀족들을 매수해서 말야. 덕분에 네르바는 충족과의 접견지대와 지근거리면서도 관광사업으로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는 거야."
"그건..."
"그래. 잔인한 일이지. 옳지 못한 일이야. 이 땅은 그런 계략으로 가난의 무덤이 되었어. 여기에서 밖에 살지 못하는 빈곤층이 사는 곳이 되었고."
그녀는 다시 칼린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요나가 그곳의 '영주'를 만나러 가서 없는 틈새를 이용해 말했다.


"이건 돈과 권력의 이름 아래에서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행위야.  둘의 주박이 윌레인을 묶고 있는 이상, 이런 땅은 결코 무덤을 벗어날 수 없어."
"...왜 저에게 계속 이런 말을 하시는 거죠?"
"넌 윌레인에 대해 모르는 게 많고, 아직 순수하니까."
슬슬 요나가 돌아올 시간이 되었다. 그녀는 등을 돌렸다.


"스스로 생각해봐."
그리고 요나가 돌아오기 전에 마차 쪽으로 돌아가 짐을 가지러 들어갔다.


 영지는 얄궃게도 땅은 넓었다. 접경지대에 가까워질 수록, 최근에 불탄 것 같은 집이나 까맣게 탄 자국 등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부대원들은 접경지대 앞에서 발을 멈추었다. 그 경계가 확실히 그어져 있는 것은 아니었다. 철조망 같은 것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아니, 물리적인 벽은 없었지만, 경계가 그어져 있지 않다는 표현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갈릴 수는 있었다.


길고 넓게 뻗은 붉은 땅. 결코 황토같은 것이 아니다. 멀리에서부터 났던 피냄새로 알 수 있었다.


"이건 또... 유쾌한 광경은 아니군."
라드마저 눈을 조금 찌푸렸다.  앞의  '경계선'은, 짙은 피냄새를 풍기며 검붉은 색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땅 위에는, 마을 주민들이 회수조차 포기한 참혹하게 널려 있는 시체들이 있었다. 피칠갑으로 동강나 있는 시체들은 연분홍색 내장을 흩뿌리며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다. 말발굽 모양으로 눌려 있는 시체들이 그들이 어떤 식으로 그렇게 '흩어지게' 되었는지 보여주는 듯했다.


뜨거운 태양 아래 건조되고 있는 검붉은 토양. 제 짝을 찾는 것은 평생 무리일 토막 난 시체 부위들. 사이사이로 꾸덕꾸덕 기어 나오는 파리들. 칼린은  땅의 이명이 무엇인지 들은 적이 있다.

레드라인, 파리의 감옥. 언젠가 륑게가 충족을 흉내 내며 했던 말이 떠오른다.

'아침해를 사랑하는 자라면 굴복하라!'
그래, 거기에 널린 시체들은 아침해를 사랑할 자격을 잃은 듯, 하나같이 목이 없었다.





"할망."
차바레다는 특별히 신경 써서 만든 듯한 가죽 텐트에 들어가며, 그 안에 있는 작고 쪼그라든 노인네에게 다가간다.


"사냥갈꺼야. 점쳐줘."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들고 있던 호리병을 거칠게 노인네에게 던진다. 노인네는 감았는지 떴는지도 구분가지 않는 얇은 눈을 하고서 가볍게 그 호리병을 잡았다. 그리고 크게 술을 머금은 후,  안을 행궈 내듯  번 쪼그라진 볼을 움직여 보았다.


목 울대를 움직이며 그 술을 삼켜낸 그녀는,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기하학적인 형태로 짜인 돗자리를 펼쳤다. 그 위로 그녀는 진흙으로 만들어낸 컵과 돌맹이를 꺼냈다.


"...보인다. 보여."
그녀는 작게 속삭이며 몇 번 돌을 쥔 손을 흔들고 돗자리 위로 뿌렸다. 그리고  위로 컵을 던졌다. 그 파편과 돌의 배치를 가만히 지켜보던 그녀는 곧 옆에 놓여있던 지팡이를 쥐고 천천히 쪼그라든 몸을 일으켰다.


차바레다는 그런 그녀를 부축하며 밖으로 이끌었다. 노인네의 발걸음은 차바레다의 반걸음조차 되지 않았지만, 차바레다는 표정조차 구기지 않고 노인네를 꽉 쥐면 부셔질  조심스럽게 데리고 나갔다.


노인네는 차바레다와 팔짱을 낀 상태 그대로, 하늘의 별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렸다. 그리고 노인네의 거칠고 마른 목소리가 아닌, 어린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그녀의 벌어진 입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차바레다, 위험하다. 달은 너무도 위험하다."
차바레다는 그녀가 말을 시작하자 끼고 있던 팔을 풀고 뒷걸음쳐서 그녀를 바라본다.


"두개의 보름달, 두개의 눈. 전차를 탄 붉은 도살자가 파도를 갈라낸다. 차바레다, 그 날 달은 네개가 뜬단다. 붉은 두개의 달이  사조성(死兆星)이 되겠구나."
노인네는 그렇게 말하고서 눈을 감는다. 그리고 느리지만 품위 있게 고개를 숙이고 지팡이에 기대 잠시 그 자리에 서있었다.


차바레다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가만히 노인네를 지켜보던 그녀는, 어느새 다가와 자신의 바짓가랑이를 잡아당기고 있는 꼬마아이를 내려다본다.

"무슨 소리야?"
배고파 보이는 꼬마아이. 덩치도 작고 마력도 그냥저냥이다. 이번 약탈에 실패한다면 먹고  입을 줄이기 위해 죽게 될 15명중 한명이다.


"들어가라."
차바레다는 짧게 말하고 나서 그 아이에게 자신이 만든 나무조각 팽이를 준다. 아이는 빠진 앞니를 드러내며 신나서 그것을 들고 뛰어나간다. 그녀는 그런 아이의 뒷모습을 보다가 할멈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다시 천천히, 그녀를 텐트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텐트 안에서 노인네가 앉은 자세로 꾸벅꾸벅 조는 것을 확인한 차바레다는 다시 텐트를 나온다. 그리고 밝게  달을 바라보며, 충족이 사용하는 일종의 '날짜 계산기'를 꺼내 들었다. 길게 뻗은 나무 자 같은 것에 달의 갖가지 형태가 순서에 맞게 구멍으로 뚫려 있다.

그녀는 그걸 달에 들이대 보고 가만히 바라본다. 보름달까지는 앞으로...

"16일."
충분하다. 다시 자를 집어넣은 그녀는 돌바닥에 앉아 악기를 꺼냈다. 그리고 황량한 땅을 비추는 달빛만큼이나 처량한 음색으로 검은 밤을 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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